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C.H. 매킨토시

 

그리스도인이 죽어서 하늘에 갈 때 죄의 권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죄가 죽은 사람에게 권능이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치 죽어서 하늘에 갈 때처럼 믿는 이가 현세(現世)에서 죄의 권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보지 못합니다. 죄가 실제 죽어서 장사된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의 권능을 말하는 것이지 죄의 존재(presence)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주의하여 주지하십시오.

 

죄의 문제에 관해서 현재의 그리스도인과 장래의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이러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현세(現世)에서 그리스도인은 단지 죄의 권능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장차 그는 죄의 실재(實在)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현재 신분에서는 죄가 그 안에 거주하고 있지만, 그를 군림하지는 못합니다. 머지않아 죄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 안에 거주하지 못할 것입니다. 죄의 군림은 끝났습니다. 은혜의 군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십자가에서 이미 정죄되었습니다. 지금은 은혜가 왕좌에 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얼마나 영광스러운 해방입니까! 얼마나 복된 해방입니까! 부디 성령님의 보배로운 사역으로 말미암아 은혜 안에 들어가서 은혜의 권능으로 살 수 있기를!.

 

로마서 6장을 세심히 살펴보면, 사도는 죄들(sins)의 용서에 관해 말하지 않습니다. 죄들의 용서는 3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복되신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죄들은 용서되었고-지워졌으며-영원히 말소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의 주제는 죄들(sins)의 용서가 아니라, 지배하는 권능이나 원칙으로서의 죄(sin)로부터 완전한 해방입니다.

어떻게 이 엄청난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죽음에 의해서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었습니다. 이 사실이 모든 믿는 이들에게 적용됩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믿는 이들은 하늘의 덮개 아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믿는 이가 성취해야 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모든 참된 믿는 이들에게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믿는 이의 공통된 신분입니다. 복되도다, 거룩한 신분이여! 우리를 위해 이러한 신분을 획득하시고, 우리를 이러한 신분 안으로 인도하신 분께 모든 찬양과 경의를 표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은혜의 영광스러운 군림 아래서 살고 있다-“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1).

 

이 영광스러운 해방의 진리를 주님의 백성들이 거의 알지 못합니다. 비교적 소수만이 죄들의 용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죄의 권능이 실재함을 느끼며,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가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대로 자신들을 인정하려는 대신, 고통스러운 감정을 끊으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회심에 대하여 의심과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대신 자의식으로 사로잡힙니다. 화평과 위로를 얻기 위하여 자신들의 상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비참합니다.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의 영적 상태로도 결코 화평의 기초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상태, 우리의 상황, 우리의 경험, 우리의 어떠함으로부터 화평을 구하려 한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화평을 얻는 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고, 지금 그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았고, 그분 안에서 받아진 바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분의 어떠하심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이것이 화평의 신성한 기초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거룩한 삶의 유일한 신적 비결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죽음에 처하려고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수도사, 금욕주의자, 죄 없는 완전함을 열심히 추구하는 자들은 다양한 육체적 연습으로 죄를 죽음에 처하도록 애쓸지 모릅니다. 그 필연적 결과는 무엇입니까? 비참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열심에 비례한 비참함입니다. 그것은 참된 기독교와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복된 지식으로 출발하여, 이 사실을 믿음으로, 몸이 아닌 몸의 “행실”을 “죽은 것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오늘 우리는 믿음에 의해 이 완전한 해방의 권능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 출처 : http://www.christian.or.kr/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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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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