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람 아담과 하나님의 언약/이천우 목사

1.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처음 상태

창세기 1장에서의 창조 사역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창조를 ‘자기의 형상’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사람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모양]대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창조를 다시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여서 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참 뜻은, 곧 본의(本意)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셔서 살아 있는 사람, 그러니까 ‘산 자’가 되게 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육을 만들고 그 육 안에 영혼을 불어 넣어주었다는 식으로 이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사람을 ‘육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죽은 자의 육에서 영혼이 떠나 하나님께로 간다는 식의 이원론적인 이해는 순전히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인 ‘흙’이란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진흙이니 찰흙이니 하는 차원에서의 흙에서만이 아닌 아주 작고 미세한 먼지요 티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명의 공학에서 다루는 원자(原子)의 개념입니다. 이는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의미하고 있는 실제적인 의미는 사람의 육이 분해되어서 원자로 돌아가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육이 원자로 돌아간다고 해서 사람이 죽을 때 육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마치 육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 육이 다시 회복되어서 육을 떠난 영혼과 다시 하나로 결합하는 것처럼 여겨지나 실상은 육과 영혼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육이 흙에 묻혀 썩는 모습을 취하나 거기에서 영혼이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육이 흙에 묻혀 썩는 모습을 취하는 것에서 사실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시에 그 사람은 처음의 모습을 가질 것이요 이때는 영원히 썩지 않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의 변화를 입은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과 영혼이 하나로 결합이 되었다가 분리되고 다시 결합되는 구조적인 조립형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창조를 흙에서 육을 창조하시고 다시 그 흙으로 빗은 육에다 영혼을 불어 넣어 창조하시는 각각 따로 시간차 간격을 두고서 이원론적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육과 영혼을 하나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단지 땅으로부터 취한 티끌[원자]로 육체가 있게 하고 또한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그가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티끌에 생명을 주셔서 육체, 곧 사람이 되게 하신 데 대한 묘사요 ‘생령이 되었다’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니) 그 사람이 산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사실 ‘생기’라는 단어가 생명이라는 것이요, 생령이라는 단어 또한 어떤 문장에서 적절한 표현과 의미를 말할 때에 달리 쓰인 것인데, ‘생명’(창 1:30), 또는 ‘생물’이라는 말로도 쓰여졌습니다(창 1:20, 21, 24). 그리고 이 모든 단어는 히브리 말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뜻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이 여느 만물의 생명체와 다른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인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 있는 생명에서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봅니다. 사람의 생명은 생명이신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는 질적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생명의 기원과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여느 생물이 하나님에 의해서 흙으로 지음을 받고 흙으로부터 취해진 생명인 것에 반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만 그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기, 곧 살아 숨 쉬는 기운을 불어넣어주심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 있는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신 이 창조 사역으로 사람은 단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것이 지닌 큰 특징적 의미는 다음 몇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존재입니다. 둘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아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존재가 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인 종교성을 지녔습니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아 만물을 다스리는 관리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처음 상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창 1:31).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세계, 곧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온갖 복을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즐기는 행복을 누립니다.

2. 에덴동산에서의 사람의 상태

한편 처음 사람의 상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숨을 받아 ‘생령(a living soul)’, 곧 산 자(a living being)가 되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로서 완전한 존재이지만, 이것은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의 언약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아담의 창조는 다른 창조물이 그러하듯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의도대로 되어진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움과 선한 성품을 볼 수 있는 생명을 소유하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신데 따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이루는 사람으로 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상태를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가치 있게, 그리고 풍성히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언약 안에 두어 그 상태를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욱 발전적이며 충만히 누릴 수 있게 하셨는데, 그 수단과 방법으로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고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은 먹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통치에 복종하여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 된 의로움과 선함과 진실함을 나타냄으로 그의 주이신 하나님과 그 영광을 세상에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복 있는 자의 행복을 마음껏 누립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이 사는 ‘날’이 안식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며, 이 날에 복주시며 거룩하게 하신 것에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창 2:2, 3).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죄를 전혀 지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심히 만족케 한 피조물로 창조 된 사람은 한편으로 그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이었으나 그러나 아예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자였으나 그러나 그것을 언제든지 잃을 수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사람에게서 죄 값에 의하여 죽음에 있게 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사람의 불순종에 의해서’ 현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죄를 짓고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처음부터 범죄와 타락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범죄와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을 아는 지식은 증대되며 악을 아는 지식은 억제되는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누려가는 복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영원히 살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사람을 동쪽에 동산을 조성하시고는 에덴이라고 부르게 하신 곳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두시고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이유는,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은 어떤 열매이든지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립니다만 단 한 가지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금령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금령을 통해서 사람에게 선과 악을 아는 지식에 있게 해 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말씀을 사람이 잘 받들어서 순종하여 나가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선을 아는 지식을 가져나가게 하여 지속적으로 순종하여 나가게 하시고,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말씀을 불순종하여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으로 이것은 악한 것임을 아는 지식을 가져나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식 속에서 진정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복을 누리며 하나님 자신과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의하여 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을 지닌 자로서 지속적이며 적극적으로 선을 행할 수 있는 존재인가 하면 또한 악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도 지닌 자로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여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불구하고 악을 행하여 죄를 범할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범죄와 타락할 가능성의 시험적 상태’에 있는 존재였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모든 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한 시험적 상태’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와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와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실 때에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한 의도를 드러내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절). 여기에서 보는 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나라인 세상에서 선과 악의 지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들어 순종하여 나가는 것에서 선으로 나아가게 하여 그가 부여받은 생명을 지속적으로 누려가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표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 창조하신 사람은, 그래서 흙에서 나온 사람의 몸인 육은 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따르지를 못합니다. 사람의 몸인 육은 그 육에서 나오는 본능에 의해서 행동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육의 본능을 좇는 사람은 그 육으로서는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흙에서 나온 그 흙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흙에서 나온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시고서 이것을 사람이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을 언약으로 주시는 것에서 ‘죽음의 약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교회는 이러한 이해에 있어 오지를 않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행위언약’의 관점에서 가져온 것이 전통적인 견해였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생명의 언약’으로, 또는 ‘생명과 죽음의 언약’로 보는 견해에 있기도 합니다.

이중에서 어떤 관점에 의한 견해에 있든지 간에 아담과 그의 후손이 죽음의 형벌을 받는 심판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에 순종하여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해에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만일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을 경우......"의 추측에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무의미한 추측의 가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룰 일을 정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을 구원이 작정된 자이며,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이를 실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에서 "만일 아담이 이 과실을 먹지 않아 타락하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은 참으로 쓸 데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서 아담은 선의 개념을 알아가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따먹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에서 아담은 악의 개념을 알아 가는 것인데, 아담은 죄를 짓고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서 죽음에 처할 수 있는 존재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이 죽는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면서도 살고 죽는 것이 갖는 생명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여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육의 욕망을 좇아서 살 수 밖에 없는 육을 지닌 자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악을 행하여 죄를 지음으로써 죽음에 처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여서 다시 살리시는 일을 함으로써 참 생명에 대해 깨달아 알게 하심으로써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선하신 분에 대한 참된 지식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어도 살겠고......네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한 인간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함으로써 다시는 죽음 문제가 걸리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선한 자게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해가 있게 하시는 것에 의해서 다루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그를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에 두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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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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