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사도신경 강해)의 가르침 - 황원하 목사
성령론 2014. 7. 26. 03:10성령 하나님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사도신경 강해)의 가르침입니다.
*성령강림절(맥추감사절, 6월 8일)에 저희 교회에서 주일 오전에 설교한 내용입니다.
제20주(53문) 욜 2:28-32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
사도신경의 세 번째 부분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오해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나는 성령을 믿으며’라는 말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을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과 다른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령을 믿으며’ 다음에 나오는 조항들은 성령에 관한 고백의 구체적...인 조항이다. 즉 교회, 신자들의 교제, 사죄, 부활, 영생은 성령이 하시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성도들의 실제 생활과 연관된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를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을 주관하셨는데,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성화를 주관하신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교회에 속하며 서로 교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며 죽음에서 살아나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따라서 성령은 우리의 칭의를 이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화를 가능하게 하신다. 필시 성령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면 성부 하나님이 구원을 작정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구원을 성취하신 일이 우리 개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고대에는 성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현대에 이르러서는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것만큼이나 오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성령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령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이나 힘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극단적인 혼합주의적 신비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심리적 황홀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실 때에는 강력한 체험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성부 하나님이 계시며, 성자 하나님이 계시는데, 성령 하나님도 계신다. 한 분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함께 세상을 만드셨고 우리를 선택하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셨다. 참으로 세 분의 하나님은 함께 존재하시며 일하시는데, 그분들은 어떠한 충돌이나 모순도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신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모양으로 계시지 않았다. 즉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구분할 수 없다. 세 분은 한 분으로서, 한 분이시면서 동시에 세 분으로 존재하신다.
예수님의 약속
요한복음 13-17장에는 예수님의 긴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고별강화’(farewell discourse)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매우 중요한 말씀을 주셨다. 특히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예수님은 이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시지 않겠지만 그분의 영이신 성령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분이 계시는 것과 똑같게 하시고 그분의 일을 대신하심으로써 그분이 여전히 세상에 현존하시게끔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별강화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작별인사가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는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예수님의 약속대로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령님이 내려오셨다. 성령께서 내려오심으로 구속사의 진전이 급격하게 진행되었는데,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었고, 교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이제 성령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일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어야겠는데, 그 이전에 집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그분이 이 땅에 계시지 않았는가하는 점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이 땅에 계셨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는 성자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시기 전에도 이 세상에 계셨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성령 하나님이 이 땅에 ‘공식적으로’ 오심으로써 그분의 활동이 더욱 왕성해졌다. 이는 성자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심으로 구속사역이 구체화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맥추절과 성령강림절
구약의 3대 절기가 있다. 그것은 유월절(무교절)과 맥추절(오순절, 칠칠절)과 수장절(초막절)이다. 유월절(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이날에 그들은 첫 열매를 먹으며 감사하였다. 맥추절(여름)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오순절)에 지켰다. 이때에 그들은 처음으로 제대로 익은 열매를 먹을 수 있었다. 수장절(가을)은 그들이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지내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이 시기에 그들은 추수를 모두 마치고 한 해의 풍성한 소출을 걷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겨울에 안식하였다. 따라서 구약의 3대 절기의 요점은 봄(유월절), 여름(맥추절), 가을(초막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절기들은 신약시대에 이르러서 구속사적으로 성취되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맥추절은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영적 추수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고 사명을 불어넣어주는 절기이다. 초막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완전한 추수와 영원한 안식을 예시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3대 절기는 구약시대에 한정되거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민족적 명절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모든 세대가 인류의 마지막 날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절기들을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명령하신 의미이다(참고. 출 23:14, 17).
이제 이 절기들 가운데 맥추절에 대하여 알아보자. 맥추절은 밀과 보리를 추수한 것을 감사하는 날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날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해서 오순절 혹은 칠칠절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이르러 맥추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셨다. 따라서 구약의 맥추절은 밀과 보리를 추수하는 것을 기념하였지만 신약의 성령강림절은 성령의 오심으로 영적인 추수가 시작되는 것을 선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영적 추수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맥추절과 신약의 성령강림절은 같은 것이므로 신약의 교회는 성령강림절을 맥추절의 성취의 날로 지켜야 한다.
요엘의 계시와 베드로의 해석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이 엄청난 현상과 함께 강림하셨다(참고. 행 2:1-13). 베드로는 이 일에 대하여 설교하면서, 성령님의 강림을 요엘의 계시의 성취로 해석하였다(참고. 행 2:14-41). 그는 하나님이 맥추절을 통하여 예시하셨고 요엘을 통하여 계시하신 일이 드디어 오순절에 이루어졌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강림을 우발적이거나 즉흥적인 사건으로 볼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속사적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오랫동안 준비하셨으며 예수님은 이 일을 구체적으로 예언하셨고 드디어 때가 되어서 이 일이 이루어졌다.
요엘 2:28-32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성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임하셔서 다양한 표징들을 보이신다. 여기서 환상과 꿈과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주셨지만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거듭난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신다.
성령의 강림은 종말의 날의 도래이다. 그리고 종말의 날은 구원과 심판의 날이다. 이것은 요엘 2:30-32에 기록된 것과 같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제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종말론적인 구원과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 우리의 지식과 감정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님의 기본적인 사역은 다음과 같다.
1. 성령은 나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고 우리에게 아무런 선한 요소가 없었지만 그분의 사랑 가운데 성령을 주셨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신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 안에 성령께서 계신다. 이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참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이어서 말한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이다.
2. 성령은 나를 그리스도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신다.
성령은 참된 믿음으로 나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3-14). 이것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보여준다.
성령은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성자의 이름으로 보내어지신 분인데, 성자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성자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성자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성령은 성자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성령은 성자를 증언하시는데, 성자께서 죽으신 일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일과 하늘로 올라가시는 일과 다시 오실 일을 말씀하신다. 따라서 성령을 말할 때에는 성자를 말해야 한다. 성자를 제외하고 성령을 말할 수 없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영이다. 즉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실로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알고 예수님의 구속을 깨닫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결과이다.
3. 성령은 나를 위로하신다.
신약의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구약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사도들과 신실한 제자들이 커다란 위험과 두려움에 직면해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들 앞에는 ‘간혹’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적대적이었으며 위협적이었다. 사실상 그들에게 안전한 장소는 없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했던 그들은 위험 앞에서 전혀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았으며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성령 하나님은 그들을 강하게 하시고 담대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에 근심했지만 예수님은 성령께서 오시면 그들이 예수님을 다시 보는 것과 같이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들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주신다. 그분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방식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분은 기쁨을 주신다.
4. 성령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다.
요한복음 14:16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베드로전서 4:14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자들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 위에 ‘영광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떠난다. 세상의 재물과 영화도 나를 떠난다. 그러나 우리를 떠나지 않는 유일한 분이 있는데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버리려고 하지만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의 구원의 보증(견인)은 우리 자신의 의지와 행실과 신실함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로지 성령 하나님의 언약에 있다. 비록 우리가 타락하고 믿음의 많은 부분을 상실할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타락하고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보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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