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0:1-15,오늘날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존재하는가?     10.12.12, 박홍섭 목사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12제자를 세워 추수할 일꾼으로 파송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놀라운 권능을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칠 수 있게 하셨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가는 곳마다 더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권능이 오늘 날에도 유효하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이지 않습니까? 과연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며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그러나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할 때 그저 받은 것을 그저 주는 자세이며 전대에 은이나 금을 가지지 말고 주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일꾼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와 같은 자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이 당부하신 그와 같은 자세보다는 우리도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우리도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가?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집니다.

 

정확하게 따지면 본문의 12제자는 그냥 제자가 아니라 사도들입니다. 1절에서는 12제자라고 불렀는데 2절에는 사도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12사도는 1절의 말씀처럼 많은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받은 12제자들입니다. 2절은 그와 같은 특별한 권능을 받은 자를 강조하기 위하여 제자라고 부르지 않고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라는 명칭은 마태복음에서 여기에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로 ‘왕이 임무를 맡겨 보낸 자’라는 뜻입니다. 본문 10:1절은 그냥 12제자를 불러서 이와 같은 권능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눅6:12-13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들을 세울 때 그냥 세운 것이 아니라 산에 가서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예수님이 모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까지 주셨던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제자들 중에 특별한 임무수행을 위해 예수님이 가려 뽑은 사도라는 것입니다.

 

그 특별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5-6절을 보면 이방인의 길도 아니고 사마리아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서 천국이 가까웠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제자들의 사역범위가 제한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 어떤 때라고 하셨습니까? 9:37절에 보면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들이 적은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면 구약에 그렇게 많이 예언하셨던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씀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더 이상 혈통적 육신적 정치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영적 이스라엘로 신약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시면 더 이상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 추수할 영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희어져 추수해야 할 영혼들이 이스라엘의 여기저기에 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고 부활하지 않아서 육신의 제한을 받고 계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이 고을 저 고을로 다 다니지 못합니다. 다 추수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십니까? 12제자에게 권능을 맡겨서 각 고을을 다니면서 희어져 추수할 영혼들을 추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2사도들에게 맡긴 권능들은 이런 목적수행을 위한 한시적인 권능들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사도는 신약 성경을 기록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성경은 선지자들이 주로 기록했고 신약은 사도들이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승천 하신 후에 이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영감 중에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시어 이들이 교회의 터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라는 직분은 성경을 기록하고 신약교회의 터가 되도록 하기 위한 특별한 기간의 한시적인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에 의해 성경이 다 기록되고 교회의 터가 닦인 후에는 더 이상 선지자와 사도라는 이 특별한 직분자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십니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사도들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고 모든 병을 고치고 약한 것을 고치도록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을 하시고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계시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선지자와 사도대신 선지자와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으로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것을 하게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성경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만이 아니라 마28:19-21절의 말씀처럼 모든 민족을 제자 삼기 위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갑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언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 모두는 주님의 제자들이고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지만 우리가 사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 선지자적인 자세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가 선지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처럼 보냄 받은 자들이지만 사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받았던 모든 병을 고치고 모든 약한 것을 치료하는 권능과 죽은 자를 살리는 특별한 권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고 사도가 있다고 하면서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치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 권능을 받은 선지자요 사도인 것처럼 행세하는 자들은 망령된 자들입니다. 그들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기록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신약교회의 터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당시 사도들이 받았던 그와 같은 권능을 행할 수 있나?가 아니라 주님께 받은 것들을 어떻게 나누어 주는가?입니다.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는 권능을 받았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성경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받았던 이 특별한 권능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그들이 남긴 하나님의 말씀, 곧 권능의 말씀들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딤후3:16절 이하의 설명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듣는 자로 하여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해서 육신의 죽음보다 더한 영혼의 죽음에서 우리를 살릴 것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죄를 치료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전파되고 이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고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의 모든 길과 사마리아와 땅 끝의 모든 열방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사도들이 주님에게 받았던 놀라운 권능이 우리에게 없지만 더 놀라운 성경의 권능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성경이 선포되는 곳에 병든 자들이 치료되고 이 성경이 선포되는 곳에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들이 일어날 것이며 죄가 치료되고 죄를 이기는 새 이스라엘 백성들이 태어날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떤 자세와 어떤 원리로 이 사명을 대하는가? 입니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어야 합니다. 마치 나에게 있는 것을 주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생색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금이나 은이나 동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14-15절을 보면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않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히 내 말을 안 들어....두고 보자..먼지를 떨고...” 이런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무례를 떨고 건방을 떨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기회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이들을 향하여 베푸시는 긍휼과 용서와 기다림의 기회는 이것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육신적 혈통적 차원의 이스라엘 선교의 긴급성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땅 끝까지 나아갈 때 이와 같은 긴급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베푸시는 긍휼과 용서와 은혜를 맡았습니다. 우리가 이 긍휼의 복음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는 자세로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합니다. 우리 하나가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이 시대와 이 사회를 긍휼과 은혜로 만나주시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등을 돌리면 이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긴박성을 가지고 주의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 바로 이 시대의 교회이며 주의 백성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들을 부르셔서 맡기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들에게 맡기신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주시고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셨고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만으로 부족해서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먼저 이 말씀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들을 때 우리의 영육간의 병든 부분들이 고침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어 모든 죽어 있는 것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으로 우리가 먼저 살아나서 온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이 부르심에 마땅한 책임과 감사함으로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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