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의 연합(존 플라벨의 은혜의 방식)
자료실 2015. 10. 9. 05:452장 그리스도와의 연합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은...” 요17:23
칼빈은 기독교 강요 3권 1장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떤 은덕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아는 지식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것을 실제로 얻게 하는 성령의 적용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질문 31, 32번은 유효한 부르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하여 칭의, 양자, 성화의 은덕들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가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있어서 핵심이며, 신분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이 실제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영적 원천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칭의가 있으면 반드시 성화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의 은덕으로 인하여 점진적 성화가 계속되는 것을 설명하는 가르침이다.
이 교리는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교리 중 하나이다. 그것은 가장 심오하며 가장 자극적이며 가장 위로가 되는 교리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함의 교리만큼 일단 바르게 이해했을 때 더 큰 확신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교리는 없다. 우리가 이 교리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다면 구원의 관한 전체적인 교리에 있어서 아주 핵심적인 부분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성경에 이런 교리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Ⅰ 연합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은택을 전달하시는 것이다. 그 일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령의 역사하심 중 가장 주도적인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본문은 세 가지 형태의 연합을 말하고 있다. 성부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와 신자 간의 연합, 그리고 신자들 간의 연합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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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께서 내 안에’
성부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다른 두 연합의 기초가 되는 영광스러운 연합이다. 성부와 성자의 성품과 속성이 동일하다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성부의 인격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고 계신다(히 1:8). 성부께서는 신인(神人, God-Man)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신성의 충만함을 전달하시고 공급하시는 것이다(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2 ‘내가 저희 안에’
그리스도와 성도들 간의 신비로운 연합을 말해주고 있다. 성부와 성자 간의 연합이 본질적 연합인 것에 반해 그리스도와 성도 간에 연합은 신비로운 연합이다. 신성의 직접적인 교통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계시는 성부와 성자간의 연합과는 달리,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은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말미암는다.
3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신자들 간의 연합을 의미한다. 이 연합은 어떻게 가능하는가? 성령님의 내주(內住)하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 머리되신 주님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지체들인 신자들 간의 사랑스러운 연합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Ⅱ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의 연합
1 연합의 은유적 표현들
여러 나무 조각들을 아교로 접착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일, 가지를 접붙임으로 한 나무가 되게 하는 일, 혼인의 언약을 통해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일, 머리와 지체가 한 영혼에 의해서 생기(生氣)를 갖게 됨으로 하나의 몸이 되는 일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연합의 신비를 완전하게 설명해 주는 예는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단순히 두 사물을 붙여 놓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들은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연합은 신비한 연합을 묘사하는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생명을 나누는 연합이요, 영혼의 연합을 의미한다(고전 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로마서6:5에는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연합을 가지의 접붙임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지를 접붙이는 것은 접가지와 원나무 둥치 사이의 생명을 결합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같은 수액과 진액을 공유하는 하나의 생명을 결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예만으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이 누리는 탁월한 은혜를 깊이 있게 설명할 수는 없다.
혼인 서약을 통해 남편과 아내가 부부의 연합을 이루는 예 또한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물론 부부의 연합은 부모를 떠난 남자와 여자가 지극한 친밀함으로 한 몸을 이루는 연합니다. 하지만 이 연합에는 한계가 있다. 죽음이 결국 그들의 연합을 깨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친밀했던 관계나 교통은 중단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그렇지 않다. 죽음마저도 깰 수 없는 영원한 연합이기 때문이다.
2 사귐
사도는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는 말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하고 있다(요일 1:13). 사귐이란 단순한 만남의 차원을 넘어 공통적으로 가지는 관심에 참여하고 교통하는 것을 말한다. 히브리서 3:14에서 “우리가...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함과 같이 말이다. 시편 45:7에는 ‘동료’(메카베레카)라는 표현으로 성도를 그리스도의 동료들, 그리스도와 함께 한 동료들로 묘사하고 있다.
3 사귐의 전제조건
하지만 그리스도와 성도들 간에 사귐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전제로 한다. 접붙임이 있어야만 접붙임을 받은 가지와 원나무가 서로 같은 생명 가운데 교통할 수 있는 것이다. 연합이 없다면 교통이나 교제는 있을 수 없다.
(고전 3:22-23)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이 점은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됨으로 말미암아 신자가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의 방식으로 우리의 의가 된다는 사실은 로마서 4:23, 24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없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고전 1;30이 이 점을 분명하게 역설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교황주의자들의 반론 : ‘어찌 다른 사람의 의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돈으로 내가 부자가 되며, 다른 사람의 명예로 내가 존경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른 자가 나의 남편이 되어 나의 보증이 되어 준다면 가능한 일이다. 베드로와 바울이 자기들의 의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 모두 자기들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법은 채무자와 보증자를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사도 바울은 골1:24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부족하거나 불완전하다는 말인가? 물론 그리스도께서 지셨던 고난의 공로는 완전한 것이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그 분은 자신의 인격 안에서 ‘중보자’로서의 임무를 완전하게 감당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더 이상 고난을 받을 필요가 없으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고난을 받고 계신다. 당신의 교회와 그 지체들이 고난받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고난은 십자가에서 당하신 것과 동등하지 않다. 또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난의 목적과도 다르다. 이 고난은 지체들로 인한 고난이다. 지체들인 신자의 고난을 당신 자신의 고난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지체들의 고난과 핍박을 가하는 사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이 전제되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고난을 똑같이 느끼실 수 없을 것이다.
5 성도의 부활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 신비로운 연합은 마지막 날에 일으키심을 받는 성도들로부터 확실히 입증될 것이다. 성도의 부활은 심판하시기 위해 불신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택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택이 신자들의 죽음 몸을 소생시킨다. 신자의 영혼뿐만 아니라 몸 역시도 그리스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Ⅲ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의 성격
1 실제적 연합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은 가발한 착상이나 관념 따위로 만들어낸 상상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상상하든지 간에 신자들은 그것이 실제적인 사실임을 알고 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2 유기적 연합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격(位格)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사람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로 변해 간다는 식의 본질적 연합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속성과 탁월함에 있어서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차이가 무한하다는 것을 간과한 무지에서 오는 미혹이다. 물론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의 인격으로 만들지도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의 본체(本體)가 되게 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인격을 그리스도에 인격에 가장 친밀하고 가깝게 결합시키는 연합은 정말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은 거대한 신비이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머리가 되시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육체의 각 지체와 같은 유기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연합
신비로운 연합은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산출된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1:30).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그 생명과 연합을 이루게 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행하실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믿음의 끈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욱 단단히 매여야 하지만 이 역사도 사실상 우리의 자의적 행사로 볼 수 없다. 엡 2:8은 이점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을 가져야 할 주체는 우리지만, 믿음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4 즉각적인 연합
‘즉각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적용되는 범위와 속도에 관한 문제를 말한다. 육체의 여러 지체가 저마다 다른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의 지체들은 그리스도와 모두 다 같은 가까움의 정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 1:2).
고린도 교회 내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에게만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도는 이런 잘못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저희와 우리의 구주이시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혼은 그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누구나가 동일한 친밀함을 가진다.
5 근본적인 연합
‘근본적’이라 함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지속적인 유지를 말한다. 우리가 생명의 진액이 있는 그리스도의 뿌리에 접붙여져 있는 한, 가지인 우리는 결코 말라 죽지 않을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이 연합은 그리스도의 특권과 위로를 근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전제가 된다.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고전3:23). 또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모든 소망도 이 연합에 근거해야 한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전1:27).
만약 이 신비로운 연합이 파괴된다면, 우리가 누리던 모든 소망의 열매와 특권들은 일거에 소멸되고 말 것이다.
6 불가분해적 연합
어떠한 장애물도 그 ‘신비로운 연합’을 해치지 못한다. 그것은 죽음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위격적 결합’을 깨트리지 못한 것과 같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그리스도의 영혼과 육체 사이의 ‘본성적 연합’을 일시적으로 와해시킨 사건이었지만, 그 경우에도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은 조금도 와해되지 않았다. 우리와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연합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모든 연합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붕괴된다고 해도,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흙으로 돌아간지 오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칭하였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신비로운 연합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 그 은혜를 입은 모든 성도들은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결코 분리되지 않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너희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라”(골 3:3).
신자들은 때때로 강하고 격렬한 시련의 때를 맞이하곤 한다. 그럴 경우 영적 생명은 아주 낮은 수준의 상태까지 밀려나기도 한다. 은혜에 대한 지각의 정도가 약화되어 피조물을 복되게 하는 영적인 기쁨과 영적인 위로들이 동이 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불멸(不滅)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곤고한 영혼들에게 분명 적지 않은 위로를 줄 것이다. 죽음이 영혼과 몸을 묶고 있던 ‘은줄’을 풀어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묶어주는 ‘황금 사슬’은 결코 끊어내지 못한다.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전 12:6).
Ⅳ 연합의 영광과 목적과 상속
1 연합의 영광
콘스탄틴(Constantine)은 로마제국의 수장이 되는 것보다 교회의 한 지체가 되는 것을 더 영화롭게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일의 존귀함이 지상의 모든 존영과 영예를 능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신격의 두 번째 위격(位格)을 가지신 분과 우리가 연합을 이룬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부리시는 종의 신분도 과한 우리가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되었다. 무엇으로 이 놀라운 영광을 대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니라”(엡 5:30).
이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까!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에게 견실한 위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시고, 나는 주님의 소유가 되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인데 그리스도께서 어찌 사랑하는 당신 자신의 백성을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이 나의 머리가 되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지체의 안전과 안녕을 도모하실 것이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23).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고통과 궁핍과 곤고함이 우리에게 닥친다 해도 우리는 위로를 받고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될 것이다.
2 연합의 목적
연합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은 연합이 가지는 가장 직접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임 당하기 전에 무슨 열매를 맺었는가? 우리가 맺었던 열매 중에 하나님께 열납될 만한 것이 있었는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떠한 선한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접붙임을 받은 모든 가지들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뿌리가 되신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3 연합으로 말미암은 상속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즉시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모든 부요에 참여하게 된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다 너희 것이요”(고전 3:22).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모든 것이 다 우리 것이 된다. 그리스도의 아버지(요 20:17), 그리스도의 약속(고후 1:20), 그리스도의 승리(롬 8:28), 그리스도의 영광(요 17:24),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Ⅴ 연합한 자의 삶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강력하고도 친밀한 연합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빈곤하고 궁핍한 처지에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채워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궁핍한 자들을 바라보시며 함께 곤궁함을 느끼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채워드려야 할 만큼 궁핍하거나 부족한 분이 아니다. 그분은 모든 영광스러운 부요의 원천에 계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부족을 느끼고 계신다. 당신의 몸 된 교회가 주림과 갈증과 추위로 고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단 몇 푼이 모자라 느끼는 궁핍함을 그 지체들과 더불어 느끼고 계시는 더불어 느끼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당신이 느끼는 궁핍함을 채워주는 방편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와 모든 교회의 지체들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빈곤한 지체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주리시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형제들에게 하는 모든 것을 당신 자에게 한 것으로 여기시는 분이시다(마25:35-40).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의인처럼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연합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늘과 땅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형제에게 베푸는 빵 한 조각으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우리의 순종과 사랑과 진실함을 증명하는 시금석으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모든 신자가 한 몸이라는 신비를 이해하였다면,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상처를 내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어리석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독수리와 나무’라는 동화에서 자신의 깃털을 날개를 단 화살에 상처를 입은 독수리와, 자신의 가지로 만든 도끼에 쪼개진 나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손에 상처를 입는 일이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25:35에서 “내가 주렸고 목마르고 헐벗었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환난을 당하는 여러분과 같은 아픔을 겪으신다. 친밀한 연합이 아니라면 그러한 예민한 동정심은 나올 수 없다. 신자들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그들의 고통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긴밀히 연합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거룩을 자신의 영혼에 전달 받은 자들이다. 우리의 삶속에서 ‘죄 죽이기’를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본받는 자들임을 증명해야 한다. 마음을 지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굳건히 하십시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 4:3-4).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분이 가지신 모든 부요함과 은택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우리의 소유가 되셨습니다. 여러분의 작고 연약한 팔이 그토록 영화로우신 분을 영접하게 되다니요! 이보다 놀랍고 위대한 일이 또 있습니까?
청교도아카데미 PBA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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