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단장 메뉴얼
종말론 2017. 10. 28. 22:49
신부단장 매뉴얼!
베드로후서 3장은 <신부단장 매뉴얼>입니다. 그래서 특정구절을 묵상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꼼꼼히 정리하며 요점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서 오늘은 기도하며 한구절도 놓치지 않고 조명해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기록해 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벧후 3:1-2)
베드로전후서 두개의 서신을 쓴 이유는, 우리 속에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과 신약의 사도들의 명령의 가장 중요한 핵심메세지를 전달하여 기억케 하기 위함이라고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신구약에 걸쳐 재림과 마지막 때에 대한 메세지는 무려 1/4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역사서 빼고 예언서 및 신약만 놓고 보면 거의1/2이 재림메세지입니다. 그러기에 재림이 상실된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토록 재림신앙은 십자가신앙과 함께 우리의 삶과 심령 가운데 두 커다란 기둥으로 뿌리박혀 있어야 마땅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감사하고 기뻐하는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3~7)
신부단장을 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밝히 알아야 할 마지막 때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속이는 자들이 나타나 재림메세지를 가볍게 여기고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최첨단 과학시대에 구름타고 다시 오신다는 허무맹랑한 소설같은 얘기가 어디 있냐고 비아냥거리며 마치 세상종말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없어지지 않고 있을 거라고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천지창조가 말씀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세상종말도 말씀으로 마감되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신구약에 수없이 많은 선지자가 세상 종말이 온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러한 메세지를 애써 외면하며 무시하고 소멸하는 교만한 행위로 말미암아 이제 하늘과 땅은 경건치 아니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소멸하는 불'로 임하실 것을 성경은 단호히 선포합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신부단장 매뉴얼(베드로판)이 시작됩니다. 신부단장 매뉴얼의 핵심은 한마디로 <사랑하라>인데 이것을 베드로후서에서는 여섯가지 명령어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회개하라 (사랑의 시작)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8-9)
사랑의 시작은 음란하게 세상과 벗하며 살던 삶에서 돌이켜 신랑을 향해 돌이켜 방향전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은 내 남편 아니라고 선언하고,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오직 나의 신랑 주 예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주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전부 다 회개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이 지금껏 오래참고 기다려주신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참 좋으신 신랑 예수님과의 사랑의 첫단추를 끼워야 합니다.
2. 거룩하라 (순결한 사랑)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0-11)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은 도적같이 올 것입니다.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없어지고 뜨거운 불에 체질이 녹아지며 지금껏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들과 악의 근원적 뿌리가 드러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완전한 멸망의 날입니다.
이 날을 바로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당연히 주님의 신부된 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거룩과 순결입니다. 이전에 음란하게 세상과 짝하여 히히덕거리며 놀아나던 과거를 청산하고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며 그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정결과 지조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 신랑으로 인식하는 자는 결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숨막히고 고리타분한 율법적인 삶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삶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랑을 못 견디게 사랑하기 때문에 신랑과의 사랑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에 관심조차 두지 않고 전부 다 자원함과 기쁨으로 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바라보라 (기다리는 사랑)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벧후 3:12~14상)
주님의 신부된 자들은 신랑이 데리러 오실 하나님의 그 날을 간절히 바라봅니다. 또한 신랑과 함께 영원토록 거하게 될 처소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은 신부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닙니다.
오직 신랑이 오는 날, 신랑과 함께 살 처소를 바라보며 간절히 간절히 신랑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은 한사람도 예외없이 반드시 데려가실 것입니다. (딤후 4:7-8)
4. 평안하라 (두려움 없는 사랑)
"...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4하)
주님의 신부들이 매우 자주 빠지게 되는 역경은 두려움입니다.
"혹시나 나를 데려가지 않으시고 대환란 가운데 버리시면 어떻하지?"하는 두려움...
(요일 4:18)에서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 온전히 이루지 못한 자라고 진단해 주십니다. 빛의 부재가 어두움이듯이 사랑의 부재가 두려움입니다. 주를 향한 사랑이 있는 자는 결코 두려움이 엄습하지 못합니다.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넘어지고 실수하고 나도 나를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신물이 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 사랑의 그늘막 아래 거하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깊은 평안 가운데 다시 일어나 점없고 흠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씁니다. 두려움을 내어쫓는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가 평강으로 들어가는 열쇠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5. 절제하라 (겸손한 사랑)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벧후 3:15~17)
마지막 때는 주를 위해 대단한 일을 성취하고 이루는 것보다는 절제하고 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주를 위하여 이것저것 화려하게 사역하고 이루는 것이 스스로를 교만하게 하여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오래 참아주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모든 일에 삼가고 절제하고 들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때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엄청난 미혹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 착념하여 말씀에서 경계하시는 모든 죄의 올무들을 미리 알고 겸손히 자신을 먼저 살피고 돌아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남의 신앙을 세워준다는 미명 하에 부족해 보이는 남의 허물과 잘못을 들춰내고 판단하는 태도가 발견된다면, 즉시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엎드려 철저히 주님 앞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합니다. (고전 4:5)
6. 자라가라 (깊어가는 사랑)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8)
멈추지 않는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
그 관계의 깊이가 끝없이 깊어지는 성숙한 신부의 삶...
주님의 신부들은 결코 현재 주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끊임없이 열어주시는 더 깊은 사랑의 관계 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문을 열면 또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또 다른 차원을 열어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늘 항상 갈급하게 주님의 사랑을 찾고 앙모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생의 소원이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주님의 아름다움을 앙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 올인하는 모든 자들은 지금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누리는 하늘의 영광이 주님 강림하셔서 하늘로 올리워가시는 그 날 이후까지 영원토록 지속될 것입니다.
신부단장 매뉴얼을 복잡하게 정리한 것 같지만,
핵심은 단 하나 <사랑>입니다.
신랑을 사랑하기만 하면 신부단장 매뉴얼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위에 나열한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돌이키고,
사랑하기 때문에 순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며,
사랑하기 때문에 평안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겸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라갑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는 사랑만 하면 되는군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게 전부이군요. 순종하겠습니다. 날 위해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만 생각하면... 당연히 기쁨으로 순종해야 할 일임을 고백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날 위해 죽어주셨다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나이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앞으로 남은 생을 사랑만 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은 저 하늘에 묻어두고 오직 주를 신뢰함으로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알리는 삶에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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