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커다란 문제점들


“빅 뱅”은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수십억년 전 “싱귤래러티 (singularity)”라고 불리는 무한히 뜨겁고 고 밀도의 한 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제안합니다. 이 싱귤래러티는 우리가 오늘날 관찰하는 우주의 모든 질량과 에너지 뿐 아니라 “공간” 그 자체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빅 뱅의 이야기에 따르면, 싱귤래러티는 에너지와 공간을 펼치며 빠르게 확장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빅 뱅으로부터 나온 에너지는 우주가 확장됨에 따라 식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에너지의 일부는 물질 – 수소와 헬륨 가스 – 이 되었습니다. 이 가스들은 서로 합쳐져서 별들과 은하를 형성했습니다. 어떤 별들은 그 중심부에서 더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었고, 폭발하면서 이러한 원소들을 우주로 내보냈습니다. 이러한 무거운 원자들 중 일부는 서로 뭉치기 시작해서 지구 및 다른 행성들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무기물질들이 궁극적으로 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에 대한 위의 이야기는 완전히 꾸며낸 것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빅뱅 모델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특별히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그 무신론적 기반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빅뱅 이론을 취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그들은 기원에 관한 세속적 믿음과 성경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의 단순하고 명백한 가르침을 재해석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세속적 타협

우리가 빅뱅의 과학적 문제점을 논의하기 전에, 그것은 성경과 반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빅뱅은 기원에 관한 세속적 이야기 입니다. 처음 제안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 없이 이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실재로 그것은 성경에 대한 대안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성경에 “더한다고”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기원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과 빅뱅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몇몇 근본적인 차이점을 조사해 보도록 합시다.

성경은 온 우주를 6일간 창조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창세기 1; 출애굽기 20:11). 창세기의 문맥으로 보면 기록된 날들은 일반적인 24시간의 하루를 묘사한 것이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그 날들은 저녁과 아침으로 쌓여 있었으며, 순차적으로 (첫째날, 둘째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빅 뱅은 우주가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해 왔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지구가 별들보다 먼저, 그리고 나무가 태양보다 먼저 창조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빅뱅의 관점은 정확하게 반대입니다. 성경은 지구가 최초에는 낙원으로 만들어 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속적 모델은 지구가 뜨거운 덩어리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빅뱅과 성경은 분명 과거에 관한 가르침에 대해 일치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빅 뱅이 과거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미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빅뱅 이야기들 중 가장 보편적인 것 하나는 우주가 영원히 팽창할 것이며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소진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우주는 “열역학적 죽음 (heat death)” 상태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이 심판받을 것이며 다시 만들어질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낙원은 회복될 것입니다. 빅뱅은 이 결정적인 성경적 가르침을 거부합니다.

빅뱅의 과학적 문제점들

빅뱅은 또한 수많은 과학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빅뱅의 지지자들은 관찰할 수 있는 진짜 과학과 부합하지 않는 수많은 개념들을 “맹신(blind faith)”해야만 합니다. 빅뱅 이론과 실재 우주 사이의 불일치 중 몇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극(monopoles)의 부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석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 나침반이나 냉장고에 붙이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석이 두 “극” – 북극과 남극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 같은 극들은  서로를 밀치지만, 다른 극들은 끌어 당깁니다. “단극”은 자석과 같지만 단지 하나의 극만을 가지고 있는 가상의 거대한 입자입니다. 따라서 단극은 북극 혹은 남극을 갖지만, 모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입자물리학자들은 빅뱅의 높은 온도 하에서 많은 단극들이 만들어 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단극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오늘날가지 남아 잇어야 합니다. 그러나, 찾으려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극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극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단극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주가 결코 뜨거웠던 적이 없다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것은 빅뱅이 일어난 적이 없으며, 성경적 창조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우주는 무한대로 뜨거운 상태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탄함의 문제 (The flatness problem)

빅뱅 모델에 대한 또다른 심각한 도전은 “평탄함의 문제”입니다. 우주가 확장되는 속도는 중력과 매우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이 상태는 “평탄함”이라고 불립니다. 만약 우주가 빅뱅의 부산물이라면, 이러한 환상적인 우연이 발생하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빅뱅 우주론은 왜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밀도가 더 큼으로써 우주가 스스로 주저 앉던지 (closed universe), 물질의 밀도가 적음으로써 우주가 빠르게 찢어져 날아가지 않는지(open universe)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로 외삽할 때 문제는 더 심각해 집니다. 완벽한 평탄함으로부터의 편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커지기 때문에, 과거에는 오늘날보다 더 정확한 균형이 맞춰져 있어야 하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따라서, 빅뱅의 순간에는, 우주가 사실상 매우 정밀하게 평탄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백뱅을 가정한다면, 물리학의 법칙은 값의 무제한적 범위를 허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맹신을 한계점에 이르도록 만드는 우연입니다. 물론, 성경적 창조 모델에서는, 주님이 우주를 생명을 위하여 미세조정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균형”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잡성을 팽창시킴 (Inflating the complexities)

많은 세속적 천문학자들은 평탄성과 단극의 문제 (그리고 이 책자에서 다루지 않은 지평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팽창(inflation)”이라는 것을 고안해 냈습니다.  팽창이라는 개념은 우주가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가속화한 팽창을 경험했다고 제안합니다. 놀랍게도, 이 개념을 지지하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증거없는 상상일 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 빅뱅이론 그 자체처럼 말입니다. 더우기, 팽창 이론은 그 자체 내에도, 무엇이 팽창을 시작하게 했으며 무엇이 그 팽창을 부드럽게 멈추게 했는지와 같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팽창이론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빅뱅의 다른 문제점들은 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아래 다룰 것입니다.

반물질 (antimatter)은 어디에 있습니까?

“중립자 수 문제 (baryon number problem)”를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빅뱅 이론은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물질 (수소와 헬륨 가스)이 생기게 되었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실험적 물리학은 물질이 에너지로부터 생성되는 반응은 또한 반물질도 생성한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반물질 은 입자의 극성이 반대라는 것 빼고는 물질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성자가 양극을 띄고 있다면 반양성자는 음극을 띄고 있습니다.)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되는 모든 반응은 똑같은 양의 반물질을 생성합니다; 그 어떠한 예외도 관찰된 적이 없습니다.
빅뱅이 (최초에 물질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에너지만 존재했던) 일어났다면 같은 양의 물질과 반물질을 생성했어야 하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관찰할 수 있는 우주는 거의 완전히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 극단적 추적량의 반물질만이 존재합니다.

빅뱅의 이러한 충격적인 문제점은 사실 성경적 창조와 잘 맞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디자인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실질적으로 이 우주를 물질로만 창조하셨고 –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물질과 반물질이 뭉칠때, 그것들은 격렬하게 반응하여 서로를 파괴시킵니다. 만약 우주에 동일한 양의 물질과 반물질이 존재한다면 (빅뱅이론이 필요로하듯), 생명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Population III별들의 부재

빅뱅 모델 자체로는 단지 수소, 헬륨, 그리고 극소량의 리튬의 존재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약 90 여개의 다른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원소들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빅뱅의 상태가 이러한 무거운 원소들을 형성하게에 알맞지 않기 때문에 (빅뱅 지지자들도 금새 인정하듯), 세속적 천문학자들은 별들의 핵 안에서 핵융합이 일어남으로써 나머지 물질들이 생성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커다란 별이 폭발하는 폭발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난다고 생각됩니다. 그 폭발은 무거운 원소들을 우주로 퍼져 나가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두번째와 세번째 세대의 별들은 이러한 무거운 원소들을 조금 포함한 “오염된” 별들일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1세대의 별들은 오직 가장 가벼운 세 개의 원소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가능한 그 별들의 나이가 현재 우주의 나이보다 많기 때문에 몇몇은 아직도 남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별들을 “Population III” 별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Population III별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알려진 별들은 적어도 미량의 무거운 원소들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은하 내애만 1000억개의 별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세 개의 가벼운 원소들로만 이루어진 별들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빅뱅 이론의 붕괴

위에서 열거한 문제점들 및 열거하기에 너무나 많은 문제점들을 생각할 때, 많은 과학자들이 빅 뱅이론을 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것이 현재 대세를 이루는 모델이긴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이 빅뱅 이론이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에 관한 좋은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2004년 5월 22일자 뉴 사이언티스트지에, 빅뱅 이론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세속적 학자들이 학계에 보낸 공개 서한이 실렸습니다. 이들 과학자들은 수많은 임의적 가정과 빅뱅 이론에 기반한 예측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며, 이것이 빅뱅 모델의 적법성을 의심케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언급과 함께, 그들은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빅뱅 이론은 점점 더, 우리가 결코 관찰한 적이 없는 가상의 독립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팽창, 암흑 물질, 그리고 암흑 에너지가 가장 두드러진 예들입니다. 그것들이 없다면, 천문학자들이 관찰하는 사실과 빅뱅 이론에 근거한 예측들 사이에 치명적인 모순이 존재하게 됩니다. 물리학의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이토록 새로운 가상의 물체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이론과 관찰 사이의 괴리를 메워주는 방법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것은 근본적인 이론의 타당성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이 후로 여러 다양한 기관의 과학자들과 교수들에 의해 서명되었습니다. 빅뱅 이론의 인기가 매우 떨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세속적 과학자들은 점점 더 빅뱅 이론을 버리고 다른 모델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 빅뱅 이론이 폐기된다면, 세속적 이론과 타협하여 성경이 빅뱅 이론과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되나요? 그들은 뭐라고 말할 것입니까? 그들은 성경이 사실은 빅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최신의 세속적 모델을 가르친다고 주장할 것입니까? 세속적 모델은 왔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완전히 정확하셨기 때문입니다.

빅뱅의 많은 과학적 문제점들은 그 기반이 되는 부정확한 세계관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빅뱅이론은 우주가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지 않았고, 수십억 년간의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부정확하게 가정합니다. 그러나, 실재는 이러한 개념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경적 창조는 세속적 모델들에 만연한 모호한 추측 없이, 증거를 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빅뱅 이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우주의 창조주 자신이 하신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좋은 소식이 여기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실재 역사의 일부는 첫번째 인간인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여 반역함으로써 죽음과, 고통 그리고 하나님과의 분리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에 관한 나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봅니다. 아담의 후손들 모두는 모태로부터 죄인이며(시편 51:5) 이 반역의 상태(죄)로 들어온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살 수 없고, 하나님과 분리되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로마서 3:23)고 기록하십니다. 그리고 따라서 모두는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데살로니가후서 1:9) 되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 즉 죽음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충족시키시기 위하여 이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삼일째 되던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그분을 진심으로 믿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와서 창조주와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 (요한복음 3:18) 입니다.

베들레헴의 아기…얼마나 놀라운 구원자이십니까…그리고 얼마나 놀라운 우리의 창조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입니까!    

이 구원의 선물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시고 성경의 가장 첫 구절부터 끝까지의 정확성과 권위를 받아들이는 목사님이 계시는, 성경을 믿는 교회에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by Dr. Jason Lisle

USA 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제자

종의 영(1-1) (롬8:15~17) / 로이드존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5-17)

 

 

기록된 말씀 중에 이보다 더 위대한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심지어 이처럼 위대한 장에서조차 매우 독특한 진리의 표현으로 돋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 전영역과 구석구석 도처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왜 그 사도가 이 진리의 말씀을 진술하셨는가를 정확하게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반향을 일으키는 구절들에 따른 위험성은 우리가 그 말씀 자체로 만족하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일반적인 인상으로 만족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너무 즐깁니다. 그리므로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교훈을 참으로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바울이 왜 이것을 언급했을까요?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바울이 그렇게 했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대답이 15절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이미 지나간 그 무엇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사도는 이 말씀을 기록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낙심케 하는 영으로부터, 다시 말해서 낙담 혹은 침체의 영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이 실제적으로 그 문제를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그 순간은 아니었을지라도 바울의 관심사는 저들이 그런 고통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한 가지 목적은 저들에게 영적 침체에 대한 해독제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이 종의 영, 패배의 영, 그리고 낙심의 영이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도가 이같이 중요한 진술을 어떤 연관성 없이 한마디 던지고 만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갑자기 던져진 매우 중요한 진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같은 진술들이 이 위대한 사도의 기록에서 거의 계획대로 나타났듯이 여기에서도 매우 실제적인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 안에 가지고 있는 이런 서신들은 교리와 신학으로 충만합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 나오는 서신들의 모음이 신학 교과서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그것이 명심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규약들이나 교리들을 언제나 보이는 실제적 목표로 가장 최일선에 제시되어야 하는 목회적 요소와 함께 소개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편지들은 우선적으로 목회서신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도가 실제적인 기쁨과 또 자신들이 믿고 받아들였던 기독교 신앙을 살도록 사람들을 돕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특별한 진술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 낙심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문제, 당신이 좋아한다면 죄를 처리하는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능력 있는 서신 제6장 서두에서부터 그 문제를 취급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지금까지도 그것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편지를 쓰고 있는 대상인 이 사람들은 개종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지금 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문제에 접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이 저들에게 적대적이며 철저하게 반항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품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 어떤 것들을 접하면서도 역시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의 투쟁이요 또한 전쟁입니다. 내부와 외부에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에서 주님이 살으셨던 것처럼 자신들도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특별한 문제, 곧 낙심과 침체가 유입되는 그 문제를 매우 자주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벌써 마귀가 우리를 낙심시킬 때에 교묘하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관한 많은 사례들을 고찰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평범한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는 양심적인 타입의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은 "나는 개종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은 "이것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삶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바로 그 사람에게 찾아오는 특별한 시험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저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어떤 진리를 ?닫지 못하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 가능한 그 무엇을 깨닫는 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차라리 그런 표현을 더 좋아한다면, 신앙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실패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에 관한 많은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앙이란 활동성이란 점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망각하다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신앙을 적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이유를 고찰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이 계속해서, 그리고 끈질기게 신앙을 적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출발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순간이라도 평안하게 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적절하게 적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유발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진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붙잡지 못하고 실패하는 가장 분명한 일들 중에 하나가 죄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의 형편입니다. 우리가 그 점에 대해서 다 살펴본 바 있습니다. 당신은 과거에 여러 차례 읽었던 성경 말씀, 그때마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말씀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살아 있는 말씀으로 그리고 과거에 결코 체험하지 못했던 그런 방법으로 다가오는 그런 성경 구절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까? 우리들은 모두 여러 차례 이 같은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그 진리에 형식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이 말씀하시는 바를 적절하게 적용하지 못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 특별한 문제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도 바울이 '종의 영'이라고 부르는 바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종의 영'이란 무슨 뜻입니까? 그는 종의 정신 혹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돌이켜 새로운 율법 혹은 고차원적인 율법으로 전환하려는 경향에서 비롯됩니다. 제가 지금 율법과의 관계를 매우 분명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십계명 혹은 도덕법을 구원의 방편으로 생각합니다.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또 그분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음을 압니다. 또 칭의에 대해서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이제야 적극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교묘한 방법, 곧 자신들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저들은 새로운 종류의 율법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들이 종의 영 혹은 노예의 영을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신들이 담당해야만 될 대단한 임무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또 자신들이 적용해야만 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상설교를 읽고 또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모범, 곧 자신들이 살고 싶어하는 삶의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또다른 가르침들을 거기에서 발견하고 관심을 돌립니다. 또 저들은 서신서들을 두루 섭렵하고 사도들을 통해서 주어진 세밀한 규정들을 거기에서 발견한 후에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들이 그런 것들을 발견하여 그것을 자신들이 마땅히 담당하고 또 일상생활 가운데서 실천해야만 될 그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환언해서, 거룩이 저들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조직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들이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어떤 훈련준칙들을 소개합니다. 이런 태도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그 가르침의 고전적인 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도원 제도의 전체적인 사상체계에서 볼 때 그것은 바로 이 같은 것을 전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진리와 직면한 남녀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들은 "그래,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상하고 수준 높은 삶이야. 만일에 혹자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한평생의 문제가 될 거야"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저들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어. 사업을 하거나 전문 직종에 계속 종사하면서 이 세상에서는 전혀 그렇게 살수는 없어. 그렇게 하려면 당신 자신을 세상에서 분리시키지 않으면 안 돼. 그 길은 세상을 떠나는 수밖에 없어." 저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이런 생각에 대한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거룩이나 거룩에 대한 훈련과 영적인 삶은 평생 동안 지속되어야만 될 일입니다. 더군다나 당신은 특별히 그 일에 자신을 투자해야만 하고 또 법칙과 규정을 세워야만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 의하면, 그것이 바로 종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로마 카톨릭에게만 한정된다고 말할 필요가 없으며 또 자신들이 '카톨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제한시킬 수도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매우 보편적일 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적인 성도들 사이에도 그런 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율법을 우리 자신들에게 쉽게 부과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것을 율법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율법 밑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런 경향에 젖어 있습니다. 저는 많은 인용을 통해서 이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서신들이 이에 대한 인용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바울서신의 논증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바울은 특별한 말씀으로 이 문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제2장에서 바울이 이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자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골2:16-23).

 

이제 그것은 초대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일종의 수도원 제도, 곧 가장 교묘한 방법이 유입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특별한 형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향 혹은 시험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똑같은 일로 편지를 써서 경고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 나오는 그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회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4:1-3). 그것은 지금까지도 매우 보편적인 그 무엇입니다.

 

저는 매우 철저하게 복음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 처녀가 고기 먹는 것을 중단했던 사례를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짐승이 먼저 죽어야 하고 또 그것이 사랑의 정신이 파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율법을 부과했던 처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녀는 매우 진지했고 또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돌이켜 자신 위에 부과했던 한 새로운 율법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방금 전에 인용했던 그 사도의 말씀, 곧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라는 말씀은 바울이 언급했던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보여 주기에 충분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현재에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일들의 견지에서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율법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후에 이에 대한 계속적인 설명을 시도할 텐데 세밀한 것은 그때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을 원리적으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종의 영'은 언제나 그것을 수반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두려움의 영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종의 영을 주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기에서는 "너희가 또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적 침체와 치유'(로이드존스) 제12장 종의 영(211~218p)에서 발췌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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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Goombay Dance Band-Sun Of Jamaica

https://youtu.be/YouJ_JRqYpw

Sun Of Jamaica

Long time ago when I was a young boy
I saw that movie "Mutiny on the Bounty"
Starring my idol, Marlon Brando
And I felt a yearning for that great adventure
So many nights I woke up out of a dream
A dream of blue seas, white sands
Paradise birds, butterflies
And beautiful warm-hearted girls

오래 전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우상인 말론 브란도가 주연하는
"Mutiny on the Bounty"를 보았지
그러곤 대모험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느꼈어
 수많은 밤을 꿈을 꾸며 지새우고
푸른 바다와 백사장을 꿈꾸며 새와 나비의 천국
그리고 마음 따뜻한 아름다운 여인을 꿈꾸었지

Sun of Jamaica, the dreams of Malaika
Our love is my sweet memory
Sun of Jamaica, Blue Lady Malaika
Some day I'll return, wait and see
Walk in the sand And l'm happy with you
We shall be loving and true
Oh I sure love Malaika
With all of my heart I will always
Be faithful and true, yeah true

자메이카의 태양, 말라이카의 꿈
우리의 사랑은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되었지
 자메이카의 꿈, 블루 레이디 말라이카
 언젠가 난 꼭 돌아갈거예요
모래 사장을 걸으면
당신이 있어 난 행복해요
우리는 진심으로 사랑할꺼예요
오, 난 정말 말라이카를 사랑해요
내 마음을 다해 항상  진실하고 참 될거예요

But now as I grew older
This burning desire became so strong
That I bought a ticket to fly home
And then I found you
And we found an eternal love right from the beginning
Stars falling down from the sea of lagoon
The palms swaying under the moon
We were swimming out into the calm crystal sea

그런데 이젠 내가 나이를 먹을 수록
나의 타오르는 욕망은 더욱 강해져서
집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고
그때 당신을 만났죠
그리고 우리는 처음부터 영원한 사랑을 찾게 되었죠
석호(潟湖)의 바닷물에 떨어지는 별똥별
달빛아래에 흔들리는 야자수
우리는 수정같은 고요한 바다를 헤엄치고있었지

In that fateful night

I thought to myself
I'll do everything I can
Save up every dime
And one day I'll return
Come back home to you
And then I'll stay forever, forever
Sun of Jamaica, the dreams of Malaika
Our love is my sweet memory
Sun of Jamaica, Blue Lady Malaika
Some day I'll return, wait and see

운명의 그 날 밤 난 스스로 생각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고
한 푼 두 푼 모아서 언젠가 돌아가겠다고
당신이 있는 그 고향으로 말이예요
그리곤 영원히 머물겠어요, 영원히
자메이카의 태양, 말라이카의 꿈
우리의 사랑은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지
자메이카의 꿈, 블루 레이디
말라이카 언젠가 난 반드시 돌아갈거예요

In that fateful night
I thought to myself
I'll do everything I can
Save up every dime
And one day I"ll return
Come back home to you
And then I"ll stay forever, forever
Sun of Jamaica, the dreams of Malaika
Our love is my sweet memory
Sun of Jamaica, Blue Lady Malaika
Some day I"ll return, wait and see

운명같은 그 날 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했죠
한 푼 두 푼 모두 모아서 당신이 있는
고향으로 언젠가 돌아갈 거예요
그리고 영원히 떠나지 않겠어요
자메이카의 태양, 말라이카의 꿈
우리의 사랑은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되었지
 자메이카의 꿈, 블루 레이디
말라이카 언젠가 난 돌아갈거예요

Walk in the sand
And l"m happy with you
We shall be loving and true
Oh I sure love Malaika
With all of my heart I will always
be faithful and true, yeah true

모래 사장을 걸으면
당신이 있어 난 행복해요
우리는 진심으로 사랑할거예요
오, 난 정말 말라이카를 사랑해요
내 마음을 다해 항상
진실하고 참되게 될거예요




세상을 좇아간 결과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5,000 년 가난을 물리치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경제개발과 물질의 풍요가, 온갖 편의와 새로운 오락들이 인간을 잘 살게 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 주는 것도, 유토피아를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살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인간은 돈을 좇고 황금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성은 그 속에서 더욱 사악해지고 더욱 황폐화되어가고 더욱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일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땅은 이미 저주 받았고 불태우기 위하여 간수된 바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의 풍요를 위하여, 물질의 풍요를 위하여 힘써 일하는 것은 더욱 불태울 것만을 풍성하게 만들 뿐입니다. 인간에게 땅의 것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물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들을 추구하며 그것들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하늘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영원을 향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이시며 마지막 때를 보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스도로 온 하늘이 가득한 그 때, 곧 마지막 날을 말입니다. 그렇게 하늘은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이 땅에 가득하게 될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소돔을 통하여 롯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리라.” 하던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 물과 초목이 풍성한 땅을 향하여, 부요한 삶을 향하여 따나간 롯이 도달한 곳은 가장 풍요롭고 온갖 편리와 오락이 넘쳐나는 소돔성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롯은 당시의 가장 번성한 도시의 풍요로움을 누렸을지 모르나 결국 오늘 말씀에서 보니 인간세상의 더러움과 타락을 한탄하며 성문에 앉아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물질의 풍요를 좇아 소돔까지 이르른 롯은 그러한 삶과 인간의 타락한 모습에 환멸과 회의를 느꼈을지 모릅니다. 세상을 좇아 신앙을 떠난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길을 돌아보며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결코 인간의 공허한 심령을 채워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날 롯은 성문 앞에 하염없이 앉았다가 날이 저물 때 그곳에 도착한 두 천사를 보게 됩니다. 하늘을 바라고 사는 사람은 하늘에서 온 자를 알아보는가 봅니다. 아브라함이 장막문에 앉았다가 여호와 하나님 일행을 알아보았듯이 롯은 성문에 앉았다가 천사들을 알아본 것 같습니다. 아니, 알아 보았다기 보다 무엇인가에 강하게 이끌렸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릅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끼리끼리 통한다는 말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도 하늘을 바라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를 인하여 서로 이끌리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와는 또 다른 ‘유유상종’으로 더러운 죄악의 유희를 추구하는 똑같은 인간들끼리 만들어낸 추악한 죄악의 도시 소돔성 입구에서 천사를 반갑게 영접하여 맞아들이는 롯의 모습은 어두운 이 마지막 시대에 악에 물들지 않고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살아가는 자들끼리 이끌리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악한 세상은 이들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온 성이 모여서 소리치며 두 사람을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강제로 문을 열고 강탈하고 강간하려고 합니다. 이들을 그들과 같은 더러운 동성연애자로 만들려고 시도합니다. 그들과 같은 종류 "유유상종"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소돔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땅과 물질을 추구해온 오늘날 이 시대에도 유혹과 강압과 폭력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악의 소굴로 이끌려 들어가는지요. 오늘날 세상은 동성애자들의 끈질기고 추악한 요구에 굴복하여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고 특별한 성적취향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과 미국이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추악한 본성은 다른 사람들이 저들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게 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은 모든 사람들을 자신들과 같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 벌써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동성애를 퀴어축제라는 행사로 선전, 선동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도 차별이라 하여 금지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추잡한 동성애, 구강성교, 항문성교를 가르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결국 온 세상을 자신들과 똑같이 더럽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순전한 크리스천들을 용납하지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일어나 크리스천들을 고소하고 잡아다 죽이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말살하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순결한 성도들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추악한 인간의 삶의 모습, 이러한 세상의 흐름은 물질의 부요와 이 땅의 쾌락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소돔의 모습과 오늘날 이 세상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물질의 부요를 좇아갔던 롯이 타락한 소돔성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의하며, 고통해하며 성문에 하염없이 앉았던 모습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급하게 어두워져가는 시대를 살면서 과연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추구하며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 오직 진리를 추구하며 순결한 믿음의 시람으로, 하늘을 향하여, 생명과 영원을 향하여 살아야 합니다. 머지않아 온 세상이 달려와 대문을 때려부수며 내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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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레스보스 섬의 난민 캠프에서 무슬림 난민 12명을 자신이

타고 온 전용기를 통해 바티칸으로 데려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난민 캠프를 찾아 세계 지도자들이 난민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촉구하며, 난민들 가운데 어린이 6명을 포함한 시리아 난민 12명을 자신의 전용기에 태워 바티칸으로 데려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세 가족으로 모두 시리아 출신에 이슬람교도(무슬림)인 난민 12명의 이주에 대해 바티칸은 "교황이 난민들에게 환영의 뜻을 보이고자 했다"면서 교황청과 그리스·이탈리아 당국이 난민 가족의 바티칸행을 위해 사전에 협의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이들은 로마에 머물면서 가톨릭 자선단체 산테지디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고 바티칸은 덧붙였다.


이날 교황이 방문한 레스보스 섬의 모리아 난민캠프에는 시리아 등 중동 출신을 중심으로 3000명의 난민이 수용돼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EU-터키 합의 때문에 조만간 터키나 본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처지다.


관련기사 >> 교황, 그리스에서 난민 12명과 바티칸으로



* 이슬람 난민들 가운데 섞여 들어온 ISIS 대원들로 인해 발생한 파리와 브뤼셀의 테러와 2016년 제야의 밤에 독일, 핀란드, 스위스 등에서 벌어진 이슬람 난민들로 인한 집단 성폭행 사건 이후, 유럽의 국가들이 난민 유입을 꺼리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12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바티칸으로 데려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제자를 거느리신 예수님을 흉내 내려는 듯, 12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거느리고 바티칸에 도착함으로 현재 이슬람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겪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을 향해, 더 많은 이슬람 난민들을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Daily mail의 단독 보도에 의하면 교황이 레스보스 방문 당시 바티칸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알려졌던 난민들 가운데 시리아 출신 기독교인 남매가, 마지막 순간에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이 명단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인인 이들은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ISIS에 의해 처형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


교황이 바티칸으로 데려가는 시리안 난민들 가운데 왜 기독교인들인 이들 두 사람의 명단이 빠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교황청은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난민의 바티칸 이송"이라는 퍼포먼스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지막 순간 이들을 제외하고 대신 이슬람 난민을 두 사람 더 포함시킨 것으로 추측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 제자를 거느리신 예수님처럼 12명의 이슬람 난민을 거느리고 바티칸으로 데려오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전에도 여러 번 예수님을 흉내낸 퍼포먼스를 보여준 바 있다. 예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슬림 신자들까지 사랑으로 받아준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정작 본래 바티칸으로 데려간다는 통보를 받았던 기독교인 남매를 제외시켰다.


관련기사 >> EXCLUSIVE - 'Let down by the Pope on Lesbos': Christian brother and sister told they would be rescued by Holy Father then left behind over EU deal to send migrants to Turkey


프란치스코 교황이 타종교인인 이슬람 사람들까지 이처럼 극진한 사랑으로 품어준다는 ‘종교통합의 퍼포먼스’를 위해 정작 시리아로 송환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기독교인 남매를 외면한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사도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교황의 지극히 세속적이고, 정치적이고, 교활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출처: 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1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증인으로의 삶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삶이라
이미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생활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아는 사실이
복음이 전파되는 전도가 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제자인 줄 알리라
A new commandment I give unto you,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By this shall all men know that ye are my disciples,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요한복음  13:34-35]

예수님은 이 시대의 우리에게 사랑의 핵심인 새 계명으로 주셨다.
계명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그리스도의 도(道)라
증인의 길이며 복음의 길이라
하나님의 의(공의)가, 복음의 참 의미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치관, 인생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가.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면
서로 사랑해야 하고, 사랑해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로 사는 힘, 그리스도의 고귀하고 순결한 힘(power of charity)을
성령님을 통하여 서로 사랑함으로 받는 힘,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받는 고귀하고 순결한 힘을 성령님을 통하여 공급받는
거룩한 사랑을 다시 기억하고 다시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영혼을 흔들어 주심은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매일의 일상에서 생활에서 더러워진 우리의 영혼이
다시 깨끗하고 청결한 영혼이 되기를,
일상의 생활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아오길 바라시기에,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를 사랑을 의지하고 실천함으로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샘솟는 물처럼 다시 힘을 주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생활의 단련과 연습이 ‘경건’ 이며
경건을 통하여 온전한 성령님의 힘,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받아야 만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함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함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멀어졌기 때문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의(공의)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경건의 생활을 실천하지 못하는 일상의 생활은
힘을 얻지도 못하여 죄에 대하여 무력해지며 죄에 대한 방어를 할 수 없기에
반복된 생활을 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는 ‘교제’ 는
우선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는 제자로,
그러다 죄를 짓더라도 성령님의 인도로 죄에 대한 회개로,
하나님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힘
그 힘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이며
교제를 위하여 받는 능력 또한 은사이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는 말씀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권능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고
은사를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고
그러기에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고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말씀이고
그러기에 이 시대는 사랑을 잃은 시대라 무기력하여
무엇을 구하고자 울고불고 부르짖더라도 응답 없는 기도는
이미 하나님의 의를 떠난 구함이 된다.

우리의 일상은
내적인 교만의 탐욕과 외적인 상황의 시험의 삶으로
늘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도전에 부딪치고 이를 극복 하냐는 성패(成敗)는
일상생활의 도전이라 경건의 훈련이며 단련이며 연단이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
급한 현대인의 조급함은 인내를 필요하며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아는 장성한 자는
경건의 경험과 훈련으로 연단되어 선과 악을 분별하며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But strong meat belongeth to them that are of full age,
even those who by reason of use have their senses exercised to discern both good and evil.  히브리서 5:14]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잠시 흔들리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각인된
성령의 인치 심으로 세상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유혹을 이기고
희망을 넘어 죽음의 저편 소망을 바라보는 자 이다.
그러나 경건을 떠나서는 승한 것 같으나 패한 자이고  
권능을 받지 못하기에 서로 사랑하는 ‘교제’는 말뿐인, 능력이 없는, 힘
없는 교인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가시가 되어 험담하고 시험을 주고받는
해를 끼치는 일상이 되어 서로가 가해자이며 피해자라는
상처뿐인 관계가 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는 순수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잃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의 전통과 신학과 교리로 무장한 ‘거룩’ 이라는 예배와 의식으로
포장된 믿음이라는 세속화된 축복인 세상의 성공과 출세
행복의 성취라는 사탄의 달콤한 거짓에 속아 왔고
그 전통에 접붙인 믿음의 행위가 종교의식 화한 오늘날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에,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내놓고 생명을 바꾼 생명의 역사인 복음을 직시하지
못하여 서로가 서로의 허물만 본다.

우리가 서로 사랑 하는가?
말로는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라 하면서
한 몸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는가?
지체끼리 서로 상하 우위를 가리고 끼리끼리 어울려서 갈라지는
교회의 조직은 전혀 성경적인 모임이 아니고
아이러니하게 잘못된 조직의 구조가 형성하게 만든 장본인들은
교계와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신앙을, 신앙인을 공장의 제품을 만들 듯
규격(規格)과 격식에 맞추고 규정을 만들어 종교적인 전통에 적(籍)을 둔
종교지도자들이었고 그들의 전통은 부패한 가톨릭에서 종교개혁을 이루어낸
개혁을 언급하면서 부패한 가톨릭같이 되었고
시초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사두개인을 들 수 있고 이들은 유래는
불의한 제사장들을 들 수 있음은
제사장들과 같이 예루살렘의 권력가들과 결탁하여 귀족과 같은 지배 계층이 되어
산헤드린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세력을 유지하였던 세상의 권력과 영광으로
헛된 믿음을 종교의식으로 가장하고 정당화 한 전통을 정통(正統)화하여
하나님의 의를 팔아먹은 종교인들이라
모두가 합심하여 예수님을 배척하고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무리들은 종교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 이었고
오늘날 복음의 길에서 어그러진 길의 세속화한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의
건물에서 화려한 가운을 입고 거룩한 척 하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똑 같이 세상의 부를 갈망하기에
그런 자들과 세상의 부의 축적에 목멘 부자들에게 그들에게 변화를 바란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24]

신앙은 믿음에 생명을 둔 생활이기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낮아짐의 겸손에 두기에
믿는 자라도 완벽한 믿음을 가진 자가 없기에 자랑의 교만을 버리고
완벽하신 예수님을 닮으려다 지치면 긍휼을 구하며 낮은 데 처하는 믿음의 자세를
갖아야 하는데 믿음이라는 순수함에 벗어나 교만하여 저서
자신의 믿음과 지식에 술이 취하듯 취(醉)하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고
자신의 권위를 더하면 특별히 선택된 자로 망상(妄想)하여 과대망상이 되면
몽롱한 혼돈에서 몽상(夢想)에 빠지고 종교적인 몽상가(夢想家)된다.
이런 자들은 종교개혁의 개혁 기념일을 꼬박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종교개혁의 동기와 원인, 내용, 가치 등을 거창스레 떠벌리지만
본인은 종교 개혁자들이 사제에서 목사로 바뀐 호칭도 모르고
가톨릭의 사제의 복장인 로만칼라를 입고 개혁을 말하며 거드름을 부린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
교만은 만 악의 뿌리이다.
높아 질려는 교만은
하나님과 동등해 질려는 타락한 천사, 사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교만은 우상숭배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이사야 2:11-12]
교만한 자, 자신을 뽐내는 자,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자에게
낮아지는 비천에 처하는 심판이 임하기전에 교만을 버리지 않는다면
공평하시고 공정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에
로만칼라나 가운을 착복한 위선자들에게
이곳에서 수 없이 충고를 했고 이제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가 특별한 신분을 드려내려고 복장으로 신분을 표출하는가.
예수님도 제자들도 사도바울도 아무도 특별한 예복이나 남 다른 복장을
하지 않았고 이 성직자의 복장이 중요한 건 구약의 제사장과 왕의 예복이
예수님의 복음 이후에 다 사라진 것은 복음은 만민을 위한 복음이라
만민은 공평하신 하나님 안에서 공평하고 평등한 같은 생명이라
생명을 위한 생명의 법이 복음이고  
복음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의 완성이며
거룩하신 사랑을 본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가 자녀로 같은 신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가로막는
높아 질려는 신분으로 구별된 성직자의 복장은
평신도라는 기이한 차별을 만들었음은
중세의 귀족과 평민을 나누듯
‘성직자’ 라는 신분이나 호칭이 이미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증거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멀어진 자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이며
자기 신앙의 자기모순을 스스로 드러내는 표시의 복장이다.

그러니 담임 목사라면 얼마나 명예로운 직분인데 당회장이라니
집사는 어떻고 장로는 어떠한가.
집사는 집사이지 서리집사 안수집사는 무슨 직분이고
안수집사는 안수 받았다고 자기들 끼리 모임을 갖고 더 하여 안수집사의
회비인지 헌금인지 알 수 없는 돈을 내는 일은 무엇인지 돈, 돈 이다.
하긴 돈 없으면 장로 되기 힘든 교회가 많으니
교인을 붙잡기 위한 직분, 신분처럼 갈라놓고 평생 직분이 이름처럼 서로
부르는 호칭, 이건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한 직분이기에 직분에 걸맞은 성경의 지식으로 인생관과
교회관, 세상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하는데 직분자라면서
교회의 지도자라면서, 신학자라면서
성경적인 체계화된 가치관을 스스로 정립하지 못하여 직분에 매여 직분이 계급이 되어
분쟁의 원인이 됨을 수 없이 보고 듣는다.
왜 그럴까.
대체적으로 직분에 상관없이 성경을 읽지 않아 복음의 본 뜻을 모른다.
열심히 있어서 교회에서 숫한 예배와 수많은 종류의 헌금을 하면서
믿음의 근거인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불가사의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성경을 제대로 강해하고 설교 못하는 목사들은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
예문과 예화로 설교시간을 허비한다.
읽더라도 성경의 내용을 자신의 눈에 보기 좋게 맞추고
자신의 높이에 성경을 두기에 자기 의에 빠져서
믿음이라는 신앙의 생활이 자신의 환경과 인적 교류도 초월하지 못하여
자신이 만든 자신의 벽에 갇혀 자신도 바라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기호(嗜好)에 맞는 성경의 구절과 장과 권으로 성경을 재단(裁斷)하고
남을 재단하기에 자신의 도취에 취하고
더하여 감성의 높낮이에 좌우되는 믿음이 되어 믿음의 실상과 멀어지고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전통과 관습과 습관과 버릇으로
스스로 굳어진 믿음은
세상의 사상과 철학과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눈이 가려
성경을 읽고 신학을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에 눈이 먼 장님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를 자신의 구실로 변명을 찾으면
성령님의 인도로 받지 못하여
눈에 보기 좋은 전통의 구습(舊習)을 따르는 답습(踏襲)을 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에 멀어지고 끊어지면
말과 글로는 정통(正統)신학, 정통교단, 정통교회 라 자부하지만
스스로 만든 자신의 믿음의 우월감 위에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고 찬양하는 사이비가 되면
그렇게 굳어진 마음과 영혼에 찔림이 없어
관료화된 종교인이 되어 입에 머문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찾는다.
이런 지도자들 따르면
감성적 분위기와 자기 복음의 자기도취에 취한 광신자와
진리와 거짓을 혼동하여 자기변명의 구실로 삼은 맹신자 되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수치(羞恥)를 잃은 자들은
자신을 위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직분을 받지 말거나
직분을 받았더라도 쉼이 필요한 자 이거늘
어리석은 자와 어리석은 목회자는 광신과 맹신자를 선호(選好)하여
직분을 주고 자신의 세력으로 삼아 자신마저 맹신과 광신의 한통속이 되어
높은 자리에서 아래를 살피듯이 살피다 높은 자리에 거 한다.
높은데 거하는 자들이여
내려오라.
[바위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레미야 49:16]

지체(肢體)는 다르나 직분(職分)은 같으며
직분은 다르나 지체는 같으며
모두가 성도라는 진정한 직분은 같다.
내려가야 한다.
낮아 저야 한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예수님 말씀처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씀같이
낮아짐의 교훈을 되새길 세대가 우리의 세대이다.
실천하여 지도자인 목사부터 은퇴 후 자기가 임명한 서리집사의 직분으로
내려가면 성도가 서로 더 교통(交通)하고
그런 목사가 많을수록 교회와 교회가 더 교통할 수 도 있다.
그럴 수도 없다면 직분을 남용하지 말 것을
소명(召命)이라는 잘못된 소명과 더불어
남용한 직분이 한국교회의 지난날과 오늘날의 병폐임을 모르는가.
하나님의 종이라 면서 상전(上典)이 되어 주인이 된 종들,
챙길 돈은 이 명목 저 구실로 다 챙겼으면서 무엇을 섬겼다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지,
잘된 건 모두 자기 탓으로 믿고, 잘못된 건 모두 남 탓으로 믿는
자신의 믿음의 능력과 망상에 빠진 과대망상증 환자들,
돌아가자.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의 숭고하고 고귀한 길을 따라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 ‘charity’ 의 길로 가서 사랑을 본받자.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안다고 말씀하셨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는 일들이 언제나 일어나고 더해서 고함과 폭력이 오가고도 모자라
세상의 법정에 위임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리고 원수같이 외면하고 딴 살림을 차리듯
교회를 세우는 일들은 다반사인 시대라
그리스도 인 으로 수치를 잃고
서로 책임을 미루고 전가하는 모임의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 이럴 진데 교회 밖에서는 어떻겠는가?
교계의 모임은 어떻고...
복음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도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관을 심는 일이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인 다 운 정신적인 문화를 만들고 조직이 조직의
유지를 위한 안일한 관리자로 관료화 되지 않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개혁하고 다음 세대에 그리스도인으로 본이 되는 계승적인 문화로 발전하고
끝임 없이 변화하는 개혁적인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현대의 교계는 그런 원동력을 잃었다.
원인이 무엇인가?
신앙이 관습과 관행으로 굳어진 종교화된 조직, 조직의 유지를 위한 조직,
관료화가 된 조직이 되었기에 개혁되어야 할 신앙이 제도화 되어 겉모습만
교회고 교인인 현상은 변화하지 못한다.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내가 사랑한 것 같이
생명을 버리기 까지 하시며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를 간직한 사랑이 우리의 생명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하나의 사랑인, 생명인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안에 함께 거하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I am the vine, ye are the branches: He that abideth in me,
and I in him, the same bringeth forth much fruit:
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요한복음 15:5]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포도가지인 우리가 함께 거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랑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듯
He that abideth in me,
예수님께서 성령님 안에 계시듯,
and I in him.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 ‘charity’ 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서로 사랑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의, 공의를 이 땅에 이루는 하나님의 뜻이며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성령님을 통하여
힘(the power of the Holy Spirit)으로 우리 삶을 공급하시기에
그 공급하시는 힘을 받은 권능(power of charity)으로
‘열매를 많이 맺나니
he same bringeth forth much fruit’
하나님과 예수님을 닮아가는 열매를 많이 맺나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라 법이 없느니라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longsuffering, gentleness, goodness,
faith, Meekness, temperance: against such there is no law.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성령의 열매, 성령님의 권능은 사랑으로 시작함은
포도나무 이신 예수님과 가지인 내가 사랑으로 붙어 있고
다른 가지인 형제자매도 사랑으로 붙어 있기에 한 포도나무에 같이 붙어있는
사랑이 생명이기 때문이고
이것을 다른 비유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지체라는 말과 같은 말이기에,
성령의 권능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으로 시작하고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의,
우리의 화답이자 대답적인 삶이므로 산 예배이며
그리스도 안에 거한 자, 성령 안에 거한자의 열매이며
이 권능으로 맺은 이 열매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
이 법, 성령의 법을 금지할 법이 없고 이 사랑의 법을 지키지 아니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25-26]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는 말씀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야 하기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예수님을 떠난, 그리스도의 사랑을 떠나서는 성령님도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우리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교제는 물질을 나누고 형제자매의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고 서로 한 몸을 이루는 지체는
‘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
헛된 높아지려는 직분에서 내려와서 낮아지고 겸손하여 생활로 본을 보이는
지도자가 되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는 모범을 보이고
헛된 명예적인 직분 때문에, 헛된 권위로 서로 상처를 주는 받는 일로
마음에 분을 쌓은 행위를 하지 말고,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는 일과 사건은
성령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
성령으로 살려면
그리스도의 사랑(power of charity)에 거하여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힘(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의 생활로  
연습과 훈련이 ‘경건’ 이다.

어떻게 몸과 마음을 다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고
주께서 사랑한 것 같이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있는가?
인간적인 믿음의 한계와 환경적인 원인 등으로 할 수 없지만
경건으로, 조금씩 습관이 되어 버릇이 되듯이 더 많이 더 크게 사랑을 할 수 있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성령님께서 능력을 주시며 도우신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는 삶
그 능력을 취하는 연습, 경건을 참 모습을 성령님께서 원하셔서
이 무기력한 시대, 우리를 찾으신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And the Lord direct your hearts into the love of God,
and into the patient waiting for Christ.  데살로니가후서 3:5]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은 신인합일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지상논쟁1-2 교회와신앙측
1996년 09월 01일 (일) 00:00:00 최삼경 sam5566@amennews.com

윗트니스 리 씨(지방교회·회복교회)는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동시에 상당 수준 이단 시비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윗트니스 리 씨 측에서 기존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여 지난 호부터 본지와 지상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호에는 예정대로 본지 발행인 최삼경 목사의 글을 싣는다. 다음은 윗트니스 리 씨 측의 순서다.<편집자 주>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에 대한  지상논쟁을 시작하면서

이번에 윗트니스 리 편의 요청에 의하여 이런 지상논쟁이 본 지면을 통하여 개설되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필자는 윗트니스 리 편의 자발적인 참여를 귀하게 여기며 다음과 같은 점을 미리 주지시키고 싶다.

무엇보다도 유익한 논쟁이 되기를 바란다. 논쟁이란 잘못하면 유익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기 쉽다. 그것은 운동선수에게 승리가 목적이 됨으로 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 논쟁에는 객관적으로 인정된 심판이 따로 있지 않다. 단지 독자와 역사의 심판을 기대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 논쟁이 유익한 논쟁이 되기를 바라며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제시하는 바이다.

첫째, 인신공격성 논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 교계에는 이런 논쟁이 별로 없었고, 있었어도 평형이 어긋나 어느 편에 치우친 논쟁이 있었으며, 때로는 인신공격적인 논쟁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하는 것이다. 이단논쟁은 분명히 교리적인 논쟁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단으로 지목받는 편에서는 비록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교리적인 논쟁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신공격적인 형태로 발전되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논쟁의 핵심을 피해가지 않기를 바란다. 본지는 창간 이래 지금까지 정통교회나 필자가 이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반론권을 보장해 주었다. 그것을 좋게 보는 정통교회 교인들도 있었지만 “무슨 이단에게 반론권이냐“, “이단의 글을 어떻게 넣어 줄 수 있느냐“, “그렇게 하다 이단에게 미혹을 받으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등의 항의를 종종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지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이단 연구의 객관성을 보장하자는 것이요, 또는 만의 하나 이단 연구에 잘못이 있으면 시정하겠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지가 이단이라고 규정되거나 지목받는 자들에게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는 뜻을 상대편에서는 마치 자신들의 교리 선전장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특히 그 동안의 안식교와의 논쟁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바라기는 혹 내적으로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표면적인, 일차적인 목적만은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한 내용 중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또는 무엇이 잘못 이해된 부분인지 그것이 논쟁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논쟁을 할 때마다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는 공통적인데 자신들의 교리가 옳아서(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정통교회가 이단이라서) 이단이 아니라는 말인지, 아니면 정통교회가 자신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이단이 아니라는 말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혹 자신들의 교리 선전장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일차적인 목적이 형식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해도 하고 묵과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의 핵심은 신인합일주의다
우리 몸은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저 병은 이 병을 불러일으키듯이 어떤  사람의 사상은 여러 가지 사상이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단성도 교리마다 고리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사상을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포도송이가 꼭지에 붙어 있는 것처럼 하나의 핵심 사상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의 핵심 사상을 말한다면 신인합일주의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의 면에서 시작하고 진행되고 발전하며 그것을 목적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상 속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합일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에게 어떤 이단성이 있는지 그 핵심은 예장 통합측의 결의를 소개한 본지 전호에 명시되었다고 본다. 비록 윗트니스 리도 양태론을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삼위일체관 역시 양태론적이다. 또한 인간관도, 기독관도, 교회관도 정통교회와는 다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모든 사상들을 끌고 가는 핵심 사상을 신인합일주의라고 본다. 앞으로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교리들 속에 있는 그의 이단성을 하나씩 밝혀가겠지만 본 호에서는 서론적으로 신인합일주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 교리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필자의 본 글이 너무나 함축적이라서 평신도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앞으로 진행되는 논쟁을 지켜보면 충분히 이해되리라 믿는다. 먼저 그의 신인합일주의 사상을 살펴보자.

윗트니스 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경륜 내지는 창조 목적은 사람 속에 하나님 자신을 넣어 사람으로 하나님과 같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 10~11; 하나님의 경륜, p. 10, 244 등). 이 사상은 중요하므로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겠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해 주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그분 `자신' 만을 우리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그분 자신이 곧 그분의 모든 자본이다. 그 자본을 가지고 하나님은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사업가도 되고, 자본도 되고, 생산품도 되신다. 그분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많은 사람에게 대량으로, 값없이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하나님의 경륜, pp. 9~10, 1987).

“하나님은 어떠한 목적으로 사람을 창조했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하셨다. 나는 `담는 그릇'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릇'이라는 말보다 더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빈 그릇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내용이 되기를 원하신다. 좀더 설명을 하자면 병은 음료를 담는 데 필요하며 전구는 전기를 담는 데 필요하다. 사람은 하나님을 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담지 않고 우리의 내용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모순 덩어리인 것이다. 하나님은 내용이며 우리는 이 내용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담아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한다“(위의 책, pp. 51~52).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 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와 뜻의 중심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자신을 분배받는  그릇이 되게 하려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셨다. 온 우주 가운데 시간과 우주와 영원에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안에 공급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변화의 최후 완성은 하나님과 사람의 우주적인 연합이다“(위의 책, p. 244).

위와 같은 말을 그의 책에서 인용하려면 너무나 많다. 모든 교리에 가득 차 있다. 그것이 그의 핵심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만 들으면 무엇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모른다. 더욱이 대부분의 한국의 크리스천마다 간접적으로 워치만 니나 윗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성도라면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는 것이 상례인 점을 볼 때 오히려 옳은 말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이 바로 윗트니스 리의 신론에도, 기독론에도, 그리고 인간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결국 구원론까지 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구조를 영·혼·육 삼분설로 보고 그중에도 항상 영을 강조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첫째는 우리의 영을 거처로 삼아 일하시고, 둘째는 혼에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고, 마지막으로는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의 몸도 변화시키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몸에 거하여 혼에 영향을 주고 끝으로 혼을 통하여 영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하나님의 경륜, pp. 136~137).

그래서 그는 `육신은 악한 것이요, 영은 선한 것'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든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 성령을 받은 우리보다 못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즉 인간에게는 성령과 사탄의 중간은 없다고 말하면서(하나님의 경륜, p. 139), 창조시 만든 인간은 순수한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중립의 순수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위의 책, p. 127). 결국 인간의 타락은 사탄이 인간의 몸 안에 들어온 것으로서(위의 책, p. 130,  138; 사람의 영, p. 45)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이비나 이단들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입으신 주님의 경우 예수님에게 죄는 없다는 말은 하면서도 육신을 입고 있었을 때는 신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인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하고(그의 영과 몸, p.  73), 또한 예수님에게 죄는 없었다고 하면서도 사탄의 모양인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셨다고 말하고(하나님의 경륜, p. 131), 따라서 그 인성은 거룩해져야 할 필요마저 주장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함으로(그의 영과 몸, p. 76) 정통교회에는 없는 불경스런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육신도 하나님 사랑의 실현과 구속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 속에 들어오시기 위한 신인합일의 측면에서 이해했으며(하나님의 경륜, p. 215),  예수님의 부활도 자신을 우리 안에 생명을 넣어 주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며(성경의 핵심, p. 29),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을 영적으로 호흡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오 주 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도 바로 그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호흡한다는 것이다(그 영과 몸, pp. 29~30).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오 주 예수여!“를 외쳐도 영적으로 호흡하는 의미는 없을 것 같으며, 그리고 승천하신 주님이 육신을 입고 있을 의미도, 우리가 부활한 후에 육신을 입고 있을 의미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바로 윗트니스 리가 양태론을 이단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주장이 양태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은 수박 덩어리요, 아들은 조각난 수박 조각이요, 마지막으로 성령은 우리 몸에 들어가는 수박즙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며 삼위일체 하나님(그의 말에 의하면 삼일 하나님)을 설명한 것도 신인합일주의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양태론적인 비유인 것이다(본호에서 필자에게 할애된 지면이 적어서 다음에 구체적인 비판을 하겠다).

결국 회복교회 교인들이 아무리 주님을 호흡한다고 “주 예수여“를 외치지만 그 예수는 우리가 믿는 예수와 다른 예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이유를 하나만 든다면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함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육과 혼만을 위해서 죽으시고 영을 위해서는 죽으실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의 범위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받을 구원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워치만 니의 사상과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한때 한국교회를 휩쓴 것을 한국교회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본다. 지금도 워치만 니의 책을 출판하는 기독교 출판사가 있으며 또한 윗트니스 리의 책자를 판매하거나 선전하고 있는 언론들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경계되어야 할 위험한 일이라 여겨진다.
(월간<교회와신앙> 1996년 9월호)

 



서울 아산병원 3층 수술실의 이춘성(56) 정형외과 교수는, 조각하는것처럼살을 째고 파고 벌리고 깎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척추 명의(名醫)로 소문이 나 있다. 그에게 수술을 받으려면, 1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그런 그가 최근 출간한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손이라는 책에서, 의료계의 장삿속인, 수술에 대해서 내부 고발을 했다.

척추 수술을 많이 하고, 성공률이 어떻다고 자랑하는 병원은, 일단 의심을하면 된다. 허리 디스크의 80%는,감기처럼 자연적으로 낫는다. 수술을 안해도 좋아질 환자에게, 돈 벌이를 위해서 수술을 권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새로운 시술법치고, 검증된 것이 없다. 보험 적용도안 된다. 결국 환자 입장에서는, 돈은 돈대로 버리고, 몸은 몸대로 망가진다.

1.구체적으로 무엇을 두고 그렇게 참지 못하는가?

척추 수술만 예로 들면, 한동안 레이저 디스크 수술이 유행했다. 레이저 고열로, 디스크를 녹인다는 것이다. 그걸로 좋아질 증상이라면, 가만 놔둬도 좋아진다. 오히려 시술시 발생하는 고열로, 주변의 뼈나 신경이 화상을입을 수 있다. 로봇 수술, 몸에 흉터를 안 남긴다는 내시경 수술, 5~10분 만에 디스크를 제거한다는 수핵 성형술 등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주현미의 노래 제목처럼, 길면 3년 짧으면 1년이 딱 이것이다. 요즘에는 신경 성형술이, 획기적인 치료법인 양 퍼지고 있다.

2.시장에서 수요가 있다는 것은, 그런 수술을 받아본 환자들이 효과를 봤기 때문이 아닌가?

신경 성형술은, 가느다란 관(管)을 몸에 집어 넣는데,
그 비용만 200만원이 넘는다. 검증된 적 없는 이런 시술에, 왜 고비용을 물어야 하는가? 이는 우리나라 만의 현상이다. 좀 좋아진 기분이 느껴졌다면, 시술 전에 맞은 스테로이드주사 효과일 뿐이다.

3.그들도 같은 전공 의사로서, 나름대로 판단이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양심을 속이고 한다.
그렇게 3번쯤 반복을 하면, 자신도 그런 시술이 정말 옳다고 믿는다. 사람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합리화를 하는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4.그쪽 의사들의 반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한때 한 척추전문 병원이,소송을 제기했다가 취소한 것으로 안다.
그런새로운 시술법을 팔아먹는 쪽에서는,내게 당신이 해봤느냐? 안 해보고서왜떠드느냐고 한다.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서아는 것이지, 꼭 직접 해봐야나쁜 줄 아는가? 이런 시술은, 보험 적용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횟수가 뚝 떨어진다. 요즘 무릎관절 치료에서, 자기 피를 뽑아 주사하는 PRP 주사가 난리다. 내 전공은 아니지만, 대학병원의 전공의사들과 얘기해 보면, 이것도 역시 전혀 검증이 안 됐다.

5.새로운 시술법을 부정하면, 고전적인 방법이 늘 옳은가?

의료 행위는 인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검증 과정이 몹시 중요하다. 어떤 치료법이 행여 몇몇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전체환자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위험하다.
척추 수술은, 현미경을 보면서 손으로 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방법으로 좋아질 환자라면, 당초 수술을 하지 않아도 좋아질 환자다. 다시말해 그건 불필요한 수술이고, 차라리 안 하는 게 맞는다.

6.허리 디스크 대부분은, 수술을 안 받는 것이 맞는다는 뜻인가?

척추 수술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상업적인 의사는, 환자에게 늘얻는 것만 말한다. 수술을 했다면 목에 굴레가 씌워진 것과같다. 어떤 예기치않은 상황에서, 다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게재발을. 해서 또 수술을받으면 결과는 더욱 나빠진다.

7.선생은 어떤 경우 수술을 결정하나?

수술받아야 할 환자는, 꼭 받아야 한다.
가령 척추관 협착증이나 척추측만증이심한 환자는, 수술이 아니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노인이허리 아프다며 수술해 달라고 하면, 감기가 걸렸는데 폐를 잘라 내야하나요? 하고 달랜다.
나이가 들면, 허리가 아프게 마련이다. 이를 노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운동하면 된다. 어떤 분들은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그랬는데, 여기서도 똑같은말만 한다며 역정을 낸다.

8.이번 책에서 광고를 많이 하는 의사, 실적 홍보가 심한 의사, 운동선수나유명 인사를 치료했다고 떠벌리는 의사는, 일단 의심하라고했는데그 이유는 무엇인가?

흙탕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극소수 의사다.
문제는 그런 의사들이,돈을잘 벌고 번성하고, 젊은 의사들의 모델이 된다. 이 때문에 의료행위가,왜곡되는 것이다.

9.그런 의사들의 경력을 보면, 대부분 외국 명문대에서 연수해서, 선진 의료를 배운 걸로 되어있는데도 그런가?

외국 명문대 병원에서, 일주일쯤 어깨 너머로 슬쩍 들여다보고 와서는,
이력서에 어느 대학 연수라고 쓴다.
특정 수술법 세미나에 참가비를내고, 하루 이틀 참석을 하고도, 수술법 연수 과정 수료라고 한다. 교환교수니 초빙교수도, 하나같이 사기다. 외국 명문대 병원에서, 그런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드물게 특수분야의 대가라면 몰라도. 그런타이틀을 앞세우고 방송에 자주 출연하면, 우리 사회에서 스타 의사로 대접을 받는다.


▼사랑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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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속 인생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연인이란 ! 비오는 날 우산 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 비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좋은글이라고 지인이 보내주시어 올려 봤답니다 행복한 한주간 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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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ter Discus Underwater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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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객실에서 수중의 웅장한 전경을 볼 수 있는 수중호텔이 폴란드 디오티(Deep Ocean Technology) 회사가 두바이에 건설을 시작하였다.

수중호텔을 이용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고, 호텔내의 각종 최첨단 시설과 우아하고 넓은 레스토랑, 스파, 수상스포츠, 옥상에 해수 수영장, 다이버를 위한 훈련 수영장, 인공위성 연결 인터넷과 전화 및 활기찬 산호로 둘러싸인 수중세계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완전 방음이 되어 있고, 특수 조명시설, 투명성 커튼, 운송을 위해 고속보트, 헬리콥터가 항시 대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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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연합단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에 WCC 이단사상을 끌어들이고, 종교 다원주의와 공산주의, 동성애를 추구하는, 한국교회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KNCC는 마땅히 해체되어야 한다.


KNCC(구NCCK)는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소속되어 있는 종교단체로써, 지난 2013년 WCC 한국개최를 주도했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1. KNCC는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KNCC를 중심으로 종교 통합운동을 하는 WCC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석가탄신일마다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플랜카드를 내건지는 이미 오래 전입니다.


미루어 보건데 한국에 이슬람 세력이 더 밀고들어오게 된다면, 이들과도 손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니, 가장 앞장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KNCC는 공산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전복 내란음모죄로 복역중인 종북간첩 이석기를 위한 탄원서를 보냈던 것은 물론, 비전향 장기수(6.25 북한군으로 민주주의로 전향하지 않고 수감중인 군인)를 돕는 '고난받은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에게도 2007년에 인권상을 준 바 있습니다. 


2016년 2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북한의 조그련 연맹회장을 만난 후, 실무회담을 진행한 후에 국가에 신고를 해, 1000만원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최근 WCC측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KNCC에 대한 벌금형을 철회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내정간섭입니다.


3. KNCC는 동성애를 옹호합니다.

 

지난 2007년,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부결되자 강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으며, 2015년에는 '우리들의 차이에 직면하다, 부제 교회 게이 레즈비언 교인들'를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오는 2016년 4월 28일,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 대담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2014년 KNCC에서 수여하는 인권상에 군인권센터 임태훈소장이 수상을 한 바 있는데, 이 사람은 커밍아웃 동성애자로써 징병신체검사를 거부하고,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자 인권연대를 창립한 사람입니다.


그가 인권상을 수상한 이유는 '아직도 만연한 군대 내 폭력과 비민주적인 병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노력해온 점'을 치하하여 인권상을 줬다고 하는데(2014년 12월 9일 28회 한국기독교헙의회 인권상), 이런 병역거부자에게 군 인권상을 줬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행태입니다. 병역거부는 반국가행위가 아닙니까? 



★ WCC를 지지하는 KNCC




★ 종교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KNCC






★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끌어들이는 KNCC





탈북동포회 성명서




WCC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



★ 동성애를 조장하는 KNCC










KNCC는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운동, 공산주의, 동성애를 지지하는 단체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라 반국가적, 반기독교적, 탈종교적, 탈이성애적, 반자유민주주의적 색채를 띄고 있습니다. 아니 전부 그런 성향입니다.


과연 이 단체가 계속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체로 남아 있어도 될까요? 앞으로 이 단체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친이슬람, 더 높은 수준의 자유주의 신학, 더 높은 수준의 친동성애, 더 높은 수준의 친공산주의.


여기에 계신 모든 님들과 제가 치를 ?며 막고자 했던 WCC, WEA, 종교통합, 적그리스도, 공산주의, 동성애를 옹호하는 단체입니다. 아니 이 모든 것을 교회로 신학교로 끌고 들어온 단체입니다.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길을 열고, 방법을 만드는 단체가 바로 KNCC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절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들에게 명상과 같은 수준일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회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동성애와 적그리스도 세력으로부터 한국교회와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번 4월 28일을 막는다고 해도 그들은 다시 이런 강연과 세미나를 열 것입니다. 이 단체가 계속적으로 존속,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의 헌금이 이런 단체의 유지에 사용된다는 것이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바로 'KNCC의 해체'라고 생각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에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시록 18장 4절)


조금 전 KNCC 측에서 동성애 초청강연 취소를 요구하는

300개가 넘는 게시글을 모두를 삭제시켰습니다. 

(2016년 4월 25일 오후 4시 10분 현재)


서울시보다 더한 자들입니다.

여러 성도님들 목사님들, 다시 한번 힘을 내주십시오. 한국기독교인들과 한국교인의 목소리를 조롱하는 KNCC는 한국교회에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kncc (02-742-8981)

한국기독교회관 (02-763-9746),

kncc 인권센터 소장 정진우 (02-743-4472)

홈페이지: http://www.kncc.or.kr/sub04/sub02.php



퍼온 글/주님사랑합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2006년 커밍아웃을 하고, 2013년엔 그의 동성 파트너인 김승환과 청계천 광장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려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던 김조광수가 오는 4월 28일 한국교회협의회(NCCK)의 초청으로 ‘대화마당’을 개최한다.


현재 동성결혼 합법화 소송을 진행 중인 김조광수를 한국교회협의회가 한국교회 토론의 산실인 한국기독교회관에 초청하여 동성애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이 행사를 계획한 정진우 NCCK 인권센터 소장은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는 낯선 문제”라면서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만큼 어떻게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것인지 대화하기 위한 말 그대로 대화마당”이라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NCCK는 동성애를 옹호하지 않는다. 동성애 옹호를 한 적도 없다”면서 “‘우리들의 차이에 직면한다’는 책도 세계교회가 동성애에 대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이해를 알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기회가 닿는대로 동성애 반대 등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한다”면서 “현재로서는 행사를 취소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기독 네티즌들, NCCK 김조광수씨 초청 행사 놓고 동성애 옹호 비판

 


* 2013년 WCC 부산총회 당시 개최지인 부산 벡스코에 동성애자(LGBT)들을 위한 부스를 마련하고 한국교회 안에 동성애를 전파하기 위한 밑밥을 뿌렸던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이제 세계교회협의회(WCC) 한국지부인 한국교회협의회(NCCK)를 동원하여 이 땅에 동성애를 전파하기 위한 노골적 행보를 시작하고 있다.



wcc 부산총회 기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벌어졌던 666 퍼포먼스

 


wcc 부산총회 기간 동안 부산 벡스코에 설치된 동성애자들을 위한 홍보부스

wcc 부산총회 이후 교회 안에서 십자가에 M자 형태로

천(영대)을 걸어두는 '마리아 십자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WCC 부산총회 이후 2014년 5월엔 ‘신앙과 직제(를 통일하기 위한) 협의회’를 발족하여 한국교회 안에 마리아 십자가(M 십자가)와 같은 카톨릭의 우상을 퍼뜨리는 일에 힘쓰더니, 이제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동성애로 거룩한 교회를 더럽히려 하고 있다.


이제 어떠한 명분이던 이 가증한 회합(WCC, NCCK)에 동참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한국교회 안에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려는 WCC(NCCK)의 사악한 음모를 막아내지 않는다면 조만간 교회 안에서 이런 커플들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관련글 >>

1. WCC 부산총회 이후 종교통합의 행보가 구체화되고 있다.

2. “한국교회는 '동성애'를 수용하라!” - NCCK 



출처: 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선인장 닮은 꿈나무 
                    최송연
 
온상에서 
곱게만 자라는 나무 
너무 부러워하지 마

그것들은 줄기가 연해서
작은 비바람도 견디지 못하고
쉽게 부러지니까

힘들었던 과거
아팠던 인간관계
그 속에 갇힌 채
울고만 있으면 뭘 할 수 있나

차라리
쓰라린 경험을 거름삼아
마음 밭 토양을 가꾸고 
그곳에 날마다 한 그루 
꿈나무를 심는 거야

사막에서도 
한 송이 고운 꽃을 피우는 
선인장 닮은 꿈나무를 말이야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

 

 

선인장 닮은 꿈나무
                    최송연

온상에서
곱게만 자라는 나무
너무 부러워하지 마

그것들은 줄기가 연해서
작은 비바람도 견디지 못하고
쉽게 부러지니까

힘들었던 과거
아팠던 인간관계
그 속에 갇힌 채
울고만 있으면 뭘 할 수 있나

차라리
쓰라린 경험을 거름삼아
마음 밭 토양을 가꾸고
그곳에 날마다 한 그루
꿈나무를 심는 거야

사막에서도
한 송이 고운 꽃을 피우는
선인장 닮은 꿈나무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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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구하는 것에 목숨을 걸지 말아라.
      하나님을 먼저 만나는 일에 목숨을 바치는 백성이 되어라.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다.

      2. 컴맹이 되지 말아라.
      인터넷에 도사들이 되어라.
      그러나 섬기지는 말아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지도록 기도하며 컴퓨터를 다스려라.

      3, 남들이 싫어한다고 슬퍼하지 말아라.
      남들이 좋아한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무시당하지 않는 영향력을 발하는
      인생들이 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기도하자.

      4. 불이 없이는 도자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을 만나야 아름다운 흙이 아닌 도자기가 된다.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 아름다운 도자기로 만들어지는
      순간임을 기억하자. 피하기 보다는 감당하는 인생들이 되자.

      5. "돈을 많이 벌면 십일조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지 말아라.
      지금 조금밖에 없어도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100원의 수입이 있더라도 십일조를 하자.
      그러한 자만이 큰 것도 감당하는 은혜를 누린다.

      6. 영성을 먹이겠는가? 죄성을 먹이겠는가?
      영에 먹이는 인생이 되자.
      영은 기도와 말씀으로 먹이면 살아난다. 그러면 죄성도 죽는다.

      7. 비오기를 기도했는가? 우산을 들고 나가라.
      은혜를 위해 기도했는가? 성경책을 들고 나가라.

      8. 찬양 테이프는 꼭 사서 들어라. 복사해서 듣지 말아라.
      복사된 은혜는 오래가지 못한다. 대가를 지불해라.

      9. 남들이 너의 기도를 비난하는가? 변명하지 말고 웃어 넘겨라.
      싸울려고 하지 말아라. 우리는 사람과 싸우는 존재들이 아니다.

      10. 3일 동안의 수련회는 3일동안의 은혜이다.
      그것으로 1년을 버틸려고 하지 말아라.
      수련회가 끝난 뒤 받은 은혜를 자랑하지 말고
      말씀을 읽고 묵상해라. 그것으로 우리는 평생을 승리할수 있다.

      11. 기독교 서적이 일반 서적을 앞지르는 베스트셀러가 될수 있도록
      책을 많이 사서 읽어야 한다. 빌려 읽는 사람은 크게 되지 못한다
      사서읽고 책앞에 내이름을 쓰자.

      12.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교지이다.
      비난하지도 말고 불평도 하지 말자. 기도하는 일이 나의 할 일이다.

      13. 우리의 목표는 1등이 아니다.
      믿는 자는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다.
      백 댄서가 되기를 원하는가?
      최선을 다하여 백 댄서계에 영향력을 주는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인생이 되자.

      14.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젼은 무엇인가? 그것을 자랑하라.
      그리고 기도하고 준비해야 한다.

      15. 신발은 항상 깨끗하게 하고 다녀라.
      우리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들이다.
      그발을 품어주는 그릇도 당연히 깨끗해야 한다.

      16. 우연을 믿지 말아라. 운명도 믿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우연도 운명도 없다. 다? ?섭리가 있을 뿐이다.
      무슨 일이 든지 주님의 뜻을 물어라. 묻는자에게 가르쳐 주신다.

      17. 교회예배에 빠지지 말아라. 영의 살이 빠진다. 영은 찌워야 산다.

      18. 백화점의 세일을 기다리는가?
      공짜로 주는 사은품을 기대하며 달려 가는가?
      하나님의 은혜도 공짜다. 아무런 조건도 없다.
      늦지 말고 달려 가자. 영원히 변치 않는 은혜라는 사은품을 주신다.

      19. 우리의 목표는 사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죽는 것이다.
      영원히 살려고 몸부림 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어떻케 죽어야 할것인가를 묵상하라.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살다가 죽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죽을수 있는 인생들이 되어야 한다.

      20. 휴대폰을 들고 교회에 오는데 성경책은 안들고 오는 사람들.
      하나님의 응답이 휴대폰으로 오는줄 착각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21. 신발을 구겨신고 다니지 말아라. 네인생의 길도 구겨진다.

      22. 수련회에 갔는데 누군가가 좋아진다.
      전도여행을 갔는데 누군가가 마음에 든다.
      속지 마라. 사단의 속삭임이다.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좋아지고 마음에 든다면
      그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23. 내이름이 적혀진 성경책을 가지고 다녀라.
      성경책과는 이산가족이 되지 말아라. 제일 슬픈 영적인 헤어짐이다.

      24. 담배에 중독되지 말아라. 술에 중독되지 말아라.
      컴퓨터에 중독되지 말아라.
      그러나 말씀에는 중독이 되어도 된다.

      25. 오늘도 우리의 소원이 있다면 예수님 꿈꾸는 것이다.
      서로 축복하자 " 잘자 예수님 꿈꿔"

      26. 예배에 집회에 기도모임에 끌려 다니지 말고 끌고 다니는
      주도하는 삶을 살자.

      27. 꿈꾸는 자를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는 요셉의 형들이 되지 말고
      남의 꿈에 나도 도전 받고 오히려 더 큰 꿈을 꾸는 자가 되자. !

      28. 지나간 과거의 남의 잘못을 끄집어 내지 말자.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같은 인생의 모습이다.

      29. 손가락으로 남을 비난하지 말아라.
      비난하는 너의 손을 자세히 보아라.
      하나는 상대방이지만 4개는 나를 향하고 있다.
      나머지 4손가락 모두를 펴라. 그리고 그 손으로 축복해라.
      귀한 손이 된다.

      30.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받았으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이 받는다.
      당신은 사랑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지금도 그 사랑 주고 있는 줄 믿는다.

      31. 빛은 드러내야 한다. 숨기면 안 된다.
      내가 빛인 것을 드러내자. 그래야 주변이 밝아진다.

      32. 찬양 테이프 많이 사서 듣자.
      그래서 조성모의 곡보다 부흥 찬양 테이프가 더 많이 팔리는
      역사를 만들자. 부흥이 일어나는 일이다.

      33. 믿음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가? 슬퍼하지 말자.
      그대는 왕 되신 하나님을 위해 따로 분리된 백성이다.

      34. 돈이 많음을 자랑하지 말고 똑똑함을 자랑하지 말고
      잘생긴 것을 자랑하지 말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랑하자.
      하나님 아닌 모든 것! 들은 사라질 것들이지만
      하나님은 영원불면 한걸 알고 있으면 말이다.

      35. 내일은 오늘과 달라야 한다는 목표를 가져라.
      그리고 시간을 사용하라.

      36.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집앞에서 몇시간이나 기다리는 남자가
      되지 말아라. 망하는 지름길이다.
      기도하는데 몇시간씩 쓰는 남자들이 되어라.

      37. 여자의 화장과 옷차림에 반하지 말아라.
      화장은 모든 것을 감출 수 있다.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습에 반하여 기도하라.
      나도 기도하는 인생이 된다.

      38. 남자의 화려한 모습에 반하지 말아라.
      화려함은 고생을 상징한다. 주님나라 위하여 충성하는 모습에
      찬양하는 모습에 반하여 기도하라. 나도 기도하는 인생이 된다.

      39. 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종이에 써서 책상 앞에 붙여 놓고 하루에 한번씩
      큰 소리로 읽어라.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40. 노동은 기도다. 일 열심히 하고 공부 열심히 하자.
      그것도 주님이 받으시는 기도다. 기도는 노동이다.
      기도는 땀 흘리며 열심히 하자. 대가가 있다.

      41. 중국 선교사가 되길 원하는가? 중국어 지금부터 ? 瓦裏?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길 원하는가?
      아프리카 말 배우고 문화와 역사를 지금부터 배우자.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제발 성경 좀 읽자.

      42. 열방을 품길 원하는가?
      그럼 열방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자. 열심히 하자.

      43.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은 싱거운 것을 맛있게 한다.
      세상에 사는 맛을 보여 주자. 나의 얼굴을 통해서 보여주자.
      웃고 다니자. 싱거울 정도로 말이다.

      44. 여자의 변신은 무죄란다.
      그러나 여자의 회심은 영광이요 축복이다.
      자매들이여! 변신하지 말고 회심하자.

      45. 주목시키지 못하는 것은 칼라가 아니다.
      여기 세상을 주목 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 있다. 바로 복음이다.

      46. 매일 새롭게 배달되는 신문에는 새로운 게 없다.
      그러나 늘 똑 같은 소식과 사건을 적은 그 책은 늘 새롭다.
      바로 성경이다. 읽고 새로워 지자.

      47. 기도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비웃는 자들 편에 서서 함께 조롱하는 자로 서 있겠는가?
      아니면 기도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비난 받으며 무릎을 꿇는 백성이 되겠는가?
      선택은 나의 무릎에 달려 있다.!

      48.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육체도 늙고 죽는다.
      영을 단련하자. 영원까지 이어진다.
      말씀의 운동, 기도운동을 열심히 해서 영을 튼튼히 하자.

      49. 위대한자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꿈을 꾸는자가 위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자. 그리고 위대한 사람이 되자

      50. 위대한 요셉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만들어 진 것이다.
      위대한 요셉으로 만들어 지기 원하는가?
      그럼 고난을 환영하고 기뻐하라 ..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북한"

1. 예전에는 그랬다. 베스킨 라빈스 써리원처럼. 필리핀, 미얀마, 아프리카, 중국 선교하듯, 북한선교도 북한에 마음을 주신 사람이 골라서 하는거라고. 그래서 저분들은 북한선교를 하나보다고.

2. 나의 소원이 통일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동포?! 동포라는 인식조차 정말 있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3. 그러나 탈북형제자매들을 만나보면 정말 우리는 한민족, 한 형제자매 맞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친족이 맞다.

4. 자녀들도 다 같이 나오셨어요? 하고 눈치없이 묻자, 드시던 빵을 입에 문 채로 흐느껴 우시는 탈북자매님. 탈북할 때 막내딸이 아파서 함께 나오지 못했어요. 울음은 점점 거세진다.

5. 남한에 와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할까. 좋은 것 누리면 즐거울까.

6. 아니겠지. 북에 두고 온 어린 딸 생각만 더 깊어지겠지. 네가 이런 것 한번이라도 먹어보면 얼마나 좋을까... 나 말고 너만이라도 이런 자유를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

7.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 이와 같다 하셨다.

8.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5년동안 전세계 기독교 박해지수 1위 국가는 이란도, 소말리아도, 사우디아라비아도 아닌, 바로 북한이었다.

9. 예수님 이름 부르다가 죽어간 북한의 수많은 그리스도인.
강제낙태 당하고 영유아 살해 당하고 개에게 물려죽고, 맞아서 죽고, 생체실험당하다 죽고, 전쟁연습용 도구가 되어 죽고.

10. 근사한 제자훈련 한번 받지 못한, 그들의 믿음보다 더 놀라운 것은.

11. 이런 얘기를 들어도 꿈쩍도 않는 남한의 그리스도인이다. 바로 나다!

12. 그래서, 뭐?! 내 코가 석자인데!

13. 우리 눈에 뭐가 씌인걸까?

14. 비전이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 하셨다.

15. 사단은 분명히 알고 있다. 1948년 제헌국회 때 우리나라 국회에서 하나님께 올려졌던 기도를 그 놈도 똑똑히 들었다.

16. 우리나라 부국강병하여 북한 통일시키고 세계평화위해 사용되는 민족되겠다고, 그렇게 인도해달라고 드렸던 국회속기록 첫장 첫줄의 기도.

17. 우리가 어떤 댓가를 치루든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기만 하면
북한 문 열고 복음 전해서 북한의 주민들 살려내고 이제 세상에 더는 두려울 것이 없을 그 북한 주민들과 함께 복음 들고 국경을 넘어 대륙과 초원으로, 무슬림에게와 예루살렘 그 곳까지... 진정한 세계평화, 곧 세계선교할 민족이기에.

18. 사단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나보다.

19. 마땅히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마땅히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거짓말과 미혹으로, 유혹으로 우리의 감각을 병들게 했다.

20. 하나님, 북한 문이 열려도 우리가 그들에게 줄 선한 것이 없어요!!!

21. 대한민국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북한을 살려요!!! 통일이 되도 미안할 것 같아요.... 눈물이 났다.

22. 하나님의 마음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다가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의 땅. 북한을 누구보다 살려내고 싶으실 것이다.

23. 전세계 성도들이 기뻐 뛰며 찬양을 올려도 하나님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그곳의 절규에 눈물을 흘리신다. 차디찬 동굴에서 흐느껴 우는 지하교회 성도의 울음에 같이 우신다.

24. 그것을 헤아리는 것이 자녀의 도리.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

25.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북한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다.

26. 이것은 분명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해야할 일. 아니,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를 위해 주신 사명이다.

27. 북한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불평하는 대부분의 일은 부끄러운 일이 된다.

28. 북한을 바라보면, 그들의 처참한 삶을 제대로만 바라본다면, 동성성관계 따위를 인권이라고 들고 나올 파렴치한은 없을 것이다. 미안해서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29. 봐야할 것을 보지 않아서 그렇다.

29. 남한이 살려면 북한을 살려야 한다.

30.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 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14:27,28)

31. 헬조선. 이런 쓰레기같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32.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그분은 어디 안드로메다 쯤에나 계신 것처럼. 이땅에서의 삶이 영원무궁한 것처럼. 그분의 전적인 주권아래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그저 엄청나게 억울하고 불행한 일인 것처럼. 주께서 허락하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통해 불평과 원망만 쏟아내는 이 가련한 민족. 그리고 나.

33. 전세계가 "대한민국은 기적과 같은 나라"라고 외쳐도 들리지 않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돌아다녀도 감사가 없고, 사방팔방 무한리필...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도 만족이 없고, 악한 생각, 음란한 곳을 다녀도 찔림이 없고, 편히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사람답게 먹고 자고 노래해 본 적 없는..북한의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이 없는. 이 깊이 병들은 나라.

34. 그래서. 우리가 살려면 북한을 살려야 한다. 북한을 살려내느라 우리가 힘들어도, 우리가 더 가난하게 되어도, 한동안은 더 많이 고생해야 한대도. 성경의 원리대로 '내가 죽어 너를 살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산다. 우리 청년들이 이 민족의 사명을 감당해야...그래야 청년이 산다. 청년수당 몇푼으로 청년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명이 사람을 살린다. 복음이 살린다. 하나님만이 살리신다.

35. 사명을 잊어서 그래.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민족인지 몰라서 그래. 무엇하라고 이렇게 다 죽어가던 이 민족을 살려내셔서 이런 자유와 풍요를 주셨는지 몰라서 그래.

36. 아버지.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기다려주세요. 저도 이제야 눈을 뜨잖아요. 아버지, 저를 기다려 주셨던 것 처럼... 조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출처:사모님사모님;글/목윤희

단 한 사람도 없었다.

90세가 될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황당한(?) 말씀을 하시고 하나님 일행은 소돔을 향하여 떠나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숨기겠느냐 하시면서 소돔으로 가시는 목적을 밝히십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 후손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주시려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살리시려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더 아끼시며(롬8:32) 무엇을 더 숨기시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밝히신 것은 패역한 소돔을 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비록 양과 소가 많아져 목자들이 다투는 바람에 갈라서긴 했지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올 때 자신을 따라온 자식과 다름없는 혈육이요 그돌라오멜 왕에게 잡혀갔을 때 목숨을 걸고 달려가 구해온 사랑하는 자인데 소돔의 악한 자들과 함께 멸망을 당하다니, 그러도록 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소돔에 의인 오십명만 있으면 멸하지 않으시겠느냐고 여쭙니다. 아브라함의 얼핏 생각엔 그까짓 의인 50명 쯤이야 없겠느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드려놓고 하나님이 그러마고 대답하시자 아브라함은 아무래도 의인이 50명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다시 사십오인만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줄여서 다시 여쭙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그러마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사십오인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40인으로 줄여서 말씀드립니다. 다시 삼십인, 이십인, 결국 십인, 열 사람만 있어도 소돔을 멸하시지 않으시겠느냐고 말씀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의인 십인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말씀을 못 드리고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가셨습니다.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소돔성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의인이 단 열 명도 없었단 말입니까? 저는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목사님의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보라, 소돔이 의인 단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을 보라, 얼마나 많은 죄악과 패역과 어두움이 뒤덮고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것은 바로 여러분 그리스도인들 때문이다. 여러분이 바로 열 명의 의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어두워가는 세상, 이 썩어져가는 세상 가운데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한다.” 대충 그런 내용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대화하실 때 말씀하신 ‘의인’, 단 열 명도 없는 그 의인은 어떤 사람을 뜻하는 것일까요? 행실이 바르고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아니한 정직하고 순전한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일까요? 구제를 하고 자비를 베풀며 사랑으로 섬기는 헌신자일까요? 정의와 공의를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용감한 사람일까요? 그런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없다. 단 한 명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롬3:10).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사64:6). 자신의 능력으로 의에 이를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은 오직 ‘예수 믿는 자’, '예수의 보혈로 죄를 씻은 자',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은 그 믿음이 하나님이 가리키신 밤하늘 별,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믿음을 가진 의인, 그것도 열 명씩이나 소돔에 있었을 턱이 없지요. 하나님의 약속도 없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믿음도 없는 소돔성은 죄인의 속성, 타락의 본성을 따라 짐승과 같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타락한 오늘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 열 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이 소돔성을 멸하셨을까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단 한 명의 의인이라도 거기에 있었더라면 그 의인은 그 숨길 수 없는 빛으로 소돔성을 밝히고 있었을 것입니다. 산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내가 마지막 날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에는 믿는 자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사라진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단 한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멸하실 수 없으시다면 마지막 심판의 날은 마지막 의인까지도 사라진 다음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 때에는 그 날을 감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 할 그런 끔찍한 환난으로 지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조리 살육당하고 청소될지도 모릅니다. 언제 어떻게 마지막 날이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때에는 모든 족속이 통곡하는 가운데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마태복음 24장). 만일 소돔성의 멸망이 이 세상의 그런 마지막 날을 미리 보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더욱 주를 믿는 믿음을 견고히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도 의인도 다 사라지는 땅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목숨을 버려야 하는 것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두워져가고 있습니다.
의인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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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님이 이끄는 "슈퍼내츄랄" 방송에 출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극단적신비주의로 치닫는 경향이 많으나 오늘 출연한 쉐인 월 목사님의 말씀과

경험은 성경적이기에 여기 올려둡니다.

그 외 다른 분들의 출연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니 책임이 없음을 알려둡니다,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 분별하시기 원합니다,   -목양연가 섬기미 최송연 드림

        내 가슴속에 영원히 계신 당신

         

                                    최송연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르듯

              내 마음속에 회의심 덮칠 때

              당신은 찬란한 아침 빛 되시사

              내 가슴속의 안개를 거두어 주소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물처럼

              내 마음에 슬픔이 넘칠 때

              당신은 하이얀 손수건 되시사

              내 가슴속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소서 

              시커먼 먹구름 몰아치듯

              내 마음에 절망감 몰아칠 때

              당신은 무지갯빛 고운 꿈 되시사

              내 가슴속에 찬란한 소망으로

             넘쳐나게 하소서


              망망한 바다 위를 떠도는 조각배처럼

              내 갈 길 알지 못해 유리방황 할 때

              당신은 밝은 빛 등대되시사

              내 가슴속에 구원의 항구를

            밝히 보여주소서.

             내 가슴속에 영원히 계신 당신,
              내가 피곤할 때 나의 능력되시고

              내가 쓰러질 땐 내 손 잡아 일으키시사
              당신이 계신 그 영원한 집으로
              날 인도하소서.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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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2)

우리는 어째서 공룡 화석들을 발견합니까?

화석의 형성은 급격한 매몰을 필요로 합니다. 동물이 죽을 때, 그것은 보통 다른 동물들에게 먹히거나 썩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화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죽은 동물을 보존하고 그것을 광물질로 치환하기 위한 특별한 상태가 필요합니다.

진화론자들은 한때 화석 기록은 동물이 죽고 그것이 서서히 퇴적층에 묻힘에 따라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최근에 화석 기록은 재앙적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 세계의 수 킬로 두께의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수십억 점의 화석을 만들기 위해서 그것들은 빨리 묻혔어여만 합니다. 많은 진화론자들은 현재 화석 기록은 몇백만년의 간격을 둔 몇몇 다른 재앙적 사건들에 의해 생겼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땅은 죄악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따라서 하나님은 전 지구적 홍수를 통하여 “하늘아래 코로 숨쉬는 모든 생명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창세기 6:17).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의 가족과 땅에서 살고 코로 숨을 쉬는 모든 동물들의 대표들 (하나님 자신이 고르시고 노아에게 보내실, 창세기 6:20)을 태울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들 중에는 물론 공룡들도 포함되었어야 합니다.

어떻게 공룡들이 방주에 탈 수 있었나요?

많은 사람들은 공룡이 너무도 커서 방주에 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 지구에서 발견된 골격에 기반한다면, 공룡의 평균 크기는 양 정도의 크기와 같습니다. 실재로, 많은 공룡들은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예를 들면, Struthiomimus 는 타조 정도의 크기이고, Compsognathus 는 닭보다 약간 더 큽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와 아파토사우루스와 같이 단지 몇몇 공룡들만 아주 크게 자라지만, 이러한 공룡들조차긴수염고래같이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보다 크지 않습니다. (파충류는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커다란 공룡들은 아마도 매우 늙은 것들일 것입니다.)

공룡들은 알을 낳았고, 화석으로 발견된 공룡알 중 가장 큰 것은 풋볼 정도의 크기입니다. 따라서 가장 커다란 공룡일지라도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매우 작았습니다. 방주에서 내린 동물이 이 땅에서 번식했어야 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번식력이 최고조에 이른 젊은 동물들을 골라서 방주에 태웠어야 했을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공룡들이 청소년기에 매우 빠르게 성장했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완전히 자란 성체가 아닌 젊은 동물들을 방주에 태우셨을 것을 가정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명명된 600종 이상의 공룡들 모두가 방주에 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창세기 6:20은 땅의 동물들이 각 종류별로 방주에 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종류” (히브리어:min)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한 종류의 공통조상으로부터 많은 종들이 분화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해 왔습니다. 에를 들면, 이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고양이과의 동물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모든 다양한 고양이 종들은 아마도 최초의 몇몇 고양이 종류들로부터 왔을 것입니다. 오늘날 고양이의 다양성은 최초의 고양이가 가지고 있었던 유전적 다양성으로부터 자연선택 혹은 인공선택을 통하여 만들어 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양한 정보의 재조합이 이루어졌고, 다양한 형태의 고양이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돌연변이 (번식 때 생기는 유전자의 복제의 실수)는 또한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연변이에 의한 변화는 최초에 존재했던 정보의 상실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종분화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 분화는 “진화”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세포동물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복잡한 정보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정보에 기반한, 제한되었으며 정보의 손실을 가져오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지 몇 마리의 고양이과 한쌍만 방주에 태우면 충분했습니다.

공룡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이미 발견된 공룡의 골격과 매우 비슷한 뼈 몇 조각만 가지고도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많은 공룡의 이름들이 존재합니다. 아마도 방주에 있었던 공룡들은 50종류 미만이었 을 것입니다.

또한, 노아의 방주는 대단히 컸으며 공룡을 포함한 수많은 필요한 동물들을 충분히 실을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방주에 타지 않은 공룡들을 포함한 육지 동물들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많은 것들은 홍수에 의해 형성된 퇴적암 층에 보존되어서 화석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공룡 화석들은 약 4,500년 전인 이 때 매몰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홍수 이후에도 빙하시대를 포함한 몇 번의 대격변으로 인해 화석이 형성되었습니다.

암석에 보존된 뒤틀린 형태,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좁은 장소에 매몰된 것, 그리고 전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현상 및 몇몇 공룡은 전체 골격이 보존된 것 등은 그것들이 급격하게 매몰되었으며, 엄청난 홍수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왜 우리는 공룡을 볼 수 없나요?

홍수 이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창세기 8:15-17). 공룡들도 따라서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공룡들도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룡들은 방주가 내린 곳을 떠나 세상으로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이들 공룡의 후손들은 용의 전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공룡들이 이 땅을 다시 채우려고 한 세상은 그것들이 알던 이전 세상과는 달랐습니다. 홍수는 그것을 파괴했습니다. 이 세상은 살아 남기에 훨씬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 때부터 동물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할 것이며, 인간은 육식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9:1-7). 이 세상은 인간에게도 더 살기 힘든 곳이 되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과거에 식물을 통해서 쉽게 얻어지던 영양소가 이제는 동물을 통해 보충되어야 합니다.

인간과 동물 모두 그들의 생존 능력이 극도로 도전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화석의 기록과, 인간이 기록한 역사 및 최근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생명체들이 이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식물들과 육지에 살고 코로 숨을 쉬는 동물들이 홍수 이후에도 멸종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것들은 인간의 행위, 혹은 다른 종들과의 경쟁, 혹은 홍수 이후의 척박해진 기후로 인해 멸종했습니다. 또한 현재에도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하고 있습니다. 공룡도 단지 이들 멸종한 다른 동,식물들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공룡들의 멸종에는 그렇게 흥미를 느끼면서도, 고사리의 일종인 Cladophebius 의 멸종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그것은 공룡들이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괴물로서의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공룡의 매력을 최대한 활용했고,  이 세상은 공룡을 중심으로 한 진화론에 관한 선전으로 뒤덮히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진화론적 철학은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현대 사회의 사고 속을 깊숙히 파고 들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동물원에 가서 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지 질문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동물들이 이 지구에서 멸종했습니다. 동물들은 늘 멸종해 왔습니다. 지금껏 멸종한 동물들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는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왜 동물들은 멸종하고 있나요?” 라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명백합니다! 사람들이 동물들을 죽였고, 먹이는 고갈되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을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질병과, 유전적인 문제,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등 – 많은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공룡들에게는 무슨일이 벌어졌나요?” 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잘 모릅니다! 과학자들이 수많은 가능한 이유들을 제시해 왔지만, 그것은 미스테리입니다.”

아마도 공룡이 멸종한 이유들 중 하나는 우리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일찍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동물들의 멸종을 초래하는 원인들, 즉 인간의 죄로인해 발생한 – 이 땅의 저주, 홍수 이후의 환경변화 등 – 이 동일하게 공룡들을 멸종하게 한 원인들입니다.  

공룡들이 정말로 멸종했나요?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대한 지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어떤 생명체가 멸종되었다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어떤 동물이 멸종되었다고 선언한 이후에, 그것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움을 당한 예가 여러 번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탐험가들은 네팔에서 맘모스와 대단히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진 코끼리들을 발견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자들은 공룡과 함께 멸종되었다고 여겨졌던 나무가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과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공룡’을 발견한 것과도 같았습니다.” 과학자들이 오래 전에 멸종했다고 생각했던 동, 식물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그것들을 “살아있는 화석 (living fossils)”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몇백 가지의 살아있는 화석이 발견되었고, 이는 지구가 몇백만년 이상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큰 부끄러움입니다.

아프리카의 탐험가들과 원주민들은 20세기에 조차 공룡과 같은 동물을 보았다고 증언해 왔습니다. 그것들은 보통 콩고의 정글 깊숙한 곳의 호수와 같은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의 묘사는 분명히 공룡과 일치합니다.

미국 원주민들이 그린 동굴의 벽화들 중에는 공룡을 묘사하는 듯 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같은 동굴에 있는 맘모스의 그림은 받아들이면서 공룡의 그림은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는 불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공룡과 인간은 공존하지 않았다고 하는 진화론적 세뇌로 인해서 과학자들은 명백한 공룡의 그림을 공룡의 그림이라고 인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깊은 정글에서 공룡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창조론자에게는 부끄럽거나 놀랄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진화론자들에게는 엄청난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룡의 DNA 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처럼 공룡을 복제할 수 없습니다. 현재 과학자들이 여러 동물들을 복제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을 이용하려면, 살아 있는 암컷 공룡의 난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USA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제자



이혜훈 당선자

“기독교인이라면 악법 통과 수수방관만 해선 안돼”

 

[단독 인터뷰]

"국회로 파송된 선교사라는 생각으로 악법 저지 및 선한 입법 총력"




지난 13일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서울 서초갑에서 당선돼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새누리당 이혜훈(51) 당선자는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악법(惡法)들은 막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법들은 입법하라고 국회에 보내신 줄로 안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총선 직전인 지난달 25일 진행된 기독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국회로 파송된 선교사라는 생각으로 대한민국을 이슬람 세력에 복속시키려는 여러가지 움직임과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차별금지법 등 많은 악법들은 막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당선자는 "정의가 물같이 공법이 하수같이 흐르는 그런 하나님 나라가 아니겠느냐"며 "지금까지 해온 것들 뿐만 아니라 더 열심히 강력한 일들을 하려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많은 분들이 법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데 법이 통과되고 나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폐기되기가 쉽지 않다"며 "굉장히 중요한 순간들인데 이 순간들에 대해서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훈 당선자는 "물론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며 "악한 세력들이 밀어부치면 저 한 사람이나 협력하는 몇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어 그때그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한다"고 전했다.?

 

이 당선자는 "하나님이 역사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구할 때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수없이 목도하기 때문에 날마다 새 힘을 얻는다"고 간증했다.?

 

마지막으로 이혜훈 당선자는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되고 정치는 정치의 영역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일부 있다"며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느냐 지켜지느냐 하는 극명한 위기의 순간에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며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수수방관하면 과연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서 그 손에서 무엇을 찾으실까 하는 부분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인들이 기도도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우리의 손으로 최선을 다해서 수고해야 한다"면서 "기도만 하고 그런 수고는 하지 않겠다는 그리스도인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인지 걱정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이혜훈 의원은 지난달 25일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진행된 유나이티드글로벌TV 개국기념 공개토론회 녹화촬영에서 패널로 참여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saoh@cdaily.co.kr)

 

출처: 기독일보 (www.christiandaily.co.kr/news/이혜훈-의원당선자-차별금지법-695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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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의 뜻

 

 

 

 

뜻:그렇게 이루어 주소서

[1] 구약의 용례
[2] 신약의 용례
[3] 기타

[1] 구약의 용례

1.답변
1)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되 가로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왕상1:36)
2)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오시기를 원하노라 (렘 28:6)


2. 동의
1)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할찌니라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찌니라 (신27:15-17;신 27:15-26).
2)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찌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찌로다 하매 회중이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대로 행하였느니라(느5:13).


3.맹세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찌니라 (민5:22).


4.찬미
1)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찌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대상16:36).
2)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느8:6).
3)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찌로다 아멘 아멘 (시 41:13).
4)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찌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시 72:19).
5)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찌어다 아멘 아멘 (시89:52)
6)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찌어다 모든 백싱들아 아멘 할찌어다 할렐루야 (시 106:48).

[2] 신약의 용례

5. 응답
1)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1:2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2)기도에 대하여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14:16).


6.기도를 끝마칠 때
1)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3).
2)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찌어다 아멘 (롬15:33).


7.송영의 처음에
1)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계 7:12).
2)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하니 (계19:4).


8. 송영의 마지막에
1)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성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25).
2)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9:5)
3)이는 만물히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6).
4)지혜로우실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롬 16:27).
5)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갈1:5).
6)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엡 3:21).
7)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서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찌어다 아멘 (빌4:20).
8)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딤전1:17)
9)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딤전6:16).
10)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딤후 4:18).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4:11).
12)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벧전 5:11).
13)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히13:21).


9. 편지의 끝에
1)롬16:27 (8. 4)를 보라).
2)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 (갈6:18).
3)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세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 (유1:25).
4)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계22:21).

[3] 기타

10. 그리스도의 호칭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 3:14).


11.그리스도에 대한 기원
이것들을 증거하실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계22:20,21).


12.그리스도께서 진리를 강조할 때 사용함
1)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로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5:18,26).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
3)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1:51).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a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 3:3,5,11)

 

아멘

 


여러 뜻이 있는데, 동사로는 ‘확실하다’, 명사로는 ‘진리’, 부사로는 ‘참으로’, 끝맺는 말로는 ‘확실히 그렇게 되어지이다’ ‘그렇게 해주십시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원래는 유대인들이 제례의식 때 사용하던 말이었는데, 그리스도교의 예배와 전례(典禮)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신약성서에 포함된 사도들의 편지를 보면 이미 성부 ·성자 ·성신에 대한 송영(頌詠) 다음에 끝맺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로마식 전례를 보면(고린I 14:16), 기도 ·찬가 ·축하식이 끝난 다음에, 또는 성사(聖事)의 집전에서 답사의 끝맺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세례 용어 다음에는 쓰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예배 때에 기도 ·찬송 ·신경(信經)암송이 끝난 마지막에 이 말을 쓰며, 목사가 시편이나 성구를 읽은 다음에도 사용한다. 설교나 기도 시간에 동참한 자들이 그 설교나 기도말에 동감이라는 뜻으로도 쓴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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