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의 사람들과 교인들 I
종말론 2018. 6. 21. 21:50말세의 사람들과 교인들 I
본문: 딤후 3:2
요절: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지난주 우리는 이미 말세가 가까웠고 사회에 불법이 가득하고 교회도 그 영향을 받아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전의 상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때가 가까워 사회에서 살기도 어렵고, 교회 생활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1절에서 이때를 “나쁜”, “고통스러운” 시기라고 하면서 2-5절에서 이런 시대에 사는 사람의 성품이 어떤지를 묘사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자율의 길을 갔을 때, 그들의 죄가 성숙하면 이러한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2-5절에 열거한 것을 악덕목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악덕목록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성경은 인간의 악한 행실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나타나는 19개 악덕은 모두 불신자의 성품과 태도입니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대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진리대로, 친절하고 섬기려는 자세로 살려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살기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고, 이들이 목사가 되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이런 목사들 때문에 지금도 시간과 정신을 낭비하며 상당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너무도 경건해서 함께 일을 시작하면 언젠가는 본색이 드러나서 일이 깨어지고 제가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해서 사람 관계를 끊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것을 미리 경고하셨으므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진짜 말세에는 이러한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므로 교회는 경건의 능력을 잃게 되고 위선으로만 가득 차서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목록을 통해 남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판하고자 합니다.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도 이 목록의 어느 하나라도 자기에게 해당한다면, 구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거짓 복음으로 조금은 세뇌되었으므로, 별 생각없이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착각 속에서 삽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가르쳐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면 자기를 냉철하게 점검하고 회개해야 하는데, 자기는 잘 지킨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회에서 보통 악덕을 세밀하게 가르치지 않아 죄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실정입니다. 설교자가 “바로 당신이 이런 사람이다”라고 꼭 집어서 지적하면, 감사하지 않고 분노하여 교회가 파탄 나거나 설교자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길을 제시하면 돼지가 진주를 밟듯이 공격적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말세 교회의 한 단면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회개하여 거룩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시고, 마음속에 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감화와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이러한 악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1. “자기를 사랑하며”(phil-autos)
유럽의 일반 기독교는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이웃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하고(물론 좀 극단화된 표현입니다만), 이웃 사랑이 무엇인지는 자기가 정의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에게 적어도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경 말씀을 순종하므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 사랑을 자기가 정의하므로, 자기가 입법자가 되는 휴머니즘-계몽주의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는 계몽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계몽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계몽주의 이후 유럽인에게는 Selbstverwicklichung(자기 계발, 자기완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의 중심에는 자기(그리스어로 아우토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선하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잘 개발하면 낙원이 온다는 생각이 근저에 있습니다. 오늘날 독일에는 녹색정당이 이 사상을 실현하고자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곳에서는 이 이념에 따라 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자기를 사랑하며”가 오늘날 유럽인 생각과 감정의 기본이 됩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온 유럽은 낙원이 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타락했습니다. 자기만 알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청소년들이 늘어났습니다. 결손 가정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한국은 공공장소가 갈수록 깨끗해지는데, 유럽은 갈수록 더러워집니다.
전 영역에서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으므로, 남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많이 둔 부부라고 할지라도, 갑자기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혼하고 그를 사귑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의 극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통해 배우자가 상처받고 아이들이 당하는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규정한 이웃 사랑의 결과입니다.
물론 유럽인은 막무가내는 아닙니다. 높고 깊은 문화적 전통과 기독교 유산이 있어서 이것이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정직과 성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필-아우토스(“자기를 사랑하고”)가 근저에 있으므로, 좋은 문화적 유산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며, 사회적 불안이 점차로 증폭되며, 사람 사이가 조금씩 균열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과 태도가 교회에 침투한 것입니다. 유럽 교회는 한국 교회 상황과 전혀 다르므로, 한국 교회로 넘어가겠습니다. 신앙을 자기완성이나 이익의 도구로 삼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거나 지인의 범위를 늘인다든지, 건강, 부, 행복을 증진한다는 생각입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되면 사회적 명망도 생깁니다. 목사는 큰 교회를 이루면 그가 받는 영광은 말할 수도 없이 큽니다. 이것이 바로 필-아우토스(“자기를 사랑하고”)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매우 친절하고 은혜로운 교우가, 금전이나 명예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원수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저희 교단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첫 단계는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도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며, 셋째 단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의 정반대인 자기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 해야 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죄가 파생됩니다. 앞으로 나올 18개 악덕은 자기 사랑의 결과라고까지 볼 수 있습니다.
사람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이 솟아나온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미워하는 것)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탐내는 것)과 거짓 증언과 비방(남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이니”(마 15:19). 그리스도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이런 일을 하면서도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남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악한 생각을 하면서도 이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죄를 너무나 사랑하므로 이것을 놓지 않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사랑해서 이 악덕을 키울 것이 아니라 죽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말씀이므로, 우리가 정말로 명심해야 하며,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항상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2. “돈을 사랑하며”
성경은 가난함이 부자보다 낫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면서 부자가 되려는 마음에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0-21).
오늘 본문에서는 주로 돈이 있어도 남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자기 재산을 움켜쥐지 말고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축복했음을 감사하지 않는 것으로서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돈을 지출하는가에 따라 그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데에 돈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구제나 하나님 사업에는 인색합니다. 이것은 돈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선물이며 자기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소유욕으로부터 해방하도록 무섭게 훈련하지 않으면, 돈 사랑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들을 경건한 자들이라고 칭찬했으며, 자신도 그렇다고 굳세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바리새인들은 이 비판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4). 혹시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말씀의 고소에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마음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지도 않은 것까지도 아시고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자기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심판 기준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3. “자랑하며”
이것도 자기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 돈, 학식, 지식, 지위, 출신을 자랑하므로 기회만 있으면 이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어느 모임에 가도 이들은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큰소리를 냅니다. 생각이 항상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으로서 이런 사람을 교회 일군으로 세우면 큰일 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이러한 경향을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한 식으로 목회하지 않으면 교회에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풍조에 물든 목회자와 교인은, 자기 영광을 마음껏 구해서 영광을 다 받고, 제일 마지막에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 얼굴에 침을 뱉어야 마땅한데, 대부분 이 말을 듣고 “아멘”합니다. 이렇게 교인은 세상 사람이 보기에도 유치한 우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를 잘라내야 합니다. 이것이 없어야 자기가 자유로워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이런 사람 때문에 항상 어지럽습니다.
4. “교만하며”
이것은, 자랑하는 것과 성질은 같지만, 죄질이 더 악한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상태(실력)를 잘 모르므로, 자기를 실재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과대망상적인 현상입니다. 게다가 남을 낮게 보는 병적인 현상까지 겹친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남이 하는 것은 우습게 보이고 자기가 하는 일은 항상 옳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남이 끝까지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중간에 말을 끊고 개입합니다.
제가 모 대기업체에 근무할 때, 회사의 장이 사원의 개인 생활에까지 간섭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식당에 가도 자기가 다 시킵니다. 사원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교회에까지 들어와서 목사나 힘이 있는 장로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줄을 자기가 쥐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 단체는 결혼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합니다. 이혼하라고 명하면 이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자가 신자의 인생 깊은 곳에까지 간섭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흉내 내는 교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이러한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남을 지배하려는 현상이 특히 한국 교회에 심합니다.
한국인에게는 이러한 유전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자랑하는 사람과는 달리 매우 겸손하고 사랑스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마음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평소에 나타나지 않지만, 결정적일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말씀을 잘 배우지도 않고 영접하지도 않으므로 그 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하므로 아무도 그의 속을 잘 모릅니다.
교만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죄를 완전히 자백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도 해야 하지만, 사람에게도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용서를 구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교만 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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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정리하면, 예수님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보통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한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교회도 이와 같이 됩니다. 그러면 교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게 되어, 자기도 이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살므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겉으로는 예배가 활성화되어도, 내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이미 무너져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자 경건한 삶을 위해 매우 애써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여 실천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과 그분의 감화로,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새사람의 본질에 맞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일이 실천하기에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우리는 믿음의 형제를 찾아 같이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돕고 격려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사회나 교회 상태를 보고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MvxA/99 |
출처: 영적분별력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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