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때부터 성령 인도함 받는다  

박도� 교수 / 고신대학교

남포교회(박영선 목사) 설립 20주년 기념 학술 축제가 ‘구원 그 이후: 성화의 은혜’라는 주제로 지난 3월 7일 남포교회에서 열렸다. 박영선 목사의 ‘나의 목회에서 구원과 성화’를 비롯해서 Bryan Chapell 카버넌트신학교 총장, 김영재 교수, 김정우 교수, 변종길 교수, 박영실 교수, 이수영 목사, 오덕교 교수, 김병훈 교수, 박영돈 교수 등이 발제자로 참석했다. 이중 박영돈 교수의 ‘오늘의 구원과 성화’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성화의 성령론적 다이내믹

1) ‘제 2의 축복’ 성화론
개신교 안에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는 것을 성령충만과 함께 회심 이후의 획기적인 체험으로 강조하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있다. 이러한 획기적 성화에 대한 견해는 웨슬리의 가르침으로부터 그 일차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웨슬리는 칭의와 회심 후에 성화를 획기적으로 체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를 즉각적, 또는 온전한 성화라고 칭했다.

웨슬리의 뒤를 이어 일어난 성결운동과 ‘더 풍성한 삶 운동’에서도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여 성화를 이차적이고 획기적인 경험으로 보았다. 그들은 대개 죄책과 형벌에서의 구원과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을 구분했다. 신자는 칭의를 통해서 죄 용서함을 받고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지만, 그 후에 획기적인 성화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실제적인 죄의 세력과 오염에서 자유하게 되어 거룩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 사이에는 사람에 따라 길거나 아니면 짧은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한다. 모든 신자는 믿을 때 칭의의 은혜에 참여하나, 성화의 은혜는 대개 나중에 가서야 이차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 성화의 은혜를 받는 순간부터 신자의 삶과 사역은 그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마치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신자의 삶이 실패와 좌절과 신음으로 점철된 곤고한 삶에서 능력과 기쁨과 평강이 충만한 승리의 삶으로 급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의 맥을 이어온 케직 사경회(Keswick movement)에서는 이 획기적인 성화의 은혜 체험을 자주 제 2의 축복이라고 불렀다. 케직 사경회를 인도했던 마이어, 앤드류 머레이, 알 에이 토레이 같은 이들의 사역과 그들이 남긴 대중적인 경건서적을 통하여 이러한 성화론은 지금까지 많은 교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또한 디엘 무디 같은 부흥사, 에이 비 심슨, 이에 제이 고든, 모울 같은 이들도 케직 사경회의 성화론을 전파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2) 성경적 대안
신학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르침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은 거룩한 삶과 능력 있는 사역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오순절 성령충만의 축복이 성화의 원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하여 성화와 오순절에 임한 성령충만 사이에 중요한 관련성이 있다는 점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을 간접적으로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정통신학은 성화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뿐 아니라, 성령충만이 주어진 오순절 사건과도 연결시킴으로써, 성화는 기독론적인 바탕뿐만 아니라 성령론적인 토대 위에 세워져 있으며, 예수의 은혜뿐만 아니라 성령의 다이내믹한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료하게 밝혀주어야 한다.

리차드 개핀(Richard B. Gaffin, Jr)도 정통교회에서는 중생에 있어서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나 그 후 신자의 삶속에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실제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신자의 삶의 출발점에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 이후 성령은 거의 그리스도인의 체험으로부터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런 극단은 개혁주의 전통에서 가장 자주 나타났던 병폐로서 체험의 진공상태를 야기했고, 이는 결국 또 다른 극단, 즉 ‘두 번째 축복’을 주장하는 오류를 불러오게 한 것이다”(Richard B. Gaffin, Jr. “The Holy Spirit”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43:1(fall 1980): 76)

이러한 양극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사역은 신앙생활의 전 과정에 걸쳐 역동적으로 계속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바울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령으로 계속 인도함을 받는 이’, 즉 ‘성령충만한 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롬8:9, 갈5:16, 엡5:18). 에베소서 5:18에서 성령이라는 단어는 성령의 강력한 영향력과 지배 아래 산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성령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삶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갈 5:17), “성령으로 산다”(갈 5:25)는 표현들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말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든 피가 지적했듯이, 성령충만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말들이 의미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더욱 강렬하고 부요한 은유적 표현이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그 충만한 은혜와 능력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처음 믿을 때부터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러한 성화의 기독론적-성화론적인 바탕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죄와 분리된 성결한 삶, 성령으로 충만한 삶은 회심 후 제 2의 축복을 체험할 때까지 유보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처음 믿을 때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밝혀줌으로써 웨슬리-오순절 운동의 가르침에 대한 적절한 성경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신자의 삶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 과정에 걸쳐 계속적으로 성령충만을 누리는 삶으로 봄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것에 대한 일방적인 강조로 인해 새로운 은혜체험에 대한 추구를 위축시키는 전통적인 성화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개혁주의마을/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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