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뿌리, 백령도

자료실 2009. 10. 7. 06:31



육지에서는 1876년 이웅찬,이성하,김진기 등과 함께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인이 되었던 백홍준이 의주방면으로 성경을 숨기고 잠입한 것과 전회에 기술된 서상륜이 1883년 100권의 성서를 지니고 조선으로 잠입한 것이 최초로 기록된듯하나 사실 우리 민족에게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그보다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며 그 현장은 서해 백령도이다.

중국측에서 튀어나온 산동 반도로 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백령도는 그 거리가 불과 오백 리 (200 Km) 미만에 위치하여 과거로 부터 중국을 통한 서역의 문물과 선교의 물결이 쉽게 다다른 곳이었다.

(1) 선교사의 행적
 
기록상의 최초 인물은 1816년 9월에 백령도에 도착했으며 " 조선 서해 탐사기"를 기록한 리라호 함장인 바실 홀과 이ㅤㄸㅒㅤ 동행했던 영국 해군 대위 클리포드이다. 클리포드는 후에 해군 선교회를 만들기도 했던 독실한 신자였으며 이ㅤㄸㅒㅤ 그는 선물과 성경 , 전도 용지등을 수레에 끌고 다니며 기회를 엿보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영국 함대가 다녀간후 16년후인 1832년 이번에는 영국 런던 선교회 파송 선교사의 신분인 귀출라프가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의 발을 한국에 내딛게 된다. 다만 당시 그의 신분이 정식 선교사의 신분이 아닌 통역겸 선의로 승선했으며 성경등 전도 문서와 작은 선물을 배에 싣고 왔다.

승선했던 암허스트호가 해무에 갇혀 다다른 곳은 후에 남한 최초의 교회인 중화동 교회가 세워진 중화동 포구였다. 당시 쇄국 정책의 영향으로 외국 선박을 꺼려하는 분위기였으나 해무에 밀려온 덕에 해안 언덕의 집에서 주민에게 식사 대접을 받았고 필담을 통해 대화가 오가던중 성경과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다. 항해일지에 기재된 그의 기록 " 이 방문이 무익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 을 통해 당시 그의 심정을 엿볼수 있다.

이어서  남행을 게속한 귀출라프 일행은 충남 보령 근방에 머물며 만난 사람들에게 성경과 전도문서, 의약품들을 나누어 주었다. 지방 관리를 통해 통상 여부를 문의했으나 거절을 당하자 그의 일행은 8월경에 그곳을 떠나 중국 마카오로 돌아갔다.

멀어지는 조선의 땅을 바라보며 귀출라프는 갑판에 무릎을 끓고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나의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반드시 열매맺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이것을 믿었던고로 영광에 찬 십자가의 도를 저들에게 전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이미 성경을 받았으니 저들을 통하여 복음이 조선의 온땅에 퍼져  
광명의 아침이 찾아오도록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만을 기도할 따름입니다."
 
귀출라프 선교사가 다녀간 후에 약 33년이 지나서야 개신교 선교사가 다시 서해로 접근해 온다.
당시 조선의 강력한 쇄국 정책의 위험을 무릎쓰고 서해를 건너온 사람은 토마스 선교사였다.
 
1840년 9월7일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으며 런던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 부임하였다. 1866년 한국선교를 희망하여 내한 1865년에 서북해안을 찾아와 백령도를 비롯 황해와 평안도를 순회하며 전도를 했다. 이듬해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가 1866.9.2. 평양 대동강 양각도에서 순교했다. 토마스는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와 순교당한 첫 번째 선교사였다. 그를 처형한 박춘권은 1899년 세례를 받아 영수가 되는 이적을 낳았다.  


▲토마스 목사의 대동강변 순교장면,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그림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에 대한 소식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고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조선 선교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인물이 있으니 로스선교사이다. 그는 1876년 쇄국 정책으로  인해 접근이 어려운 조선 입국보다는 당시 중국으로의 사신들이 머무는 고려문을 통해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조선인이 의주 출신의 청년 이응찬이며 로스의 한국어 선생이 되어 다음해 조선 선교를 위한 " 한국어 입문서'를 발간하게 된다.

이어서 이응찬과 고향 친구들인 백홍준,이성하,김진기들의 도움으로 1878년에는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이 번역된다. 로스가 본국으로 간사이 후임 선교사인 매킨 타이어가 1879년  백홍준과 이응찬등  4명의 조선인에게 처음으로 세레를 베풀었으며 계속되는 젊은이들의 활동으로 조선으로의 간접 선교는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들에 의해 전회에 기술된 소래교회와 의주교회가 세워진다.  
 
(2) 내국인의 행적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일찍부터 복음의 씨가 떨어진 백령도에 이를 잘 경작하여  열매를 맺게한 이가 있으니 그는 허득공이다. 조선말 정조(22대) 이후 어린 임금이 잇따라 즉위하면서 정권은 외척의 손에 전단되었고 정치는 혼탁해졌다. 탐관오리들의 수탈에 민심이 동요되고 이에 동학란이 야기되며 이 세력은 걷잡을수 없이 퍼져나갔다. 1886년 동학의 세력이 황해도까지 이르자 조정은 각 지역의 토호들에게 관직을 주어 왕조편에 서게 만든다. 바로 이때 백령도에서는 허득공이 당상관의 관직을 받게되며 1894년 황해도에 번진 동학란을 대항키위해 장연군 관아에 이르게 된다.

허득공은 이때 전란의 와중에서 동학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동학도들을 굴복시키고 후에는 패전당하여 쫓기는 동학도들을 보호하고 돌보아주며 끝내는 기도교로 개종시킨 당시 소래교회의 매켄지 선교사와 소래교회에 깊은  인상을 갖게된다. 동학군의 토벌후 백령도로 돌아온 허득공의 마음에 심겨진 기독교가 싹트는 기회가 왔으니 1897년이었다.

당시 조정은 을미사변후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세우고 황제라 칭했으나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ㅤㄸㅒㅤ 정부 전복을 음모했다가 체포된  김성진 , 황학성 , 장지영등이 백령도로 유배되어 오게된다. 이들중 김성진은 소과에 급제한 진사의 선비로서 유배오기전 감리교 신자였던 조카에게 받은 성경책을 갖고 있어서 허득공과 성경에 대한 토론을 나누며 백령도에 교회를 세울 의견을 주고 받기에 이른다.

1898년 6월 조정에서는 북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 소안륜( W.L.Swallen ) 에게 호조(여행증) 을 발행해주며 선교의 해금이 이루어 졌음을 공식화했다. 이에 허득공과 김성진은 백령도민을 한자리에 모으고 예수를 믿을 것을 권유하고 의중을 묻는 회의를 하기에 이른다. 이는 평소에 도민 전체가 허득공을 존경하고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학란을 통한 어수선한 시국에 아직 예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 누구나 그를 믿고 따르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는 허득공의 연설을 듣고 박수로 화답하며 호응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허득공은 장연군 소래교회로 가서 서경조장로를 만났고 1898년 10월 몇몇 집사들과 김씨 여전도사와 서장로가 백령도를 방문해 10월 9일 한학서당에서 역사적인 중화동 교회 창립에배를 드릴수 있었으며 이는 현재 남한 지역에서  최초의 교회가 설립된 것이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것을 생업으로 하던 주민들에게 필수였던 당산제를 비록 모든 미신행위를 없이하느라 숫한 고초를 겪었고 이를 통해 교회는 성장했으며 허득공은 다시 서경조장로에게 의논을 하여 소래교회의 도움으로 교회당을 신축하기에 이른다. 이어서 1900년 11월 8일에는  언더우드 목사내외가 이곳을 방문하여 성례식을 베풀고 학습과 세례문답을 통해 허득,허간,허륜, 허근,허권,최영우,김홍보등 7 인이 세례를 받게된다.




 
교회를 설립후 수년이 지난 1902년 6월에 허득공은 천수를 다하며 운명하는 순간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유언을 남긴다. " 예수를 잘 믿어라. "
 
공의 유언은  그대로 이루어져 현재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높은 지역이 백령도가 속해있는 옹진군으로서 35.5 %에 이르른다. 백령면의 경우에는 무려 65%이르며 10여개의 민간교회와 2개의 군부대 교회가 있다.
 
한편 공의 후손중에는 후에 중화동 교회를 담임한 허간 목사와 63년동안 전도사와 목사로 10개 교회를 개척하고 성전 건축을 이룩한 허응숙목사가 있다. 현재 뉴욕에는 퀸즈장로교회를 출석하는 후손들이 있으며 허태형장로(4대) 허경화장로(5대) 허강집사(6대) 허남원(7대)에 이르는 후손들이 믿음의 선친의 유언을 기리며 한교회에서 4대가 어우르는 귀한 믿음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예수를 잘 믿어라 "


 출처: 아멘넷,
 글/누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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