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의 소망이라는 것이 있어?

박영돈 목사 2015. 10. 7. 19:52

내세의 소망이라는 것이 있어?



이 시대에 참 믿음의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믿음보다 소망이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믿는다는 이들은 많으나 진정으로 내세를 소망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러나 참 믿음은 소망하는 믿음이다. 오늘날 소망이 없는 믿음으로만 충만한 이들이 많다. 그런 믿음은 이 땅에서 잘 살고 번영하고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한다. 하나님과 성령을 이 땅의 것에 대한 우리 욕망을 시중드는 시녀로 삼으려고 한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 그리고 그와 맞물린 성령운동은 대부분 믿음으로 충만하나 소망은 텅 비었다. 성령은 종말의 영이기에 성령으로 충만하면 소망으로 충만한 것인데, 이 소망 없이 믿음으로 가득 찬 것은 사실 성령으로 위장한 세상 신과 욕심으로 충만한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교인과 목사들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나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나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부흥을 위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힘써왔다. 경건과 학문을 겸비한 목사가 되기 위한 야심찬 비전 실현을 위해 15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30년 넘게 성령 충만을 간절히 추구하며 탐구해왔다. 그러나 나를 사로잡았던 소망은 상당부분 자기중심적이고 현세지향적인 것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피를 말리는 것 같이 힘든 학위과정을 거쳐 여러 개의 석사와 박사의 간판을 딴 것이 과연 누구의 이름을 위해 한 것이며, 누구를 위해 종을 친 것인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내가 가졌던 비전과 소망 역시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묘히 위장된 현세지향적인 소망, 즉 목사와 교수로서의 성공과 영광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다.


이제 그런 비전과 소망이 이루어질 가망이 없어지니 내세의 소망을 거들먹거리게 된다. 요즘은 나를 사로잡아 몰아가는 야망이 별로 없다. 솔직히 빨리 사역을 접고 조용히 쉬고 싶다. 나이 들수록 삶과 사역이 고단함을 느낀다. 이 땅의 것에 별 애착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이루지 못한 세상의 욕망과 소망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면서 내세에나 소망을 가져본다고 자위한다. 이것 역시 성령이 주시는 건강한 소망 같지는 않다. 일종의 현실도피적인 소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칼뱅의 말에서 위로를 얻어 본다. 칼뱅은 우리가 이 세상을 지긋지긋하게 사랑하기에 이 땅에서 우리가 행복하고 평안하면 결코 내세를 묵상하고 소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 신자의 삶을 힘들고 비참하게까지 하여 우리 마음을 이 땅에서 천상으로 돌리게 하신다고 한다. 칼뱅의 말이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솔직한 진단이다. 이 땅에서 평안하고 번성하여도 내세의 소망으로 가득한 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증거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사실 그렇지 못하다. 앞길이 창창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젊은이들, 아직 세상에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많은 교인들은 세상에 대한 소망은 가득하나 내세에 대한 소망은 별로 없다. 역으로 이 땅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잘 풀리지 않고, 삶을 지탱하기도 버거우며 오랜 병과 고난과 역경으로 신음하는 교인들은 다시는 고난과 슬픔과 눈물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만큼 더 소망하는 것 같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박영돈 목사>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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