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란 용어 적절한가
자료실 2011. 4. 5. 04:12
아이합(IHOP)의 사역들이 오늘날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로렌 커닝햄(YWAM 총재)도 언급했듯이, 대추수 시기,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 명령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보기도 사역의 절대적 필요와 시급함 때문이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8397
한국YWAM 열방대학 중보기도센터는 국제예수전도단의 ‘이슬람을 위한 30일 기도’ 안내책자를 번역, 배포하고 있다. YWAM은 또 라마단에 앞서 다음달 1∼3일 서울 신용산교회에서 이슬람선교를 위한 중보기도 세미나를 개최,‘이슬람 상황과 선교전략’‘영적전쟁과 중보기도’‘선교를 위한 중보기도자 양성’ 등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05&aid=0000073538
화요모임은 예수전도단이 한국교회의 예배와 기도 회복을 위해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찬양과 중보기도를 드리며 말씀을 듣는 시간이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494460&cp=nv
친밀한 중보기도, 트리시아 매캐리 로즈 지음, 예수전도단 하기에는 어렵고, 하지 않기에는 마음이 찔리는 중보기도에 대한 지침서다. 중보기도는 그리스도와 친밀함을 누리는 열쇠임을 일깨워준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5363142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는 12주의 강의와 12주의 전도여행을 통해 이뤄지는
예수전도단의 가장 기본적인 제자 훈련과정이다. 묵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법, 예배, 중보기도, 영적전쟁, 내적치유, 성경적 세계관, 전도 및 선교 등이 주 강의내용이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894
"중보기도" 라는 용어가 적절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즉시 ‘중보기도’라는 용어의 사용을 중지하고 성경에 있는대로 합심기도(마18:19), |
http://www.koreamission.co.kr/kyodan/xinu_view.php3?CP=1&SN=288
1. 성도들이 사용하는 ‘중보기도’란 용어는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한다.
중보기도란 용어는 딤전2:1의 엔튜크시스(enteuxis)의 번역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
1993년에 출간된 ‘표준 새번역 성경’이 “…간구와 기도와 중보의 기도와 감사를…”이라고 번역하였다.
‘개역 성경’에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로,
1977년의 외경을 포함한 ‘공동 번역’도 “…간구와 기원과 간청과 감사의 기도…”라고 하였으며,
같은 동양권의 ‘중국성경공회’의 성경(聖經)은 이를 『…간구(懇求) 도고(禱告) 대구(代求) 축사(祝謝)…』로 번역하였으나 중보기도란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엔튜크시스’는 역본에 따라서 도고(禱告:개역), 간청(懇請: 공동), 대구(代求: 중국),
중보기도(仲保祈禱: 표준)로 번역되었다.
영어 번역은 Intercession(남을 위한 간청)을, 루터는 …를 위한 간구로 번역하였다.
대개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청원 기도"(Oxford Dict. of the Christian Church) 혹은
아브라함의 소돔을 위한 기도(창18:16-33)나 모세의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민14:10-19)처럼
“누구를 위한 청원”(Zondervan Expository Dict. of Bible Words)으로 풀이된다.
프라임(Derek Prime)은 이 용어에 대하여
“하늘에서 성도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간구하시는 중보기도”(롬8:34; 히7:27; 9:24; 13:15; 요일2:1)와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의 간구”에 사용되는 전용 술어라 하였다(롬8:26,27).
따라서 “…위한 기도, …대신한 기도, …와 함께 하는 기도” 등의 용어를 사용함이 좋겠다.
2. 성도의 ‘중보기도’는 사실상 기독교 교리 체계를 위협하는 용어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직과 중보기도를 손상시키고,
비성경적인 교리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구속론적 의미로 사람에게 중보 혹은 중보자란 이름이 사용된 곳이 없다.
물론 중보기도란 말도 사용되지 않았다.
칼빈은 성도들이 올리는 ‘서로를 위한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항상 하시는 중보기도의 되울림”
(시편20:2주석), 또는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에 의존하고,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중보와 제사장직에 참여하는 기도”로 이해하였다(벧전2:9의 주석),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속의 중보자요, 신자들은 기도의 중보자”란 궤변을 철저히 경계하였다.
성도가 중보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중보직의 손상과
예수님의 고유한 중보기도를 왜곡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로마 가톨릭의 ‘죽은 자를 위한 중보기도’나 ‘성자들의 중보기도’와 연계되어
교리의 혼돈을 초래한다.
로마 카톨릭의 중보기도는 9세기에 활발하였다.
“칼빈 당시에도 ‘성자의 숭배’나 ‘죽은 성자들의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가 유행하였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성자들의 중보기도에서 피난처를 찾는 것은
그리스도의 중보직의 영예 박탈과 중보직의 완전성 부인”이라고 비판하였다. 중보기도란 용어가 교회 안팎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통 장로교 총회의 결의나
성명서처럼 용어 사용이 불가함을 인식하고 다른 좋은 말로 대체하여 사용함이 옳을 것이다.
김장진 목사<수향교회 · 전 고려신학교 교수>
예장 고려총회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파주 고려신학교에서 제55회 정기총회를 열고
‘중보기도’ 용어사용 금지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각종안건을 처리하고 신임원을 선출했다.
고려총회는 성명서에서 “최근 한국 교계에 ‘중보기도’가 만연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하는 중보기도는 불가능하며 오직 예수님에게만 사용될 수 있는 용어임”을 강조했다. 불가 사유에 대해서는 성경말씀을 인용해 “중보 혹은 중보자는 유일무이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전용” 되며, “전 성경에서 구속론적 의미에서 사람에게 중보 혹은 중보자란 이름이 사용된 곳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특히 개혁주의 교회에서 사람이 중보 기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중보기도권이 사용됨은 중세의 로마카톨릭 교리가 부활함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고려총회는 대안책으로 “성경에 입각해 ‘~대신 기도’, ‘~위하여 기도’, ‘~함께 기도’ 등의 용어를 사용할 것”을 덧붙였다.
http://yesu.net/?document_srl=8884&mid=yesu_news
http://blog.daum.net/kkho1105/10720
출처: 양무리마을 : 진실과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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