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에 든 해독제, 미처 복용치 못하면 죽는 것...
사회/정치 2017. 11. 30. 02:16"소지품서 아트로핀 12정 든 약병 나와"..미처 복용 못한 듯
해독제 소지 이유는..독극물에 의한 암살 우려했나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올해 초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가방 속에 VX 신경작용제의 해독제가 들어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9일 국영 베르나마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화학청 소속 독물학자인 K. 샤르밀라(38·여) 박사는 이날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김정남 암살 사건 22일차 공판에서 김정남의 소지품 중에 아트로핀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샤르밀라 박사는 "지난 3월 10일 오후 4시께 경찰로부터 독성검사를 위해 넘겨 받은 사망자의 소지품 중 아트로핀 12정이 든 약병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약병의 라벨이 한국어로 쓰여 있었느냐는 피고인측 변호사의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트로핀은 김정남을 살해하는데 사용된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의 대표적 해독제다.
VX에 노출될 경우 혈중 신경전달물질 분해 효소가 급감하면서 근육마비가 초래돼 사망하는데, 아트로핀은 중독 초기에 투여할 경우 이런 작용을 늦춰 목숨을 건질 가능성을 높여준다.
아트로핀을 휴대했다는 것은 김정남이 평소 독극물에 의한 암살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김정남이 피습 직후 해당 약물을 복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점에 미뤄볼 때 미처 복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는 올해 2월 13일 오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VX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고 공항내 진료소로 옮겨진 뒤 발작을 일으켰다.
의료진은 강심 효과를 위해 뒤늦게 아트로핀을 투여했지만, 잠시 증세가 호전되는 듯 보이던 김정남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
샤르밀라 박사는 김정남의 혈액에서는 고혈압과 통풍, 당뇨, 발기부전 치료제 등이 검출됐지만, 통상적인 복용 수준으로 그의 사망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살충제에 노출된 사람도 VX 신경작용제 중독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 숨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피고인측 변호인의 질문에 대해선 "그렇기는 하지만 상충제의 경우 훨씬 많은 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VX는 10㎎만 피부로 흡수돼도 숨질 수 있는 반면, 가장 독성이 강한 유기인제 살충제로 알려진 포레이트(phorate)로 사람이 죽으려면 무려 7만2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샤알람 고등법원은 30일 오전 김정남 암살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여)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29·여)에 대한 공판을 속개할 예정이다.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았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두 여성에게 VX 신경작용제를 주고 김정남을 살해하게 한 북한인들은 범행 당일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지 경찰관인 나스룰 사인 함자는 범행 이틀 뒤 공항으로 돌아와 출국하려다 체포된 흐엉이 북한인 공범들이 묵는 호텔을 안다며 자신들을 안내했지만, 호텔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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