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善, Bonum, Good)

 

1) 선의 어원(語原)

성경에서 선(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tob)는 ‘아름다운, 옳은, 좋은’ 등의 뜻을 의미하여, 지각(知覺)에 관련되어 씌어졌는데 '좋았더라'(창1:4,10,12,18,21,25,31)가 그 사례이다. 히브리어 ‘토브’(tob)에서 파생된 헬라어는 ‘아가도스’(agados)와 ‘칼로스’(kalos)가 사용되었는데, ‘아가도스’(agados)는 도덕적으로도 선한 것을 의미하고(롬8:28), ‘칼로스’(kalos) 도덕적으로도 선하고, 외형적으로 아름답기도 한 것을 의미한다(막14:6).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2)에서 쓰인 '선'(크레스토테스)은 도덕적으로 완전하심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은 결코 선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성경적 선의 개념은 인간 중심적 선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2) 사전적 정의(定義)

착하고 도리에 맞는 것.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모든 것의 행위 및 의지를 규정하는 근거(그리스어 agathon, 라틴어 bonum).

 

3) 철학적 이해(理解)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는 선이란 한 존재의 존재 목적 달성에 이로운 것을 말한다. 그 이로운 것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윤리적인 질서가 될 수도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선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1)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선 = 진리(眞)

(2) 윤리적(倫理的) 선 = 도덕적으로 착한 선(善)

(3) 심미적(審美的) 선 = 아름다움(美)

이 세 가지 선은 존재(有) 안에 포함되어 관찰된다. '선은 바람직하고 좋은 어떤 것이다.' 그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지, 그것이 없으면 좋음 자체도 없는 것이다. 참된 것, 아름다운 것, 착한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선이다.

 

4) 성경적 접근(接近)

악의 반대말. ‘의’와 동의어(창4:7;신6:18;막10:18;살전5:15). 선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사람은 결코 그 스스로는 선할 수 없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은 없다(막10:18).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하나님의 선의 표적으로 보고 있는데, 신약에서는 이 행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사하신다는 것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선한 일이란 하나님 나라의 시민에게 적합한 행위이다(막12:34;마5:16,25:34-).

 

5) 선의 기준(基準)

① 하나님이 선(善)이다."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10:18).

②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선(善)이다."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딤전4:4).

③ 하나님의 은사들은 선(善)이다."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④ 하나님의 말씀은 선(善)이다."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7:12).

즉,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옳다’ 또는 ‘착하다’를 의미하는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며,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을 선하다고 말한다.“.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히13:21).

 

6) 선의 가치(價値)

선은 객관적으로 선한 것과 주관적으로 선한 것이 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다른 이에게도 좋은 것이어야 객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선은 그것을 올바르고 좋은 것으로 체험하는 자의 인격 안에 받아들여진다. 선은 인식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때 선의 진가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선은 인격적인 체험을 통해 행복으로 나타나게 된다.

 

2. 악(惡, malum, evil)

 

1) 사전적 정의(定義)

도리에 어긋나는 못되고 나쁜 것..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대상·행동·사태를 가리키며, 긍정적인 가치로서의 선(善)에 반대되는 것이다(그리스어 kakon, 라틴어 malum). 그리스어에서 악을 뜻하는 'Kakos'나 'Poneros'라는 말은 인간이 책임져야 할 악한 행위라는 뜻도 있지만, 인간의 책임을 뛰어넘는 파괴적인 세력이라는 뜻을 갖는다.

라틴 말의 'malum', 히브리 말의 'ra'라는 말은 '악'을 뜻하는데, 이 말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아니하는 일, 우상 숭배,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하는 일 등을 뜻하며, 동시에 그것들을 초월하여 인간에게 고통과 슬픔,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세력을 뜻한다.

 

2) 철학적 이해(理解)

철학적으로 악은 윤리악과 자연악, 형이상학적 악으로 나눈다.

(1) 윤리악(倫理惡) :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의지나 나쁜 행위를 말한다.

(2) 자연악(自然惡) : 인간에게 해로운 병, 천재지변, 나쁜 제도나 나쁜 풍속, 나쁜 사회 현상을 말한다.

(3) 형이상학적 악 : 인간이 자기 존재의 유지와 완성을 방해하는 불행, 슬픔, 고통, 죽음, 병, 추함 등을 말한다.

 

3) 성경적 접근(接近)

결과에서 판단하여, 화나 해를 낳는 행위(창13:13;렘44:9;요삼1:11;딤전6:10). 자기에게 해를 초래하는 행위가 악인 동시에, 타인에게 해를 주는 행위도 악이라고 말해진다(삼하13:16).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라는 말은 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대하12:14;욥1;1).

 

4) 악의 기원(起源)

창세의 에덴동산의 사건을 통해 악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창2:8-3:19). 즉 악의 기원을 하나님이나 사탄 또는 인간에게 둘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입장 중에 어느 하나를 취한다고 해도 논리적인 모순을 피할 수는 없다.

첫째, 하나님에게 둘 경우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타락시키셨고, 그 후에 예수님을 통해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원은 마치 하나님이 먼저 병을 주고 그 다음에 약을 주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죄와 악의 원인이 하나님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1:13).

또 하나님은 선한 것만을 창조했다. 그가 창조한 것은 그가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기 때문이다(창1:1-31)

둘째, 사탄에게 둘 경우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게 된다. 사탄이 에덴동산에 침입하고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하나님은 결코 전능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되기 때문이다.

셋째, 인간에게 둘 경우에, 하나님께도 책임이 있게 된다. 죄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그러나 미리 타락할 것을 알면서도 선악과를 만든 것은 하나님이시니까 결과적으로 인간 타락의 책임은 하나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에 내재하는 악(惡)의 사실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하나님은 선하기 때문에 창조주에게서 악(惡)의 기원을 찾을 수는 없다. 한편 창조주에 대립하는 악신(惡神)에게서도(신은 유일하므로),

조악한 질료(質料)에서도(신은 만물의 창조주이므로) 악(惡)의 기원을 찾을 수 없다. 어거스틴은 악(惡)을 존재의 결핍(privation) 또는 결여(absence of being)로 보았다.

따라서 '악(惡)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있어야 할 선(善)의 결핍'으로 정의했다.

 

3. 선악과 규례(規例)

1)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분명히 하시기 위함이다. 선악과는 먹지 말고(창2:17), 심지어 만지지도 말라(창3:3)고 명령하신 것은, 주(하나님의 명령). 종(사람의 복종)의 관계를 설정하신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를 완전하게 구현하시기 위함이다. 창조세계가 유지되기 위해서 언약이 필요했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 언약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창17:9).

3) 하나님께 최상의 영광을 돌리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 순종을 함으로 하나님께 최상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었다(계4:11).

4) 하나님의 참 자녀를 얻기 위함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선과 악을 몰랐다(창3;22).

하나님께서는 상대성(선과 악, 행복과 불행 등)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이다(신30:20;요3:36;행5:29).

5) 인간의 성품을 선하게 갖추시기 위함이다. 인간이 선과 악을 알되, 악을 이기고 선을 따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인간만이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의 명령을 수행할 자격과 능력이 생기는 것이며(창2:28),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천지 만물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창2:28).

 

하나님의 시험은 항상 선한 목적 즉 참 자녀를 만들기 위한 연단을 목적한다. 인간을 시험하여 자유의지를 연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선이시므로 사망과 저주를 불러들이는 악을 스스로 꾀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탄이 인간을 유혹하도록 허용하셨다(욥1:12,2:6).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란 존재가 하나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잠정적으로 필요한 악의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사탄은 하나님의 시험을 위해 쓰임 받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악이 갖는 제한성을 발견한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사망을 스스로 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 이후 인간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하여 주었다.

 

4. 선(善)과 악(惡)의 관계

선(善)을 지향해야 할 의지가 그것을 지향하지 않고 질서를 깨뜨리는 일, 그것은 곧 '의지의 반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죄(罪)라고 한다.

바로 이 죄를 회개하는 것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일이다. 이 죄(罪)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악(惡)에 대해 벌을 받게 되므로, 기독교에서는 악(惡)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된다.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의 근본은 계약(언약)인데서, 계약을 강화하는 행위가 선(善)이고, 계약관계를 해치든가,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악(惡)이다. 그러나 악(惡)은 밖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위보다도, 그 근원인 마음의 생각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인간 그것에 대해 말해진다(눅6:43-45).

형식적으로 정의하면 선(善)과 악(惡)의 구별은 모든 인간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환경, 사회구조, 정신적 능력 등에 따라 선(善)과 악(惡)의 판단기준이 달라진다.

 

5. 성경에서 밝힌 선악(善惡)에 대한 진리

 

1) 하나님은 선악을 알고 계신다(창2:9,17,3:5,22;잠15:3)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잠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2) 하나님은 선악을 초월하신 분이다(약1:13).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3) 선과 악은 공존한다(롬7:21;전7:20).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전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4) 택함 받은 자는 선악을 분변한다(히5:14;벧전3:11,17;롬12:9,21;삼하14:17;왕상3:9)

[히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왕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5) 선과 악은 마음에 쌓은 것에 따라 달리 드러난다(마12:35;눅6:45;잠11:27).

[마 12:공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잠 11:27]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6) 선보다 악을 행하기가 쉽다(롬7:19;렘4:22,23).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렘 4: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렘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7) 하나님께 속한 자는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한다(습3:13;요삼1:11).

[롬 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습 3: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요삼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8)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한다(잠13:6'살전5:22).

[잠 13:6]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하느니라

[살전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잠 28:5]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악의 기원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는 분명 악이 존재한다. 창조주이시고 주도권자인 하나님은 현실에 존재하는 작은 악조차도 살피고 계신다. 종말의 날에 하나님은 악의 뿌리까지 전부 제거하실 것이다.

 

6. 현재적인 악의 극복(克復)

아무리 착하게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고 고난을 당하는데,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면 허무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 의문의 해답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볼 수 있습니다.

악은 심판 때까지 하나님을 훼방하며 인간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의 몸부림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 끝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해 우리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14:12)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세상에서 악을 이기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힘이며 능력입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12:9)

출처: 개혁주의마을/이지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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