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구원론이 전파되지 않는 개혁교회  

박영돈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서론 

개혁주의 교의학은 구원론에 이르러 그 절정에 도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속성과 경륜과 은혜에 대한 계시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의 사역을 통하여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며, 구원론은 바로 이 계시의 결정체를 다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비밀인 삼위일체의 신비와 그의 성품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났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우리를 향해 무한한 인자하심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교회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의 구원이며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다. 그러므로 구원론은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들을 다룬다. 그만큼 올바른 구원론의 정립은 교회의 사활이 달린 문제이다. 


특별히 개혁교회는 중세 로마교회의 잘못된 구원론을 개혁함에서 출범하였기에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독특성이 구원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성경적으로 개혁된 구원론을 개혁교회임을 증명하는 표징처럼 여겨 왔으며, 바른 교회와 이단을 구분하는 척도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개혁교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개혁주의 구원관과 거리가 먼 메시지가 전파되는 교회는 진정한 개혁교회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 개혁교회임을 표방하면서도 전혀 개혁되지 않은 구원론을 전하는 교회가 부지기수이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무율법주의적 폐단을 불러온 값싼 은혜의 복음, 즉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단적인 가르침이다. 반면에 도덕적인 해이와 방종에 대한 반작용으로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또 다른 극단인 새로운 율법주의로 치우쳐 종교개혁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교회가 참으로 개혁되기 위해서는 구원론의 개혁이 시급하다. 올바른 구원의 진리가 강단에서 선포될 때, 우리 교회는 진정한 개혁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사역 

기독론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객관적으로 이루신 구속 사역을 다룬다면, 구원론은 객관적으로 성취된 예수의 구속사역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전자가 ‘과거’(past)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Christ for us) 행하신 일을 조명한다면, 후자는 ‘현재’(present)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Christ in us) 행하시는 일을 고찰한다. 곧 구원의 객관적인 면(objective)에서 구원의 주관적인 측면(subjective)을 다룸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개혁 교의학에서는 이 전환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런 특징은 칼빈의 구원론에서부터 확실하게 나타난다. 칼빈은 구원론을 다루고 있는 기독교 강요 제 3 권 서두를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속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 혜택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과거 예수께서 이루신 사역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효력이 있게 되는가? 칼빈의 대답은, 우리가 주님과 분리된 채 주님께서 우리 밖에 계시는 한, 주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아무 효력이 없는 것으로 남아있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1)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효력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 신비로운 연합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칼빈 이후 대부분의 개혁 교의학자들은 이런 패턴을 따라 구원론을 전개하였다. 그래서 성령의 사역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론의 특징으로 형성되었다. 


개혁주의 구원론은 이렇게 구원의 적용 과정에 있어서 먼저 성령의 사역을 강조함으로써, 구원이 주관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우선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나 노력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에서 차단하였다. 특별히 구원의 적용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앞세우는 알미니안적 오류를 효과적으로 배격한 것이다. 


인간은 구원이 객관적으로 성취되는데 조금도 기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 구원이 자신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데도 성령의 은혜가 선재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심으로 구원이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하여 이 선물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마저 스스로 할 수 없다. 물론 구원이 우리 안에 주관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할과 책임이 따른다. 죄에서 돌이켜 예수를 믿지 않는 한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마저 인간 안의 생래적인 선함이나 종교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갈 자율성을 상실하였다. 인간이 주님을 믿기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죄의 결박에 매여 있는 그의 의지를 자유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반드시 선재해야 한다. 이렇게 성령 사역의 우선성을 강조함으로써 개혁주의 구원론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적이면서도 선재적인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동시에 은혜의 바탕 위에서 믿음과 회개의 참된 의미와 가능성을 밝혀준다.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근거한다. 지상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사람, 즉 ‘성령의 담지자’로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메시아 사역을 수행하셨다. 구속사역을 완료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시는 ‘성령의 수여자’가 되셨다. 동시에 성령 안에 내재하여 성령과 함께 일하시는 ‘성령의 동반자’가 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과 함께 당신의 지상사역의 열매를 세상에 전달하며 적용하신다.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때에 자신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8-20).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성령을 통하여 세상 속에 내재하고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오심은 어떤 의미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다시 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은 예수님의 또 다른 존재 방식이다.2) 주님은 육적인 존재의 형태를 벗은 후 영적인 존재 방식을 취하셨다. 성령은 예수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전 우주적으로 확장시키며 종말론적으로 연장시킨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종말론적인 비전을 실현해 가신다(엡 1:23).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인격적으로 내재하시고 성령과 함께 그의 지상사역의 열매를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하신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와 ‘성령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와 ‘성령이 우리 안에’라는 표현을 상호 교체적으로 사용하였다. 구원과 성화의 모든 과정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공재와 동역 속에서 진행된다. 그리하여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Christ in us) 계시는 신비가 실현되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Christ for us) 고난 받으심으로 얻게 되는 모든 효력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Christ in us) 계심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중생과 칭의, 그리고 양자됨과 성화와 성령 충만 등 구원의 모든 은혜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Christ in us) 계심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실현된다. 따라서 성령을 통하여 임하시는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이 구속의 은총을 누리는 길이다. 구원의 선물을 받는 것과 그 선물을 주시는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을 분리할 수 없다. 주님을 모시고 그 분과 연합하지 않고는 구원의 은혜를 결코 누릴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그 효력을 믿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패한 인간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과 혜택은 원하지만 주님 자신의 임재는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이 구원의 모든 은택을 누리는 유일한 길이다. 


출처:물과피와성령/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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