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와 목적(아더 핑크) 




“아담을 창조하신 조물주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명령을 통해서

당신의 지배권을 역설하시고 

당신의 권위를 높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 

합당할 수 없다.

그 동산의 오직 유일한 소유주가 

이러한 금령을 통하여 자기의 권리들을 강조하신 것은 

합당한 일이다.

더구나, 사람이 

이성적인 존재로 창조되고, 의지의 자유를 부여받았으며,

그가 명령에 적확하게 복종할 수 있었으니,

그에 따라서 법아래 놓여져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아담이 

자기의 창조주요, 주님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심과 복종심이 

어떠함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담에게 신성한 것인지 어떤지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 누리려 하면,

하나님께서 원래 그를 지어놓으신 그 거룩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시험대에 놓여진 것이고, 

신적 통치를 받는 신하가 된 것이다.

아담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에 의하여 지어져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있었다.

그는 도덕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 즐거워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계명은 억지로 해야 하는 고통이 전혀 아니었다.

(그 계명은)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증거하고 강화시키기에 

필요한 권도(勸導)였던 것이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받은 특별한 약정(창 2:17)은, 

신적 계시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우스개 거리가 되어 왔다.

스스로 속임을 받으면서도,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그런 사소한 일에 끼어들어서 자기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전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한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그들과 그들의 모든 후손들을 패망케 할 올무를 놓으려 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여 보면, 

그러한 하나님의 금령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선하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음이 분명하게 깨달아질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영장권을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아담이 자기를 지으신 분을 의지하고 복종하고 있다는 표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과 복종심의 특별한 실례(實例)를 

요구하신다는 것은 분명하게 합당한 일이었다.

아담더러 자기를 지으신 그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순종한다는 것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말이다.

낙원에 있는 수많은 열매 맺는 나무들 중에서 

한 나무를 지정하여 먹지 말라고 하신 것보다,

복종의 표로서 더 합당한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다른 나무의 열매들은 다 먹어도 좋다는 허락이 주어져 있었다.

그 한 나무만 따먹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지존자의 선하신 즐거움에 온유하게 순복하라는

유익한 교훈을 가르치기에 

아주 적합한 것이었다.


이 금령은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의 감정적인 욕구들을 

이치에 합당하게 논증하는 이성기능(理性機能)에 복종시키도록 

가르쳤다.

그 금령은, 

자기들의 몸의 성향들을 

하나님 안에만 있는 가장 높은 즐거움을 얻게 하는 이른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에 복종시켜야 함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그들의 지식에 대한 욕구도 

의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합당하고 유익하다고 알려주신 것으로만 

만족해야 만을 지시한다.

그리고 되지 못한 호기심으로 

자기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것들, 

제시하여 주면 유익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셔서 정하신 것들을 

주제넘게 파고들려고 하지 말아야 함을 지시해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 자체가 

죄악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금하셨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따라서 불순종할 때엔 분명하게 따라올 무시무시한 결과들을 

알려주는 엄숙한 경고가 주어졌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조차 

아담은 신적 위엄의 거룩한 외경심(畏敬心)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경심은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를 둘러싼 울타리였다.

사람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데 있다.

에덴에서는 어느 다른 목적에서 만족을 찾는 일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그의 순결성은 그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오직 한 가지만 제지하는데서 시험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약정(約定, 창2:17의 금령)이 

신적 위엄에 부합하지 못한 것은 전혀 아니다.

손으로 창조한 피조물에 대하여 

자신의 뜻과 권위를 강화시키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것이다.

자유로운 인격의 책임감이 강화되기만 한다면, 

그러한 약정은 경우의 본질상 필요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에 그가 계속 복종한다면 

필요하였다.

또한 우리 조상들인 아담과 하와에게 

금지된 대상이 매우 하찮은 것이라는 것은,

그들이 처한 시험을 이길 더욱 더 큰 당위성을 준 셈이었다.”


출처:아더 핑크의 ‘인간의 전적타락’(청교도 신앙사, 역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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