신학적 오류 준엄히 지적했지만 구원 대상 잊지 않았다
이슬람의 실체 2017. 7. 4. 05:48신학적 오류 준엄히 지적했지만 구원 대상 잊지 않았다
칼빈,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요 일신론적 이단으로 규정 … 교리는 비판했지만 선교와 개종 가능성은 열어놓아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종교개혁을 이끈 프랑스의 기독교 신학자다. 역사의 여명(黎明)기에 칼빈은 가톨릭 사제, 법률가, 기독교 인문주의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회심을 통해 그는 오직 성경만을 유일한 텍스트로 삼아 그것의 교사(doctor), 해석자(interpres), 수호자(custos)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살았다. 그의 위대한 저서는 그의 나이 27세 때 라틴어로 출판한 기독교강요다. 그리고 그가 쓴 주석은 많은 주석들 가운데 이정표적인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칼빈은 기독교 신학의 정수가 되는 교리들을 정리하고 심오하게 제시함으로써, 교리사상 개혁신학이라는 큰 일가(一家)의 초석을 놓는다.
1. 칼빈 시대의 이슬람
칼빈이 살았던 종교개혁시대에 이슬람은 가장 큰 팽창을 이루었고, 이슬람 제국의 황금기였다. 당시 오스만 터키 이슬람제국은 유럽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고,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의 글에서 ‘터키인들(Turks, 이슬람)’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 칼빈은 1544년에 쓴 그의 저서 <교회개혁의 필요성>에서 “터키인(이슬람)과의 전쟁은 온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렸고,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루터와 마찬가지로 칼빈 역시 당시 이슬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슬람의 움직임에 대한 국제정세를 꿰뚫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칼빈이 무슬림들과 실제적인 논쟁은 벌였다거나 그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했다는 기록도 없다. 왜냐하면 루터 당시에는 비엔나를 정복하기 위하여 이슬람 세력이 물 밀들이 밀려왔을 때인데 반하여 칼빈 당시에는 이슬람 군대가 비엔나를 정복하지 못한 채 물러가고 나서 이슬람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정된 된 시기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루터는 이슬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독일에서 사역하였고, 이슬람의 세력으로부터는 안정적인 제네바에서 사역했던 칼빈 사이에는 이슬람에 대한 긴장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칼빈의 작품 속에 나타난 이슬람에 대한 언급으로 볼 때 칼빈은 이슬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 이슬람에 대한 칼빈의 이해
이슬람에 대한 칼빈의 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그의 엄격함이다. 칼빈의 주석과 설교들, 강의들 속에 방대하게 흩어져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슬람에 대한 킬빈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무함마드는 거짓 선지자요 배교자
칼빈은 무함마드를 ‘거짓 선지자’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신명기 13장 1절 이하에 관한 설교에서 “기독교 신앙은 [삼위]하나님에게로 나아가지 않는 자들이 반대하는데, 그들은 바로 무슬림들, 이방인들, 그리고 유대인들이다”고 말하며, 그들은 신성모독을 하였으며, 교회로부터 마치 썩은 가지처럼 철저히 단절되었으며 그들이 복음에 대하여 저항하거나 기독교를 없애기 위하여 애쓰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하였다. 칼빈은 신명기 18장과 33장에 예언된 선지자가 무함마드가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위로자’는 그리스도와 성령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보다 완벽한 계시가 그리스도가 출현한 이후인 7세기에 무함마드에게 도래했다는 이슬람의 해석을 비판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칼빈은 무함마드를 ‘배교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칼빈은 1550년에 데살로니가 후서에 관한 주석에서 ‘죄의 사람’과 배교를 로마교도들과 동일시하였으며, “변절이 보다 널리 퍼졌도다! 무함마드가 변절자였으므로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추종자에게로, 터키인들에게로 돌아섰다. 무함마드의 분파는 격렬한 홍수와 같은데, 그것의 폭력 안에서 교회의 절반을 떼어내어 갔다”고 주장하였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살면서 실제로 기독교 에비온파(Ebionite)의 영향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무함마드 당시에 메카에는 에비온파 신자들이 수백 명이 살고 있었다. 무함마드의 부인 카디자(Khadija) 또한 에비온파신자였다. 또한 무함마드에게 영향을 끼쳤던 이븐 와라카 나우팔(Ibn Waraqua Naufal) 역시 에비온파의 사제였다. 무하마드가 결혼을 할 때, 에비온파 의식에 따라서 결혼식을 했다는 견해도 우세하다. 따라서 칼빈은 무함마드를 변절자라고 불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둘째,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
칼빈은 이슬람의 이단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550년에 집필한 주석 중 요한일서 4장 2절과 3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하는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6절을 주해하면서 거짓 선지자의 거짓 예언을 잘 분별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슬람은 이단 가운데 어떤 이단일까? 이슬람은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고 성령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이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무슬림들도 천지의 창조자는 하나님이라고 힘껏 외치지만,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우상으로서 진정한 하나님을 대치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또한 하나님이 없으되”(요일 2:23)라고 한 말씀을 언급한다. 이슬람의 알라는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또한 위격이 없이 단일하다. 또한 요한일서 2장 18절에 대한 주석에서 칼빈은 ‘적그리스도 왕국의 전령사’들로 여러 이단들을 언급하면서,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삼위일체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대신에 일신론적인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슬람에서는 삼위일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도 부정한다. 따라서 예수를 통한 중보 또한 부정한다. 따라서 칼빈은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으로 이슬람을 이해했다.
셋째, 이슬람은 적(敵)그리스도
칼빈에 의하면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이다. 칼빈은 신명기 설교(13:6~11)를 통해서 그는 “무함마드는 터키인들이 그들의 무함마드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있는데, 그는 “그런 자들은 그들 자신이 고안하여 만들어 내는 악마”일뿐이라고 말한다. 1556~7년에 낸 신명기에 관한 설교(18:15; 33:2)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무함마드가 그의 <알 꾸란>(Al Coran)이 절대적인 지혜라고 말하고, 교황은 그의 칙령이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적그리스도의 두 뿔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다니엘의 예언들을 전적으로 역사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일, 즉 한편으로는 안티오커스 IV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와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로마와 연관시키는 것으로 일관성 있게 해석한다. 칼빈은 교황을 서방의 적그리스도요 이슬람은 동방의 적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그는 이 둘을 ‘두 뿔’로 언급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이슬람 혹은 이슬람을 창도한 무함마드는 적그리스도 혹은 적그리스도의 뿔이다. 하지만 칼빈이 이슬람을 적그리스도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무슬림을 적대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칼빈이 이슬람을 향해 적그리스도라고 표현한 것은 이슬람의 배후에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무슬림 자체가 적그리스도라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참고로 이슬람은 종교이며 무슬림은 이슬람의 제4 분사형으로서 이슬람 종교를 믿는 신자를 의미한다.
넷째, 무슬림에 대한 선교와 개종 가능성
칼빈은 이슬람을 교리적인 차원에서 예리하게 비판했지만, 무슬림들이 도덕적으로 질이 낮다고 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이슬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소재는 교리였지, 윤리적·도덕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슬람을 추종하는 무슬림들은 저주받아 마땅한 버림받은 자들인가”하는 선교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칼빈은 무슬림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칼빈은 무슬림이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복음화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많은 무슬림들을 신·구약성경의 참되신 삼위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정확히 예정하셨다고 믿었다. 칼빈은 신명기 23장 7절에 관한 그의 설교에서 “개종이 가능하고 세례받는 것이 가능한 무슬림들은, 이집트인보다 더 나았고 지금도 더 낫다(창 41:1~출 1:7).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많은 무슬림들을 성경의 삼위 하나님께로 돌이키실 것을 예정하셨다는 것”이 이사야 19장 21-25절의 설교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의 무슬림들과 이스라엘의 유대주의자들과 이라크와 이란의 이슬람 민족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되고 그의 교회에 가담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영광스러운 날이 오고 있도다!”라고 했다. 칼빈은 무슬림들이 참된 진리가 있는 교회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3. 이슬람에 대한 칼빈의 선교적 적용
칼빈은 교리적, 신학적 잘못을 단호히 배격하고 비판하면서도 이슬람 역시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칼빈은 무슬림이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어야 하며,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나눔과 섬김으로서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칼빈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인에 의하여 복음화 되어질 수 있고 또 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무슬림들이 삼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기독교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은 이슬람이 시작된 지 227년이 지난 837년이었고, 정작 아랍어 성경이 출판된 것은 1516년이다. 이러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전 세계 무슬림들의 80%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국 땅에서도 소리없이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는 약 25만 명의 무슬림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300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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