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감옥에서 풀려난 어느 저널리스트의 단상

자료실 2011. 4. 11. 05:26

기획탈북… 착잡하다

중국 감옥에서 풀려난 어느 저널리스트의 단상… 이국땅에 내던져진 탈북자들만 희생 당해

▣ 자료저자: 오영필/ 비디오 저널리스트·<금지된 여행>의 저자

텔레비전을 보면서 떠오르는 몇 가지 단상이 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이 발효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즘 부쩍 신문과 방송을 통해 중국 베이징 외국 공관에 필사적으로 진입하는 탈북자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처절한 모습을 볼 때마다 2년 전 필자가 참여했던 기획탈북의 경험들과 그때 만난 탈북자들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마음의 심난함을 억누를 길이 없다. 경험의 유무는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경험이 제공하는 사물에 대한 시선의 깊이와 새로운 형태의 편견 혹은 주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이미지 전체보기

△ 탈북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이국땅에 내던져진 탈북자들이다. 10월22일 베이징 한국 국제학교로 진입한 탈북자들이 교장실에 둘러앉아 있다. (사진 / 연합)

중국까지 겨냥한 미국의 북한인권법

탈북을 한 동기와 그들이 그곳에 오기까지의 힘든 여정, 그들의 현재 심경, 언론에 재생산되어지는 그들의 이미지와 그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 탈북에 연루되어 중국 감옥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라도 빨리 감옥에서 나가고 싶어했지만, 지금은 눈을 감으면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움이 밀려온다.

사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들의 정착지원금의 상당 부분을 받는 브로커나 일부 순수성을 의심받는 비정부기구(NGO)들의 입지는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발효된 북한인권법안에는 탈북자들을 돕는 NGO들에게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준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조항은 궁지에 몰린 그들에게 확실한 실탄을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명분을 주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돈을 따라 움직이는 브로커들조차 NGO로 행세하는 해프닝도 전혀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러한 법안을 만들었을까? 최근 2년 반 동안, 주중 한국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수가 800여명인 것에 견줘 미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수는 겨우 6명에 불과하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난민을 허용하고 있으나 그것은 정치적인 난민에 한해서다. 그러나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중국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왜 탈북자들을 돕는 NGO들은 도우면서 정작 절박한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을 돕는 데는 인색한 것인가? 이 점이 바로 미국이 탈북자들을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대목이다.

이미지 전체보기

△ 6월30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독일 학교의 담을 넘고 있는 탈북자들. 최근 중국 공안의 탈북자 단속이 부쩍 강화됐다. (사진 / 연합)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인권법안 카드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미국이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를 건드리며 중국을 견제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새로 개편된 후진타오의 체제로 바뀐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로 정치·경제·외교·군사 모든 분야에 걸쳐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인권 상황을 건드리기 위한 전초전으로 이 법안을 만들었다고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인권법안 조항 안에는 중국 내에 거주하는 탈북자의 인권 상황에 중국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기를 촉구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이 발생하자 대대적인 탈북자 색출을 벌인 중국은 한동안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적당한 당근과 채찍을 구사했다. 그러나 미국이 본격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안은 다 알고 있다

한 예로 최근 베이징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탈북자 60여명과 그들을 돕는 NGO 단체 회원 2명이 체포됐고, 며칠 뒤 다른 곳에서도 10여명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외국 공관 진입에서 사후 처리에 급급했던 중국이 상황이 발생하기 전 준비 단계부터 이들의 움직임을 차단한 것은 중국 정부가 탈북자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인 의도를 간파하고 적극적인 대응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필자는 탈북자들과 함께 2003년 광저우 미국 영사관 진입을 준비하면서 3월13일 광저우역 부근에서 탈북자들을 만나는 순간 중국 공안에게 붙잡혔다. 공안들은 한 사람당 세 사람이 달라붙었고, 이미 도로에는 우리를 이송하기 위해 여러 대의 지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필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수십명의 공안들은 심문할 장소에서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함께 붙잡혔던 조선족 친구가 말하기를 일이 발생하기 이틀 전부터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마당에서 젊은 여성이 우리 호실을 바라보며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며칠 뒤 호주 영사관을 찾아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여성을 다시 보았다며 그때 좀더 신중하지 못했던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결국 중국 공안은 이전부터 통화 내역을 도청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탈북자들을 색출할 수 있다. 중국 공안의 정보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미지 전체보기 이미지 전체보기

△ 미국의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된 뒤, 기획탈북이 확산되고 있다. 10월22일 탈북자들이 베이징 창핑구에 있는 한국 국제학교 공터를 가로질러 학교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 / 연합)

수년 동안 탈북 관련 NGO들은 열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해 위험에 처해 있는 수많은 탈북자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안의 발효 이후 그나마 독립성을 견지해오던 탈북 NGO들은 외부 종속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더 이상 행위의 동기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법 조항에서 나오고, 행위의 주체는 미국이고 NGO들은 다만 일정한 대가를 받고 심부름을 해주는 모양새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탈북 문제에서의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한국 정부는 붙잡힌 NGO 관계자들의 신변 안전을 지켜야 하는 자국민 보호라는 큰 명제와 중국과 북한간의 외교 관계에서 난처한 상황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 붙잡힌 탈북자들은 외국 공관에 진입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단지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어 외교적인 보호를 받을 수도 없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최대 피해자는 탈북자 당사자들이다.0

또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은 최근에 불거지는 탈북자 문제로 남남갈등의 증폭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최근 필자는 통일부와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 때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증인과 참고인의 자격으로 출석한 적이 있다.

남한 사회의 갈등 증폭 우려

이미지 전체보기 이미지 전체보기

△ 10월25일 탈북자 19명이 베이징 주재 한국 영사관 진입을 시도한 뒤 한 직원이 망가진 담장을 고치고 있다. (사진 / AP 연합)

탈북자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방식에 대해 야당과 여당의 인식의 차이가 너무가 뚜렷하다는 것이고,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간 그리고 세대간 뚜렷한 양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북한에 대한 시각이나 정책이 더욱 갈라지고 있다. 그동안 영·호남의 지역갈등의 골이 깊었는데, 이젠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그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형국이다. 탈북자 문제는 국가보안법만큼이나 북한에 대한 시각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핵심 사안이다. 그러므로 탈북자 문제는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통합과 관련된 아주 중요하면서 민감한 문제라는 점에서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좀더 깊고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최근에 필자는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도왔다는 이유 때문에 감옥에 갔다온 이후로 정치인에서 학자와 시민단체 NGO와 언론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만나면서 내가 마치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나 된 것처럼 다니고 있는 나를 보면서 가끔씩 놀라곤 한다. 두번의 감옥 생활을 했다고 해서 내가 과연 탈북자들의 아픔을 모두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과장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약자의 아픔을 동일화하고 싶어서 주님의 마음을 닮고자 했던 필자의 의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미지 전체보기

△ 탈북자 취재 도중 중국 공안에 붙잡혀 16개월간 수감됐다 풀려난 오영필씨(왼쪽에서 세 번째)가 기자회견을 열고 기획탈북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 한겨레 황석주 기자)

탈북자 문제는 인권이란 측면에서 선한 양심 혹은 신앙심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게 호소할 수 있는 문제인 동시에 미국·한국·일본의 일부 정치 세력의 북한 때리기의 가장 유용한 소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필자는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것이다. 필자는 비둘기처럼 순수했을지 모르나, 뱀같이 지혜롭지 못했다. 정의로 포장된 구조적인 악을 생산해내는 이벤트식 기획탈북을 통해 궁극적인 피해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자인 탈북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낯선 이국 땅에서 무시당하며 이용당하는 이 시대의 사마리아인이다.

성경의 ‘마태복음’엔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힌 것이 하나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즉 배고픈 자와 자신을 동일화하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시는 분이다. 도움이 필요한 탈북자들에게 한 것이 하나님에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들을 이용하고 그들의 마음에 피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럽지만 나의 수치와 잘못을 드러내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필자는 텔레비전에서 탈북자들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보면서 필자에게 일어났던 아찔하고도 가슴 시린 기억의 문을 열어보려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필자는 국내 한 선교회의 주선으로 일본 <도쿄방송>(TBS)과 계약을 맺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외교 공관 진입 과정을 도와주며 취재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16개월 만에 무죄 석방된 바 있다. 필자는 “탈북자 문제를 상업적·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정의와 공의로 포장된 구조적인 악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중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