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누가. 가.나.다.를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새 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살고 싶은 마음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건 '행복' 입니다.

♡━┓
┃나┃의 빈자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길 기도하는 것은 '아름다움' 입니다.

♡━┓
┃다┃른 사람이
┗━┛아닌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즐거움' 입니다.

♡━┓
┃라┃일락의 향기와
┗━┛같은 십자가의 향기를 찾는 것은 '그리움' 입니다.

♡━┓
┃마┃음속 깊이 주님을
┗━┛그리는 것은 '간절함' 입니다.

♡━┓
┃바┃라 볼수록 주님이
┗━┛더 생각나는 것은 '설레임' 입니다.

♡━┓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보다 침묵속에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 입니다.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것이 '편안함' 입니다.

♡━┓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이해하고 싶은 것이
'배려' 입니다.

♡━┓
┃차┃가운 겨울이 와도
┗━┛추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주님의 '따뜻함' 입니다.

♡━┓
┃카┃나리아 같은
┗━┛목소리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은 '보고 싶은 마음' 입니다.

♡━┓
┃타┃인이 아닌 내가
┗━┛주님 곁에 머물고 싶은 것은 '바램' 입니다.

♡━┓
┃파┃란 가을 하늘과
┗━┛구름처럼 주님과 하나가 되고 싶음은 '존중' 입니다.

♡━┓
┃하┃얀 종이 위에 쓰고
┗━┛싶은 마지막 말이 있다면 '사랑' 입니다.

 

 

출처:사모님사모님/와리스


가리개 ♬ 몸에 생긴 흉터는 옷으로 가리고 얼굴에 생긴 흉터는 화장으로 가린다. Love covers over all wrongs.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려준다
가위와 풀 ♬
잘 드는 가위 하나씩 가지고 살자. 미움이 생기면 미움을 끊고 욕심이 생기면 욕심을 끊게,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고 잘 붙는 풀 하나씩 가지고 살자. 믿음이 떨어지면 믿음을 붙이고 정이 떨어지면 정을 붙이게.
깡통 ♬
빈 깡통은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속이 가득 찬 깡통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나는 깡통은 속에 무엇이 조금 들어 있는 깡통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많이 아는 사람도 아무말을 하지 않는다. 무엇을 조금 아는 사람이 항상 시끄럽게 말을 한다.
거울 ♬
때 낀 거울 닦고 나니 기분 좋네. 한 번 닦으니 자꾸 닦고 싶네. 말갛던 거울 때가 끼니 보기 싫네. 한 번 보기 싫으니 자꾸 보기 싫네. 한 번 마음 먹는 것이 참 중요하네. 한 번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이 좋아지고 싫어지네.
거울과 반성 ♬
이세상에 거울이 없다면 모두 자기 얼굴이 잘났다고 생각하겠지. 어떤 얼굴이 나보다 예쁘고 어떤 얼굴이 나보다 미운지 모르겠지. 사람들의 삶에 반성이 없다면 모두 자기 삶이 바르다고 생각하겠지. 어떤 삶이 옳은 삶이고 어떤 삶이 그른 삶인지 모르겠지.
고민 ♬
고민이란 놈 가만히 보니 파리를 닮았네. 게으른 사람 콧등에는 올라앉아도 부지런한 사람 옆에는 얼씬도 못 하네. 팔을 저어 내쫓아도 멀리 날아가지 않고 금방 또 제자리에 내려앉네. 파리채를 들고 한 놈을 때려잡으니 잠시 후 또 다른 한 놈이 날아오네.
고집 ♬
고집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보고 말했다. “보아하니 저놈은 제멋대로만 하려고 하는 아주 버릇없는 놈이오. 당신은 왜 저런 못된 놈을 데리고 사시오?” 사람들의 말에 그는 한숨을 깊게 쉬며 말했다. “처음엔 저 놈이 어떤 놈인지 몰랐어요. 알고 보니 저 놈은 힘이 무척 센 놈이에요. 내가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저 놈이 날 붙들고 놓아 주질 않는답니다.”
꽃과 바람 ♬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면 꽃처럼 살면 되고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면 바람처럼 살면 된다. 꽃은 자신을 자랑하지도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바람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험한 산도 아무 생각 없이 오른다.
구름과 세월 ♬
무심히 떠가는 흰구름을 보고 어떤이는 꽃 같다고 말하고 어떤이는 새 같다고 말한다. 보는 눈이 달라서가 아니고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심히 흐르는 세월을 두고 어떤 이는 빠르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느리다고 말한다. 세월의 흐름이 달라서가 아니고 서로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귀 ♬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귀를 가졌으면 좋겠다. 남을 칭찬하는 소리엔 저절로 활짝 열리고 남을 욕하는 소리엔 금방 닫히는 그런 예쁜 귀를 가졌으면 좋겠다. 칭찬 보다 욕이 많은 세상에 한 쪽만을 가지더라도 그런 귀를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때 참았더라면, 그 때 잘 했더라면, 그 때 알았더라면, 그 때 조심했더라면, 훗날엔 지금이 바로 그 때가 되는데 지금은 아무렇게나 보내면서
자꾸 그 때만을 찾는다.
그렇기에 ♬
무지개는 잡을 수 없기에 더 신비롭고 꽃은 피었다 시들기에 더 아름답지. 젊음은 붙들 수 없기에 더 소중하고 우정은 깨지기 쉬운 것이기에 더 귀하지.
나무
태풍을 막아 주는 나무, 홍수를 막아 주는 나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맑은 공기를 만들어 주는 나무, 나무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먼저 누군가의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의 웃음 ♬
너의 밝은 웃음이 추운겨울 따뜻한 이불이 되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빵이 되고,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고 좋은 꿈을 꾸게 하는 베개가 된다.
눈 ♬
내 손에 손톱 자라는 것은 보면서 내 마음에 욕심 자라는 것은 보지 못하고, 내 머리에 머리카락 엉킨 것은 보면서 내 머릿속 생각 비뚤어진 것은 보지 못하네. 속 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크고 밝은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눈물 ♬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눈물 나고, 아파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나면 좋아서 눈물 난다.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 돕는 걸 보면 고마워서 눈물 나고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욕심내는 걸 보면 슬퍼서 눈물 난다.
다람쥐와 두더지 ♬
나무에 잘 오르지 못하는 다람쥐는 슬픈 다람쥐다. 땅을 잘 파지 못하는 두더지도 슬픈 두더지다. 그보다 더 슬픈 다람쥐와 두더지는 나무를 포기하고 땅을 파려는 다람쥐와 땅을 포기하고 나무에 오르려는 두더지다.
따르지 않는다 ♬
게으른 사람에겐 돈이 따르지 않고 변명하는 사람에겐 발전이 따르지 않는다. 거짓말 하는 사람에겐 희망이 따르지 않고 간사한 사람에겐 친구가 따르지 않는다.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에겐 사랑이 따르지 않고 비교하는 사람에겐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딱하다 ♬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사람도 딱하지만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이가 없어 못 먹는 사람은 더 딱하다. 짝 없이 혼자 사는 사람도 딱하지만 짝을 두고도 정 없이 사는 사람은 더 딱하다.
땅과 정성 ♬
땅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채송화 씨를 뿌리면 채송화를 피우고 나팔꽃 씨를 뿌리면 나팔꽃을 피운다. 정성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쁜 일에 정성을 들이면 나쁜 결과가 나타나고 좋은 일에 정성을 들이면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
때문 ♬
잘 자라지 않는 나무는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고 잘 날지 못하는 새는 날개가 약하기 때문이다. 행동이 거친 사람은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이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더하기 빼기 ♬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만 좋은 생각에 좋은 생각을 더하면 복이 된다는 건 몇 사람이나 알까? 둘에서 하나를 빼면 하나가 된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만 사랑에서 희생을 빼면 이기가 된다는 건 몇 사람이나 알까?
더하기와 빼기 ♬
세월이 더하기를 할수록 삶은 자꾸 빼기를 하고, 욕심이 더하기를 할수록 행복은 자꾸 빼기를 한다.
더하기와 빼기 ♬
똑똑한 사람은 더하기만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빼기도 잘 하는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은 벌기만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 주기도 잘 하는 사람이다.  
 

 

▼Nana Mouskouri-Plaisir D'Amou

(나나무스꾸리-사랑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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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 주 북동부와 아이다호 주의 서북부,

그리고 워싱턴 주의 동부 지역에 펄루스라고 하는 독특한 지역이 있습니다.


미국의 3개 주가 만나는 이 지역은

클리어워러(Clearwater) 강과 펄루스(Palouse)강,

그리고 스네?(Snake) 강이 흐르는 비옥한 지대입니다.


이 펄루스 지역을

펄루스 언덕(Palouse Hills),

또는 펄루스 초원(Palouse Prairi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광활한 평원과 언덕,

그리고 구릉이 한 데 어우러진 Palouse는

미국에서도 밀밭 주산지로도 이름이 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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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루스는

워싱턴주 북부 지역에 있는

인구 약 1천명의 소도시를 일컫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밀밭 지역 전체를

펄루스 평원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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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오리건 트레일을 따라

백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한 이래로


펄루스(Palouse) 지역은 줄곧

밀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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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루스는

이 지역에 살던

팔루스(Palus) 부족의 언어로


작고 굵은 풀의 땅

(land with short and thick grass),

혹은 잔디(lawn)와 같은 땅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02205220_4.jpg


그 이름이 의미하는바 대로

이 땅은 봄이 되면 광활한 녹색의 땅으로 변모됩니다.


19세기의 프랑스계 탐험가와 무역상들은

펄루스 지역을 초원의 땅(grassland country)이라고 불렀을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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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삼각지대라 일컬어지는

콜팩스와 풀먼(혹은 모스코), 그리고 펄루스를 잇는 지역은


4월부터 6월까지

옅고 진한 고동색의 땅위에


녹색으로 채색된

리드미컬한 밀밭의

경이로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02205220_6.jpg


이 밀밭 풍경은

고동색의 땅과 그린색의 밀밭,


그리고 출렁이는 듯한

리드미컬한 언덕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대지의 선율과

하모니를 만들어 냅니다.


02205220_7.jpg


펄루스 지역은

워싱턴 주와 오리건,

그리고 아이다호 주 가운데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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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땅,

봄철의 풍부한 비,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이 지역을 옥토로 만들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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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팩스(Colfax)는

밀밭 삼각지대의 중심인데


콜팩스에서

풀먼까지는 남쪽으로 약 16마일,


콜팩스에서

펄루스 city는 동쪽으로

17마일의 거리에 있습니다.


02205220_10.jpg


여기서

펄루스 city와

펄루스 지역(area)은

서로 다른 용어로 사용됩니다.


펄루스 area는

3개주를 일컫는 넓은 지역을 의미하며,


펄루스 city는

밀밭 삼각지대에 자리잡은

인구 약 1천명의 소도시를 말합니다.


02205220_11.jpg


봄이 되면

리드미컬하게 출렁이는

춤추는 듯한 펄루스 초원위에

끝없이 펼쳐지는 녹색의 대향연이 펼쳐집니다.


02205220_12.jpg


이 스펙터클한

환상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 세계의 사진 작가들이 펄루스로 몰려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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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루스 밀밭 지역은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오래 전부터

미국의 사진 작가들이 즐겨 찾는 스팟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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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의 사진 작가들에게도 널리 알려져서


매년 방문자가 급증하여

성수기 때는 모텔 구하기가 무척 어려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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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밀밭 풍경을

가장 시원스럽게 볼 수 있는 곳은


스텝토 뷰트(Steptoe Butte)와

카미악 뷰트(Kamiak Butte)입니다.


스텝토 뷰트는

콜팩스에서 13마일,


카미악 뷰트는

풀먼에서 약 15마일의 거리에 있습니다.


02205220_16.jpg


해발 3,612ft(1,101m)의

Stoptoe Butte 정상에 서면

거의 360도 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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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토 뷰트 정상에서 보이는

구릉진 언덕을 Palouse Hills 혹은

일반 명사로 rolling hills라고 부릅니다.


02205220_18.jpg


맑은 날

스텝토 뷰트에 서면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은

약 70마일(약113km)의 거리까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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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루스의 5월은

온통 연두와 초록으로

대장관을 이루며 사람들을 끌어 들입니다.


이 시기에는

구름 또한 변화 무쌍하여

사진에 색다를 묘미를 더합니다.


일출과 일몰 때

빛과 구름이 조화되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죠.


02205220_20.jpg


6월의 펄루스는

5월에 비해 사람들이 덜 붐벼서 좋습니다.


6월의 펄루스는

녹색의 밀밭 풍경과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하는


황금빛 밀밭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02205220_21.jpg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채꽃 절정도

5월이 아닌 6월에 시작됩니다.


물론 유채꽃은

심는 시기에 따라서,

그리고 날씨에 따라서 절정시기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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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루스 밀밭 인근에

펄루스 폭포라고 하는 아름답고 멋진 폭포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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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주로 찍는 폭포는

로어 펄루스 폭포(Lower Palouse Falls)인데


어퍼(Upper) 펄루스 폭포도

일몰 때는 아주 멋진 풍광을 보여줍니다.


02205220_24.jpg


펄루스에는

사진작가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외로운 나무들도 많이 있습니다.


잘 다독거려 주시면

대작도 건질 수 있습니다.


02205220_25.jpg


끝없이 펼쳐진

펄루스의 광활한 밀밭을 보신다면

당신 생애의 잊을 수 없는 벅찬 감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02205220_26.jpg


사진과 글 : 미국 서부 사진여행 전문 가이드 주안(Ju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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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크네시야교회(전광성 목사)는 6월 3일(금)부터 5일(주일)까지 다니엘 김 선교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다. 다니엘 김 선교사는 한국 10년, 일본 10년, 미국 10년의 이민생활후 11년째 세계선교현장을 돌며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다. 일본교포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국제학교를 다녔으며, 미국 The Citadel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트리니티신대원을 졸업하고 한인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다 2006년 선교사 파송을 받았으며, 2007년 남침례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현재 복음유통사업을 하는 전방위 선교사, 예수세대운동(JGM)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철인>과 <이기는 자>등의 주목받는 저서를 냈다.

전광성 목사는 집회를 시작하며 "하크네시야교회가 선교중심적인 교회로 자리매김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라며 기 일환으로 다니엘 김 선교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게되었다고 소개했다.


▲다니엘 김 선교사 초청 부흥회

첫날 다니엘 김 선교사는 마가복음 5:21-43을 본문으로 "주님을 기다리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회당장 야이로와 불치의 혈루병에 걸렸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손대고 치유함을 받은 여인을 거울삼아 우리의 신앙을 조명했다.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없이 기복신앙적인 기도제목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서는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주님의 책망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세요"라고 외쳐지는 메세지이고 우리가 전해야 하는 진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복음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복음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의 틀은 그것보다 더 넓다. 복음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기다리라"는 것이다. 기다리라는 단어 안에 복음의 핵심내용이 다 포함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경은 '기다리라'는 단어를 다양한 용어로 단일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전해준다. '기다리라', '인내하라', '견뎌내라', '끝까지 참으라' 등이 같은 내용이다. 심지어 성경은 기다리는 것과 우리의 구원과 연관시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한다. 기다림과 구원의 완성이 그만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이기에 복음의 핵심의 내용일까. 복음과 기다림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복음의 내용을 기다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1. 왜 기다리지 못하는가?

기다림이란 무엇인가? 기다리라는 것은 한증막 사우나에서 시간을 버티라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시간과 공간밖에 계신 그분을 더 이상 나의 시간과 공간 잣대로 잣대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맞추어 나도 역사 시간과 공간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간과 공간, 형태적인 잣대가 있는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계속 잣대질을 한다. 그러다보니 내 안에 초초함과 불안함이 형성되고 안절부절못함이 시작된다. 예를 들면 '이만하면 역사하실 만도 한데' 또는 '이정도 하면 주님께서 일하실 만도 한데' 그런데 내가 세운 데드라인에서 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이 조금 지연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초초하고 불안하기 시작한다. 혹은 공간과 형태적인 반응이 있다. '이렇게 역사하실텐데' 라는 내 방법으로 안하시고 다른 방법으로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고통스러워 한다.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와 혈루병 여인에 대한 말씀은 주일학교부터 접했다. 이 말씀은 보통 병든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하지만 이 말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진리는 기다림이다. 두 인물은 기다림이 요구되었지만 잘 기다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회당장 야이로는 어린 딸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했다. 야이로에게는 딸을 살리기 위해 주님과 빨리 가야 한다는 자신의 시간적인 잣대가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도중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치유를 받고 주님이 그 사람을 찾으면서 시간이 지연된다. 딸을 살리기 위해 긴급했는데 여인이 새치기를 한 모습이다. 결국 사람들이 와서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말한다. 나 같으면 너때문에 죽었으니 내 딸을 살려달라고 그 여인의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행패를 부려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인격의 소유자인 야이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딸이 죽었으니 오시지 말라고 했다. 마음으로는 두 번 다시 부르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일 것이다. 야이로는 우리의 거울이다. 예배 열심히 드리고, 찬양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직분도 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 주님을 향한 마음은 식어가고 고백은 시들어 간다.

왜 그런가 살펴보면 나중에 알게 된다. 하나님, 그렇게 까지 기도했는데 왜 응답하지 않으셨나요, 평생에 태어나 그렇게 기도한 적이 없을 만큼 기도했는데 어디에 계셨어요, 주님위해 그것까지 했건만 매달렸건만 왜 침묵하셨어요 라고 불평한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 신앙을 버릴 용기도 없다. 때로는 철든 자녀와 같이 불평원망하지 않고 그대로 예배하고 헌신하지만 마음에는 작은 불신이 영혼을 시들게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안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주님앞에 우리를 온전히 내어 드리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주님에게 받은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가장 클 것이다. 야이로 모습으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점검해보라.

혈루병 여인은 야이로와 반대 스타일이다. 야이로는 표현할 용기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직분의 소유자였기에 속으로는 시들어 가고 있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울부짖음이 있다. 혈루병 여인은 표현하는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12년간 모든 의사에게 가서 다 보였지만 상처가 악화됐다. 이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다. 그리고 병의 근원이 말랐다. 12년간 수많은 의사들을 만나 일시적이며 표면적인 치유는 있었지만 근원이 마르지 않았는데 주님을 만나고 뿌리가 뽑혔다. 우리들도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 사람에게 가서 보이고 저 사람에게 보이고 지름길을 선택하며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실망하고 아픔으로 끝난다. 상황이 더욱 악화된 상태에서 결국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야이로나 혈루병 여인은 성격적 위치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기다림이 요구되었을 때 기다리지 못한 인물이다. 여러분은 주님을 정말로 기다리고 있는가. 야리오와 여인 같이 내 방법을 동원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라.

2.  기다림의 궁극적인 목적.

주님께서 당장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심에도 내가 기도를 한 것의 응답을 지연하시고 때로는 거절하신다. 기도에 침묵하시면 누구 손해가 클 것인가. 일반적인 생각은 하나님은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셨다고 하셨다. 지금 내 기도를 거절하시고 지연하시고 보류하시고 침묵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손해가 크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기도응답을 안해주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신앙을 져버리고 떠날 것을 감수하시고 거절하신다. 왜 그러신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기다림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본문은 야이로 이야기 중간에 혈루병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여인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하지 않으면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진짜 진리를 못 볼 수도 있다. 병든 자를 고치신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 싶은 심정으로 오해한다. 그런데 주님과 여인과의 대화를 분석하면 답이 있다. 예수님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교제의 시작이다. 예수님과 여인은 서로 원하는 것이 차이가 있었다. 여인이 원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인을 영웅화시켜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 만지고 도망간 것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대화한 후에 주님께서 여인을 칭찬한다. 주님 앞에 나온 동기가 깨끗한 동기가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병을 낫기를 원했다. 주님 앞에 나온 것도 그 하나의 방법이었다. 여인은 자기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예수님이 자기를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소원도,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은 관심도 없었다. 옷자락 만지고 초자연적인 치유를 주시면 감사하고 없으면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만지고 도망갔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디 가니. 너의 이름은 무엇이니' 라고 물으신 것이다. 주님이 원하신 것과 여인이 원했던 것은 차이가 있다. 주님은 교제를 원하셨지만 여인은 기도응답인 병 고침을 원했다. 주님이 주시기 원하신 것은 주님 자신이다. 이것이 여러분과 주님과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희생을 요구한다. 그것 없이는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주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이루려 하면 예배시간을 지켜야 하며, 귀찮은데 성경을 펼쳐야한다. 우리는 투자하지 않는다. 피곤해도 무릎을 꿇어야 하며, 잠자리에 앞서 기도해야 하며, 티브 대신 성경을 펼쳐야 한다. 놀러가고 싶은데 성수주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을 번거롭게 여기거나 귀찮게 여긴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해 별로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주님에 대해 사실 그렇게 알고 싶은 관심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주일예배 와서 옷자락 만지고 도망가는 것이다. 교회와서 기도응답 물질열매 사업축복의 옷자락을 만지고 도망가기 원하는 것이다. 주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자신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다면 먼훗날 내가 주님 때문에 교회다니고 신앙생활을 했고 성수주일 했다고 하면, 주님은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한다. 이름이 무엇인지 교제하자고 했는데 이름을 안 알려주고 반응을 안했다"라고 말하실 것이다.

여인에게 주님이 주시기를 원하셨는 것은 주님 자신이었다. 기다림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주시기 원하시는 것이다. 문제해결시켜 주면, 옷자락 만지고 도망간다. 당장 병치유 주면 만지고 도망갈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이 가장 잘 아신다. 재정문제를 해결시켜 주면 두 번 다시 주님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존재라는 것을 주님이 가장 잘 아신다.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이 나에게 주님 자신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이제 옷자락 만지고 도망가는 것 그만하고,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라.

정말로 주님을 만나는 것에 요구가 되는 부르심은 엄중란 부르심이다. 그 여인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결단을 했는지 보면 만만한 부르심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주님이 물어보셨을 때 여인은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엎드려 모든 사실을 고했다. 당시 유대인 사회 3대 부정은 시체, 문둥병, 출혈이다. 출혈하면 성밖으로 쫓겨나 고침을 받은 후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여인은 여러 사람과 접촉하며 부정함을 전염시켰다. 돌로 맞아 죽임을 당해도 괜찮은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했다고 고백했다. 이 여인은 무엇이 변한 것이다. 주님을 이용해 병을 고치겠다고 온 사람인데 이제는 죽어도 좋다며 주님과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이미 경험한 것이다. 처음 교회에 나올때는 여러가지 문제해결이나 필요때문에 나왔지만, 처음에는 옷자락 만지고 돌아갈 생각으로 교회를 찾았지만 은혜를 조금 맛보면 이상하게 동기가 재형성된다. 이제는 내가 죽어도 주님과 대화를 해보아야겠다, 기도응답을 안받아도 되니 적어도 그 분이 내 이름을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죽임을 당해도 괜찮으니 그분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동기가 바뀐다. 혈루병 여인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옷자락 만지고 도망갈 생각으로 왔는데, 은혜를 경험하고 동기가 재구성되었다. 내가 죽임을 당해도 주님과 대화하고 죽겠다는 것이다.

이 부르심은 진리이다. 우리를 처음에 부르실 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교회와서 무엇을 해달라고 주님의 옷자락만 만지고 돌아가서는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주님을 못 만난다. 훗날 주님으로 부터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옷자락을 만지지 말고 교제하자고 하지 않았느냐"라는 책망    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는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참된 제자가 될 수 없다. 오늘 그 질문이 응답하고 결단하면 인생이 바뀌고 신앙이 바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3. 기다릴수 있는 이유  

대표적인 오해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마음'과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충돌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지만 기도를 응답 안하신다고 생각한다.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 사랑하는 마음과 표현이 충돌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크게 오해를 사게 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전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랑하지만 응답을 거절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거절하시는 것이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대로 두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허락하신다. 주면 불행해지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안주신다. 이것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 나와 주님을 막고 있는 내 안의 짐이 내려진다.

우리에게는 다시 한 번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으로 돌아가려는 고무줄과 같은 심보가 있다. 성경적인 기다림은 첫째 주님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그분이 시간과 공간밖에 있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가장 정확하게 정리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섬김'이다. 생소하지 않는 일상용어중 하나이다. 음식점에서 서빙해주는 사람을 '웨이터'라고 한다. 기다리는 사람이다. 사실 언어뿌리를 따지면 기다림이라는 단어와 섬긴다는 단어는 같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섬김은 물론 봉사와 헌신과 사역에 바쁜 것도 있다.

최고의 섬김은 부르신 이곳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부흥이 오지 않는 이 시대에 무릎으로 부흥이 올 때까지 지켜내고,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교회에서 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하늘 문이 열릴 때까지 섬기며,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이 도시에서 주님 예정하신 그때까지 끓임없이 선포하며 지켜내는 것, 그러한 섬김의 자리에서 기다림으로 마침내 주님 나타나신 것을 경험하고 복음이 완성되고 승리하는 것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외롭고 힘들 때 드리는 기도

    최송연


    주님,

    우리가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나쁜 사람이라 오해받았을 때…

    우리는 무척 외롭고 힘이 듭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진실한 친구라 믿었던 그 사람이

    우리를 배신하고 떠났을 때…

    우리는 무척 외롭고 힘이 듭니다.

     

    우리가 낳았기에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우리의 자식들이 우리의 품을 떠나 

    먼 곳으로 가야만 할 때…

    우리는 무척 외롭고 힘이 듭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을

    죽음이 갈라놓았을 때…

    우리는 무척 외롭고 힘이 듭니다.

     

    주님,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로

    외롭고 힘이 들 때는

    낙심하지 않고

    다시 한 번 힘차게 일어설 수 있는

    굳센 용기를 주옵시고…

     

    우리를 배신하며 떠난

    야속한 이들로 인하여

    외롭고 힘이 들 때는

    우리가 당신을 배신하였을 때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손 내밀어 주시던

    당신의 그 따뜻하신 사랑이

    기억나게 하옵시며…

     

    이유 없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외롭고 힘이 들 때는

    우리가 당신을 이유 없이

    아프게 하였을 때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늘 감싸주시며 품어주시던

    당신의 그 넓고 따뜻하신 가슴이

    기억나게 하시사...

     

    우리도 우리에게 아픔을 준

    모든 사람을

    다시 한 번 감싸며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넓고 따뜻한 가슴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놀라운 은총 (Amazing Grace)
      백파이프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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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방주교회 박보영 목사의 LA 집회가 감사한인교회(김영길 목사)에서 열렸다. © < 미주 뉴스앤조이>

    인천방주교회 박보영 목사의 LA집회가 1일(수) 감사한인교회(김영길 목사)에서 열렸다.

    OC기독교교회협의회과 OC 기독교평신도연합회 공동주최로 열린 '초청말씀회복집회'에는 약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용서받은 죄인'이란 주제로 열렸다.

    박보영 목사는 사도행전 9장 1-5절을 본문으로 ‘이 길, 확실합니까?’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39살에 예수님을 만난 후 의사 생활을 접고 재산과 병원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준 사연과, 노숙자들과 함께 살아온 삶을 이야기 해나갔다.  

    그는” 별세신학을 정립한 이중표 목사을 통해 가난한 자들과 함께 가게 된 계기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깨닫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박 보영 목사는 지난 3월 미자립교회를 돕기 위해 주일날 교회 문을 닫는다고 발표해 교계와 언론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공격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박 목사는 “우리 교회는 이번 주가 다른 교회로 가는 주일이다. 교역자들도 개척교회로 간다. 헌금들 다 가져가서 개척교회에 나눠주라 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치사한 공격도 다 받았다. 물론 공격을 받을 줄 알았다. 그래도 끝까지 나누는 일을 할 것이다”고 밝혔다.

    박보영 목사는 내년에 자신이 은퇴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어떠한 댓가도 받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는 계획을 소개하기도 했다.

    인천방주교회 박보영 목사의 LA 집회가 감사한인교회(김영길 목사)에서 열렸다. © < 미주 뉴스앤조이>

    “박보영 목사에 대한 상반된 평가"

    박 목사는 모 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살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 30대 후반에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했다. 이후 의사면허증을 버리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 30억에 달하는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노숙자, 비행청소년들과 함께 살았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선 이러한  박목사를 ‘노숙자의 아버지', ‘가난한 자들의 성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엔 10주에 한번씩 1년에 다섯번 교회 문을 닫고, 교인들에게 미자립교회에 출석해 헌금과 봉사를 하라는 선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목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은 그가 ‘신사도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다.

    지난 2010년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해 물의를 일으켰던 데이비드 오워와 신사도운동가로 분류되는 데이비드 차 등을 박 목사가 원장으로 있는 마가의 다락방 강단에 세움으로 많은 의혹을 받기도 했다. 박 목사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신사도운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부정했지만, 그의 행적에 대해 의문의 꼬리표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자신이 담임목사 되기전 전임 목사의 ‘사망설 제기’나 시카고 모 교회에서 언급한 ‘직통계시’ 등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자신의 아버지가 세운 인천방주교회를 징검다리 세습했다는 주장 등도 제기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교인은 박보영 목사의 집회에 대해 “참석한 많은 분들이 그 분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그분의 삶을 통해 큰 은혜를 받은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반면, 소문을 듣고 기대하고 왔지만 시험에 들고 갔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는 교인이라고 밝힌 한 중년 남성은 “솔직히 전혀 설교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의 사역을 자랑하는 것으로 일관해 크게 실망했다. 가난한 자에 대한 사역들이 상품화될 수도 있다는 위험도 느꼈다. 언제까지 우린 이런 값싼 은혜에 ‘아멘'을 외쳐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보영 목사는 6월 3일(금) 부터 3일간 은혜의강 연합감리교회(홍종걸 목사, 2351 W. Orangethorpe Ave. Fullerton)에서 ‘부흥'이란 주제로 심령각성대집회를 인도한다.

    양재영  jyyang@www.newsnjoy.us

    베이킹소다 의 놀라운 효능

    발뒤꿈치와 발바닥 앞쪽에 박힌 굳은살,
    목욕탕에 가서 발을 탱탱 불려서 박박 긁어내도 깨끗이 없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제거하고 나면 또다시 생기곤 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

    세숫대야에 물을 조금 담아서 식소다를 두 스푼 정도 넣고

    발을 담그고 약 10분 정도 지나 때 타올로 살살 문지르자

    이게 어찌된 일인지 그냥 흐물흐물 벗겨져 버린다
    .

    오메~ 부드러워진 내 발이여, 너무 예뻐진 내 발이여,
    몇 년간을 속 썩이던 발의 각질을 깨끗이 제거해 버렸다.
    , 놀라워라!! 식소다의 효능이여.

    너무 기뻐 몇 가지를 더 실행에 옮겨 보았다.
    양치할 때 칫솔에 치약을 조금 짜고 식소다를 꾹 찍어 이를 닦았다.
    이렇게 약 한 달만 하면 이가 하애진다네, 보너스로 입 냄새 싹~~

    냄새 나는 구두에 식소다 약간 뿌려두니 냄새 싹~~
    쓰레기봉투에 식소다 약간 뿌려두니 다음날까지 냄새 싹~~
    애견 깜보 개 냄새 나서 털에 약간 뿌리고 쓱쓱 문질러주니 냄새 싹~~

    기름 투성이 프라이팬, 주방 가스레인지 기름때,
    화장실 바닥도, 변기도, 식소다 물로 쓱쓱 닦아내니 윤이 반짝반짝~~
    주방 수채 거름망도 미지근한 물에 식소다 풀어 부어주니
    냄새도 싹~~ 거름망의 찌든 때도 흐믈흐믈~~

    일회용 컵에 식소다 한두 숟갈 정도 넣고 랩으로 봉한 후
    젓가락이나 이쑤시개로 구멍을 숭숭 내어 냉장고 칸칸이 넣어두니
    냄새 싹~~ 숯이나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보다 월등히 효과가 좋았다.
    요기까지가 제가 직접 사용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정보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김치에 식소다를 넣으면 신맛이 줄어든다고 하네요.
    김치통에 배어있는 냄새는 소다를 한 숟가락 정도 넣으시고
    물을 1/4 정도 넣고 하루 두세요, 그다음 씻어 내시면 냄새가 없어진 데요.
    김치냉장고 안에 네 면의 모서리에 조금씩 뿌려 놓으시던지,
    아니면 행주에 살짝 묻혀서 젖은 상태로 닦아 내셔도 됩니다,
    그런 후 뚜껑을 닫고 반나절 정도 지나서 열어보세요. 냄새 싹~ 이래요.

    물에 식소다를 희석하여 컵도 함께 넣어 끓여 보세요.
    집에 있는 그릇들도, 사기는 사기대로, 스테인레스는 스테인레스대로
    끓여 주시고 세제 안 넣고 깨끗이 물로 헹구고 잘 닦아 내면 된데요.

    아기들 목욕시키는 목욕통에 물을 적당히 채우고 반 컵 정도의
    식소다를 타서 사용하면 가려움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데요
    전분을 조금 섞으면 보습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땀띠 나서 가려운데도 도움이 된다고 하고요.
    아토피에도 그렇게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에구~~ 너무 많아 글쓰기가 힘들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 그대로 두 군데 것만 발취해서 올리니 참고들 하세요.

    사내 녀석이 어지간히 할 일도 없구나 하지 마시고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뭐라 하지 마시고,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 하나 ...................
    가려움을 멈추는 좋은 방법중 하나가 바로
    베이킹 소다(=식소다)를 물에 타서 목욕하는 방법이다.

    베이킹 소다(=식소다 =중탄산나트륨 =탄산수소나트륨 =중조)
    슈퍼나 제빵재료상등에서 쉽게 구할수 있고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아기부터 성인까지 부담없이 사용할수 있는 방법이다.
    (
    , 베이킹 파우더와 혼동하지 말자. 식소다 혹은 베이킹 소다
    (
    성분에 중탄산나트륨 혹은 탄산수소나트륨 100%)라고 쓰여있는 것으로
    골라 사용하시길...

    참고적으로 우리나라에선 베이킹 소다보다는
    식소다의 이름으로 제품이 많이 나오는것 같다. 둘다 같은 제품이다.
    베이킹 파우더로 되어 있더라도 성분이 100%맞으면 o.k.
    한쪽 코너에 보면 조그만 봉투에 담겨져 파는것이 대부분
    중탄산나트륨 100%라고 되어 있더군요.
    미국 피부과 의사들은 가려울때 이런 방법을
    자주 추천할 정도로 가려움 진정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피부도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1)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적당량의 베이킹 소다를 넣은다음
    적당한 시간의 입욕을 즐긴다.
    2)
    성인의 경우 1/2 컵정도를,
    아기들의 경우엔 1/4 컵정도를 욕조물안에 넣는다.

    3)
    심한 부위는 초기에 다소 따가울수 있지만 곧 진정되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니면 따갑지 않을 정도로 용량을 줄여 사용해도 좋다.

    입욕시간은 20-30분정도가 적당하나 딱 정해진 것은 없다.
    가려움이 너무 심해 잠을 이룰수 없는 경우 자기전에 따뜻한 물에
    베이킹 소다를 풀어 입욕을 하게되면 가려움도 금새 진정되고
    긴장도 풀리고 혈액순환도 잘되어 숙면을 유도해줄 것이다.
    평상시 목욕할때도 이 방법을 사용하자.

    목욕은 외부의 알레르겐을 깨끗히 씻어내주고 건조한 피부에
    수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자주 해주어도 좋다.
    , 목욕후에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보습제를 바라는 것.

    , 건조한 아토피 피부의 부족한 수분을 입욕을 통해 머금은 상태에서
    수분이 증발하기전에 바로 보습제를 발라주는것이 중요하다.
    수분이 증발하고 나서 바르는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
    목욕
    후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지 말고, 오일이나 로션을 바른후
    물기를 툭툭~~두드려 닦는게 좋은 방법입니다.)

    목욕 이외의 사용법으로는 샤워
    후에 물기를 적신 뒤 베이킹 소다를
    피부에 바르고 5분정도 놔두는 것이다. 일종의 팩 개념인 것이다.
    요것보다는 담구는 것이 더 좋을듯..
    아토피가 심한 아이들에겐 너무 따갑거나 할 수 있으니까요...

    ................... ...................
    베이킹 소다 청소, 기초사용법
    1.
    용액으로 만들 때- 1리터 물과 4스푼의 소다를 섞는다
    2.
    젤로 만들 때 - 소다와 물의 비율 3:1 반죽한다
    3.
    스폰지를 이용할 때 - 물엔 젖은 스폰지에 소다를 뿌려 사용한다
    4.
    가루를 직접 쓸때 - 소다를 직접 뿌려 젖은 스폰지로 닦아준다.

    베이킹 소다 활용법
    - 채소/과일
    채소나 과일에 골고루 뿌려 문지른 후 물로 씻어 주거나
    1
    리터 당 4 스푼의 베이킹 소다를 물에 풀어 용액을 만들어 야채나 딸기,
    포도 같은 과일을 헹구듯이 씻어 준 뒤 물로 한번만 헹궈줍니다.
    딸기, 복숭아, 포도, 자두 등의 과일 껍질과 당근, 감자, 오이, 호박 등
    채소의 먼지, 찌꺼기, 왁스 등을 말끔히 제거해 줍니다.

    -
    전자레인지와 냉장고
    용액을 만들어 젖은 스폰지에 묻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의 선반 및
    벽에 낀 때를 닦아주세요. 찌든 때는 베이킹 소다를 젖은 스폰지에
    묻혀 닦은 후 다시 한 번 물로 세척하면 말끔해 집니다

    -
    눌어붙거나 탄 냄비
    베이킹 소다는 타거나 눌어 붙은 음식물을 보다 쉽게 제거하도록 도와줍니다.
    베이킹 소다 가루를 물에 풀고 15분 끓인 후 설거지 하듯이 닦아줍니다.
    잘 지워지지 않는 묵은 때는 그릇을 물로 적신 후 베이킹 소다 가루를
    표면에 직접 뿌려서 하룻밤 정도 놓아두었다가 닦아주면 됩니다.

    -
    싱크대, 레인지 후두
    베이킹소다 가루를 적당량 뿌린 후 젖은 스폰지로 닦으면
    싱크대에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 깨끗이 세척할 수 있습니다.

    -
    유리잔
    젖은 스폰지에 베이킹 소다 가루를 직접 뿌린 후 닦아 주면
    잘 지워지지 않는 물때도 말끔히 제거 됩니다.

    -
    플라스틱 용기
    김치통이나 반찬통에 배어 있는 냄새는 베이킹 소다 용액으로
    세척한 후 물로 헹궈주면 없앨 수 있습니다.
    냄새가 심한 경우 용액에 하룻밤 담가두면 냄새가 사라집니다
    - 쓰레기통
    쓰레기통의 악취는 베이킹 소다 가루만 뿌려주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쌓인 쓰레기의 층층에 구석구석 뿌려주세요. 정기적으로 쓰레기통을
    베이킹 소다 용액으로 세척하면 더욱 좋습니다.

    -
    싱크대 배수관
    매주 베이킹 소다를 2스푼 싱크대에 뿌려주시고
    따뜻한 물을 틀어 배수관을 통해 흘려 보내면 됩니다.
    식초를 함께 뿌리면 더 효과가 좋습니다

    -
    도마
    주방 세제에 약간의 베이킹 소다 가루를 섞어 세척하면
    도마에 배어 있는 냄새까지 제거할 수 있습니다.

    -
    세안
    세면대에 물을 받고 베이킹 소다 가루를 한 스푼 정도 풀어 세안 하면
    얼굴 스크럽 효과는 물론 모공의 때까지 세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클렌팅폼과 섞어 사용해도 좋습니다.

    -
    각질
    제거
    장미를 5분정도 끓인 물에, 밀가루와 베이킹
    소다를 섞어
    팩을 만들어 주면 좋습니다.

    -
    소다
    양치법
    베이킹
    소다를 양치질을 할 때마다 치약에 뿌려 사용하거나
    베이킹 소다 용액을 만들어서 입안을 헹궈 주면 아주 훌륭한
    구강 청정제의 역할을 합니다

    -
    겨드랑이 냄새
    베이킹 소다 가루를 손에 묻혀 털어낸 후 겨드랑이에 묻혀주면
    땀 냄새를 제거하는 효과 뿐 아니라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세척
    각종 작업으로 더러워진 손을 독한 화학약품이 아닌 베이킹 소다로 씻어보세요.
    베이킹 소다 가루를 젖은 손에 뿌려 문지른 후 물로 닦으면 됩니다.
    베이킹 소다와 물비누를 3:1의 비율로 섞어 사용해도 좋습니다.

    -
    세척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은 후 3 티스푼 정도의 베이킹 소다가루를
    물에 풀어 줍니다. 그 물에 발을 담그면 발 스크럽 기능은 물론
    피로를 풀어 주는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베이킹 소다를 젤(연고)로 만들어 굳은살 제거용 돌 등에 발라 발에 문지르면
    더욱 효과적으로 굳은살이 제거되여 발이 훨씬 부드럽고 상쾌해 집니다.

    -
    아토피 피부
    아토피성 피부가 있는 경우(아기나 어른 모두) 베이킹 소다와 전분을
    물에 섞어 목욕을 해 주시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옻오름, 땀띠, 각종 두드러기, 태양에 의한 화상으로인한 가려움증
    욕조에 물을 받고 ½컵의 베이킹 소다 가루를 물에 넣어 섞은 뒤 몸을 담가줍니다.
    적은 부위인 경우 젤(연고)로 만들어 바른 후 물로 닦아주시면 됩니다.

    -
    벌레 물린 곳
    고통과 가려움증을 없애주려면 우선 독침을 제거한 뒤
    젤 상태로 만든 베이킹 소다를 발라 말린 후 물로 깨끗이 닦아냅니다.
    반복해서 사용해도 진전이 안될 때는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
    틀니, 교정기, 마우스피스
    2
    티스푼의 베이킹 소다 가루를 녹인 물을 이용해
    브러시로 살살 닦으면 깨끗해집니다

    -
    바닥, 창문
    베이킹 소다 용액을 젖은 스폰지나 천에 묻혀서 바닥에 난 발자국이나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 등을 닦아 주면 말끔해집니다.

    -
    재떨이
    베이킹 소다 가루를 재떨이에 뿌려두면 담배를 끌 때도 좋으며,
    찌든 냄새를 줄여줍니다.

    -
    카펫
    베이킹 소다 가루를 카펫에 골고루 뿌려 둔 후 15분 뒤
    진공 청소기로 청소를 하면 나쁜 냄새까지 제거됩니다.
    베이킹 소다 가루가 일부 남아 있더라도 인체에는
    전혀 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
    벽이나 가구에 생긴 자국(크레용)을 지울 때
    베이킹 소다를 묻힌 젖은 스폰지로 살살 문질러주고 깨끗한 천으로 닦아주세요.
    베이킹 소다의 미세한 알갱이가 틈새틈새까지 말끔하게 닦아 줍니다.

    -
    세탁
    보조제
    일반 세탁
    세제에 ½컵의 베이킹 소다 가루를 풀어서 같이 사용하면
    탁월한 세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흰옷은 더욱 하얗게 수건이나 속옷 등은
    더욱 청결하게 해줍니다. -펌-



     

    투영(投影) 최송연 어둡던 내 영혼 주님의 빛

    햇살로 비치셨네

    이 빛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는 등대이기를... 메마른 내 영혼 주님의 사랑

    은총으로 내리셨네

     

    이 사랑 세상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이슬이기를...

    주님 사랑의 광채

    투영(投影)되는 내 마음

    언제나 해맑은 호수이기를...

     
      
    투영(投影)
                      최송연

             어둡던 내 영혼
             주님의 빛 

             햇살로 비치셨네

       
            
    이 빛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는 등대이기를...
           
            메마른 내 영혼
           
    주님의 사랑

             은총으로 내리셨네

     

             이 사랑
             세상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이슬이기를...
           

            주님 사랑의 광채

             투영(投影)되는 내 마음

             언제나 해맑은 호수이기를...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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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의

    9개 국립공원 가운데서

    무성한 숲과 나무가 함께 있는

     

    대표적인 국립공원은

    세쿼야, 킹스캐년, 요세미티

    그리고 레드우드 국립공원일 것입니다.

     

    이들 국립공원은

    멋진 자연환경과 더불어

    크고 무성한 숲과 트레일이 있어서

    방문하는 사람에게 더없는 쉼과 안식을 제공해줍니다.

     

    요세미티의 Panorama Trail

    세쿼야의 자이언트 포리스트(Giant Forest)

    킹스 캐년의 파라다이스 밸리(Paradise Valley) 등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환상적인 길과 트레일이 있습니다.

     

    이들 트레일을 걷다보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며

    각종 질병까지도 저절로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들 트레일보다

    한 수 위인 최고의 힐링 트레일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레드우드의 Redwood Creek Trail입니다.



    04102419_1.jpg

    캘리포니아의 Redwood는

    크게 3개의 주립공원(State Park)과

    1개의 국립공원(National Park)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04102419_2.jpg

     

    남쪽부터 북쪽으로

    Prarie Creek Redwoods SP,

    Del Norte Coast Redwoods SP,

    그리고 Jedediah Smith Redwoods SP과

    레드우드 국립공원(Redwood National Park)이 그것입니다.



    04102419_3.jpg

    이들 외에도 북가주에는

    Redwood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주립공원이 몇 개 더 있는데

     

    Humboldt Redwoods SP,

    Grizzly Creek Redwoods SP이며,

     

    Redwood라는 이름은 없지만

    Redwoods 숲을 끼고 있는 SRA가 있습니다.


    04102419_4.jpg

    자연적인 숲이

    별로 보이지 않는 남가주와는 달리,

    북가주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한 숲이

     

    곳곳에 빽빽이 산재해 있는데

    가히 숲의 세계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04102419_5.jpg

    오늘 소개해 드리는

    Redwood Creek Trail(이하 RCT)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다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곳은

    오릭(Orick)이라는 지역의

    Lady Bird Johnson Grove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04102419_6.jpg

    RCT는

    왕복 약 16마일이기 때문에

    하루 만에 다 걷기에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다리가 있는 약 1.5마일을 걸은 후에

    되돌아 오는(왕복 3마일) 코스를 택합니다.


    04110115_7.jpg

     

    하지만 RCT의 끝인

    Tall Trees Grove 까지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슬리핑백과 기타 장비들이 필요합니다.



    04110115_8.jpg

     

    RCT에서 하룻밤을 머물고자 한다면

    노중에 있는 Elam Creek 캠프그라운드나

    44 Creek 캠프그라운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04111205_9.jpg

    RCT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면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경우

    첫 번째 다리인 왕복 3마일의 거리만 걸어도

    이곳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트레일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04111715_10.jpg

    RCT는

    처음 약 1.5마일 구간은

    대부분 평지이며, 걷기좋은 흙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없이

    평안하고 쉽게 걸을 수 있습니다.


    04112205_11.jpg

    이 길을 걷는 동안

    참으로 맑고 신선한 공기로 인해

    누구나 뼈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고 상쾌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04112824_12.jpg

     

    호젓하고

    아름다운 트레일은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04113259_13.jpg

    무성한 숲은

    마치 정글을 탐험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스릴을 느끼게 해 줍니다.


    04114403_14.jpg

    이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면서

    힐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04114403_15.jpg

    심신이 쇠약해져서,

    혹은 마음이 울적해져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레드우드의 RCT로 가 보세요.

     

    당신의 지쳤던 몸과 마음은

    분명히 치유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04115454_16.jpg

     

    사진과 글 : 주안(powe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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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에 있을 19가지 사건들!

    - 김홍기 목사님 (캐나다 록키침례교회) -

    37살의 쿠바사나이 Yoandri hernandez Garrido라는 이름은그의 24가락때문에 얻은 별명이란다. 그 이름 가운대 아마도 무슨 숫자가 있는듯하다.

     

    그는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손가락은 몇개냐고 묻자 12개라고 대답했다가 혼났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손을본 선생님도 그를 칭찬했겠지만...

     

    그는 지금 생계를 위해 야자나무에 기어올라 야자따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 그의 월수 $20이 문제가 아니라 관광객들하고 사진을 같이 찍어주면 한번에 $10을 번다고 하니 그는 그 자신 자기에게만 내려주신 신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보통사람보다 더 갖고 태어난 여분의 손,발가락이 보물단지라고 말하고 있다.

     

     

     

    Yoandri Hernandez Garrido's nickname comes from the six perfectly formed fingers on each of his hands and the six impeccable toes on each foot.

    Hernandez is proud of his extra digits and calls them a blessing, saying they set him apart and enable him to make a living by scrambling up palm trees to cut coconuts and posing for photographs in this eastern Cuban city popular with tourists.

    Extra digits: Yoandri Hernandez Garrido, 37, known as 'Twenty-Four' shows his 12 fingers in Baracoa, Guantanamo province, Cuba

    Extra digits: Yoandri Hernandez Garrido, 37, known as 'Twenty-Four' shows his 12 fingers in Baracoa, Guantanamo province, Cuba

    One traveller paid $10 for a picture with him, Hernandez said, a bonanza in a country with an average salary of just $20 a month.

    'It's thanks to my 24 digits that I'm able to make a living, because I have no fixed job,' Hernandez said.

     

    Known as polydactyly, Hernandez's condition is relatively common, but it's rare for the extra digits to be so perfect.

    Anyone who glanced quickly at his hands would be hard-pressed to notice anything different unless they paused and started counting.

    Hernandez said that as a boy he was visited by a prominent Cuban orthopaedist who is also one of Fidel Castro's doctors, and he declared that in all his years of travel he had never seen such a case of well-formed polydactyly.

    Proud: Hernandez calls his extra digits a blessing, saying they set him apart and enable him to make a living by scrambling up palm trees to cut coconuts and posing for photographs
    Proud: Hernandez calls his extra digits a blessing, saying they set him apart and enable him to make a living by scrambling up palm trees to cut coconuts and posing for photographs

    Proud: Hernandez calls his extra digits a blessing, saying they set him apart and enable him to make a living by scrambling up palm trees to cut coconuts and posing for photographs

    Climbing: 'Twenty-Four' cuts coconuts from a palm tree in Cuba

    Climbing: 'Twenty-Four' cuts coconuts from a palm tree in Cuba

    'He was very impressed when he saw my fingers,' said Hernandez, who is the only one in his family to be born with extra digits.

    In a part of the world where people's physical traits are often the basis for nicknames - even unflattering ones like 'fatty' or 'shorty' - 'veinticuatro' ('twenty-four' in English) is not an insult but rather a term of endearment, and Hernandez, now 37, said his uniqueness has made him a popular guy.

    He has a 10-year-old son with a woman who now lives in Havana, and his current girlfriend is expecting his second child.

    'Since I was young, I understood that it was a privilege to have 24 digits. Nobody has ever discriminated against me for that,' he said. 'On the contrary, people admire me and I am very proud. I have a million friends, I live well.'

    Nevertheless, it occasionally caused confusion growing up.

    Special: Known as polydactyly, Hernandez's condition is relatively common, but it's rare for the extra digits to be so perfect

    Special: Known as polydactyly, Hernandez's condition is relatively common, but it's rare for the extra digits to be so perfect

    'One day when I was in primary school, a teacher asked me how much was five plus five?' Hernandez recalled. 'I was very young, kind of shy, and I didn't say anything. She told me to count how many fingers I had, so I answered, '12!'

    'The teacher was a little upset, but it was the truth,' he said.

    Hernandez said he hopes he can be an example to children with polydactyly that there's nothing wrong with them.

    'I think it's what God commanded,' he said. 'They shouldn't feel bad about anything, because I think it's one of the greatest blessings and they'll be happy in life.'





     기가 막힐 일입니다. 하나님이 백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겁니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바치라.’ 아브라함은 속으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면 제게 하신 약속은 뭐가 됩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말 없이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무를 쪼개어 나귀에 지워가지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두 사환과 함께 떠납니다. “하나님, 말도 안 되는 말씀하지 마시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고 엎드려 심중에 웃던 아브라함이 말입니다. 무엇이 아브라함을 이러한 순종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인내와 열심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무를 쪼개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도끼로 나무를 내리칠 때마다 “탁- 탁- 쫙- 쫙-” 아브라함의 가슴도 피를 튀기며 쪼개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랬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실행에 옮깁니다. 사라에게 말하면 분명히 울고 불고 붙잡고 난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 저는 그러려고 했는데 아내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할 핑계가 생길 것인데 말입니다. 모리아 땅까지 삼일길입니다. 먼 길입니다. 그 먼 길을 가면서 아브라함은 얼마나 고민하며 마음의 싸움을 하였을까요? 한국 속담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그 삼일동안은 견딜 수 없는 고문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사환에게 산 아래에서 기다리도록 합니다. 이삭에게 나뭇짐을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들고 올라갑니다. 흡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과 못과 창을 들고 뒤따르는 로마군병의 모습입니다. 산 아래 기다리도록 할 것 같으면 두 사환은 뭣 하러 거기까지 데리고 왔단 말입니까? 나뭇짐을 두 사환에게 운반하게 하면 이삭이 덜 고생스러울 테고 두 사환으로 나무를 쌓게 하면 아브라함이 편할 텐데 말입니다. 아니, 그 보다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하면 그 두 사환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느냐고 덤벼들어 뜯어말려 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을 순종하지 못 하게 할 모든 방해물을 제거해 버립니다. 오직 이삭만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오릅니다.

     이삭이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가슴이 찢어지는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이 어떤 심정으로 말했는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의 이 말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진리를 말하고 있으니 기이한 일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사건을 놓고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내어주실 것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90세 할망구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시는,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무를 쌓고 이삭을 눕힙니다. 이삭도 그렇지요. 나무 위에 누우라고 한다고 순순히 누웠을까요? 도망치려고 하고 버둥거리며 반항하지는 혹시 않았을까요? 삼일길을 걷고 또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정도면 이삭은 이미 자랄 만큼 자라 늙은 아브라함이 힘으로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랬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저 순순히 아버지의 명대로 따랐던 것 같습니다. 어린양의 예표이니 양처럼 순하게 말입니다. 성경은 이삭을 순종의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까지의 아브라함의 순종은 아브라함이 진짜로 아들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지 않는다면 여태까지의 순종도 다 쇼일 뿐입니다. 참 된 순종은 하나님의 “번제로 드리라”는 명을 끝까지 따르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물러선다면 그것은 진실한 순종이 아닙니다. 설마 참말로 그러시지는 않겠지,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이 쇼겠지, 날 시험해 보고 괜히 그러시는 거겠지..., 하고 하나님의 명령 자체를 거짓된 명령, 쇼로 여기고 거기에 맞장구쳐 드리는 쇼를 하는 거짓순종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브라함은 진짜로 이삭을 잡으려고 칼을 들고 이삭의 심장을 내리 찌르려 했습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다급하게 두 번이나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시며 아브라함을 제지하셨습니다.

     참된 순종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참된 목회 소명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 사랑에서 온다
     


     

    ▲ 김남준 목사(열린교회·총신대 교수)

     

    “목사에게 믿음의 은사는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생활을 하게 한다. 제자직의 소명은 십자가의 소명이다. …… 이것은 특히 목사의 삶에서 분명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신의 소명을 점검해 보라.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따라 이미 ‘성령에 매인 바 된 되어’ 주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갈 수 있는가?(행 20:22) 당신은 모든 것을 선뜻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즐겁게 환란을 당하고 그를 위해 바보가 될 수 있는가?(고전 4:9-13)”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실천신학 교수를 지낸 에드먼드 클라우니(E. Clowney)가 <목회의 소명>이라는 책에서 남긴 말이다. 지난 세기에 그가 했던 지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목회자는 믿음으로써 그리스도께 온전히 자신을 맡긴 헌신의 상태에서만 순수한 복음 사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경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목회의 소명을 오해한다. 목회의 소명은 매우 특별해서 평신도들의 소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인 다름이 아니라 분량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의 문제다(롬 12:3). 사도 바울의 소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평신도들에게도 이런 소명이 있다. 사도 바울에게 영혼을 돌보는 사명이 주어졌다면 평신도들 중 그 누가 자신은 그 사명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에게는 평신도들은 물론 그의 부르심을 뒤잇는 목회자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분량의 사명이 주어졌다.

    목회의 소명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위탁하고, 복음을 전해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과 성경 진리를 가르쳐 그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도록 목양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에 종사하면 화가 임할 것 같은 신적 강제력에 사로잡히는 것이다(고전 9:16). 그런 점에서 목회의 소명은 본질적으로 평신도들의 소명과 다르지 않지만, 특별하다.

    목회자의 소명은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 대한 신학적 경험을 통해서 현실로 다가온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건이다. 그리고 부활은 하나님이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신 사건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신학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명제가 있다. 하나님이 저주하신 분이라면 다시 살리실 리가 없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만큼 의로운 분이라면 저주하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신 21:23, 롬 1:4). 이 두 개의 모순된 명제 사이를 메우는 것이 ‘대속’(代贖)의 교리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예수의 저주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저주였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신학적 사실을 깨달으면서 지성에 벼락을 맞는 것 같은 경험을 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서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행 9:5, 15).

    목회의 소명은 바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에 대한 현재적 경험을 통하여 대속의 신학적 의미를 깊이 경험함으로써 주어진다. 평신도들에게도 이러한 체험이 있다. 이러한 체험이 없이는 그 누구도 회심한 그리스도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경우 그 체험의 분량이 평신도들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한 구원 사건을 종자씨로 삼아 인간과 세계와 하나님, 그리고 우주와 역사를 보는 사상이 열리는 신학적 개안(開眼)을 경험해야 한다. 많은 신학생들이 내게 묻는다. “참으로 좋은 목회자가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 때 내가 들려주는 대답은 이것이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십시오. 둘째로 죽도록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열렬하게 기도하십시오.”

    목회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오늘날 ‘목회’(牧會)라는 말처럼 모호한 말도 없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목회’라는 말의 의미가 확정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됨으로써 목회 사역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본질적으로 목회는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에 의한,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다. 목회는 그리스도가 시키셨고, 그리스도의 일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이며 탁월한 청교도인 월리엄 퍼킨스(W. Perkins)는 그의 책 <설교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대언하는 것이다. 그의 대언을 듣는 사람들은 설교를 통해서 은혜로써 부름을 받고 은혜 안에서 보호하심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께로 오도록 이끄셨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하는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분을 대리하여 백성들에게 간청하는 것이다.”

    위대한 청교도가 제시하는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명확한가.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가 맡기신 일이며, 그리스도의 일이며,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목회의 소명이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한 신학적 체험에 매이는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고(故) 방지일 목사님께서 어느 선교사집회에서 백세의 노구를 이끌고 오셔서 남긴 한 마디의 설교는 우리의 마음을 찌른다. “오늘날 설교에는 예수님의 피가 없어요. 목사들의 설교에서 예수님의 피 냄새가 안 나요.”

    이것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지적인가. 목회자의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냄새가 사라졌다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능력 있고 감동적으로 선포되고, 그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는 젊은이들이 많은 교회는 미래 조국교회를 위한 파릇파릇한 모판이다. 성도들이 조국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본받으며 가는 소명의 길

    오늘날 널리 유행하는 말 중에 ‘멘토링’(mentoring)이라는 말이 있다. ‘스승’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멘토’(mentor)로부터 ‘멘티’(mentee) 곧 제자가 폭넓은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목회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그리스도로 묶는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던 고린도 교회의 바울과 성도들과의 관계는 ‘본받음의 관계’였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고, 성도들은 바울의 인격과 삶에 의해 체화(體化)되어 나타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초대교회의 교부이자 오리겐의 스승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T. F. Clemens)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참된 삶의 모본을 보이시고 당신 안에 있는 자들을 훈련하신다. 그리스도는 명령을 내리시고 그것들을 몸소 구체적으로 실천하시는데, 그 실천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명령을 다른 사람들이 실천하도록 돕게 하기 위함이다.”

    목회의 소명은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도록 명령하고 그분을 따라 살도록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목회의 소명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이 아직 이 땅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일을 뒤잇는 것이다. 그래서 충성스럽고 유능한 목회자가 목회하는 교회일수록 목회자는 잊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기려지기 마련이다. 18세기 전설적인 설교자 조지 휫필드(G. Whitefield)도 말한다. “사람들이 나 휫필드의 이름을 잊게 하라. 오직 그가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만을 기억하게 하라.”

    목회는 들리는 말씀과 보이는 말씀의 섬김이다. 들리는 말씀은 성경과 신학으로써, 보이는 말씀은 인격과 삶으로써 성도들에게 유익을 준다. 목회의 길이 어려운 것은 단지 설교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목회자가 끊임없이 자신의 삶과 인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본 영화를 수십 번 반복해서 보면 싫증을 느끼지 않을 관객이 어디 있겠는가? 성도들은 목회자의 인격과 삶 안에서 끊임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서 목회자의 끊임없는 ‘자기 죽음’이 요구된다(빌 1:21). 성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때문에 그러하다.

    목회자는 끊임없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벧전 3:18). 그래서 예수와 다른 모습으로 살게 하는 옛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경험 안에서 죽어가고,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살게 하는 새 사람은 부활의 경험 안에서 현재적으로 살아나야 한다. 이처럼 목회자는 날마다 예수와 함께 죽는 자기 깨어진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목회의 길을 걸었던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는가?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하)

    설교보다 아름다운 삶

    기독교 역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만큼 위대한 지성의 업적을 남긴 인물도 없을 것이다. 신약성경의 절반 가량을 저술한 바울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그만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 없다. 그는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놓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 서양 사상의 바다로 나가는 수문의 역할을 하였다. 칼라마의 주교였던 포시디우스(Possidius of Calama)는 목회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그렇지만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은 그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던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 가운데 보였던 그의 삶의 특징을 어느 정도라도 접해 본 사람들이 그 유익을 누렸을 것입니다.”

    참된 목회의 소명의 기원은 목회의 성공이나 비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양떼들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다. 그는 십자가 아래서 죽고 다시 태어남으로써 목회의 길을 간다. 고백해 본다. “하나님, 제가 목회자입니다.” 언젠가 이 고단한 목회 사역을 마치고 눈을 감은 후에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묘비에 새겨진 글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소명을 따라 그리스도를 선포했던 설교자, 그러나 설교보다 삶이 아름답던 사람 여기 잠들다.”

    김남준 목사 ekd@kidok.com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6550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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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과 인천상륙작전 기념일 
    
    
    
    
    
    
    
    *= 라면 이야기 =*
    9월 15일은 아주 소중한 날입니다.
    나만 아니라 한국사람 모두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적어도 1963년 이후부터는 그렇습니다.
    국경일이냐고요?  당연히 아닙니다.
    
    6.25 전쟁에서 북한에 밀리던 한국군과 UN군이 극적인 
    북진 기회를 잡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자
    한국 라면이 첫 선을 보인 날입니다.
    
    라면, 라면이라 ..
    한국사람 누구나 먹어봤고, 저마다 추억이 있을 라면은,
    정확하게 ‘인스턴트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태어났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아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 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  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봅니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온 요즘 젊은 세대는 꿀꿀이 죽을 모릅니다.
    나 역시 귀동냥으로 여러 가지 남은 음식을 죽처럼 끓여낸, 
    ​빈곤시대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전 사장은 고민을 했답니다.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전 사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옵니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씨를 찾아갑니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집니다.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했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 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아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 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제작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더랍니다.
    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줍니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가격이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어렵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워줬던
    ‘제2의 쌀’이던 라면은 이젠 ‘인스턴트 식품’이란 이름으로 
    구박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6.25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던 인천상륙작전과
    국민들의 배를 채워준 라면이 선보인 9월 15일은 풍요로운 오늘,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날입니다. 
    
    ~* 옮겨온 글 *~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한 권하는 권고의 말씀이 아니고
    분부이며 명령인 계명이다.
    왜 우리에게 꼭 지켜야할 계명으로 주셨을까.
    우리를 간절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랑의 힘이 나타나시길 바라시기에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계명이면서
    우리를 향한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증(確證)이며 근거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을 맞으시고
    악독한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난을 받으시며 돌아가시기 까지 한
    고귀하고 간절한 사랑 ‘charity’ 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 가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치시고 새 생명을 얻는 소망을 주셨기에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를 간직한 사랑이 우리의 생명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생명인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안에 함께 거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알게 하시는
    믿음으로 믿음을 확정케 하시는 믿음을 더 하시려고 능력을 더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분부인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
    증인된 자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내신다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계셔서 권능의 힘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21]
    그리스도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나타나서 원수까지 사랑하는
    능력을 주신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땅에 완성케 하는
    복음의 의(義)가 됨은 이것이 경건의 모습이고
    우리 모두가 완벽한 믿음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더라도
    하나님 뜻대로 공의를 행하려는
    진리로 진실 되고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려는 형제자매의 몸부림의 모습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으려 하는 간절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실천하는 경건을 바라보아
    서로가 서로에게 말씀이 능력이 되는 힘이 되어 지치고 힘든 삶과
    곤 한 환경에 다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아 힘을 얻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알게 되어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받게 되며
    사랑하는 교제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전도가 되기에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은혜라
    우리의 노력과 행위의 공로(功勞)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charity’ 의 사랑으로 거저 받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인 복음을 전한 사람과 받은 사람을 통하여
    교통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기에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Godliness)한 선택(은혜)에 부르심에
    부르심의 합당한 응답의 태도와 실천하는 생활이 경건이며
    경건은 권능을 받은 자의 능력이고 더 경건하여 더 큰 능력을 받는,
    더 큰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역사가 세상의 역사를 만들어 왔기에
    세상의 역사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이다.
    그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영혼을 감찰하신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7-28]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시라는 말씀인가.
    우리를 조금 해코지하는 사람을 용서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시라
    하시는가.
    그러니 일상의 교제에서도 상대를 경쟁자 내지 무조건 지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단정하여 본인은 선한데
    질투와 시기 때문에 고통을 준다고 피해의식에 절은 사람들이 직분을 갖고 있으니
    공동체가 조용한 날이 있겠는가.
    외관으로는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의외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장로 때문에, 목사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음모 때문에, 신천지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병이다.
    그런 사람들은 뼈아픈 회개의 기도를 해야 성령님께서 치료해 주신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다음절에 예수님께서 설명하셨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3-36]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자신의 독생자를 주셔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 진정한 축복을 받았기에
    이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받은 우리의 은혜라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의 죄인 된 원수를 사랑함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자녀로서
    우리의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극진한 사랑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닮고 행하려는 경건으로
    그 경건으로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으로 서로 사랑함으로 더 큰 능력을 받음으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케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감화 하심으로 우리의 심령을 인도하시기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앙망(仰望)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자매가 서로 사랑하는 교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된
    자의 생활로 마음이 넓어져서,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6:11-12]
    속 좁아진 마음에,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의 감화로 지식이 되어
    깨끗함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고린도후서 6-7]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는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이라 힘(power)이며 경건이고
    경건한 자에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으로
    원수를 능히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의 능력을 가진 자가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평안을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누린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But the Comforter, which is the Holy Ghos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shall teach you all things,
    and bring all things to your remembrance,
    whatsoever I have said unto you.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unto you:
    not as the world giveth, give I un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요한복음 14:26-27]
    그리스도 예수님 이름으로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가르침이 가슴에 박혀 잊어버리지 않게 생각나게 하시고 모든 일을 도우시며
    세상의 근심과 염려의 순간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가르치시고
    이를 위해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여
    천국의 평안(Peace)을 너희에게 끼치기 위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그 평안을 권능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평안을 누리는 권능
    (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을 주시기에 흔히 말하는 성령 충만 이며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평안 인 히브리어의 ‘샬롬’ 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주시는 평강이며 평화라서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참 평안이라 사랑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안식이며  
    이 기쁜 소식이 복음이라 평안의 복음이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And your feet shod with the preparation of the gospel of peace 에베소서 6:15]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자.
    우상의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관습과 사회 윤리에서 살아왔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전한 복음을 받아드렸을 때
    얼마나 많은 억압과 괴로움을 당하였겠는가.
    그리고도 하나님께서 선택한 선민이라는 유대인의 핍박을 받았을 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받는 자들에게 대항하여 싸웠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굴복하였는가.
    아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4]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동족에서 고난을 받았지만
    그 고난이 복음을 위한 고난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이 되었음은
    성령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소망의 확신으로 평안을 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신약교회의 모범적이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종교지도자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왜 사랑해야 하는지 말씀하신 중에 이 한 구절을 뽑아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축도라 한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이 어떻게 축도를 가르치신 말씀인가.
    오늘날 사이비들의 설교를 자세히 들어보라
    말 머리 마다 ‘사랑’ 과 ‘축복’을 반복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은 단지 무조건 적인 복종의 조건이며 분별을 희석(稀釋)시켜 비판을
    차단하는 구실이라서
    축복, 축복을 반복 말하지만 그 축복도 종교지도자를 향한 무조건 적인 순종이
    축복의 조건이라 축복이 아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의(공의)로
    예수님의 사랑인 복음을 알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의와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은혜가 축복이라
    이미 받은 구원보다 큰 축복은 없다.





    감사는 숲을 담는 그릇 감사는 원천을 기억하는 지혜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원천이십니다. 감사하기 위해 무엇보다 당신의 마음을 돌보십시오. 특별히 고난속에 있다면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기적으로 받아 들이고 날마다 천국을 누립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삶 전체를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모든 것을 기적으로 여깁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해보십시오. 오늘, 당신이 뿌리는 작은 '감사의 씨앗' 하나가 울창한 '감사의 숲'을 이룰 것입니다. 강준민,<감사는 숲을 담는 그릇입니다>토기장이



      우주를 연구한 천문학자들은 우리 우주의 탄생은 138억년 전에 백뱅으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신문사의 백성호 기자님께서 한국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와 인터뷰를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인터뷰에서 기자님은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요?" 그러자 저명한 천체물리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그렇다면은 빅뱅이라는 출발선을 그만큼 앞당겨야 한다......"



      백성호 기자님은 빅뱅 이전 의문의 질문에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기자님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님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요한복음 1장 1절] 성경구절에서 그 해답을 찿고자 노력을 했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되어 있으며,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탄생 이전의 역사이고,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탄생 후의 역사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도 요한님은 예수님 제자중에 가장 오래 살면서 기록을 남기신 분이며, 사도 요한님 만큼이나 신약성경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예수님의 13번째 제자 이기도한 사도 바울님이다.



      2000년 전 사도 바울님은 주님의 부활 후에 상황과 전도를 기록한 분이며. 그 사도 바울님이 바라본 우주를 이렇게 간증하고 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자라(그가 몸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린도 후서 12장 1절-4절]



      사도 바울님의 유체이탈과 같은 간증 내용은 논란이 있을 수도 있으나, 사도 바울님이 본 셋째 하늘의 우주 모습은 다중우주와 같은 특이한 점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미국의 MIT 물리학과의 막스 테그마크 교수는 관측의 한계인 우주 반지름 420억 광년을 하나의 우주로 구성하여서 수학적으로 다중우주를 연구 했는데, 우리 우주 밖에는 이런 우주가 붙어서 늘어서 있다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교 브라이언 그린 교수는 다양한 다중우주 종류가 9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다양한 다중우주가 실존할 수 있다는 근거를 증명할 수 있는 다중우주를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과학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알파고의 인공지능을 창조한 인류의 21세기 과학은 슈퍼 컴퓨터로 우주와 다중우주를 만들어 시뮬레이션 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 하였다.





      철학적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하버드 대학교 로버트 노직 교수는 다중우주와 같은 수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상태는 물리적으로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영국 출생자인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우리가 시뮬리에션된 실제 속에서 살 확률이 이렇게 높다는 결론은 모든 가능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우주론이 잘못된 증거라고 주장을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은 모든 가능한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받아 들이면, 무수히 많은 우주들 속에는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고도의 기술 문명들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이런 기술 문명이 만들어 낸 시뮬레이션 우주들 또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받아 들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우주보다는 우리의 우주 또한 시뮬레이션의 다중우주의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불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런 결론의 다중우주 개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용 추가중>


      2016년 4월 13일

      펑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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