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監理敎) 교리와 알미니아니즘(Arminianism)


감리교를 얘기할 때 제 생각은 처음 예수를 믿고 자라난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어머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를 믿기 시작한 때입니다. 해방(1945년)전에 일본 경찰이 우리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을 감옥에 가두고 교회를 박해하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해방 후 몇년동안 보릿고개를 넘는 어려움을 교회의 단임 전도사와 같이 경험한 일도 생각납니다. 우리 어머님이 교회 관리인으로 계셨기 때문에 한동안 저는 주일 아침마다 종을 치는 일을 맡아 했습니다. 언덕 위에 있던 교회가 마을을 다 내려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종소리는 마을 끝까지 울려 퍼졌고, 친구들이 "네 종소리가 '천당', '천당' 하며 울린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살던 충청북도 단양(丹陽)은 물에 잠겨 호수가 되었다고 하니 그 교회가 그곳에 지금까지 서 있을리도 없겠지만, 종소리를 들을 마을 사람들도 없겠지요. 내 신앙이 처음 자라게 한 그 언덕에 있는 조그마한 감리교회는 마치 사랑하는 어머님을 두고 시집간 여식(女息)이 친정생각을 하듯 제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짧은 고등학교 시절을 충주(忠州) 감리교회에서 지내면서 저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떼를 지어 다녀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같이 애를 쓰던 친구는 내내 감리교회에서 지도자로 성장했고, 마침내 감리사 노릇도 오랫동안 했다고 합니다.


우리 내외는 다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감리사(監理師)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감리교회에 정을 부치고 살다 온것이 30년은 되는가 봅니다.


지금은 감리교를 떠나 있으면서 교리를 공부를 해서 무엇하겠는가? 라고 물으실 분이 있을 줄 압니다. 하기야 고인이 되신 어머님께서는 평생에 감리교 교리라든가, 칼빈주의라는 것을 공부한 적이 없으시지만, 그 분이야 말로 말년에 성경만 읽으시며 소일을 하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교리 공부라고 한다면, 학습과 세례를 받기 위하여 교리문답을 공부한 것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같이 부르시든 찬송을 생각하더라도, "아 하아님의 은혜로 이 쓸 때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고 늘 눈물을 흘리시며 부르신 것이 그분의 신앙간증이라고 믿어집니다.


제가 감리교 교리를 공부하는 이유는 시대를 더 잘 알자는 목적이 있으며, 이 시대(기독교)의 흐름은 교단의 교리가 그 주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과 나는 무슨 배를 타고 어떤 조류를 따라 흘러 가는가 하는 얘기입니다. 위급한 생각 때문인 것입니다. 언제라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여건이 되어, 말세에 대한 예언이 다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내 자신을 되돌아 보자는 것입니다. 길이 하나밖에 없으니 내가 그 길을 가고 있는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말한다면 약 3년전에 제가 소개한 적이 있는 거스너(John H. Gerstner)박사의 정의를 참고로 합니다. 그 분은 기독교 교리를 복음주의와 칼빈주의 둘로 나누었습니다. 이 두 주의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칭 기독교인들이나, 군소 사이비(似而非)한 이단 종교는 고려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둘중 한 교리를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의 다른 이름은 세대(世代)주의, 혹은 알미니안주의 등이며, 칼빈주의의 다른 이름은 개혁주의 혹은 은혜주의 등이 있습니다. 교회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교리도 천태만상이니 누구의 교리는 어디에 속해 있다고 지적할 수는 없고, 다만 위에서 말한 두 교리가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교리를 알기 위해서는 교단의 창시자(創始者)로 알려져 있는 역사상 어느 누가와도 비교 할 수 없이 정력에 넘치는 전도자, 요한 웨슬레(John Wesley:1703-1791)의 생애와, 남겨둔 업적을 살펴보게 됩니다. 감리교 운동은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신교 활동이며, 이 활동에는 웨슬레 형제 촬스와, 죤(요한)과, 또 죠지 윗트휠드(George Whitfield)의 업적을 지적합니다. 현재의 감리교 단의 교세는 세계적으로 3,800만 이상이며, 그 중에 가장 큰 교파는 미국의 연합 감리교(The united Methodist Church)로서 약 1,000만의 회원이 있다고 합니다. 1738년 영국 Oxford대학에서 성경연구와, 기도회와 설교강연으로 시작한 조그마한 집단, Moravian형제 교회의 영향을 받고 시작한 것이 감리교의 초대(初代)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의 교리는 39개 조항의 엘리자베스 교리를 알미니안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25개 조항의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감리교의 교리는 거듭난 경험, 구원의 확신, 그리스도인의 성결에 대하여 강조하였으며, 요한 웨슬레는 수없이 많은 전도여행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경건한 생활을 통하여 완전한데에 이른다는 감명 깊은 교리의 설교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약 25만 마일을 말을 타고 전도 여행을 하였으며, 4만번 이상의 설교를 하였고, 88세가 된 179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감리교활동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기록은 요한 웨슬레의 동생 촬스이며, 동역자 였으며, 그는 6000편 이상의 찬송을 작사 작곡하였으며, 지금 그 찬송을 모든 교파의 교인들이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감리교회의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리를 편집하도록 유도한 본래의 교리 엘리자베스 교리 39개 조항과(1571), 이 조항을 만들도록 유도한 알미니안교리(1560-1609)와, 이 알미니안 교리를 대항하여 나오게된 Synod of Dort(1618-1619)를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미니안 교리(1560-1609): 종교개혁이 구라파를 휩쓸고 난 다음, 종교개혁의 근본 교리가 된 Calvin의 교리가 마침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화란(和蘭)에서도 온 교회가 칼빈 개혁주의를 받아 드렸습니다. 개혁교리의 본 고장인 Geneva에 유학을 온 화란인 알미니어스(Arminius)는 Calvin이 죽은 후 후계가된 Beza문하(門下)에서 공부를 하였고, 마침내 1588년에는 화란 Amsterdam교회의 지도자로 선택되었고, 나아가서 Leyden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1603). 칼빈주의자 였던 그는 갑자기 다음과 같은 칼빈 신앙과 반대되는 5개항의 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알미니안 교리의 항의서(Arminian Articles of Remonstrance)


Arminius가 죽은 후 그의 제자 두 사람(Simon Episcopius 와 Jan Uytenbogaert)이 알미니안 교리의 항의서 5개조항을 발간하므로서 알미니안 교리를 분명하게 세상에 선포(1610)했습니다. 그 5개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타락(墮落)한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救)하시기로 정하시고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영접할 때)돌이킬 수 없는 죄와 믿지 않는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것을 미리 알고는 계셨지만,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다는 조건에서 오는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만 인류를 위하여 (선택을 받은 사람뿐만이 아니라)죽으셨고, 다만 믿는 자만이 죄사함을 받게된다.


3. 사람은 자기 자신과 혹은 그의 의지로서 선을 행할 수 없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나고 성령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 (알미니어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Pelagian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음).


4. 모든 선행과 거듭난 사람의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이 거절 할 수 있다.


5. 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성령의 도움으로 그의 믿음을 보전하기 위하여 능력을 주신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서 떠날 수 있다.


이러한 알미니안 5개조항(條項)을 거절한 칼빈주의 자들의 5개 조항을 The National Synod of Dort가 발표하였고(1619),이 5개항이 바로 잘 알려진 TULIP입니다.


1. Total Depravity: 인간의 완전 타락


2. Unconditional Election: 조건이 붙지 않는 선택


3. Limited Attornment: 제한(制限)된 구속(救贖)


4. Irresistible GRACE: 거절할 수 없는 은혜


5. Perseverance of Saint: 상실(喪失)될 수 없는 성도의 구원


감리교의 교리는 TULIP과 정 반대가 되는 알미니안 교리를 웨슬레 자신이 제창(提唱)하여 도입하였고, 39개조항의 엘리자베스 교리에서 선택하고 개정한 다음 25개조항의 감리교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차이점 몇까지를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습니다.


삭제된 조항: 제 17장, 예정하신 구원, 이 장은 우리의 구원이 조건이 붙지 않은 하나님의 예정으로 됨을 가르치며, 한번 받은 구원을 상실 할 수 없다는 교리임.


제 13장: 의롭다하심을 받기 이전의 행함(of Works before Justification), 이 장은 인간의 완전 타락을 가르치는 교리임.


개정한 조항들: 제2장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 에서 "영생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구절이 삭제됨.


제 9장(감리교 교리 7장) 원죄, "인간이 거듭난 후 원죄가 계속 남아 있다"는 구절이 삭제되었고, 이 장은 "거듭난 생활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든다"는 웨슬레의 신앙을 반영하였음.


역사적인 사실: 종교개혁이 시작하면서 백년 이상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교리가 칼빈의 교리로 토대를 삼았고, 화란에서 이에 반대되는 알미니안 교리를 제창한 교역자들이 교직을 잃거나, 국외로 추방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사형까지 당한 바 있어 온 구라파가 극소수의 무리를 제외하고는 다(90%이상?) 칼빈의 교리를 따라 갔다고 하는데, 지금의 기독교는 이 두 교리를 믿는 사람들의 인구 분포가 전도(顚倒) 되었습니다.


화란을 여행한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옛날 화란의 벨직 신앙고백(칼빈교리)의 교회를 찾아 볼 수 없고, 사회는 극도로 문란해 졌다고 합니다. 화란 뿐 아니라 온 구라파의 칼빈교리는 참으로 희귀한 옛날 얘기이며, 참 신앙을 찾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아직도 기독교가 살아 남아 있는 미국을 살펴 볼 때, 지난 300년간에 알미니안의 영향력은 파죽지세이며, 거의 모든 교회와 교파의 교리는 (90%이상?) 알미니안의 영향아래 있습니다.


알미니안 주의 와 칼빈주의의 비교: 오늘은 이 두 교리를 비교하는 것으로 편지를 마감하고 다음 편지에는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바로 알미니안 주의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본주의(神本主義)를 성경 말씀에서 찾아 볼 계획입니다.


알미니안 주의


자유주의: 인간성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크게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영적으로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시며, 인간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으신다. 죄인은 각기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영원한 장래는 어떻게 이것을 사용하는가에 달렸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영적인 일에 선악을 구분할 만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결코 인간 본성에 의하여 좌절되지 않는다. 죄인은 하나님의 영과 연합하여 중생(重生)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 타락한 죄인이 성령의 도움을 필요로 하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하여 거듭나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이란 인간이 새로 중생 하는 첫 과정이다. 믿는다는 것은 죄인이 하나님께 선물을 드리는 것이며, 구원에 이르는 인간의 봉헌(奉獻)이다.


조건이 붙은 선택: 하나님이 어떤 죄인을 선택하실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것을 창세(創世) 전부터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복음을 자유롭게 믿게 될 사람들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그 인간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조건이 붙는다. 하나님께서 개인의 행동을 미리 아신 것에 근거를 두고 선택을 하시지만, 그 선택을 죄인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며(믿음이 성령의 역사로 거듭났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님), 오로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믿고 또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은 완전히 인간에게 달려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 자유의지를 행사해서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것을 미리 알고 그 사람을 선택하신다. 그러므로 죄인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의 결과가 아니고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되는 결과이다.


온 세계적인 속죄: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역사(役事)는 세상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도록 하셨으나, 그 역사가 어떠한 사람의 구원을 보장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위하여 죽었음으로 그를 믿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죄 사하심을 받을 길을 열어 놓으시고, 믿는다는 조건하에 사하심을 받지만, 그 사람의 죄를 완전히 없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받아들임으로 그 효과를 발생한다.


성령의 역사를 거절할 수 있음: 성령께서 복음의 소식을 귀로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열어 또한 복음을 마음으로 듣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이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도록 역사 하신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성령의 부르심을 거절 할 수 있다. 성령께서 죄인이 믿게 되기 이전에는 거듭나게 할 수 없고, 믿음(인간의 공로로 오는)이 새로 거듭남을 만들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간구원의 사역을 성령의 역사로 적용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가 그 제한이 된다. 오로지 하나님의 도를 마음에 믿는 사람들만을 성령께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신다. 죄인이 응답하기 전에는 성령께서 영생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끔 인간은 이 은혜를 거절하고 방해한다.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감: 믿음을 얻고 참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도 그의 신앙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일부분의 신도들은 일단 거듭난 후는 구원을 잃지 않는다고 믿는다.


칼빈주의


인간의 완전타락: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를 능력이 없다.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에서 죄인은 죽어 있고, 눈이 멀었고, 귀가 먹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은 거짓되고 돌이킬 수 없게 타락되어 있다. 인간의 의지는 자유가 없고, 악한 본성에 노예가 된 것이기 때문에 영적인 생활에서 선과 악을 가려 낼 수가 없다. 이러한 상태는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오게 하는 것은 성령의 도움 이상의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 일은 성령께서 죄인을 살아나게 하시고, 새로운 본성(本性)을 넣어 주는 중생(重生)하는 과정이 있은 후에만 되는 것이다. 믿음이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인간이 무엇을 받친 것이 아니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구원이라는 선물의 일부 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 아니다.


조건이 붙지 않는 선택: 하나님의 선택은 창세 전에 특정한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자신의 절대 주권에 의하여 홀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가 특정한 죄인을 선택하시는 것은 믿음이나, 회개와 같은 인간의 행동으로 순종한 결과에서 오는 것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그가 선택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믿음과 또 회개할 마음을 주신다. 죄인이 믿고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심으로 오는 결과이며,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의 훌륭한 인격이나 행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권한에 의하여 선택한 죄인은 그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신 것이지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제한된 속죄: 그리스도의 구속(救贖)하시는 역사는 그가 선택한 사람만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보장하신다. 그의 죽음은 특정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그에게 속한 백성들의 죄를 다 소말 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 즉 그와 연합하게 하는 믿음을 주시여 구원을 보장하신다. 선물로 주시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구속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틀림없는 약속이다.


거절할 수 없는 은혜: 복음을 듣고 모일 때 성령께서 특별히 선택한자의 마음을 감동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 인간이 그 마음에 부르심을 입을 때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다. 그 마음의 부르심은 선택받은 자에게만 있게되며, 틀림없이 거듭나는 과정이 된다. 이러한 특별한 부르심에는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사역(使役)을 거절할 수 없게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역으로 구원을 인간의 의지에다 심어 줄 뿐 아니라, 그의 인간 구원사역이 성공할 것을 인간의 협조에 의존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은혜로 선택된 죄인은 성령의 역사에 협조하게 인도하며, 믿게되고, 회개하고, 자유롭게 기꺼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거절할 수 없고, 실수가 있을 수 없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


잃어버릴 수 없는 성도의 구원: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그리스도의 속죄(贖罪)를 받은 모든자들은 믿음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구원을 영원히 보장하게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능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믿음이 보장된다.

 

 http://www.alittlemaid.org/html/Essays/MethArm1.htm

2008.02.05날 이곳에서 자료를 가져오다!!~~

 

출처: http://cafe.daum.net/jesus330/7OpE/11025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