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서 흐려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존 칼빈)

(롬 1: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자연적 본능

인간의 마음은 가령 자연적 본능에 의한다 할지라도 신성(神性)에 대한 어떤 감각을 소유한다는 것은 논의할 여지조차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전 인류에게 그의 존재에 관한 어떤 이해력을 부여해 주었으므로(롬1:20) 누구든지 무지라는 구실로써 핑계할 수는 없다.
사람은 때때로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이 기억을 새롭게 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 하나님이 자기들의 창조자라는 것을 알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봉사하기... 위한 헌신적 생을 가지지 않을 때는 그들 자신의 증언으로써 저주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가지지 않을 정도로 미개하고 몽매한 민족은 없다고 키케로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시작부터 종교가 완전히 결핍한 나라나 가족은 없었으므로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신성에 대한 감성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Inscribed) 무언중에 나타나는 고백이다.

이와 같이 고찰해 볼 때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종교라는 것이 영리한 도안가들의 고안이라든가 단순한 대중을 그들의 의무에 머물게 하는 정치적 기계라든가 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가르쳐 주면서 자기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이와 같은 가장(假裝)된 해석을 내리는 것은 가장 불합리한 말이다.

술책이 능한 자가 종교에 많은 발명품을 도입하여, 비천한 자를 위압하고 그들의 마음에 대하여 보다 큰 명령권을 얻기 위하여 공포(恐怖)로써 그들을 경책한다는 것을 물론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먼저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견고한 신념을 가지기 전에는 이 목적이 성취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사람은 본질상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본능적 신념(本能的信念)을 가지고 있다. 그 신념은 그들의 구조 자체(構造自體)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견지에서 우리는 말하기를 이것은 학교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각자가 나면서부터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일종의 교리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에게서 이 교리를 없게 하려고 신경 하나 하나를 긴장케 하나, 그들의 본질 자체가 그것을 망각(妄覺)치 않게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짐승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유일의 증거품이며 그들로 하여금 불멸성(不滅性)을 열망케 한다.
 

개혁주의마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