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짐보님의 방 2016. 4. 4. 23:3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시 공부하면서 생각도 많아
끝없이 늘어나는 영혼의 울림을 글로 써야 할 과제가 많아
때로는 누가 내 생각을 정리해주었으면 하는 심정도 됨은
일을 하면서 써야 하기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아
왜 이런 일을 시작하였는지 작은 후회감도 들고
무엇보다 자신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고 있냐는 물음,
이것이 제일 감당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자신을 성경의 거울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임을 시인하며 자신에게 자문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는
시간이라 우선 자신에게 유익하여 계속 쓰고 있지만,
생각을 신앙의 내면의 사상을 글로 표출하기란, 더욱이 분명한 신앙의 글로
명백히 표현하고 쓰기란, 때로는 표현의 한계로 잠시 중단하기도 하고
가능한 신학적인 용어를 피하고, 단순한 낱말의 수효의 한계로 인한 전달의 한계
그리고 빈약한 성경의 풀이로, 누군가 내 선생이 되었으면
이 글을 쓰면서도 바울과 같은 선생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바울의 반만이라도 닮은 선생이 있다면
내 스승으로 모시고 즐거워하겠다.
현실은 스승을 찾기가 힘들다.
한 때 스승으로 존경하였던 분들이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들었던 분들도 있다.
돌아보면 그런 분들의 어그러진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을,
또 내게 실망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겠나.
현실은, 믿음의 현실인 신앙은
허공을 치는 사상이 아니며 헛것을 잡으려는 공허가 아니기에
구체적인 현실의 현상과 문제를 나름 성경으로 바라본 자신의 고백을
하면서 누군가 나를 넘어선 믿음의 사람이 나를 밟고 넘어서더라도
더 온전한 성경을 풀이한, 이 시대를 향한 외침의 글을 보고 싶다.
그래서 이글은 나의 고백이지 이 글이 완벽한 글이 아니며
신앙인의 길을 제시하는 것뿐이라 진정한 신앙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읽혀서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로 만족하기에
이 글이 누구를 빗대어 비난하고 비판하는 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앙 이야기 일 뿐이고
오늘날 복음의 적용과 어르러진 복음의 길에서
이를 알지 못하는, 잘못됨을 알면서도 자기 의로 변절된 복음의 의(義)로
배교의 길로 들어섰고
이를 정확히 알리는 자가 드물 으니
나름 성경을 읽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오늘날의 현실의 현상을 바라보며
복음의 길, 복음을 받은 자의 길을 제시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데살로니가 교회와 바울과 동역 자들의 영혼의 심정을 그려보면서
바울이 진실한 권면이 오늘날 진리가 되어 올바른 복음이 전해지고,
바울 같은 지도자가
그리운 시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권면은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For our exhortation was not of deceit,
nor of uncleanness, nor in guile:
But as we were allowed of God to be put in trust with the gospel,
even so we speak; not as pleasing men,
but God, which trieth our hearts
데살로니가 전서 2:3-4]
바울은 얼마나 순수하고 순전한 마음이 되었는지
간사함이나 부정이나 속임수로 권면하지 아니하고
사사로운 이익이나 자신의 명성으로 세상의 사리의 변명으로
권면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라
바울의 마음을 감찰 하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마음의 중심에 계셔서 마음을 음직이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감찰로서
하나님께 옳게 여김을 받아
복음을 받은 자로, 하나님의 복음을 알리기에 허락받은 자로
복음을 위탁받은 자로,
사람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기 위하여(성령으로)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 인 교회에 이해할 수 있도록 권하고(성령으로)
격려하며(성령으로)
힘을 얻고(성령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인 복음의 능력으로 수고와 애를 쓰고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사례비를 생활비를 받지 않고
밤낮으로 일하며
복음을 위탁받은 자로
복음을 전하였기에 이는 성령의 인도함으로 온전한 복음을 전하였기에
바울의 복음은 ‘권능’ 으로 되었다.
이 권능이 짧은 3주의 방문 기간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다.
이 권능은, 복음의 능력이라
복음의 진리와 복음을 전하는 은사와 같이 함께 하기에
이는 성령님의 임재로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Who hath also sealed us,
and given the earnest of the Spirit in our hearts. 고린도 후서 1:22]
인치시고, sealed us
인치시고, 무엇으로?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으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한 ‘charity’ 의 순결한 사랑으로, 인침을 받고,
보증으로, 증거로,
우리의 마음에
진심의 성령을 주셨으며
진실의 성령을 주셨으며
정직의 성령을 주셨으며
우리의 영혼에 진리의 성령을 주셨음은
하나님의 임재( God's presence)로 성령의 임재를 의미하기에
성령의 내주(來住)없는,
진리의 앎이나 깨달음, 은사는 모두 거짓이고
성령 충만, 성령의 열매는 거짓이기에
그리스도 사랑의 흔적,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모든 은사와 은사라는 방언을 다 가짜이다.
그 흔적이 성령의 인치심이기에, 성령은 진리의 영 이시기에
성령님이 임하시고 그리고 권능을 받고, 그래서 권능을 받으면
모든 거짓 은사와 은사 자, 거짓과 거짓 선생을 분별하고
분별력이 생기여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현상이, 능력이,
권능이다.
그래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권능을 받고
데살로니가로 가서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가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이심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하며
아울러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돌아가심과 부활을,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한 ‘charity’ 의 순결한 사랑의 증인이 되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권능으로.
다시 위의 구절을 보자.
-권능의 인정과 허락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But as we were allowed of God tod be put in trust with the gospel,
-권능의 감사와 능력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함이라
not as pleasing men, but God, which trieth our hearts,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라,
신학의 학식과 자기 자랑의 사사로운 이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기와 명성으로 사람의 박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높은 강대상만큼 높아짐이 아니라
화려한 강대상만큼 화려한 말의 현혹(眩惑)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 참 기쁨이 되고
하나님을 높이려 함이, 바울과 동역 자들의 마음의 중심(our hearts)에
우러나는 기쁨이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바울과 동역 자들이 전한 복음은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even so we speak,
위탁받은, 그 말을 함으로, speak, 어떻게 our hearts 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은 심장으로, 가슴에 박힌 복음을.
요즘 같이 사이비들의
위탁받은 위탁자가 아니라, 대언 자가 아니라, 대리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한 ‘charity’ 의 사랑을
가슴에 간직한 말이,
심장에 박힌 사랑의 말이,
권능이 되었다.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the power of the Holy Spirit)받은
고귀하고 순결하고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로
권능(power of charity)을 받았다.
바울의 고백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소서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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