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열매 맺는 가지에도 타락의 잔재가 있는가? / 토마스 굿윈

 

 

1) 칭의의 은혜를 분명히 알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부패한 습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비록 육신을 입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그들에게는 결코 정죄가 없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이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 회심하여 모든 죄짐을 그리스도에게 내놓을 때 임하는 용서는 물론 그 후에 다시 타락하여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우고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무한한 은혜를 찬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날마다 빚진 삶을 사는 우리가 언제나 손을 내밀어 용서하시는 은혜와 사랑,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영원히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를 향해 끝없이 베푸시는 그 은혜와 한없는 사랑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견인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하여이다.

우리의 견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 벧전1:5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철통같은 보호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이렇게 강력한 보호막이 필요한 것은 곁길로 빠질 수 있는 중대하고도 분명한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이 바로 ‘타락의 잔재’이다. 그 타락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의 영과 싸워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가 완전하지 않고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의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리 자주 좌절하고 넘어질지라도 여전히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씨’(요일3:9)가 거한다. 그것이 복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3) 더욱 영광스럽고도 진정한 성도의 승리를 위하여이다.

만일 우리가 회심하는 순간에 즉시 모든 죄가 제거된다면, 마지막 날에 마귀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승리도 그처럼 극적이거나 영광스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존재하는 그분의 교회를 세워 나가실 때 그것을 대적하는 외부의 세력이 훨씬 더 크고 집요하더라도 교회를 굳게 세우시고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시는 것같이’(시110:2), 동일하게 신자들의 마음을 다스리신다. 비록 그들 안에서 은혜는 희미한 불빛처럼 흔적만 남아 있는 반면 부패성은 그것을 가득히 둘러싸고 있는 연기와 습기 같을지라도,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소켓 속의 전등처럼 은혜가 마침내 환한 빛을 비추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승리이다.

  4) 성도를 거룩하고도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하여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부패성을 통해 더욱 큰 은혜를 주시고 마귀를 부끄럽게 만드실 뿐만 아니라 성도를 향한 거룩한 목적을 이루어가신다. 첫째, 하나님은 남아 있는 부패성을 통해 성도들을 영적 자만으로부터 지키신다. 처음부터 풍성하고도 온전한 은혜를 받은 천사들도 타락하고 말았다. 성경은 그들에 대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났으며’(유1:6), 교만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았다고 말한다(딤전3:6). 하물며 죄로 가득했다가 이제야 온전하게 된 인생에게 교만의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 것이겠는가?

  우리에게 전가된 의는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하셨기 때문에 그 안에는 그러한 위험이 없다. 이 의는 전적으로 우리 밖에서 들어온 것이므로 쉽게 자만할 수도 없다. 문제는, 내부에서 진행되는 역사와 관련하여 우리에게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부패성이야말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적절한 수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좇아내지 않고 남겨 두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겸손하게 만드셨다. 이 땅에서 죄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겸손해진다면, 성도가 천국으로 가는 길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죄만큼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내재적 은혜를 위해 그분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신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본성에는 선한 것이 없다.

  셋째, 하나님은 남아 있는 부패성을 통해 우리를 낮추심으로써 자기 부인의 기회를 얻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경험 없이 지극히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을 더욱 기쁘게 받으신다. 그들에게 이러한 은혜에 대한 ‘백배의 축복’의 위대한 약속이 주어진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이다.

  자신의 부패성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범죄한 자들에 대해 관용과 자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6:1).

  하나님은 참열매 맺는 가지를 결코 제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열매를 맺는 참된 가지가 비록 여전히 부패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결코 그것들을 제거하거나 자르지 않으신다. 깨끗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결국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제거하신다.

그들은 버림받고 마르고 모아서 불에 던져 사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열매 맺는 자기가 되시라.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꺽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11:20). 그러므로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 일을 하며, 그분을 여러분의 목적으로 삼고서 날마다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분의 열매가 더욱 신령하게 자라야 한다. 외적인 고백을 통해 위를 향해 자라는 만큼 내적인 거룩을 통해 아래로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 토마스 굿윈, 『그리스도인의 성장』, pp 48-74

 

 

출처: 청교도의 길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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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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