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갈라지는 가인族과 아벨族

자료실 2015. 10. 12. 21:08

둘로 갈라지는 가인族과 아벨族   창4:1-7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온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말씀 받기 전에 먼저 ‘같이 은혜 받읍시다.’ 옆 사람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4장은 똑 같은 한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출생했으나 하나는 의인이 되어 하늘에 영원히 빛나는 스타가 되는 인물이 되었고, 하나는 무서운 심판을 받고 멸망 받을 대표자 모델로 갈라진 것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대한 이유가 무엇 인가? 를 살펴보면서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다 아벨에 속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계획하셨던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왜 창조하셨다고 했지요? 이제는 대답이 술~ 술~ 나와야 될 때가 되었는데 창세기 1장 26절, 27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하려고요? 다스리도록.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 창조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억만 하실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믿으시고 나 같은 못된 자, 못난 자에게 그렇게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창조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창세기 2장 3장에서는 아담을 돕기 위해 지은 배필인 여자 하와가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치 않고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제 마음대로 믿다가 망한 이야기가 나오고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들을 버려두지 않고 옛날 에덴동산 축복의 자리로 회복될 수 있는 길과 방법을 알려주신 것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3장 15절 말씀을 한 번 볼까요. 주보에다도 써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여자를 유혹한 뱀 마귀에게 하신 말씀인데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란 말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단마귀를 제압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란 약속인 것입니다.
3장 21절도 읽어봅시다.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이 말은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를 입어서는 죄악의 수치를 가릴 수 없기에 짐승의 가죽, 곧 양을 죽이고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어야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차 어린양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이 범죄한 인생들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임을 예표적으로 알려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그 한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똑같이 듣고 아버지가 하는 것을 똑 같이 보았어도 가인이란 자식과 아벨이란 자식이 갈라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은 악한 자 마귀에 속하여 세상 것만을 추구하다가 멸망의 길로 가는 자들의 시조가 되었고, 아벨은 하나님을 경외하다가 순교하여 의인의 반열에 들어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쓸 위대한 신앙인의 시조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 이 둘을 이렇게 갈라놨을까요? 신체적인 차이 때문일까요? 한 부모에게서 나왔잖아요? 학벌이나 직업일까요? 얼마나 가졌느냐 일까요.  최초에 태어난 사람들이기에 그런 차별이 전혀 없던 시대였습니다.  그럼 무엇이 이 둘을 갈라지게 했을까요?

첫째는 누구에게 속한 자인가 가 둘로 나뉘게 하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누구에 속했느냐?
성경은 하나님에게 속했느냐? 악한 마귀에게 속했는가? 가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나눈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 3장 12절 신약성경 390페이지를 찾아봅시다.  요한일서 3장 12절 찾았으면 읽어봅시다.

[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누구에게 속했다고요? 악한 자.  
3장 10절을 읽읍시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창세기 4장으로 돌아갑시다. 6절부터 읽읍시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은 선을 행하지 않고 죄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경고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동생 아벨을 죽여 버리고 최초의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악한 자에게 속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악한 자에게 속하면 그 누구든 영원히 저주받을 길로 가는 것임을 분명하게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 곧 예배를 인해 갈라지는 것입니다. (뭐로 인해 갈라진다고요?) 예배로 인해 .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누구에게 어떻게 드리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신약시대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구약에서는 제사란 형식으로 드려졌습니다.  신구약 차이는 있지만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대 과거 우리 조상들은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어요? 조상에게, 용왕에게 산신령, 땅의 지신에게 드렸습니다.  지금 미국 같은 나라에는 사단에게 경배하는 사단교가 있어요.  성부, 성자, 성령 삼위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은 다 귀신들에게 한다고 성경 고린도 전서 10장 20절에 말하고 있어요.    

자신을 창조해주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거짓 것이라 우상에게 예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멸망의 길로 갑니다. 다 지옥에 가 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께만 예배하여야 될 터인데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겸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앞에서 말한 고린도 전서 10장 20절을 펴보세요. 신약 275페이지.  시작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누구에게 하는 것이라고요)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너희가 주의 잔과 누구의 잔을?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을 겸하여 참예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안 된다는 말은 그래서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탈락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 신을 겸하여 섬기다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10장 11절에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면서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추구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세상 것들을 추구하는 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야고보 선생님께서는 야고보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우상은 세상이요, 황금만능이 우상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면 높여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실 터인데도 믿지 않고 부귀 권세만을 찾다가는 망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누구만 따르고 경배해야 합니까?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됩니다.  
♪ 주 우리 하나님 하늘에 계시니  온 천하 만민 주 앞에 찬송하네.    이 천지 만물도 주 앞에 엎드려 그 거룩하신 이름을 늘 높이네

여러분, 예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성경을 보면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근거로 여러 가지 추정들을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타당성이 있는 주장은 아벨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양의 첫 새끼를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가인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입장을 지지합니다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예배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뭐라고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예배를 드려야. 그렇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실 마음과 진정 성을 가지고 드려야 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구약시대 제사는 여러 가지 절기와 형편에 따라 다르게 드려야 한다고 레위기란 성경에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딱 한 구절로 아주 간단명료하게 알려주신 것을 요한복음 4장24절에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같이 한 번 해볼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시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기에 예배하는 자는 자신의 중심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이신 진리와 부합되는 예배를 드려야 받지, 그렇지 않고 외식적이고 말씀을 떠나 무모한 열정만을 가지고 예배한다고 받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합당한 예물과 정성을 가지고 드려야지 어쩔 수 없이, 혹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혹은 자기만족을 위하여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열납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창세기 4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4-5절 시작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은 아벨의 마음과 예물을 받으셨다는 것이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것은 가인이 드린 제물이 나빠서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인이 악한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드렸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예배할 때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심을 다해 예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해도 하나님께 속한 자냐? 세상에 악한 자에게 속한 자냐? 따라서 두 길로 나뉘고,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올 때 미련한 처녀까지 데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슬기롭고 정결한 처녀신부후보생 알곡 성도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들은 악한 자에게 속한 가인 群에 속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벨 群에 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자신이나 혹은 가족이 가인 군에 속했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잘못된 것을 알고 가인과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해야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볼 말씀은  동생을 죽여 놓고서도 뻔뻔한 가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봅시다. 13절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 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이렇게 오래 참으시며 표까지를 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거절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창조하셨는가? 불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어떻게 해야 에덴동산의 축복을 회복할 수 있는가? 4장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배하는 삶을 산 아벨이란 계열이 있고, 악한 자에게 속해 제 맘대로 제사를 드리고 시기심으로 동생까지를 죽이는 가인이란 계열로 나눠진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정하신 끝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벨처럼 믿다가 주님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마음과 양의 첫 새끼를 드리는 정신을 가지고 예물을 드리며 예배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리해야 될 줄 믿습니다.

충처: USA 아멘넷 게시판/김정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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