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짐보님의 방 2016. 4. 1. 00:08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바울은 짧은 3주간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여 설립된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감을 감사하면서 다시 방문하기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더 닮아가는 온전한 믿음으로
더 성장하길 바라며 데살로니가를 썼고
데살로니가 전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Paul, and Silvanus, and Timotheus,
un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which is in God the Father and
in the Lord Jesus Christ: Grace be un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1:1]

바울과 그의 동역자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였던 것은 ‘은혜’ 와 ‘평강’ 이었고
바울이 모든 교회에 보낸 편지는 ‘은혜’ 와 ‘평강’이라는 동일한 문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은혜(Grace) 와 평강(peace)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un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which is in God the Father and
in the Lord Jesus Christ:)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시는,
그 때문에 ‘은혜’ 와 ‘평강’ 이 있다.
이는 은혜와 평강으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시인하고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한 은혜와 평강의 삶,
그래서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고
이제는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과 같이, 같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이 은혜와 평강임을 시인하며 강조하고 있다.
다시 상기하면
한글성경을 KJV는 더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다시 1절을 보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하며
은혜와 평강을 기원 한다 는 구절이
‘God the Father and in the Lord Jesus Christ ==>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으로 발전해 있다.
하나님 아버지, God the Father
하나님 우리 아버지, God our Father 로 발전했고
하나님 아버지 ==>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은혜와 평강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고백하고 시인하는 개인의 삶이 성장된 믿음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 로,
여기의 '나‘에서 ‘우리’로 변하고 성장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름이
‘교회, 라는 구원을 받은 믿음의 공동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은혜로 이루어졌고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평강으로 이루어 졌다는
그러기에 이를 수없이 되풀이 하여 편지에 쓰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쓰는,
그들의 고백과 삶으로의 시인은,
먼저 그들의 신앙 고백 후에,
먼저 그들의 가슴 한 복판
마음의 중심에
끝임 없이 피를 공급하는 심장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흔적을 남긴 후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성령님의 증거로 흔적으로
성령의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 임하여
그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공의)가 나타나서
이를 전해 받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은혜와 평강이 되었고
자랑거리로 소문이 났음은 변화하였음은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였기 때문이지만
그들의 지역에 만들어진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의 길에서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기를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은혜와 평강이 떠나지 않기를 기원했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나 받는 자들이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가 되는 한 가족이 되었으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었으며
이를 믿음으로 증명하시고 보증하시고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한 몸을 이루었기에
은혜와 평강으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 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러나 이는 부르심에 합당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라는 부르심의 단서(但書)이며 조건이라,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하나님의 부르심에,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자들
to them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그런 자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의미이지,
무조건 적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는
만사형통(萬事亨通)의 엉터리 설교와 주장도 아니고
간증도 아니며 기복적인 고백을 요구하는 자화자찬(自畵自讚)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니다.
이는 신앙생활에 하나님의 의(공의)를 구현하는 생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은혜로
복음을 받은 자로, 은혜로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성령님의 평강을 받은 자로
평강을 누리는 자의 신앙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아들
곧 주 예수 우리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하여,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29]
그리하여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의 의(공의)를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이 자리에서,
부르시고 또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시고, 더하여 지도자가 되기를 부르시고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리라  :30]
공의의 하나님의 아들로 의롭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의롭게 이 땅에 살다가
영화로운 영광에 참여하는 그래서 영화롭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고 누구에게나 정직하고 정의로우며 공평히 대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활, 그러다 지치고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평강을
잃어버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를 부르신 그리스도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니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리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26-27]

교회는
은혜와 평강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은혜와 평강을 고백하는 자 들의 모임이 예배이다.
그래서 은혜로 평강을
이를 이사야는 그리스도 우리 주를 평강의 왕이라 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주 이신가?
그분은 당신의 평강의 왕이신가?
진실로 그런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떠난 자
이유야 어찌되었든 은혜와 평강의 부르심에서 멀어진 자
사이비가 된 자, 신앙이 위안뿐인 종교가 된 자, 밥벌이가 된 자
밥벌이로 노력도 하지 않는 삯꾼이 된 자
무늬만 교인이고 무늬만 지도자인 자들
그리스도의 복음의 길을 떠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하고
알아도 온전히 알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끄럽게 하고
세상의 안목의 정욕에 매여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 이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멸망은 마침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립보서 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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