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도에 난민 신청하는 예멘인들의 종교,이슬람의 실체입니다.

중동의 예멘 국민 700만 명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2016년 기준 전 인구의 4분의1, 국민 네 명중 한 명이 아사 위기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예멘 내전에, 중동의 맹주 노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개입해
민간 피해 극심, 대부분 어린이

유엔(UN)은 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으면 수백만 명이 아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크 로콕 유엔 인도지원조정국 국장은 “구호물자 수송을 제때 하지 못하면 전 세계는 엄청난 규모의 기근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심각한 식량부족에 더해 최근에는 콜레라까지 덮쳤다. 지난 7일 욜란다 재퀴멧 국제적십자위원회 대변인은 “콜레라 예방약을 실은 배가 사우디의 통제로 예멘에 들어오지 못했다”며 “이러한 조치가 계속될 경우 결과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위기다.
사우디는 왜 예멘으로 가는 모든 길을 막은 것일까.   
  

 

대체 예멘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이슬람
(11.10)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예멘

★미국내 여아 할례 시술
   50만명 이상 추정

★우리나라

테러예방차원
➡️최초로 보안검색 실시
2018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1. 인구 4분의 1이 아사 위기…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낀 비극

예멘 내전에, 중동의 맹주 노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개입해
민간 피해 극심, 대부분 어린이

중앙일보 2017/11/10
http://iii.im/wqCa


2. "예멘 콜레라 감염자 64만7천명…2010년 아이티보다 악화 우려"

중앙일보 2017.09.14
http://iii.im/rcht


3. 사우디·이란, IS 몰락 후 중동 주도권 경쟁

중앙일보 2017.11.08
http://iii.im/jtg2

4. 백악관, 유엔에 '예멘 사태' 이란 관여 여부 조사 촉구

VOA Korea-2017. 11. 8.
http://iii.im/1T6N


5. IS 가담 호주인 사망자 87명··· 거점 상실로 사상자도 증가

시리아·이라크 사망자 대다수는 10대와 20대

연합뉴스 2017/11/10
http://iii.im/3Stg


6. 국립중앙박물관 국내문화기관 최초로 보안검색 실시

테러예방 차원에서 13일부터 시범 운영

내년 1월 2일부터 정식으로 실시해 보안강화를 지속할 계획

아시아경제 2017/11/10
http://iii.im/wvl1


7.  할례, 없애지 않으면....2050년 세계 여아 3분의 1이 위험

미국내에서도 50만명 이상이 할례 시술 추정..
아프리카 중동 등 피해 여성 2억명 추정

위클리오늘-2017. 3. 28.
http://iii.im/pvQO

 

예멘의 아픈 역사
예멘 내전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을 리 없다.  
불운한 역사의 시작은 19세기 중반이었다. 1839년, 오스만 제국 하에 있던 이들 앞에 영국군이 나타난다. 항구 도시 아덴을 노린 이들이 남예멘 지역을 점령하며, 예멘의 북쪽 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남쪽 지역은 영국이 다스리게 된다.  
 
그러다 1918년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자 북예멘이 먼저 독립해, 오랜 혼란을 거쳐 자본주의 국가를 수립한다. 이후 소련의 지원으로 독립한 남예멘에선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게 된다.  
 
분단된 나라는 끊임없는 다툼 끝에 1990년 통일되지만, 4년 후 내전이 발발한다. 북예멘의 주도로 곧 통일되지만 이후로도 남북 갈등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그러던 예멘에도 2011년, 중동 민주화 혁명의 바람이 닿았다.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는 물러났다. 사람들은 민주 국가를 꿈꿨지만, 지독한 가난과 제대로 된 리더의 부재로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앵커>

이슬람 무장세력 IS가 패망 직전에 몰리면서 구사일생으로 노예 생활에서 풀려난 아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카이로, 이대욱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기자>

이 아이는 걸음마를 뗄 무렵 IS에 끌려가 아동 노예로 지냈습니다.

3년 만에 풀려나 가족 곁에 돌아왔지만 누가, 무엇을 물어도 입을 굳게 다뭅니다.

아빠 품에 안기지도 않습니다. 그동안 겪은 끔찍한 경험이 사람을 두려운 존재로 만든 겁니다.

11살 무완은 다리가 두 번이나 부러졌습니다.

IS의 노예로 지내면서 테러 교육을 받다가 생긴 상처입니다.

[무완/11살·야지디족 : 테러리스트 훈련을 받으며 소총훈련과 대전차포 사격술까지 배웠습니다.]

IS는 학교에서 적에게 몇 번이나 채찍질하는 지로 숫자를 가르치고, 사상 교육이라며 참수 현장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IS 지배 아래 있던 아이들의 트라우마는 심각한 폭력성까지 동반합니다.

[칼 게이드/구호단체 직원 : 아이들의 폭력적인 행동으로 위험한 일을 겪는 사례가 많습니다. 가족들이 집 안의 칼을 모두 숨겨놓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와 형제들이 IS 때문에 숨지거나 실종됐다는 걸 알았을 때 아이들의 분노와 상처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IS는 수세에 몰리자 아동 노예를 이제는 총알받이로 전선에 내몰고 있습니다.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아이들도 치료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IS의 악몽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욱 기자idwook@sbs.co.kr

이슬람 선교에 대한 반성 및 전망
                                                이광호 목사 / 실로암교회

 

지난 9. 11 미국 테러사건 이후로 이슬람에 대한 정보들이 일반인들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생소하게 여길때도 교회는 이전부터 이슬람 선교를 위해 다각적인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들을 접하며 이슬람 선교에 대한 반성 및 전망을 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흔히들 이슬람 선교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슬람 세계 가운데서 살고 있는 선교사들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역사 가운데 있었던 상호 적대적 감정과 이슬람이 기독교 이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진리를 모방하고 있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코란에 대거 등장하게 된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인물이라 인식되는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이슬람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 예수 등이 그렇다. 특히 예수는 이슬람에서 마호메트를 제외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관계]


AD 7세기 초반 이슬람이 등장하던 초기부터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저항하는 종교가 된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 있던 유대교 세력과 갈등을 빚게 되고 기독교에 대해서도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특히 632년 마호메트가 사망하고 나서 이슬람 세력이 당시 동로마제국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갈 때 기독교는 사막으로부터 밀려드는 이슬람 세력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영토를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1세기 말에 일어난 십자군 운동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적대적 관계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슬람에 의해 성지를 빼앗긴 기독교의 성지 탈환운동이 곧 십자군 전쟁이다. 그 때는 이미 팔레스틴을 비롯한 성지들은 이슬람의 땅이었다.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과 관계있는 땅이요 예수와 연관된 땅이 이슬람의 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땅은 악한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에 의해 유린을 당하다가 알라의 은총을 힘입어 이슬람이 회? 므?땅이다. 그런데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앞세워 자기의 땅이라며 다시 침범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악한 서구 기독교 세력의 침략이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서구의 십자군 운동에서도 알라의 은총으로 기독교 세력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 후 6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 땅은 이슬람의 성지로 인정되어 오던 터였다. 그러던 중 19세기 말이 되면 유대인들의 시오니즘(Zionism) 운동이 일어나 다시 팔레스틴을 회복할 꿈을 키워가게 된다. 19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서구의 과학문명이 이슬람을 위협하다가 급기야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당시 이슬람의 종주국 역할을 하던 오스만 터키가 전쟁에 패망함으로써 팔레스틴을 서방의 기독교 세계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현대사 가운데서 이슬람의 짓밟힌 자존심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절정에 달한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되고 뒤이어 이슬람의 성지 예루살렘을 기독교 세력에 빼앗기게 된다. 이스라엘의 독립에는 기독교 국가인 영국의 역할이 컸으며 이슬람의 눈에 비치는 유대교는 기독교의 한 분파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볼 때는 역사 속에 잠복하고 있던 십자군 운동이 고개를 들면서 급기야 팔레스틴에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서구 기독교 세력의 교두보가 마련된 것이다. 이 후 이슬람의 눈에 비쳐진 것은 신 십자군 운동이었던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은 종교전쟁이었다. 적어도 이슬람의 숨겨진 시각은 그러하다. 당시 다국적군이라는 군대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등 모두 기독교 세력이었던 것이다. 정치가들이나 지도계층의 인물들은 다양한 목적에 따른 나름대로의 이해를 했겠지만 적어도 이슬람의 잠재된 사고들은 그러했다. 다국적군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뭉쳐진 군대가 아니었으나 그들의 눈에는 충분히 그렇게 비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반성]

서구 기독교는 사실상 이슬람을 정치적 갈등 대상으로 생각지 않는다. 정치가들이나 경제인들은 자기의 목적으로 인해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그들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나 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적잖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시대에 들어와 성지순례는 보편화 되었다. 오늘날은 해외여행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었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조차 어려웠다. 해외여행의 보편화는 교통과 통신, 경제적인 여건이 현대적으로 발전한 후의 일인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서구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일반 성도들은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 지역을 방문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시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지역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보편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만큼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 지역 등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별 생각없이 성지를 방문하지만 이슬람에서 볼때는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탐심'에서 일어난 반응이다. 우리가 성지라고 하는 지역들은 모두 이슬람과 이해관계가 있는 땅이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이 성지를 방문하는 것은 그 땅이 자기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땅은 성경에 나타난 지명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 가운데 그곳을 정복할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이슬람의 입장에서 보아, 그 땅을 자신의 종교 혹은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예사문제가 아니며 거기에는 어떤 불순한 '탐심'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인들의 구체적인 종교적 대응방법이다. 1990년대 초반 이래 많은 이슬람 선교단체들에서 '역라마단 운동'을 하고 있다. 금년에도 11월 17일부터 한달간 이어지는 모슬렘의 금식기간에 맞추어 기독교에서는 특별 기도회를 계획하고 있다. 역라마단 운동이라 일컬어지는 이 기도회 안내책자는 35개 이상의 언어로 출간되고 있으며 2천만명 이상의 교인들이 이 기도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 시대에 들어와 시작된 역라마단 운동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 여긴다. 다수의 이슬람 관련 선교단체들과 이슬람 선교관심자들이 그 일을 먼저 시작했다. 이슬람의 라마단은 그들의 생각에 성스러운 금식의 달인데 기독교인들은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이슬람을 위한 특별기도를 하며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가 나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식으로 기도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속된 말로 맞불지피기 처럼 오해될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불교의 사월 초파일날에 맞추어 기독교에서 불교도들을 위한 대대적 기도회를 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는 종교적 마찰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되 나팔을 불며 광고를 하는 가운데 떠들썩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 리의 그러한 자세가 그들의 마음문을 닫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는 줄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그들 가운데 감격해 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슬람에서 생각하는 기독교와 우리의 자세]

기독교인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것이 있다. 모슬렘들 중 다수는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다. 그들은 서구인과 기독교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문화란 곧 서구문화를 일컫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에는 서구인은 기독교, 동양인은 불교라는 식이다. 모슬렘들 중 다수는, 기독교인들을 상종해서는 안될 악한 자들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물론 그들은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 동양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라 면전에서 면박을 주거나 당황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사람 처럼 동양인이 기독교인이라면 어떻게 동양인이 기독교인일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의 생각에는 얼굴이 희고 코가 큰 노랑머리를 가진 사람이 기독교인이지 동양인은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옛날 사람들이 선교사라 하면 서양인을 생각했던 것과도 같다. 얼굴 피부가 새까만 아프리카 사람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 선교사라 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도 흡사하다.

극단적인 이슬람 지성인들은 동양의 기독교인들은 서양 기독교 세력의 용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세계정치와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서양 기독교인들에게 돈을 받거나 정신적인 어떤 영향을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좀 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이슬람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려면 그들 앞에서 종교적 정복자의 모습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믿는 종교인으로 바꾸려는 듯한 자세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줄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었을 때 그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마무리]

세계는 지금 인간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전투적 정황가운데 놓여있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온 세계가 그러한 분위기기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슬람의 우위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아가 경제적 과시를 할 것도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이슬람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을 서구의 종교를 가지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눈과 귀가 열리기를 바랄 따름이다. 우리가 목적하는 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 게 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경계심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없다.

이번 초가을 미국이 테러를 당한 이후 부터 시작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력과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하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를 바라보는 범 이슬람 세력 사이에는 이미 종교적 갈등이 야기 되었다. 그것을 종교적 갈등으로 볼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쉽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인식될 수도 있다. 일본이나 한국 같은 나라는 서양인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편에 서 있다. 물론 테러 세력을 응징한다는 훌륭한 명분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시각에는 단순히 그렇게 비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적극적으로 응징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대개 기독교 국가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은 이슬람에서 보기에 한결같이 서구 기독교 세력들인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기독교주의는 인간들을 세속화 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다. 강력한 살상 무기들을 대량생산할 뿐 아니라 더러운 모든 서구의 영화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성생활이 문란하고 윤리도 도덕도 없는 나라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있고 힘이 있으니, 자존심이 상해도 할 수 없이 참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란 그런 종교이다. 그들에게 가서 '기독교를 믿으라' 든지 '나는 기독교인이다' 라고 이야기 하면 그들의 머리에는 부정적인 것들만 떠오를 따름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이슬람 선교인데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여기서 결론적으로 유념해야 할 것 몇 가지를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들이 오해할 수 있는 어떠한 공격적 자세도 버려야 한다. 역라마단 운동 등을 통한 기독교적 대응을 알면 그들은 즉시 저항적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서구와 기독교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자연스럽게 알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무분별한 서구적 복식이나 행동양식은 잘 점검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은 아무런 자랑거리도 아니다.

 

그들 앞에서 한국의 위상이나 부는 전혀 자랑스러워 할 것이 못된다. 이슬람 지역에 퍼져있는 한국산 자동차나 제품들을 보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결단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보고 도리어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문화를 우러나는 마음으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적 우월주의는 복음전파의 길을 가로막을 따름이다. 그들의 문화를 통해 우리가 배우려는 자세가 있음을 그들로 하여금 알! 게 해 주는 것은 많은 신뢰를 얻게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슬람 선교는 매우 어려웠다. 앞으로는 더욱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를 원한다.
(빛세계선교회 2005 IMTC 강의)

출처: 실로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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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유럽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 무너지는 기독교의 중심
대거 유입된 무슬림으로 다양한 문화적 충돌 불가피, 사회 갈등도 급증
유럽인 떠난 자리 채우며 제1의 종교로 성장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슬람은 서쪽에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오늘날 그 예언이 실현되듯이 이슬람은 유럽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유럽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기독교 역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 칼빈 등이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개혁교회가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1세기 당시 중동이 기독교의 중심이였다면 그 이후 기독교의 중심은 유럽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아일랜드부터 러시아까지 이르는 유럽 전체의 무슬림 인구는 1970년1800만명이었던 것이 2000년에 들어서 3200만명이 되었다. 러시아는 오늘날 1500만명에서 2000만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이는 러시아 전체의 10~14%에 달하는 인구이다. 서유럽에는 1600만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출생율 차이를 보면 이슬람 인구가 더 많아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무슬림의 영향력은 유럽에서 더욱 커질 것이다. 중동역사학자인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는 2004년 독일신문 벨트(Die Welt)와의 인터뷰에서 “늦어도 21세기 말에는 유럽의 인구는 무슬림이 다수가 될 것이다. 유럽은 서부아랍의 일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유럽은 이슬람화 되어가고 있다.



유럽 다문화주의 시작의 배경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대규모 이민이 발생하였다.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전쟁의 피해를 알고 있던 유럽인들은 다문화 사회를 건설함으로서 그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하여 다문화주의(多文化主義, multi-culturalism)가 시작되었다. 더불어 값싼 노동력과 함께 이민자들이 유럽에 들어왔다. 서유럽은 국가를 재건하기 위하여 노동력이 필요하였는데 프랑스는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에서 노동이민자들이 들어왔다. 1961년에 독일에서 터키인은 단지 수천명에 불과했었지만, 1976년 약 100만명으로 성장하였고, 1990년 중반에는 약 200만명으로 늘었다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터키 이슬람 인구 중에 3분의 2를 차지한다. 모로코인과 터키인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이슬람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무슬림은 1960년 네덜란드 경제성장의 중심이었던 노트르담 인구의 반은 무슬림이다. 유럽연합의 수도인 브뤼셀의 인구 중 20%가 무슬림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인구의 40%가 외국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이민자이며, 비엔나 인구의 20%가 무슬림이다. 1990년 이후에 두 배로 성장한 것이다.


유럽의 다문화주의 실패선언의 배경


동질문화권의 이동은 사회적 문제를 안겨다 주지 않았다. 유럽 안에서 유럽인 이주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만남은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특히 이슬람과 만남은 더욱 그렇다. 유럽 정치지도자들은 다문화는 실패했다고 공언하였다.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 총리는 2010년 10월에 “다문화 사회를 건설해 공존하자는 접근법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하였다. 프랑스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은 2011년 2월 10일에 ‘프랑스식 이슬람’이 아닌 ‘프랑스 안에서의 이슬람’은 반대한다고 선포하였다.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2011년 2월 5일 독일 뮌헨의 국제안보회의 연설에서 “실패한 정책(다문화주의)을 접을 시간이 됐다”고 선언하였다. 스위스 베른대의 크리스티앙 요프케(Christian Joppke) 교수는 “적어도 유럽에서는 이슬람교도들 때문에 다문화주의가 후퇴했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다문화 실패를 선언하자 2월 7일 영국의 신문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의 칼럼니스트 레오 미킨스트리(Leo McKinstry)는 유럽에서의 다문화 실패 원인을 4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이슬람 테러리즘, 둘째 무슬림에 의한 성폭력, 셋째 폭력적인 범죄, 넷째 마약이다.


1. 테러리즘. 수니파 무장단체IS(Islam State, 이슬람 국가)를 지원하기 위하여 약 2만 명의 외국인 참여하고 있는데, 뉴욕타임지에 의하면 유럽인들은 프랑스무슬림이 1200명, 독일무슬림이 500~600명, 벨기에무슬림이 440명 러시아무슬림 800~1500명이 있으며 그 외에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이탈리아, 핀란드 등에서 참전하고 있다. 테러는 이슬람의 구원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꾸란 4:74).


2. 무슬림에 의한 성폭력. 유럽으로 오는 무슬림들은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종속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이로 인하여 성폭력이 늘어났다. 영국국회 청소년 위원회(Children’s Commissioner) 부대표인 수(Sue Berelowitz)의 연구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1년까지 14개월 동안 영국에서 2409명의 소녀들이 무슬림 조직폭력배들에 의하여 성폭력을 당했다고 보고하였다.


3. 폭력적인 범죄. 프랑스 감옥의 반 이상이 무슬림이며, 어떤 감옥은 수감자의 80%가 무슬림인 감옥도 있다. 이탈리아 인구 중 무슬림은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탈리아 감옥의 평균 30%가 무슬림이다. 1991년부터 1995년 사이에 영국 감옥에서 이슬람 인구가 40%가 증가하였다. 특히 무슬림들은 감옥에서 서로의 동질성으로 인한 형제애와 이슬람 신앙을 굳게 다지며 매주 금요일마다 이슬람 예배에 참석하여 꾸란을 배우고 설교를 들으며 이슬람 원리주의에 심취하고 있다.


4. 마약. 젊은 무슬림들은 학교의 무단결석, 반달리즘(vandalism), 마약밀매, 범죄 및 조직폭력배들이 성장하였다. 브레드포드, 버밍햄, 런던의 빈민가에는 실업율, 도시부패 및 공동체의 부패를 경험한 젊은 무슬림들이 가족을 벗어나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마약을 모아 팔고 있다. 1990년대 영국 감옥에는 무슬림 수감자들의 숫자가 급증했으며 그 중의 4분의 1이 마약관련혐의로 잡혀온 사람들이였다. 이 외에 일어나는 문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 근친결혼. 2010년 BBC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 있는 모든 파키스탄 이민자들 중 절반 이상이(55%) 사촌과 결혼했다. 이러한 근친결혼으로 인하여 영국에 사는 파키스탄 가족이 다른 가족에 비하여 13배 이상 유전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는 영국 NHS (Nation Health Service, 국가의료서비스)의 지출을 높이게 된다.


6. 샤리아 법의 도입. 유럽에 사는 무슬림 공동체 밖에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지만 무슬림 공동체 안에서는 이맘과 연장자들의 지배를 받으며 신본주의적 이슬람규범 안에서 살아간다. 이슬람 인구가 많아지면서 샤리아 법의 도입되었다. 샤리아(Sharia)는 이슬람 율법을 의미하는데 샤리아 법이 현재 영국 사법제도의 일부로 공식 편입되었다. 2008년에 영국 전역에서 85개의 샤리아 법정이 세워졌다.


7. 모스크의 급격한 성장. 유럽전체에는 약 9000개의 모스크(Mosque)와 기도처소(Musalla)가 있고, 약 7000개의 모스크가 서유럽에 있다. 1980년부터 이슬람의 각 종파들은 유럽을 종교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성당과 교회건물과 경쟁하면서 그들의 건재를 과시하였다.


8. 여성할례. 무슬림 여성들에게 순결은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서양여성들은 성적인 자치권이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둘은 양립할 수가 없다. 이슬람에서 여성할례가 유럽에 살고 있는 많은 무슬림들이 시행되고 있다. 암스텔담 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할례는 유럽의 이슬람사회에서 당연시 되고 있다. 이 일은 은밀하게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여서 진행되고 있다.


9. 유럽사회에 동화되지 않는다. 만일 프랑스에서 무슬림들에게 당신의 국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무슬림’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영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2007년 싱크탱크인 폴리스 익스체인지(Police Exchange)는 영국 무슬림의 3분의 1(31%)이 영국 사람들보다 다른 나라 무슬림들과 더욱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라마단 기간 동안에 유럽 무슬림의 70%가 금식을 한다.


10. 종교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18세기 기독교를 공격한 계몽주의의 주무기는 ‘조롱’이였다.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이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2004년 네덜란드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화가 고흐의 5대 손자인 데오 반 고흐가 이슬람 여성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하였다. 종교와 표현의 자유가 공존한다는 사실은 무슬림이 유럽에 이주한 순간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11. 명예살인. 명예살인은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과 유럽에 사는 이슬람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다. 명예살인이란 가족 혹은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혹은 조직 내 구성원을 살인하는 행위를 말하며 유럽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다.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에 의하면 오늘날 전 세계에서 무려 1년에 5000명 정도로 하루에 평균 14명의 여성들이 명예살인에 의하여 희생되고 있다고 밝혔다.


12. 일부다처제실행. 꾸란 4장 3절에 의하면 이슬람은 일부다처제를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꾸란에서 한 남자에게 4명의 부인을 허용하고 있다. 전 세계 이슬람 인구 가운데 5~10%는 일부다처제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 이슬람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서 한 남편에게 부인이 추가로 있는 경우에 혜택을 주는 법안을 마련했다. 일부다처는 프랑스에 몇 만 가구의 가족이 존재하며 그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다.


13. 자국인들이 떠나간다. 이스라엘의 유대인협회(Jewish Agency for Israel)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2002년 무슬림들이 유대인을 공격하자 30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2004년에 네덜란드의 영화감독인 데오 반 고흐(Theo van Gogh)가 살해당하자 일주일 후에 네덜란드에서 이민을 담당하는 회사에 1만 3000건의 이민 관련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유럽인들이 유럽을 떠나면서 그 자리를 무슬림들이 채워가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유럽의 실패원인


첫째, 이슬람에 대한 무지였다. 유럽인들은 이슬람을 쇠퇴해가는 종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은 성장하는 종교였다. 이를 예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작가인 힐러리 벨렉(Hilaire Belloc, 1870-1953)이었다. 그는 1938년에 “유럽인들은 이슬람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다. 이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쇠퇴해가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슬람은 유럽문명을 상대했던 어마어마하고 집요한 적이며, 과거에 유럽을 위협했듯이 미래에서 위협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제 이슬람은 유럽의 제1의 종교이다. 몇몇 서유럽 국가에서 교회와 모스크에 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는 비슷하다. 그러나 전체 유럽의 상황을 보면 모스크에 참석하는 무슬림 비율이 훨씬 높다.


둘째, 유럽인들은 타문화에 대한 관대함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똘레랑스(Tolerence)는 관용을 의미한다. 유럽인의 이슬람에 대한 관대함은 유럽이 일으켰던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1799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제국주의는 그 후 2세기동안 이슬람권 전체에서 유럽의 각축장이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랍세계를 나누어서 통치하였다. 이제 제국주의를 했던 그 후손들은 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무슬림들에 대한 관대함이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셋째, 무슬림들은 계약된 노동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유럽인구의 5~10%가 무슬림인구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유럽인은 없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1983년부터 84년까지 독일의 경제공항 시기에 터키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했다. 이로 인하여 25만명이 실제로 터키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잠시뿐이었다. 이슬람권에서 억압과 차별을 피하여 유럽으로 오는 난민들이 많아지면서 이민자와 난민자들이 장기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한국은 서유럽과 같은 복지국가가 되기를 위하여 힘써 왔다. 다문화주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럽은 이슬람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선언하였다. 한국에도 이슬람 인구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이민인구에 대한 정책은 권력을 지닌 정부의 영역이므로, 이를 정부가 미래지향적으로 감당해 주지 않으면 지금 유럽에서 보듯이 이슬람 인구 증가가 한국정세의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다. 한국기독교인들도 이슬람에 대한 지식과 대안을 가지고 다음세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047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잔인한 도축방식 따라 만든 할랄식품은 우상에 바친 제물
막강한 자금력 바탕으로 밀려오는 이슬람 물결에 맞서 영적 분별력 가지고 대처하며 교육 통해 경각심 높여가야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며칠 전에 한 주일학교 교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용은 교회에서 주일학생들을 위하여 간식을 사왔는데 자세히 보니 모든 과자에 할랄 인증 마크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교회헌금으로 이슬람의 할랄식품을 사서 주일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2015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하여 제2의 중동 붐을 예고하였다. 이어서 나온 문화체육관광부 보도 자료에 의하면 첫째 한국에 무슬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이슬람 기도처소(Musalla)를 보완하고, 주요 관광지에 이슬람 기도처소를 만들고, 둘째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전환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계획이 있다. 이밖에 의료관광객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이슬람 음식인 할랄식품을 상품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 이후 한국식품연구원은 할랄식품사업단을 발족했고, 할랄식품 전용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라면서 익산과 대구와 춘천 그리고 제주도에 할랄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산테크노밸리를 중심으로 이슬람 신도들을 위한 대규모 할랄타운이 조성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친(親) 이슬람 정책은 새로 들어선 정권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 특히 할랄에 대해서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이슬람의 종교적인 관점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개혁주의 입장에서 이슬람의 할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성경을 바르게 믿고 그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16세기 유럽의 신학과 신앙을 총칭하여서 ‘개혁주의’라고 부른다.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정신을 물려받은 개혁신학이요,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자는 의미에서 개혁주의이며, 그리고 신학 체계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중심의 신학이다.


이러한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할랄을 살펴보려면 이슬람의 신(神)인 알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슬람의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알라의 이름으로 바쳐진 할랄식품이 우상제물이 되기 때문이다. 정통 이슬람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인 교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슬람에서 알라는 창조물에게 속한 모든 속성과 상태를 초월한다고 이해하고 있기에 예수님의 성육신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어 특정기간 동안 자신을 제한했다고 믿는다(빌 2:6-8). 또한 알라가 인간에게 아무리 가깝게 있다(꾸란 50:16)해도 알라는 인간 속에 내주(the indwelling God)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 속에 내주(고전 3:16)하신다.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비판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비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신성 모독적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꾸란 5:76). 또한 이슬람의 알라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철저하게 부정한다(꾸란 2:116, 43:81).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을 오신 것을 부정(요일 4:2~3)하는 꾸란의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요한일서 2장 18절에 대한 주석에서 ‘적그리스도 왕국의 전령사’들로 여러 이단을 언급하면서, 무슬림들이 삼위일체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대신에 일신론적인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이슬람의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일신론적 우상이다.


2. 할랄이란 무엇인가?


1) 할랄(Halal)의 개념


 할랄(Halal)이란 ‘허용된 것(permissible)’ 또는 ‘합법적인 것(lawful)’을 의미하는 아랍어로 이슬람법에 의해 허가된 것을 뜻하며, 이에 반대되는 의미인 하람(Haram)은 ‘금지되는 것(prohibited)’을 뜻한다. 즉, 이슬람 율법에 따라 행해야 되고 허용되는 것이 할랄이고 금지되는 것은 하람이다. 일반적으로 할랄이란 용어는 음식에 관한 규정, 특히 육류 및 가금류에 관한 규정의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사실상 할랄은 무슬림들의 모든 것을 말한다. 이는 행동, 말씨, 복장, 관습, 식사예법 등을 망라하고 있다. 식품 뿐 아니라 화장품이나 의약품 등 공산품까지 폭 넓게 적용되므로 할랄산업이라고 불리운다.


2) 할랄식품


 무슬림의 음식에 대한 규정은 주로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과 무하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의 지침을 따라간다. 꾸란과 하디스에 할랄 또는 하람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들 즉 알라가 침묵한 것은 일반적으로 먹어도 되지만 지역과 학파에 따라 달리 해석,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할랄 도축규정>
1) 정신적으로 완전한 성인 무슬림에 의해 도살되어야 함
2) 도살되는 동물의 경우는 이슬람법에 허가된 동물이어야 함
3) 도살되는 동물은 도살되기 전 살아있는 상태여야 함
4) 도살되기 직전에 “Bismillah(알라의 이름으로)”라고 말하고 도살해야 함
5) 도살에 사용되는 기구(칼)는 날카로워야 하며 한번 움직임으로 도살해야 함
6) 도살하는 자는 동물 목 부분의 기도, 식도, 경동맥을 끊어야 함
 


3. 할랄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


‘우상숭배’라는 말은 참 하나님을 제외한 다른 신(神)들 또는 상들(images)에 대한 숭배를 의미한다. 할랄식품을 위한 도축은 반드시 이슬람 율법에 의하여 무슬림 도축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비스밀라((Bismillah, 알라의 이름으로), 알라후 아크바르(Allahu Akbar,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한다. 도축 및 제조과정이 일종의 예배의식이기 때문에 그 식품 자체가 이슬람종교를 대변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이 정해준 종교의식에 따라 도축된 가축과 이슬람의 제조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할랄식품은 우상에게 바쳐친 제물이 된다.


그렇다면 우상에게 바쳐진 할랄식품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8~10장에 사도 바울은 세 가지로 답변하였다. 첫째, 우상에 관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관점이다.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우상은 세상에 실제 존재하는 신(神)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이 우상에 대한 바른 지식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한 참 신이다(시 96:5; 115:4-7).


둘째, 우상 제물에 관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관점이다. 사실 식물(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 기독교인을 정(淨)하고 부정(否淨)하게 하지 못한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든, 우상에게 바치지 않은 식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든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지 않는다.


셋째, 우상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에 대하여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관련하여 기독교인이 믿음의 형제를 고려하여 조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을지라도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시험받아 죄를 짓고 약한 양심이 상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믿음의 형제 앞에서 신령한 덕을 세워나가는 일을 위해서는 아예 포기하였다.


전 세계가 이슬람의 유입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때 한국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경제적인 이권을 고려해 이슬람 붐을 조성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 기독교인들은 몇 가지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 한국기독교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몰려오는 이슬람의 물결에 맞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할랄단지가 조성되면 도축인력 근로자는 무슬림이어야만 한다. 영국의 경우에 할랄시장이 열리자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할랄도축사 5000명이 입국하였다. 따라서 무슬림인구 대거 유입이 불가피하게 되며,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우상제물로서의 할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 우상제물로 인하여 문제가 된 일곱 교회 중 버가모, 두아디라교회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을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부러 할랄식품을 구입할 필요도 없고, 권할 필요도 없으며 기독교인들이 할랄에 연관된 사업에 관여하는 것에 대하여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할랄식품은 웰빙하고는 무관하다. 할랄식품은 종교적인 제사 음식이다. 특히 이슬람식 도축방법은 동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를 경험하는 상태에서 피를 쏟아가면서 서서히 죽게 하는 아주 잔인한 방식이기에 한국의 동물보호법 제10조(동물의 도살방법)에도 위반이 된다. 유럽에 폴란드, 아이슬란드,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잔인한 할랄 도축방법을 금하고 있다.


넷째, 할랄은 이슬람교도가 먹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이슬람 율법에 따라 처리·가공된 제품을 말한다. 그런데 할랄 인증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급해 주거나 할랄 도축장을 만드는데 250억의 예산 중 정부가 30% 지자체가 30% 투자회사가 40%를 부담한다고 하는 것은 종교의 중립을 지켜야 하는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


다섯째,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할랄 인증 자금이 테러자금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슬람에는 두 종류의 기부금이 있다. 하나는 무슬림의 의무사항인 자카트(구제금, Zakat)이고 하나는 언제든지 기부할 수 있는 사다까(Sadaqa)이다(꾸란 2:263). 꾸란에 사다까의 용도가 8가지로 정해져 있는데 그 가운데 지하드에 사용할 수 있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꾸란 9:60). 2011년 1월 5일 미국 기독교방송인 CBN은 70억불 규모의 프랑스 할랄 산업의 60%를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로 잘 알려진 무슬림 형제단에 속한 기관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방송했다.


현재 한국의 식품들 가운데 할랄마크가 인증되어있는 식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필자가 영국에서 사역할 때, 할랄식품이 영국 유통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유통업체들이 할랄식품을 일반제품과 구분 없이 판매하는 것에 대하여 비난을 받곤 했는데 지금 그런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아가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이 무엇이 다른지 교육해야 한다. 교회학교 학생들의 미래 한국에는 지금보다 많은 무슬림들이 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234

“회개와 기도만이 이슬람과 영적전쟁서 승리하게 한다”
루터, 기독교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 불러왔다고 판단 …
칼이 아닌 개혁이 진정한 무기임을 강조했다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현재 기독교 안에 이슬람을 바라보는 네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혐오적으로 나타나는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 입장이다.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으나 실제로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 이후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둘째는 무슬림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이슬람권 안에서 현지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그대로 따르면서 은밀하게 마음 안에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내부자 운동(Inside Movement)적 시각이다. 셋째, 다원주의(pluralism)적 입장이다. 두 종교가 서로 공존하기 위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통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개혁주의적(reformism)입장이다. 이는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떠나서 기존의 기독교로 들어오라고 초청하는 입장이다. 이슬람은 진화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개혁주의적 입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슬람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불편한 관계의 역사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A.D. 570년에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쿠라이쉬(Quraish) 부족의 하심가문에서 태어났다. 이슬람에 의하면 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 메카에서 2마일 떨어진 히라산 동굴에서 계시를 받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쿠라이시 부족의 신(神)이었던 ‘알라’만을 섬기라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70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그 가운데 직접 군대를 지휘한 것도 27차례나 된다. 무함마드는 칼을 들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했다. A.D. 632년 무함마드는 62세로 메디나에서 고열과 폐렴으로 죽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무슬림 세계는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서 비잔틴 기독교 제국을 정복해 나갔다. 10년 후 이슬람 군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후 70년 동안 서쪽으로 진군하여 북부 아프리카 전체를 정복했다. 그리고 15세기까지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부 이탈리아, 그리고 남부 프랑스와 지중해 서부를 점령했다.


오스만과 터키의 술탄 메멧 2세(Mehmet II, 재위 1452~1481) 때인 1453년에 고대 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됨으로,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메멧 2세는 여세를 몰아 발칸 반도 안으로 유럽의 중심부를 향해 터키 제국의 경계를 넓혀 나갔다. 1475년에는 크림반도(the Crimea)를 탈취하였다. 나아가 1500년에는 알바니아(Albania)를, 1512년에는 몰다비아(Moldavia)를, 1516년에는 루마니아(Romania)를, 1517년에는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복속시켰다. 1517년은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34살의 나이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때다. 1529년 비엔나에서 그 걸음을 멈추게 되기까지, 이들은 계속하여 유럽 중앙으로 전진해 들어왔던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슬람 군대인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이 종교개혁의 다양한 배경을 형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저서들

마르틴 루터가 이슬람에 대하여 최초로 언급한 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그 다음 해인 1518년에 쓴 <사면의 능력에 대한 논쟁의 해답들>(Resolutione Disputationum de Indulgentiarum virtute)이다. 또한 서신 등을 통하여 이슬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이슬람에 대하여 써서 출판한 작품은 1529년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전쟁에 대하여>(Vom Kriege wider die Turken) 이었다. 그 후 루터는 터키군대의 움직임을 전해듣고, 또 하나의 작품을 출판하게 되는데,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군대설교>(Heerpredigt wider den Turken)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기도에 관한 훈계>(Vermahung zum Gebet wider den Turken). 이 작품을 총 세 번(1539년, 1541년, 1543년)을 썼다.

이와 함께 1530년 출판된 책 <터키의 의식과 윤리에 대한 책>(Libellus de ritu etmoribus Turcorum)의 서론을 썼다. 또 기억할 만한 것은 루터가 1542년에 편집 번역한 작품인데, 이 책은 1300년 경에 도미니칸 수도사인 리콜도(Riccoldo de Monte Croce)가 쓴 <꾸란에 대한 반박>(Confutatio Alcorani)이다. 본래 루터는 이 책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그가 꾸란의 라틴어 번역본을 읽은 후에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보았으며 그 후에 루터는 이 책을 편집하여 번역하였다. 또한 1530년 헝가리의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출판한 <무슬림의 의식과 도덕에 대한 책>에서 루터는 ‘경건한 독자에게’(Lectori pio)라는 서문을 썼다. 이 책은 도미니크 수도사인 게오르기우스가 1480년 터키에 사로잡혀서 오랜 기간동안 노예로 있으면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책이다. 루터는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으로 여겼다. 이슬람에 대한 또 다른 작품의 서문이 있는데 1542년에 아랍어에 능통했던 취리히의 신학자 테오도르 비블리안더(Theodor Bibliander)가 독일어로 번역한 꾸란의 서문이다. 루터는 1543년 초에 나온 이 책의 서문을 썼다. 다양한 루터의 글을 통하여 루터가 이슬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이해

첫째, 루터는 이슬람의 침략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반대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하려는 이슬람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루터가 반대한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난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슬람 군대를 보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슬람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이슬람을 향해 칼을 들고 벌이는 전쟁은 하나님에 대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에서 루터는 ‘이슬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통하여 이들을 징계하시고,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했듯이, 기독교의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를 불러 왔다고 본 것이다.


둘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외적인 전쟁보다는 먼저 내부의 적(敵)인 ‘기독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을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외부의 적인 이슬람보다 내부의 적인 교황청이 더욱 악하다는 것이다. 교황청의 사기꾼들이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이슬람 군대와 싸우도록 부추기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슬람 군대보다 내부적인 부패와 거짓과의 싸움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즉, 기독교인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회개가 이슬람보다 더 시급한 문제라고 루터는 보았던 것이다.


셋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전쟁은 영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오스만 터키 이슬람 군대와의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사탄과의 전쟁이라고 확신하였다. 루터는 이슬람의 신(神)을 사탄으로 보았고, 이 영적인 전쟁은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를 통해서만 승리를 거둘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슬람이라는 채찍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로써 이슬람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넷째, 루터는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敵)으로 인식하였다. 1529년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를 포위한 소식을 들으면서, 루터는 임박한 종말을 의식하며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터키인에 대항하는 군대 설교>에서 루터는 말세에 예언된 두 폭군을 교황과 이슬람으로 해석하고, 다니엘서 7장의 4번째이자 마지막 짐승을 로마 제국으로, 열 뿔을 제국 내의 나라들로, 그리고 뿔들 사이에 있는 ‘작은 뿔’을 이슬람으로 이해하였다. 교황을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적그리스도”로, 이슬람을 “선하고 정결한 덕목을 지닌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계략을 가진 적그리스도”로 이해했다.


종교개혁 당시의 이슬람 군대의 침략은 온 유럽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족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루터는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신학적, 정치적 눈을 가지고 교회와 세속권력이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조언한다.


이 조언은 지금의 한국교회에게도 유용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는 루터의 조언에 따라서 내부적으로 말씀과 거룩을 따르며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싸움은 루터의 견해처럼 영적인 전쟁이다. 따라서 회개와 인내가 그 모습이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교회가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세속정부의 영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역할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혼돈될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의 모습으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발전하고 융성했던 곳들이 이슬람으로 대체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가 변질되고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이슬람이 몰려왔고, 그에 대항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채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그 주권을 이슬람에게 내어 주고 말았다. 중동이 그랬고, 유럽이 그 길을 가고 있다. 우리 곁에 이슬람이 다가오고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다시 개혁을 논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이슬람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을 가속화시켰던 마르틴 루터의 말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내 말은 이슬람에 대항하여 싸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자비로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더 개선하자는 것이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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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신학적 오류 준엄히 지적했지만 구원 대상 잊지 않았다

칼빈,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요 일신론적 이단으로 규정 … 교리는 비판했지만 선교와 개종 가능성은 열어놓아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종교개혁을 이끈 프랑스의 기독교 신학자다. 역사의 여명(黎明)기에 칼빈은 가톨릭 사제, 법률가, 기독교 인문주의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회심을 통해 그는 오직 성경만을 유일한 텍스트로 삼아 그것의 교사(doctor), 해석자(interpres), 수호자(custos)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살았다. 그의 위대한 저서는 그의 나이 27세 때 라틴어로 출판한 기독교강요다. 그리고 그가 쓴 주석은 많은 주석들 가운데 이정표적인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칼빈은 기독교 신학의 정수가 되는 교리들을 정리하고 심오하게 제시함으로써, 교리사상 개혁신학이라는 큰 일가(一家)의 초석을 놓는다.



1. 칼빈 시대의 이슬람


칼빈이 살았던 종교개혁시대에 이슬람은 가장 큰 팽창을 이루었고, 이슬람 제국의 황금기였다. 당시 오스만 터키 이슬람제국은 유럽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고,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의 글에서 ‘터키인들(Turks, 이슬람)’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 칼빈은 1544년에 쓴 그의 저서 <교회개혁의 필요성>에서 “터키인(이슬람)과의 전쟁은 온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렸고,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루터와 마찬가지로 칼빈 역시 당시 이슬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슬람의 움직임에 대한 국제정세를 꿰뚫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칼빈이 무슬림들과 실제적인 논쟁은 벌였다거나 그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했다는 기록도 없다. 왜냐하면 루터 당시에는 비엔나를 정복하기 위하여 이슬람 세력이 물 밀들이 밀려왔을 때인데 반하여 칼빈 당시에는 이슬람 군대가 비엔나를 정복하지 못한 채 물러가고 나서 이슬람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정된 된 시기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루터는 이슬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독일에서 사역하였고, 이슬람의 세력으로부터는 안정적인 제네바에서 사역했던 칼빈 사이에는 이슬람에 대한 긴장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칼빈의 작품 속에 나타난 이슬람에 대한 언급으로 볼 때 칼빈은 이슬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 이슬람에 대한 칼빈의 이해


이슬람에 대한 칼빈의 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그의 엄격함이다. 칼빈의 주석과 설교들, 강의들 속에 방대하게 흩어져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슬람에 대한 킬빈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무함마드는 거짓 선지자요 배교자


칼빈은 무함마드를 ‘거짓 선지자’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신명기 13장 1절 이하에 관한 설교에서 “기독교 신앙은 [삼위]하나님에게로 나아가지 않는 자들이 반대하는데, 그들은 바로 무슬림들, 이방인들, 그리고 유대인들이다”고 말하며, 그들은 신성모독을 하였으며, 교회로부터 마치 썩은 가지처럼 철저히 단절되었으며 그들이 복음에 대하여 저항하거나 기독교를 없애기 위하여 애쓰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하였다. 칼빈은 신명기 18장과 33장에 예언된 선지자가 무함마드가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위로자’는 그리스도와 성령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보다 완벽한 계시가 그리스도가 출현한 이후인 7세기에 무함마드에게 도래했다는 이슬람의 해석을 비판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칼빈은 무함마드를 ‘배교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칼빈은 1550년에 데살로니가 후서에 관한 주석에서 ‘죄의 사람’과 배교를 로마교도들과 동일시하였으며, “변절이 보다 널리 퍼졌도다! 무함마드가 변절자였으므로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추종자에게로, 터키인들에게로 돌아섰다. 무함마드의 분파는 격렬한 홍수와 같은데, 그것의 폭력 안에서 교회의 절반을 떼어내어 갔다”고 주장하였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살면서 실제로 기독교 에비온파(Ebionite)의 영향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무함마드 당시에 메카에는 에비온파 신자들이 수백 명이 살고 있었다. 무함마드의 부인 카디자(Khadija) 또한 에비온파신자였다. 또한 무함마드에게 영향을 끼쳤던 이븐 와라카 나우팔(Ibn Waraqua Naufal) 역시 에비온파의 사제였다. 무하마드가 결혼을 할 때, 에비온파 의식에 따라서 결혼식을 했다는 견해도 우세하다. 따라서 칼빈은 무함마드를 변절자라고 불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둘째,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


칼빈은 이슬람의 이단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550년에 집필한 주석 중 요한일서 4장 2절과 3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하는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6절을 주해하면서 거짓 선지자의 거짓 예언을 잘 분별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슬람은 이단 가운데 어떤 이단일까? 이슬람은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고 성령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이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무슬림들도 천지의 창조자는 하나님이라고 힘껏 외치지만,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우상으로서 진정한 하나님을 대치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또한 하나님이 없으되”(요일 2:23)라고 한 말씀을 언급한다. 이슬람의 알라는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또한 위격이 없이 단일하다. 또한 요한일서 2장 18절에 대한 주석에서 칼빈은 ‘적그리스도 왕국의 전령사’들로 여러 이단들을 언급하면서,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삼위일체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대신에 일신론적인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슬람에서는 삼위일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도 부정한다. 따라서 예수를 통한 중보 또한 부정한다. 따라서 칼빈은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으로 이슬람을 이해했다.


셋째, 이슬람은 적(敵)그리스도


칼빈에 의하면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이다. 칼빈은 신명기 설교(13:6~11)를 통해서 그는 “무함마드는 터키인들이 그들의 무함마드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있는데, 그는 “그런 자들은 그들 자신이 고안하여 만들어 내는 악마”일뿐이라고 말한다. 1556~7년에 낸 신명기에 관한 설교(18:15; 33:2)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무함마드가 그의 <알 꾸란>(Al Coran)이 절대적인 지혜라고 말하고, 교황은 그의 칙령이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적그리스도의 두 뿔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다니엘의 예언들을 전적으로 역사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일, 즉 한편으로는 안티오커스 IV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와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로마와 연관시키는 것으로 일관성 있게 해석한다. 칼빈은 교황을 서방의 적그리스도요 이슬람은 동방의 적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그는 이 둘을 ‘두 뿔’로 언급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이슬람 혹은 이슬람을 창도한 무함마드는 적그리스도 혹은 적그리스도의 뿔이다. 하지만 칼빈이 이슬람을 적그리스도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무슬림을 적대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칼빈이 이슬람을 향해 적그리스도라고 표현한 것은 이슬람의 배후에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무슬림 자체가 적그리스도라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참고로 이슬람은 종교이며 무슬림은 이슬람의 제4 분사형으로서 이슬람 종교를 믿는 신자를 의미한다.


넷째, 무슬림에 대한 선교와 개종 가능성


칼빈은 이슬람을 교리적인 차원에서 예리하게 비판했지만, 무슬림들이 도덕적으로 질이 낮다고 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이슬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소재는 교리였지, 윤리적·도덕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슬람을 추종하는 무슬림들은 저주받아 마땅한 버림받은 자들인가”하는 선교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칼빈은 무슬림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칼빈은 무슬림이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복음화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많은 무슬림들을 신·구약성경의 참되신 삼위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정확히 예정하셨다고 믿었다. 칼빈은 신명기 23장 7절에 관한 그의 설교에서 “개종이 가능하고 세례받는 것이 가능한 무슬림들은, 이집트인보다 더 나았고 지금도 더 낫다(창 41:1~출 1:7).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많은 무슬림들을 성경의 삼위 하나님께로 돌이키실 것을 예정하셨다는 것”이 이사야 19장 21-25절의 설교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의 무슬림들과 이스라엘의 유대주의자들과 이라크와 이란의 이슬람 민족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되고 그의 교회에 가담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영광스러운 날이 오고 있도다!”라고 했다. 칼빈은 무슬림들이 참된 진리가 있는 교회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3. 이슬람에 대한 칼빈의 선교적 적용


칼빈은 교리적, 신학적 잘못을 단호히 배격하고 비판하면서도 이슬람 역시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칼빈은 무슬림이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어야 하며,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나눔과 섬김으로서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칼빈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인에 의하여 복음화 되어질 수 있고 또 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무슬림들이 삼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기독교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은 이슬람이 시작된 지 227년이 지난 837년이었고, 정작 아랍어 성경이 출판된 것은 1516년이다. 이러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전 세계 무슬림들의 80%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국 땅에서도 소리없이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는 약 25만 명의 무슬림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300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타종교 아닌 기독교 이단’ 경계하되 긍휼 대상으로 이해
불링거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는 교활하고 위선적 …
꾸란은 고대 교회 모든 이단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 질타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종교개혁은 유럽사회가 로마 가톨릭교회 중심의 중세적 질서체제에서 근대적 민족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편 이 시기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을 향한 군사적 팽창과 영토 확장이 최고조로 달했던 순간이었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고조되던 16~17세기는 오스만 제국에게 유럽으로 영토확장을 위한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종교개혁 직후인 1520년 오스만 군대는 헝가리를 침공하여 중부유럽을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서 1529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오스트리아 빈까지 포위했다. 오스만 군대의 빈 공략은 유럽 전체가 공포에 휩싸일 정도로 가공할만한 사건이었다. 또한 이 무렵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시기보다 고조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심지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기독교인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이슬람의 유럽 점령이 가시화 된 것뿐만 아니라 이슬람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종교개혁자들 중에서 이슬람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루터, 칼빈, 쯔빙글리, 불링거와 같은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가장 이슬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이슬람 책을 저술하였던 신학자는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1504~1575)였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로서 40년 이상 교회를 효과적으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신학자요, 설교자요, 상담가였다.



1.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이해


첫째, 불링거의 저서 <터키>(Der Tuergg)를 통해 본 이슬람


불링거는 1567년에 <터키>(Der Tuergg)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서 터키란 당시 오스만 터키라는 의미와 함께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내용상 ‘이슬람’이라고 써도 무방하다. 이 책은 이슬람에 관한 불링거의 가장 중요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요한계시록 9장 16절과 17절을 실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 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그는 그 시대에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물밀 듯이 쇄도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루터처럼 어떤 종말적인 분위기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책의 첫 장의 제목이 ‘이슬람의 신앙과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하여’이다. 그 책의 첫 문장을 “터키인들의 신앙은 무함마드의 신앙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바로 이어진 문장에서 그는 무함마드를 교활하고(listig), 비열하고(dueckisch), 위선적(glychssnerisch)이라고 특징지었다. 이 책의 둘째 장의 제목은 ‘기독교 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며 그렇게 남아 있다’인데, 첫 문장이 “한 마디로 하나의 오래되고 참되고 거룩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신앙이 세상의 시작부터 있었는데”라고 하여 기독교 신앙의 진리성을 천명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무슬림의 신앙과 삶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이다. 특별히 불링거는 디모데전서 4장과 골로새서 2장을 인용하면서 무함마드와 그와 같은 교훈들을 심지어 ‘사탄의 교훈’(tuefeles leeren)이라고까지 불렀다.


둘째,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


불링거는 이슬람을 타종교가 아닌 기독교 이단으로 보았다. 그가 1566년에 펴낸 것으로 여겨지는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면서 이슬람의 가르침을 ‘잘못된 가르침’(Irrlehren)이라고 하였으며 이슬람교도들을 가리켜 이단자라고 칭하였다.


뿐만 아니라 꾸란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삼위일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특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존재도 부정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의 이단성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현재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살았던 비잔틴 신학자 요한네스(Johannes)였다. 그는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년 후에 태어났다. 만수르(Mansour)의 명문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군주 무아위야 1세(Muawiyah1, 602~680) 아래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무아위야 1세의 뒤를 이은 왕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자 요한네스는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사바(Mar Saba)수도원에 은신하여 이슬람을 연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저술인 <지식의 근원> ‘제2부 이단에 관하여’ 에서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 이유는 “무함마드가 이단이였던 아리우스파 수도사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이슬람이 시작되었으며, 꾸란에서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으로 언급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이다”라고 하였다. 불링거는 요한네스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셋째, 불링거의 꾸란에 대한 이해


불링거에게 꾸란은 고대 교회의 모든 이단들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꾸란의 기원을 하나님이 아니라 무함마드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더불어 꾸란에 담겨있는 이단적인 요소들을 지적하였다. 무함마드가 신에게 받았다고 하는 계시와 비전(Vision) 역시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꾸란은 이단 사제의 도움과 완고한 유대인과 잘못된 기독교인의 조언이 섞였으며 아리안(Arians), 마케도니안(Macedonians), 네스토리안(Nestorians)과 같은 이단들에 의하여 부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꾸란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도 부인한다. 이같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부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 신앙의 주된 교리의 부인한다. 불링거는 금식, 기도, 구제, 알라와 이슬람을 위하여 싸우다 죽음으로서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교리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무함마드에게 묻는다. 또한 영생, 예배, 결혼 등에 대한 꾸란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다.


넷째, 이슬람 지배 아래서 기독교인의 태도


불링거는 1551년 헝가리의 이슬람 정권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헝가리 기독교 지도자들의 편지에 대하여 1551년 6월에 선명하고 원론적인 답신을 보냈다. 성경의 신자들이 사도시대에 우상을 숭배하는 로마제국 아래서도 살았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의 통치 아래서 바벨론 포로가 된 상태에서도 살았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불링거는 헝가리 신자들에게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근거로(렘 29:7) 평안 중에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무슬림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특별히 불링거는 헝가리와 동유럽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우리 모두의 죄악과 관련된 것임을 밝혔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의) 회초리를 벌었다.” 불링거는 헝가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슬람 종교로 인한 고통을 탓하기 전에 그들 자신들을 먼저 살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링거는 헝가리 교인들에게 핍박이 올지라도 하나님이 금지하신 이슬람의 신앙과 의식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불링거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침략을 하나님의 징계로 보았고, 이와 관련하여 헝가리 기독교인의 회개와 경건회복이 요청된다는 것을 편지에 언급하였다.


2. 불링거가 주는 교훈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견해를 다루면서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의 교훈이 있다. 하나는 분별의 척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많은 부분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이슬람에서 유일신에 대한 고백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대한 고백은 없다. 또한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은 대속의 은혜인데, 예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속이 없고 공덕에 의한 구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기독교의 구원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한 점에 있어서는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다. 우리 시대에 그들이 아무리 미사여구의 평화의 말로 접근해 올지라도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고 경계해야 한다. 또 하나는 이슬람에 대하여 경계할 것은 경계하되 그들 역시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며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불링거는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자들의 믿음과 삶에 대하여 보다 긍정적인 암시를 제공한다 즉 무슬림 또한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란 점에 있어서 긍휼의 여지는 있다. 특히 이 점은 불링거에게 있어서 돋보이는 점이다.



3.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적용


종교개혁 당시와 같이 다시 한번 21세기 거대한 종교로 우뚝 선 이슬람은 국제사회를 공포와 위협으로 압박하며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한국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구체화된 친 이슬람정책으로 인하여 작년 한 해 동안 이슬람 관광객 1백만 명이 우리나라를 다녀갔으며 할랄 시장의 확대 등 정부는 이슬람 인구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듯하다. 이슬람은 더 이상 중동의 종교가 아니다. 전 세계 이슬람 인구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는 국민의 8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약 1억9000만) 두 번째, 인구의 96%가 무슬림인 파키스탄(약 1억7000만) 그리고 인구의 89%가 무슬림인 방글라데시(약 1억5000만) 등이다. 이 나라 이외에도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스탄 등 5개국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인력 송출국 속에 포함되어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 이슬람 인구도 성장하고 있다. 1956년 208명이었던 한국 이슬람인구는 1970년 3700명, 2009년에는 9만1000명으로 성장하였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슬람의 도전 앞에 이슬람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에 따라서 더 이상 이슬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밀려오는 이슬람의 도전 앞에 한국교회는 응전을 준비해야 한다. 이슬람이 세상을 뒤흔든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이해 위에서 세상을 보고, 교회의 역할을 권고했다. 지금 세대에도 동일한 눈을 가진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전진되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이슬람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이슬람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이슬람을 무조건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루터나 칼빈, 불링거처럼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무슬림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전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418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이슬람교, 세계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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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는 '이슬람교'로, 전문가들은 21세기 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데일리굿뉴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종교는 무엇일까.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슬람교가 전세계 종교 중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로 밝혀졌다.

 

이슬람교는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국가나 지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퓨리서치센터는 "유럽에서 2050년에 이슬람교도가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21세기 말에는 이슬람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는 가톨릭을 포함해 개신교 등 기독교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 2050년까지 각 종교의 성장률은 이슬람교 73%, 기독교 35%, 힌두교 34%였다.

 

이슬람교의 성장세가 빠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출산율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슬람교 여성의 출산율은 평균 3.1명인 반면 비이슬람교도 여성의 출산율은 2.3명이다.

 

이와 함께 이슬람 인구의 평균 연령은 비이슬람 인구보다 7년 젊은 것으로 조사됐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중 흥미로운 부분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 변화다. 9.11 테러 직후인 2002년과 현재를 비교한 결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더 긍정적으로 변해 대조를 이뤘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슬람권 6개국(이란, 시리아, 리비아, 예맨, 소말리아, 수단) 출신 국민의 입국을 90일간 제한하는 2차  '반(反) 이민'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종교 차별을 막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의해 시행이 중단된 바 있다.

 

김주련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은 지난 2009년 3월 20일 '사기결혼'에 대해 공지하며 "최근 한국에 체류하는 파키스탄인들이 한국 여성들과 사기결혼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특별한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고 했다. 파키스탄인들은 산업연수생(일정기간 기술연수후 취업) 자격으로 입국하고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 이슬람 호적법은 아내를 4명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자식이 있는 파키스탄 노동자는 기혼임을 숨기고 한국인(여성)을 유혹, 결혼하려 합니다. 이들은 서류상 미혼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위조하여 제시하는 방법으로 사기결혼 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 이들은 취업 기간이 끝난 후에도 귀국하지 아니하고 불법체류하면서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거나 위장결혼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노동자와 결혼한 우리 국민들이 시집 방문 후 비참한 가정 사정을 목격하거나 남편에게 처·자식이 있음을 알고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 이혼하고자 해도 남편이 동의하지 않아 정신병자가 되거나, 매를 맞는다고 울면서 귀국시켜 달라고 대사관이나 동포들에게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5년 6월 27일에 '이슬람 바로알기' 강연을 하면서 다문화 학생들과 나눈 간담회 내용을 전한다. 강연자는 어떻게 어려운 재정국가에서 많은 국비장학생이 나올 수 있는지 질문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그것은 쉽게 비자를 받기 위해 기록하는 "서류를 쓴 것일 뿐"이고 원래는 이슬람 포교단체인 '자카트'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지 여성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6천만원이 더 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노니 다르위시는 이슬람의 샤리아적 결혼관을 상세히 설명한다. 샤리아 결혼이란 가족들 사이의 법적·금전적 계약이다. 계약은 보통 신부의 집에서 이뤄진다. 신부는 격리된 방에서 기다리고, 정부 관리 앞에서 신랑이 계약서에 서명하면 이어서 신부가 서명한다. 그 계약서에 기록된 것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슬람 샤리아식 결혼을 마친 후 신부가 떠날 무렵에는 누군가가 신부의 처녀성을 증명하는 피 묻은 흰 천을 흔들며 나온다. 신부의 처녀성 증명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한다. 모든 전통 이집트 결혼식은 처녀성 검사를 한다. 처녀성을 잃은 여성은 살해당할 수도 있다. 교육받은 층에서는 더 이상 그 검사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위와 같이 이슬람식 결혼의 의미는 매우 독특하다. 여성의 몸 전체를 성(sex)으로 대하는 무슬림 남성들은 결혼 비용으로 반드시 신부의 몸값을 지불해야 한다. 신부 몸값(우주루, ujur, 품삯)을 이집트에서는 메흐르(mahr)라고 한다. 메흐르는 여성과 즐기는 대가로 여성에게 전달하는 돈을 의미하는 전문용어이다.

샤리아식 일부다처제 결혼은 Sura 4:3에 근거한다: "만약 너희가 고아들을 (과부들을) 공정하게 대처하여 줄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 번 또는 세 번 또는 네 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그녀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 손이 소유한 것이거늘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주는 보다 적합한 것이라."

이슬람 샤리아식 결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1. 법원에 기록되는 결혼

신부들을 네 명까지 둘 수 있고 위와 같은 결혼식 절차를 밟는다. 필자는 UAE에서 11명의 아내를 국내외에 둔 한 경찰관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이와 같이 많은 부인을 둘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로는 13명의 정식 부인을 두었던 교조 무힘마드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2. 일시적인 결혼

이는 Sura 4:24에 근거를 둔 결혼이다. "... 간음이 아닌 합법적인 결혼을 원할 경우 지참금을 지불해야 되나니 너희가 그들과 결혼함으로서 욕망을 추구했다면 그녀들에게 지참금을 줄 것이라 그 의무가 행해진 후에는 쌍방의 합의에 의한 것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죄악이 아니거늘 실로 하나님은 만사형통 하심이라." 이 일시적인 결혼은 비록 꾸란이 허락 할지라도 수니파에 의해 엄격하게 거절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아파에서는 이 권리를 사용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일정한 시간 동안 결혼 할 수 있다.

3. 노예와의 결혼

위 꾸란 구절 4:3에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이란 개념이 나온다. 이는 보통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으로써 과부들이나 10대 소녀들이며, 물건과 별 다름이 없다. 이 여성들과는 결혼을 하든지 안하든지 이들의 포주가 되든지 간에 무한대로 자유롭다. Sura 24:33 "... 현세의 이익을 얻으려 하녀들에게 간음행위를 강요하지 말라. 그들은 순결을 지키고자 하니라. 만일 그들에게 강요하는 자가 있어 강요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푸시느니라".

안타깝게도 지금도 우리는 수단의 핍박받는 비무슬림 노예여성들과, UAE에서 고통 받고 있는 필리핀 가정부들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다. 진 세손(Jean Sasson)이 지은 <술타나>라는 번역서가 금년에 문학세계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책의 내용은 1983년 사우디 파이잘 국왕 전문병원에서 알게 된 사우디 공주가 겪은 실화이다. 이 책에는 해외 취업 목적으로 리야드에 하녀로 지원해 온 여성들이 비밀리에 당하는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다. 한 필리핀 하녀는 본래 두 아들의 性 대상으로 고용되었는데 아버지가 먼저 강간했고, 어떤 인도여성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강간을 당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모든 이교도들이 창녀라는 것이다.

4. 아내들의 교환

아내 교환의 근거 역시 꾸란에 의존하여 행한다. Sura 4:20: "만일 너희가 아내를 다른 아내로 다시 얻으려 할 때 너희가 그녀에게 준 금액 가운데서 조금도 가져올 수 없노라. 너희는 그것을 부정하게 취득하려 하느뇨 그것은 분명한 죄악이라". 아내는 언제든지 다른 아내로 대체될 수 있다.

아내 교환 건에 관해 꾸란은 간통 개념이 없고, 다만 아내를 바꾸면서 탐내는 지참금 착취 죄만 거론하고 있다. Sura 66:5은 무함마드가 (불편스러운 아내들과) 이혼한다 해도 알라가 그들보다 훌륭한 아내들로 대체해 주신다는 뜻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너희와 이혼한다 해도 주님께서는 너희보다 더 나은 부인들로 너희 자리를 대체하여 주시니 그녀들은 보다 순종하고 믿음에 충실하며 헌신하고 회개하며 겸손하고 믿음을 위해 이주하며 단식하는 기혼의 여성이나 미혼 여성이라".

샤리아의 결혼 계약서는 결코 영구적인 언약이 아니다.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포하면 이혼(talaq)이 된다. 남편이 두 증인 앞에서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고 세 번만 말하면 이혼이 성립되며, 이혼권은 남자들에게만 있다. 꾸란은 한 무슬림 남성의 한 아내와 두 번 이혼할 수 있고 그녀와 두 번 재혼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만일 그 남성이 그녀와 세 번째로 이혼 했다면 그녀를 다시 데려올 수 없다. 만일 그가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면 그 이혼녀가 다른 남자와 일정기간 동안 결혼 했다가 그와 이혼 한 후에야 다시 데려올 수 있다고 지시한다(Sura 2:229-230).

이와 같이 여성은 무슬림 남성에게 하나의 거래물이고 장난감 같은 물건이다. 그녀를 하나의 영혼과 희망과 기대를 가진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슬림 아내들에게는 항상 두려움과 불신이 따른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 남성들이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꾸란과 샤리아보다 더 의롭게 사는 무슬림들도 많다.

위와 같이 꾸란은 '일시적 결혼'과 '아내 바꿈'이라는 상식적으로 무서운 간통죄들을 합법적인 결혼으로 만들어서 영원히 간음죄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일부다처제의 의미는 아내가 언제든지 다른 아내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며(Sura 66:5) 계속적인 간음죄를 종교법으로 인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무슬림 여권 운동은 일어나지 못한다. 무슬림 여성들이 샤리아에 대항하는 것은 가족을 대적하고 남성을 대적하고 정부를 대적하는 것이며, 그리고 최악의 경우 알라와 이슬람 그 자체를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서방의 무슬림 여권운동가들이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종교법을 종식시키고 평등한 대우를 하라"고 공개적으로 과감하게 요구하면 대부분 '파트와'의 희생자가 되어 배척과 조롱을 받을 분만 아니라, '배교자'로 칭할 것이다.

이슬람 대처 방안과 결론

폭력적인 지하드와 비무슬림 증오행동을 부추기는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의 선동을 경험한 샤피이학파 샤리아의 통치를 경험한 노니 다르위시가 미국과 서구의 이슬람화의 초기 상황을 지켜보며 그의 저서에 옮긴 '미국국제종교자유위원회(The U.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의 보고서를 필자도 '폭력적인 지하드의 가르침에 대한 온건한 대책'의 한 샘플로 여기에 옮겨 적는다.

"2008년 6월 11일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The U.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는 알렉산드리아와 버지니아에 있는 사우디 이슬람 학교가 '국제 인권규정에 어긋나며 극단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구절들'이 포함된 교과서들을 사용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 폭력을 선동하고 불관용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 학교의 1999학년도 졸업생 대표인 아흐메드 오마르 아부 알리(Ahmed Omar Abu Ali)는 알카에다에 가입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아살을 모의한 혐의로 2005년에 유죄가 선포됐다.

그 위원회는 가장 문제가 많은 교과서들을 직접 가져온 것이 아니며 오히려 꾸란과 그 밖의 이슬람 문헌들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특별한 해석이 포함된 구절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 교과서들이 꾸란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우디 정부의 해석을 반영한다는 주장은 그 위원회가 사우디 정부보다 꾸란의 진정한 의미를 잘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위원회에 따르면 다음 두 가지 예에서 볼 수 있듯 일부 구절들은 분명히 독자들로 하여금 폭력적인 행위를 하도록 강력히 권하고 있다."

12학년 타프시르(tafsir, 꾸란 해석) 교과서에서, 저자는 배교자(이슬람에서 개종한자), 간통자, 또는 고의적으로 믿는 자를 살해한 자를 무슬림이 살해하는 것을 허용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무함마드: 그에게 찬미가 있기를)는 정당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금지한다." 정당한 이유란 "이슬람을 믿은 다음에 배교, 간통, 믿는 자를 고의로 살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12학년 타우히드(Tawhid, 유일신주의) 교과서는 "주요 다신교도들을 대상으로 한 살해와 재물약탈은 허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 법률용어에서 무슬림이 죄가 있다고 생각되는 어떤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취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우디 이슬람 해석에서 '주된 다신숭배자들'은 시아파와 수피 무슬림들이 포함되는데, 수피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 유대인들 그리고 불교인들과 마친가지로 성인들의 중재를 구하는 기도를 하러 시전을 방문한다.

위 보고서는 미국에서 이슬람 종교교육이 이루어지는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을 알게 되면, 우리가 방심하고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노니 다르위시는 그의 책에서 하나의 강대국이었고 기독교국이던 이집트가 어떻게 이슬람화됐는지 잘 진술했을 뿐 아니라, 무슬림들이 그들의 교육기관에서 청소년들에게 비무슬림들을 향해 무엇을 선동하고 분노하게 하고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 알게 했다. 이제 이슬람화 초기단계에 처한 한국과 한국교회는 그들의 타끼야 평화선전에 방심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최근 한국에 외래 종교인 이슬람이 들어와 그들의 모스크를 짓고, 차세대 무슬림들을 위한 학교들을 짓고, 곳곳에 기도처를 요구하고, 할랄음식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이슬람 자금 대여, 무슬림들의 사법부 시리즈 강연, 문화선교, 매스컴 선교, 배꼽춤 강습 원조, 이슬람 국가들과의 친선과 친교, 무함마드 생일 축하 피켓시위, IS 살해대상자명단 통보, 장기체류용 결혼, 일부다처제 결혼, 그 피해사례들, 수 배로 늘어난 이슬람 지역 노무자들의 강간죄 통계 숫자 등,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고, 한국에 샤리아를 입법화하려는 자료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의 국회, 사법계, 정치계, 교육계, 경제계 등의 고지점령 진출 목적을 간파하고, 그들과 그들의 법이 우리의 통치자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무슬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타끼야 평화종교 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

한국에 샤리아가 입법화되는 날부터, 한국 여성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대재앙이 임한다는 사실도 깨우쳐야 한다. 우리는 구미 대륙에서 이미 경험한 관용의 결과를 거울삼아, 다문화주의를 이용하는 무슬림들의 배후 전략을 깨닫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방향감각 없는 얄팍한 다문화주의적 동정과 인권주의를 한국의 이슬람화를 위해 사정 없이 이용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행태가 구미 대륙의 형편과 병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도 그와 같이 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종교다원주와 문화다원주의에 심취하고 안일할 때, 이슬람은 그들의 역사 시종을 불신자와의 전쟁과 세계 이슬람화를 위한 교육으로 '성전' 준비를 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 기독교의 땅 터키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교회들이 지금 어떻게 됐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박해를 견디며 사는지를 관찰하여, 그런 사태가 오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아프카니스탄의 영혼을 사랑하고 선을 행한 사람들이 겪었던 역사적 사실을 보았다. 지금도 이슬람권에 가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참고하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세계를 위한 선교 교회로 지탱하려면, 현대의 안일주의, 무지주의, 쾌락주의적 삶은 차세대를 위해 무서운 죄악이 될 것이다. 현세대에 사는 우리로 인하여 차세대에 이러한 일어나게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타끼야 정책을 잘 알고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타끼야의 원인이 되는 꾸란 자체의 내용을 교회는 물론 일반적으로 무슬림 자신들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꾸란과 이슬람교는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 절대 금지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꾸란과 샤리아의 비인간성, 잔인성, 야만성 등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알아야 하는 종교와 율법에 관한 부정적인 문제점들도 결코 그들의 경전이나 샤리아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오직 외부에서 모든 잘못을 찾아낼 뿐이다. 또 모든 무슬림들은 샤리아를 만든 자를 '알라'라고 믿기 때문에, 오직 복종만 한다. 때문에 판단력이 정지됐다. 오직 복종만 허락되는 무슬림에게는 결정권이 없고, 샤리아와 무함마드의 전통에 완전히 통제받는다. 무하마드는 "내게 복종하는 자는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라"고 했다.

우리는 꾸란이 주장하는 불신자와 개종자 살해 명령과 세계 정복 명령을 알아야 하고 사법계에 접근하는 무슬림들의 숨은 계획을 간파하고, 한국의 미래를 이슬람화와 샤리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이슬람과 샤리아가 한국 고지를 점령하여 한국의 주인 종교가 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차세대 성도들의 영혼이 노략질 당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파수하고 온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교회로 머물러 있도록 파수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안일하게 머물러 이슬람의 정복을 앉아서 쳐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 정부는 더 세심한 주의력으로 이민 정책을 세우고 난민들을 수용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현재 국정원에서 입국해서는 안 될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잘 막아주고 있어 감사하다. 우리는 모든 비무슬림 지역을 "전쟁의 집"으로 간주하고 '성전'시 행하는 고도의 타끼야(위장) 전술에 순진하게 속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무슬림들은 비이슬람 세계가 존재하지 않도록 까지 싸우는 사람들이다. 마치 북한이 통일준비와 전투훈련으로 70년 간 경직된 역사를 이뤄온 것 같이, 무슬림들 역시 오직 알라를 기쁘게 하려고 1,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비무슬림들과 싸우고 죽고 죽이며 경직된 삶을 살아왔다.

그들의 전술과 전쟁의 삶은 대단히 노련한 것이다. 위장과 거짓에 노련하고,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고 지하드와 살해를 해 왔고, 합법화한 간통죄와 일부다처제, 여성차별로 무수한 여인들의 영혼을 죽이고, 지하드의 노획물로써 이방 여인을 강간하고, 아내를 바꾸며, 무슬림 남자들은 엄청난 육적 쾌락을 누리는 문화와 전통을 남겼다.

노무자로 외국에 입국한 남자 무슬림들은 외부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노출이 심한 현대 여인들은 다 창녀로 보이고 또 그렇게 대해주는 사람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지하드의 피해자들이고 꾸란과 샤리아의 피해자들이다. 불행히도 이들이 무슬림으로 태어났고 그렇게 교육받았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우리 한국으로 노무자들과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들이 알라에게 충성하고 속히 이슬람 세계가 이루어지도록 한국에서도 1,400년간 연습해 온 전투적인 삶을 살 것 아니겠는가? 한국은 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국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한국 정부는 국가보안 차원에서 이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준비하고 이들을 맞아들이는가?

탈북민들을 위해서는 하나원이 준비되어 있다. 무슬림들을 위해서는 무엇이 있는가? 독일 정부는 필자가 유학생활을 할 때, 현지인들과 결혼한 간호사들이 10년이 돼야 비로소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했어도 이제 독일 정부는 2050년 독일이 이슬람국이 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샤리아국이 되지 않고 중동이나 북부아프리카 같은 이슬람국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이민 정책을 엄격히 마련하고 입국 무슬림들에게 일부다처제 국제결혼 지원자 추방, 남녀 성의 동등성과 인격의 존귀성(남녀는 하나님의 형상)에 동의, 하나원 훈련 같은 현지 적응훈련 기간 엄수, 성범죄자 추방과 재입국 금지에 동의, 샤리아법 입법화 거부, 이슬람 선교 행위자 추방에 동의 등을 이민지원 양식서에 추가하여 서약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양식 서류를 빈틈없이 준비하고, 한국교회는 열심히 기도하며 오직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 민족과 교회를 보존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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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하게 학대를 당하며 기구한 삶을 사는 여성들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차별이 완화되고 여성 관련 범죄의 심각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곳’의 시간은 과거 어느 때에 멈춰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어린 나이에 신부가 된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이 남편에게 온갖 구타와 학대를 당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아프가니스탄 발흐(Balkh)출신의 자리나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자리나의 남편은 그녀가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 못하게 막았고,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을 원한 상태였다. 사건 당일 부부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일어나서 자리나를 깨웠다. 그리고 그녀를 꽁꽁 묶은 후 불구로 만들었다. 현재 남편은 아내를 부상입힌 후 도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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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나는 "나는 어떤 중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남편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매우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종종 부모님댁에 가서 다른 남자와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나를 나무랐다"고 설명했다.

슬프게도 그녀의 사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지난해 1월 레자 굴(20)은 남편의 폭력으로 코가 잘렸고,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한 여성은 죽을 때까지 두들겨 맞은 후 생명이 위독해졌다. 2015년에는 돌에 맞아 사망한 여성, 군중에게 화형당한 여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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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언론에 따르면, 6살 정도의 아프가니스탄 여자 아이들은 할아버지 뻘의 남자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그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이 아닌 성노예, 구타, 임신, 출산중 사망 등의 불운한 삶을 겪어야 한다.

영국의 자선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올해 전 세계적으로 15세 이하 1만 2000명 이상의 소녀들이 매 7초마다 아동신부가 된다고 한다. 단체의 철저한 조사와 분석에 의하면, 2017년 15세 이하 여학생 1500만명이 결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는 어린 신부들이 겪는 가정폭력, 학대, 강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6세의 한 소녀는 염소와 맞바꿔져 40세 이상의 남성에게 팔려 결혼하는 일조차 있었다"고 전했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인들은 가정학대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법안의 범위와 위상이 축소되고 지연되며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상태다.

사진=BBC, 데일리메일(ⓒStephanie Ssinclair VII/tooyoungtowed.org)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202601014&cp=nownews&wlog_tag3=kakao_share#csidx72404d2414ba448adc08a8028334967

덧붙임 : 정말 백만명의 영국 여자아이들이 무슬림 갱에게 강간을 당했느냐에 대해서는 찾아보니 Easy Meat: Inside Britain’s Grooming Gang Scandal 란 책의 저자인 McLoughlin 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10만에서 100만명 정도의 영국 여자아이들이 무슬림 갱에 의해 성적 착취를 당했다고 말합니다. 

http://goo.gl/kfvSZ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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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kingsroommedia.com/?p=2230

 

충격! 무술림에 의해 무너지는 유럽사회

보코하람과 지하드의 아동성폭행 역사

 

2014.4.14.일 보코하람(서양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300명의 기독교인과 무슬림 나이지리아 여학생들을 가사 및 성노예를 삼기위해서 납치했다.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은 그 여학생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금지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공격했다. 276명이 아직도 실종된 상태다.

 

세계의 언론매체들은 이를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납치사건이 아니라 사실 이는 지하드의 참모습이고 방법이다. 보코하람은 이들을 돈 받고 풀어주려고 가두어 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소녀들을 알라께서 주신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팔 수 있는 재산으로 보고 있다.

 

그 소녀들은 12-15세의 연령층에 속해 있다. 그들 중 기독교 소녀들은 강간당하고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무슬림 소녀들처럼 납치범들에게 신부감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중 일부는 성노예로 밀매될 것이며 이는 아프리카 전역과 중동에 만연되어 있는 현상이다. 이슬람 율법은 남자가 기호에 따라서 여자 아이나 젊은 여자를 한 달, 한 주일, 또는 한 시간 동안 성행위를 위해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개인적 매음 뿐 아니라 공적으로 허가된 매음굴들도 있다.

 

보코하람이란 나이지리아 탈레반이다. 그들은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탈레반들처럼 소녀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을 반대하며 알라를 위해서 그들을 결혼시켜 임신시키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행위는 이슬람 역사의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단순히 최근에 일어난 나이지리아 사태 때문에 놀라거나 충격 받은 사람들은 진실을 알지 못한다.

 

이번에 보여준 보코하람의 행동은 무함마드의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무장한 무슬림 군대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무함마드의 전사들은 조직적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유대인들을 공격하여 집단학살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은 목을 잘랐고 그들의 여인들, 아이들, , 가축들은 무슬림들에게 분배했다.

 

여인들은 강제 개종되어 아내의 신분을 주거나 혹은 노예로 보유했다.

 

그러므로 무슬림 전사들은 권력, , 황금을 위해서 그와 같은 행위를 많이 저질렀다.

 

서구에서 정치적으로 왜곡된 견해와는 달리 이슬람에서는 기나긴 역사와 더불어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칼로 강제 개종시키는 행위, 성노예 매매(소년, 소녀 모두), 일부다처, 성노예무역, 잔혹한 학대, 소수 종교인들을 주기적으로 집단학살하는 행위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것을 모를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또는 잘못 알고 있다.

 

기자들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아직도 보코하람이나 그런 그룹들은 불의와 가난, 정부의 부패와 존재하는 부조리에 대한 울부짖음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코하람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혹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지금의 부르나이처럼 나이지리아에서의 이슬람 국가라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은 시야파나 순니파 모두 샤리아(이슬람 율법)로 개인이나 공공의 삶을 지배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정부가 간음이나 배교의 혐의로 투석형을 집행할 수 있고 도둑질한 자는 손을 자르고 신성모독한 자는 투옥시키고 인질, 감금, 살해, 이교도의 추방 등의 힘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들이 여러 명의 부인을 얻는 것은 합법이며 결혼은 강요되고 여인들은 베일 써야하며 이유 없이 구타나 강간을 당하며 불순종할 우려가 있을 때는 명예살인을 당한다. 여인들은 자손번식이나 집안을 지키는 일만 하며 교육은 그들을 타락시킬 것이다.

 

어쨋든 세계는 처음으로 힘을 합해 이것을 알아챌만한 순간을 맞이했다.

 

탄원에 서명이 되고 트위터를 통해서 기사들이 작성되고 군사적 원조가 제안되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대중매체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최근에 발생한 야만적인 사례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녀들을 납치한 사건은 두려운 일이지만 보코하람이나 그와 유사한 다른 그룹들이 무슬림권이나 아랍권에서 소수 종교인들을 핍박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온건한 무슬림들이 여성들의 권리나 서방 활동가들을 지지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이것은 서방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지하드의 얼굴이라는 것을 기억하자는 등, 모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적인 이슬람관이나 여성을 대하는 관점에서 초점을 벗어나게 한다.

 

1971년에 방글라데시 해방 전쟁에서 수백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파키스탄 군인들은 공개적으로 계속해서 장래 방글라데시 무슬림 여성들을 집단 강간하고 고문했다.

 

이 여인들을 비랑고나혹은 용감한 여인들로 알려졌다.

 

그 때 많은 여인들이 자살했고 만일 임신했으면 그들의 가족들이 명예살인으로 죽였다. 40년 후 생존한 여인들은 그 때의 정신적 충격과 수치로 고통당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친척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남편으로부터 거절당하고 있다.

 

그 때 서방 세계는 전혀 이 문제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1992년부터 이슬람 준군사조직원들은 알제리의 젊은 무슬림들을 가정노예로 혹은 성노예로 만들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잡았고 도망가면 사살했다. 임신해도 사살했다.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서 잊혀졌다.

 

그 때 서방 세계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2004년 수단에서는 기나긴 추악한 전쟁이 있었다. 거기서는 아랍 무슬림 족속이 소위 성 제거라고 불리는 흑인 여성 무슬림들, 기독교인들, 정령숭배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속적으로 집단 강간했다.

 

나는 여성들의 대화 텐트를 개설해서 강간당한 여성들이 와서 자신들의 고통을 말할 수 있게 했고 그들이 혼자만 당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 역경에서 살아 남은 나이지리아의 불쌍한 소녀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받아들여지고 살아갈 길이 주어질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희생자가 아니라 전쟁 창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들이 눈에 띄기나 할까?

 

세계가 결국은 무슬림 여인들이나 소녀들이나 시민들이나 이교도들을 차별하지 않고 강간할 뿐 아니라 감금한 야만적인 무슬림 군인들에게 강력하게 맞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필리스 체슬러 박사는 여성학, 심리학 명예교수이며 많은 책들을 저술했다.

 

최근에는 카불의 미국인 신부라는 책을 써서 2013년도 유대인 서적상을 받았다.

 

그녀는 중동포럼을 돕고 있으며 아래 웹사이트를 통해서 연락할 수 있다. www.phyllis-chesler.com

 

번역: 4HIM

 

 boko-haram-ReutersBreitbart, by PHYLLIS CHESLER:

 

충격!! 무슬림에 의해 무너져가는 유럽

 

 

수니파·시아파, 1400년째 왜 싸우나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같은 수니파 국가인 바레인과 수단이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4일(현지 시각)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성직자 처형으로 촉발된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다른 수니파·시아파 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종파(宗派) 진영 대결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칼리프 선출 방식 異見서 출발…

사우디 "이란과 斷交"… 중동 일촉즉발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했다.

친(親)사우디 국가인 바레인과 수단도 4일 이란과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고,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과 외교관계 수준을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공사)급으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장일현 기자

▷사우디,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 선언...중동 갈등 일촉즉발

수니파·시아파 왜 싸우나

중동 분쟁의 근원인 수니·시아파 갈등은 1400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이들은 무함마드를 선지자로 여기고 하루 다섯 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똑같은 무슬림이지만, 서로를 원수로 여기며 전쟁을 거듭했다.

수니·시아파로 쪼개진 건 632년(추정)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였던 선지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면서부터다.

이슬람 공동체는 스스로 후계자를 정해야 했는데, 무함마드의 혈육을 후계자로 해야 한다는 시아파, 공동체 합의를 통해 적임자를 뽑아야 한다는 수니파로 의견이 갈렸다.

인구비율은 수니 85 對 시아 15

무함마드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시아파는 무함마드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립(이하 알리)을 초대 칼리프(후계자)로 추대했다. 하지만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丈人)인 아부 바크르를 추대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오른팔이었고, 둘째 딸을 무함마드에게 시집 보내 영향력도 셌다. 결국 수니파 의견이 채택돼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가 됐다. 이후 시아파는 공동체 내의 큰 불만 세력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교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르크 알님르를 비롯해 47명을 등을 테러혐의로 처형한데 대해 격분한 이란 시위대가 3일(현지시간)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난입해 불을 지르면서 검은 연기가 건물 밖으로 치솟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사우디 등 수니파는 능력주의…
이란 등 시아파는 혈육 앞세워

갈등이 노골화한 것은 시아파의 알리가 어렵게 제4대 칼리프에 올랐다가 곧 암살되면서부터다. 그 뒤 알리의 장남 하산마저 수니파 꾐에 넘어간 그의 아내에게 독살당하고, 차남 후세인도 수니파와 치른 전투에서 숨지면서 두 종파는 원수가 됐다.


1400년 전의 원한에서 비롯한 분쟁은 지금까지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2011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 정권(알아사드) 대 수니파 반군, 작년 터진 예멘 내전은 수니파 정권 대 시아파 반군의 대결 구도다. 종파 전쟁 성격이 강한 내전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분쟁을 확산시킨다. 현재 이슬람 신자는 수니파가 85%로 다수, 시아파가 15%로 소수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단절,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외교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의 핵심은 결국 수니·시아파의 종파(宗派) 대결이다. 두 나라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갈등과 반목을 계속해 왔다.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가 "와하비즘(사우디의 근본 이슬람주의)은 이단"이라며 이란의 혁명을 수출하겠다고 선언해 대결의 길로 들어섰다.

양국은 1987년 7월 발생한 사우디 메카 시위 사건 때 국교를 단절했다. 메카 성지를 순례하던 시아파 신도들이 반(反)사우디 왕정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40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275명이 이란 시아파였다. 양국은 1988년부터 3년간 국교를 끊었다.


사우디-이란 분쟁일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일(현지 시각) 저명한 시아파 지도자인 셰이크 님르 알님르를 사형시키자 이를 비판하는 이란 국민이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알님르의 사진을 붙인 팻말을 들고 사우디 국기를 불태웠으며 대사관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사우디 정부는 3일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다. /AP 연합뉴스

사우디, 이란 급부상에 위기감…
중동 兩强 자존심 충돌

전문가들은 이번 양국 갈등이 그때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시위·폭동이 원인이었던 30년 전과 달리 이번엔 사우디 왕정이 심각하게 존립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 위기의 가장 큰 배경은 이란의 부상이다. 수니파 국가들은 지난해 서방과 핵 협상을 타결한 이란이 경제 제재라는 올가미를 벗은 뒤 석유 수출 등을 통해 중동의 강국으로 떠오를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란은 인구가 8000만명으로 사우디(3000만명)를 압도하고, 군사력은 중동 지역 최강으로 평가된다. 원유 보유량도 사우디 못지않게 풍부하다.


미국이 중동에서 예전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사우디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이 테러를 지원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미국이 적극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이란 방어벽이 약화돼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사우디 왕정을 지탱했던 자금력도 흔들린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사우디 주요 유전 지대가 동부 지역에 몰려 있는 것도 문제다. 전체 인구의 15%인 사우디 시아파가 이곳에 몰려 있다. 이란 사주를 받은 시아파가 유전을 장악하면 사우디 왕가로선 치명적이다. 서정민 외대 교수는 "사우디는 이란 시아파의 국제적 영향력 차단과 국내 시아파 세력 단속을 정권 유지의 관건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중동 등 이슬람 국가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 대진표를 형성하고 있다. 바레인과 수단, UAE 등은 4일(현지 시각)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등 사우디 편들기를 명확히 했다.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 6개국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와 친사우디 성향의 아랍연맹(AL)은 '사우디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이란·이라크·레바논 헤즈볼라 등 시아파 진영은 사우디에 보복을 선언했다.

사우디 왕정 지탱해 온 자금력,
저유가에 큰 구멍 나며 흔들려

이란은 미국과 핵협상 타결로
경제 제재 풀려 국제사회 복귀

이런 갈등은 중동 전체의 격동과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와 이란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는 예멘과 시리아 내전에선 정부군·반군의 전투가 격화될 전망이다. 서방은 양국 갈등이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세력을 키워 반(反)IS·반(反)테러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에서 시아파 정부와 수니파 주민들 간 적대감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IS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양국 갈등을 중재할 국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냉전 땐 미국·소련 영향력이 막강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양국 행동을 제지할 힘이 없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우디가 미국 지원 없이 군사적 행동에 나서기 어렵고, 이란도 이제 막 국제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앵커]

이슬람국가, IS가 교황까지 테러 표적으로 삼으면서 종교전쟁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유럽 곳곳에서 가톨릭과 이슬람이 화합을 촉구하며 저지에 나섰습니다. 백나리 기자입니다.

 

[기자]

84살 신부가 IS 대원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프랑스 소도시 인근의 루앙대성당입니다. 가톨릭 신자 2천명이 모여 신부를 추모하는 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곳곳에서 히잡을 쓴 여성들이 눈에 띕니다. 이슬람교도지만 IS의 만행에 분노하며 가톨릭 미사에 참석한 겁니다.

 

<도미니크 레브룬 / 프랑스 루앙 대주교>

“무슬림 친구들의 참석에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미사 참석에는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일부 무슬림은 교회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믿으니까요.”

 

미사에 참석한 무슬림들도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모하메드 카라빌라 / 이슬람 성직자>

“그동안 무슬림은 보이지 않게 많은 것을 해왔는데 오늘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슬림과 가톨릭이 스며들고 화합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탈리아에서도 가톨릭 미사에 무슬림들이 참석했습니다. 가톨릭과 무슬림이 뭉치고 나선 건 IS가 노골적으로 종교전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IS는 선전 잡지 표지에 ‘십자가를 파괴하라’는 제목을 달고 기독교인을 공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프란치스코 교황도 테러 표적으로 삼아 선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력의 축소를 종교전쟁으로 만회하려는 IS, 가톨릭과 이슬람이 손을 잡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 이슬람국가, IS가 프랑스에서 미사를 집전 중이던 84세의 노신부를 잔혹하게 살해한 뒤, 교황까지 테러의 표적으로 삼겠다고 선언함으로 종교전쟁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로마 카톨릭을 비롯한 기독교 세력 전체를 테러의 대상으로 명시한 것인데, 이런 IS의 극단적인 행동이 카톨릭과 이슬람의 화합이라는 뜻하지 않은(의도된?) 결과를 낳고 있다.

 

정(正)과 반(反)의 대립을 통해 의도했던 합(合)의 결과를 도출한다는 헤겔의 변증법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교황의 사주를 받고 있는 일루미나티 목사 릭 워렌과 힐송 그리고 배도한 미국 장로교회가 이끌고 있는 Chrislam 운동이 IS의 테러를 계기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교황의 사주를 받고 있는 릭워렌이 이끄는 '크리슬람'이 is 테러를 통해 구체화 되고 있다.

 

지난 6월 18일 개최된 PCUSA(미국장로교)의 제 222회 총회 개회 식순에서

무슬림 신자가 알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최근 로마 카톨릭과 종교 통합의 행보에 함께하고 있는 힐송 교회의 Brian Houston은 "무슬림과 우리는 사실 동일한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최근엔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크리슬람 교회도 등장하고 있다.

 

출처: 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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