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본주의적 구원은?

구원론 2015. 7. 20. 02:08

개혁신학이 강조하는 신본주의적 구원은 하나님 중심의 존재로 변화하는 축복의 사건
총체적 복음 관점에서 구원의 축복 바라봐야…‘돌이킴’ 통한 삶의 결단 계속 추구해야



1.개혁신학의 가르침을 따라 신본주의적 구원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 김광열 교수(총신대·조직신학)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끊임없는 도전들 가운데 하나는, 신본주의적 신앙을 버리고 인

본주의적 신앙으로 들어가려는 유혹들에 직면케 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나 구원의 의미를 자기 자신의 어떠한 개인적인 욕구나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인본주의적(man-centered) 접근방식으로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성경적 신앙은 우리를 자기 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향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개혁신학은 바로 그 점을 강조한다. 신앙이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의 원동력으로 삼게하는 신본주의적(God- centered) 접근방식이 개혁신학의 주요 가르침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신본주의적 신앙의 관점을 놓치게 될 때, 구원을 나의 욕구를 채워주는 어떤 축복이라고만 생각하게 되며, 결국 그는 인본주의적인 구원이해에 머물게 된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 아니면 물질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나의 소원을 이뤄주는 어떤 무엇이라고만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주께서 베푸신 구원을 통해서 내 인생에 주어지는 어떤 유익들과 열매들만 관심갖는 -때로는 그 안에 세상적인 욕심들까지도 포함시키면서- ‘인본주의적’ 신자의 삶으로 전락되기 쉽다.

이러한 점에서 개혁신학이 강조하는 신본주의적 구원관은 그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구원이란, -물론 내가 얻는 무엇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신본주의적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나 자신이 변화되는 사건이다. 소위 축복이라는 용어를 굳이 붙힌다면, 그것은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의 존재로 변화되는 축복의 사건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기에 적합한 존재로 변화되는 사건인 것이다.
 
2.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신본주의적 구원이해는 구원의 축복들을 총체적 복음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요점은, 그 구원의 역사 속에서 주어지는 변화가 하나님의 통치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변화라면, 그 변화의 범위는 전포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일차적으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영적 차원의 변화가 그 출발점이지만, 그것은 또한 중생자의 육적, 정신적, 사회적 삶까지도 그 분의 통치 아래 놓이게 함으로 그 모든 삶의 영역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인생의 새로운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서 주어지는 회복의 역사는 온 우주 만물까지도 그 분의 새로운 통치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변화를 경험하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총체적 구원’이라고,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총체적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역사 속에서 주어지는 축복들은 단지 신자의 영적 차원에서의 변화만을 가리키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변화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포괄성을 놓치고, 그 축복들을 영적 차원의 변화로만 축소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럴 경우, 우리는 쉽게 이원론적인 신앙태도로 전락하게 되며, 결국 그 나머지 영역들 속에서는 여전히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세속적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 사건 안에서 주어지는 ‘영적 축복들’을 성경적으로 검토해볼 때, 그것이 좀 더 포괄적인 변화들에로까지 지향하고 있는 사건임을,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총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3.중생의 축복은 신자의 개인적 영적 변화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가리키는 사건이다.

중생이란 불신자가 주께로 나아올 때 경험하는 첫 번째 단계의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에서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만을 가리키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우주적인 변화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사건으로 설명된다.

 

중생은 신약성경에서 크게 두 가지의 이미지로써 표현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의 이미지이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이미지로서 중생의 역사를 제시해주는 말씀으로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과 마태복음 19장 28절을 들 수 있다.

 

전자의 성구에서 중생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진 피조물로서 묘사된다. 중생이란 하나님의 처음 창조와는 구별되는, 마지막 때에 주어진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가리키는 사건인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어진, 그리고 죄의 영향 아래 놓인 온 세상을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재창조의 역사에 동참하는 사건으로서 중생이다.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마태복음 19장 28절도 이해할 수 있다. 사실상 신약성경 안에서 중생이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단어 팔링게네시아(παλινγγενεσια)가 사용된 두 구절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구절인데, 여기에서 중생의 의미는 우주적으로 새롭게하시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역사에 동참하는 사건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만물이 새롭게되어”)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의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신자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경험케 되고, 만물이 새롭게 되는 그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관점들로 바라볼 때, 중생이란 단지 신자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를 넘어 더 포괄적인 문맥에서 이해되어야함을 성경이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신자의 중생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회복의 역사 속에서 주어진 변화의 한 국면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자의 중생사건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해되고 추구되거나 혹은 그러한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좀 더 포괄적인 성격으로 접근돼야 할 사건인 것이다.
 
4. 회심과 성화의 삶 속에서 표현되는 구원의 총체성

 그런데, 성경적 중생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포괄성’은 또한 회심과 성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회심이란, 중생이라는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주어진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반응이므로, 중생에서의 총체적 성격은 회심사건 속에서도, 그리고 성화의 삶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성경이 말하는 그와 같은 총체적 성격을 놓치게 될 때, 회심에 대한 이해가 단지 자신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죄의 용서와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의 차원에서만 머무르게 될 위험성이 높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회심이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변화가 중심적이긴 하지만,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신이 속한 가정과 사회 속에서의 모든 삶의 영역들 속에서의 ‘돌이킴’까지 포함한다.

 

그것은 세속적인 관점들, 즉 세속적 가치관이나 삶의 원리 등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정신, 그리고 삶의 원리들을 받아들이는 삶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참 회개란 소위 ‘영적인’ 영역에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삶의 모든 영역들 속에서 새롭게 변화된 가치관과 삶의 원리를 적용하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회개자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죄로 인해 괴로워하며 슬퍼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며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세워나간다.

 

그러나 또한 진정한 회개자에게는 그가 새로이 들어가게 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또한 그 나라의 통치 원리를 따라, 그 나라의 삶의 가치와 원리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도 구현하고 실천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화의 삶이란 회심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회심에서 결단한 총체적 돌이킴의 삶에로의 결단은 회심자의 전 생애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추구될 것이며, 그것은 곧 “총체적 성화”의 삶으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총체적 회심의 대표적 사례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회심 장면을 통해서 확인된다. 누가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하게 되는 회개의 ‘돌이킴’에는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에서의 ‘돌이킴’ 뿐만 아니라, 이웃들과의 사회-경제적 관계에서의 ‘돌이킴’도 포함되는 것임을 강조한다.(눅 19:8)

 

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만나서 이뤄진 총체적 회심의 결단은 그 이후에 계속되는 신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뿐 만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의 영역들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구현되도록 노력하는 총체적 성화의 삶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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