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구원의 확신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과연 어떤 태도가 구원받은 자로서의 태도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가 구원에 대해 한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받음에는 반드시 구원받는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믿음이 구원에 절대 조건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것과 구원 받은 것에 대한 확신은 다를 수 있습니다.”(마틴 로이드존스. 로마서강해 5. 335). 그러면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전적으로 죄인임을 깨달으면 또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자랑하여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또한 다만 우리를 위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순종하심을 이루신 역사와 십자가 나무 위에서 달려 우리의 죄를 위해 수동적인 순종 자세로 징벌을 당하신 역사만을 의지한다면 비록 구원의 확신이 없더라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ibid., 438).

 

자 어떤가요? 그러면 웨스트민스터 제 18장의 제 1은 이렇게 말합니다.
“위선자나 그 밖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며 구원받는다는 거짓된 소망과 속물적인 뻔뻔스런 확신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기만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사람의 확신과 구원은 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구원받았다고 믿었는데 성경은 그 확신이 과연 바른 확신이냐? 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즉 구원에 대한 확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바른 믿음에 근거한 확신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 14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욥 8:13-14 / 13) 이 말씀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구원에 대한 바른 확신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도 구원받았다고 얼마든지 주장하기도 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은 거미줄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미 3:11). 거짓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말씀을 왜곡하여 거짓을 말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거짓에 기뻐하며 그들에게 삯을 지불하였고,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니 구원을 확신하는 자들은 정말 자신의 구원이 믿음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짓 위안에서 나온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8:41). 이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들을 향해 책망하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것이 거짓 구원을 확신한 자들이 행한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해야 구원 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주 예수를 참으로 믿고, 성실하게 그를 사랑하며, 그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으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자기가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 2:3).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14, 18, 19, 21, 24 14).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 소망 때문에 부끄러워할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믿는 자에게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2, 5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이러한 확실성은 허황된 소망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 6:11, 17-19)

 

이러한 약속에 따르는 은혜의 내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4)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거해 주시는 양자의 영, 곧 성령의 증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5-16)

 

성령께서 우리의 기업인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을 보증해주십니다. 우리는 속량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 1:21-22)


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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