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개혁주의 자료 2014. 12. 22. 06:15유혹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소위 친구라는 사람이 우정을 위하여 여러분으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게 한다면 친구가 아닙니다. 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혹받는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유혹하는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잭 하일스 박사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사람을 죄짓게(그, '넘어지게 하는')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 화가 있다. 범죄의(그, '넘어지게 하는 일') 유혹이 없을 수는 없으나, 유혹하는(그, '넘어지게 하는 일')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마18:7)
“실족하게 하는 일” 이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실족하게 하는 일은 곧 거침돌이 되는 일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하게 만들거나 그렇게 인도하려는 시도,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바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은 고의로 행한 것일 수도 있고 부주의나 무지로 인해 떨어진 거침돌일 수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우리 주님은 실족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심각한 잘못일 수도 있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지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거나 바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거침돌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장애들은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와 교회 안의 모든 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가운데도 있고, 형제회나 자매회나 청년회 중에서도 있고, 집에서도 있고, 사회에도 있으며, 교회학교 학급에도 있고, 직원이나, 그리고 신학교나 목회자 친교회에도 있습니다. 거침돌들을 고의로 놓거나 부주의하게 떨어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마약에서부터 험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동원하여 다른 그리스도인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살펴봅시다.
1. 저들은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 우리가 그 잘못된 일을 하도록 인도합니다.
이 사람들은 가장 악한 거침돌입니다. 잘못된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잘못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이 그 잘못을 행하고 있으면서 자신들만 그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이기 원치 않습니다. 이 일의 비극은, 많은 경우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큰 복으로 주신 우정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저주로 타락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때대로 유혹하는 사람은 그 유혹이 거절되고 저항을 받으면 우정을 잃어버리는 값을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그와 우정을 유지하려면 말도 안되는 값에 우리가 그것을 사야할 것처럼 믿게 하려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러한 우정은 살 가치가 없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소위 친구라는 사람이 우정을 위하여 여러분으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게 한다면 친구가 아닙니다. 이러한 유혹은 마약에 중독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의 습관으로 끌어들이려고 행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젊은이가 이성(異性) 친구에게 성관계를 강요하면서 사랑의 증거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지도자에게 신실하지 않는 어떤 사람이 그의 불만에 다른 사람이 동참하도록 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거의 매주 교회 안에서 문제가 있는 목사님들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비슷합니다. 교회 안에서 영향력 있는 어떤 사람이 목사님과 그의 사역과 그의 지도력을 해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죄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도 그와 합세하기를 원하여 다른 사람들의 충성심 앞에 거침돌을 던집니다. 이 거침돌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결국은 큰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것입니다. 오늘날 불러내어 모인 무리와 목사님들이 당하는 그 일을 모세와 아론도 당했습니다.
“1 이제 레위의 증손이요, 고핫의 손자요, 이스할의 아들인 고라와, 르우벤의 자손들 엘리압의 아들들인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인 온이, 사람들을 모아들였더라.
2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대항하니 회중 안에서 유명하고, 잘 알려진 사람들, 곧 그 집회의 지도자들 이백오십 명이니라.
3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회중 각자가 거룩하고,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도 계시거늘,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도다. 그런즉 어찌하여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느냐? ”(민16:1-3).
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대항하니” 3절에서도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여 사람들을 모으고,”라고 하였습니다. 2절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십시오. “회중 안에서 유명하고, 잘 알려진 사람들, 곧 그 집회의 지도자들 이백오십 명이니라.” 마귀는 그의 방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삼천 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3절에서 저들이 고소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모든 회중 각자가 거룩하고,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도 계시거늘,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도다. 그런즉 어찌하여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느냐?” 돌아가는 모든 것은 돌아오게 되어 있으며 사탄은 그다지 독창적이지 못합니다. 그의 방법은 세대를 지나도 여전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지도자를 험담합니다. 그리하여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에게 특히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8) 하신 말씀은 그 기억에서 망각되어 버리고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려 애씁니다.
2. 저들은 우리가, 자기들은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나쁜 것으로 알고 있은 것들을 행하게 합니다.
저들은 우리가 우리의 분명한 확신을 거슬러 가야하는 것으로 믿게 만들려 합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듣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진정한 친구는 “그것은 잘못된 게 없어!”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우리가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용납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신 안에 거하면서 그 확신대로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참된 친구는 우리의 확신을 존중할 것이며 확신을 그에게 맞추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저들은 우리가 옳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삶을 쉽게 하려고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이 동료 그리스도인을 어렵게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개성, 우리의 대화, 우리의 습관은 틀림없이 서로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거나 아니면 장애가 됩니다. 우리의 친구가 나쁜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의 좋은 성품이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 나쁜 일을 계속하도록 부추기거나 유혹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친구가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그에게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우정을 증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는 친구를 돕기 위해 장려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막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지체가 나쁜 일을 하도록 인도하지 않을 것뿐만 아니라 바른 일을 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침돌이 되는 사람과 우리가 가는 의로운 길에 거침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 그의 거침돌에 걸려 넘어짐으로 그에게 거침돌이 되지 마십시오.
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혹받는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유혹하는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유혹하는 죄의 왕관을 씌우는 것입니다. 유혹하는 사람이 유혹받는 사람의 죄를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혹받는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면 자신을 유혹한 사람의 죄를 지원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거침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놓은 사람을 더 큰 악, 곧 또다른 악을 행하는 것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 범죄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유혹에 넘어가면, 그가 우리에게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 앞에 거침돌을 둠으로써 범죄 합니다. 유혹받는 사람은 걸려 넘어질 때 죄를 짓습니다. 그는 유혹하는 사람의 죄가 완성되고 두 배가 되게 함으로써 유혹하는 사람이 이중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술 권함을 받은 사람의 의로운 길에 거침돌을 두는 죄를 지었습니다. 유혹을 받은 사람이 술을 마심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에게 술을 권한 그 사람에게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이미 술을 마심으로 죄를 지었고 그의 이웃에게 술을 권하는 죄를 지었는데, 이제는 그의 이웃이 술을 마셨으니 이웃이 술을 마시게 한 결정적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는 두 가지 죄가 아니라 세 가지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한 젊은 청년이 젊은 여자를 불륜으로 끌어가려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렇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는 여자는 그의 죄를 완성시켜 줌으로 유혹하는 자의 죄를 두 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형제가 지도자에게 신실하지 못하고 그의 불만에 다른 사람이 동참하도록 험담을 늘어놓습니다. 이 때 대부분은 즉각 거절하지 않으므로 동참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끈질긴 그의 험담에 동요되어 버려 교회를 허무는 일에 맞장구를 치게 됩니다. 이 경우 그 동참한 사람은 그 형제에게 죄를 범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그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만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불만을 묵인해 줌으로써 그 불만이 옳은 것이라고 인정해 주는 꼴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도 옳은 것인양 생각하게 하는 중대한 범죄를 교회에 행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작은 불씨가 산 전체를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2. 즉각 거절하십시오.
“내가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는데, 신속히 하되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119:60).
악을 거절하기 가장 좋은 때는 그 순간입니다. 때때로 바른 일을 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그 바른 일을 즉시 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 시편은 우리에게 바른 일을 하라고 장려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즉시 하라고 장려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의무의 소명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그 소명에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순종, 마치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한 아이가 재빨리 행하는 것과 같은 즉각적 순종과 마지못하여 억지로 느릿느릿 행하는 순종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보더라도 어떤 순종이든 미루면 더 어려워집니다. 일부러 미루는 순종을 통해서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러한 순종은 일을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즉각적인 순종만큼 기쁜 순종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유혹이 일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유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은 그 자체로 많은 어려움을 정복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것과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것을 아는 뿌듯함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막습니다.
3. 거침돌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는 함께 다니지 마십시오.
모든 교회와 교회의 모든 기관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혜롭다면, 그들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은혜로써 대하기는 해도 그들과 함께 다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해몬드 지역에서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도중에는 중앙이 분리된 사차선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주간도로(州間道路) 65번입니다. 이 고속도로가 지나는 길에는 마을도 없습니다. 멈춤 신호도 없고 끝까지 중앙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구도로가 있는데, 41번 고속도로입니다. 해몬드를 떠나서 41번 고속도로를 타면 인디애나 주 하일랜드를 지나야 하는데 그 길에는 대여섯 개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쉬러빌을 통과하는 데에는 신호등이 둘이나 더 있습니다. 그리고 세인트 존을 거쳐야 하고, 시더레이크,또 여러 작은 도시들을 거쳐야 합니다. 인디애나폴리스까지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65번 주간도로를 택할 것입니다. 41번 고속도로를 탓하거나 비판하거나 그 도로에 대해 험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 도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그의 생각 속에 41번 고속도로는 빠져 있을 것입니다. 거침돌이 없는 길로 그냥 가면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거침돌을 두는 사람이 가는 길을 가지 않으면 됩니다.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해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는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사람들과 여행하느라 너무 바빠서 죄의 공범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
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불화가 있을까요? 그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만족되지 못한 기대들’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받지 못하는 어떤 것을 받고자 하는 소원이나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바라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만족되지 못한 욕구들 때문에 일어나는 불화를 막는 비결은 그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우리의 원함이나 욕구를 우리의 능력 한계 내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대접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접을 받지 못하면 불화가 생깁니다. 이런 일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리고 사석에서도 불화를 일으킵니다. 만일 그와 반대로 우리의 욕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라면 그 욕구는 채워질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어떤 방법으로 대접을 받아야겠다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적절히 대접하고자 하십시오.
감사의 말을 듣고자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감사를 표하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이 다른 이들을 인정하십시오.
우리 교회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의 소원, 우리의 바람, 우리의 욕구가 정결하게 되고 성화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죽을 수 있도록,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 삶을 다른 교회(형제나 자매)를 위해 사용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사도 바울은 그랬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2:20 상반절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나무에 달려 못박혀 있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 있음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해서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그는 살았다가 죽고, 살았다가 죽고, 살았다가 죽었습니다. 사는 것이 없으면 죽을 것이 없습니다. 죽는 것이 없으면 살아야 할 목적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향하여 살고, 우리가 죽어도 주님을 향하여 죽는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셔서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그분께서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자들의 주님이 되심이니라. 그런즉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멸시하느냐?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되리라. 이는 기록된 바,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으므로,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셨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진술(陳述)하게 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자기 형제의 길에 걸림돌이나 실족하는 것들을 놓지 아니하였는지 판단하라.”(롬14:7-13).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스스로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혼들을 위해 깨어 있기를 마치 자기들이 반드시 회계(會計)보고 할 자인 것같이 하나니, 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슬픔으로 하지 아니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유익이 없음이니라.”(히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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