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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토종들풀 종자은행" 이야기가 실렸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들풀 1백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세웠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장한 뜻을 세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잡초들의 씨앗을 받으려 청춘을 다 바쳤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도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기사의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오호라!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된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이냐.

사람도 한 가지다.
제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게면 잡초가 된다.

그가 17년간 산하를 누비며 들풀의 씨를 받는 동안, 마음 속에 스쳐간 깨달음이 이것 하나 뿐이었으랴만, 이 하나의 깨달음도 내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참으로 달고 고마운 말씀이다.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자리는 제 자리인가? 잡초는 없다. 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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