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그리스도' / 제임스 패커
성령론 2017. 4. 11. 00:53'성령과 그리스도' / 제임스 패커
요한복음의 역사적 신빙성을 두고 한 세기에 걸쳐 학계에서 벌어진 논쟁 덕분에, 신약성경의 테마를 탐구할 때 요한복음부터 시작하면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취급을 받게 되었다. 관례에 따르자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을 통해, 때로는 베르로와 바울 서신까지 거쳐서 요한의 증언에 접근해야 한다. 마치 이들 다른 성경 기자들의 눈을 통하지 않으면 요한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요한이 기록한 내용의 정통성이나 명료함을 의심할 어떠한 이유도 없기 때문에 요한복음을 출발점으로 삼아 성령의 새 언약 사역을 해명하려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육성을 통해, 성령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 단서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요한복음이기 때문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어쨋든 우리는 요한의 도움을 받아야만 마태, 마가, 누가, 베드로, 바울이 성령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성령의 약속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당신이 곧 떠날 것이고 영광을 얻게 될 것을 감안하여, 열한 제자들에게 그들이 앞으로 가져야 할 제자도에 대해 길게 말씀하셨다(13-16장). 예수님은 여러 번 보혜사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분을 진리의 영(14:17, 15:26, 16:13), 거룩한 영(14:26)이라고 부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떠나신 다음(14:16,26), 성부께서 성자의 요청으로 보혜사를 보내실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성부의 대행자인 성자가 보혜사를 파견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15:26, 16:7). 예수께서는, 보혜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14:26), 다시 말해 예수님의 특사, 대변인, 그리고 대표로서 파견되어, 예수님의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4:16). 이 말은 곧 성령께서 오심으로, 영광스러운 주(主)이신 예수님 자신이 실제로 제자들에게 되돌아온다는 뜻이다(14:18-23). 성령께서는 새 언약 사역을 행하면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모든 관심을 성령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시며, 사람들을 믿음, 소망, 사랑, 순종, 경배, 헌신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이끄신다. 이것이야말로 말하자면 에큐메니컬운동, 은사주의운동, 전례(典禮)운동(20세기 초에 주로 가톨릭교회 안에서 일어난 예배 쇄신운동-옮긴이), 소그룹운동, 평신도사도운동, 세계선교운동, 등등 소위 '영적인' 운동과 '영적인' 체험이 진짜인지 가늠할 수 있는 변함없는 시금석이다.
성령과 그리스도의 임재
따라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고, 성부, 성자와 실제로 교제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14:21-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14:23).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한 놀라운 체험에 대한 선언문이다. 사도 요한은 이 체험에 대해 증거하면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요일1:3)고 기록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3절 말씀을 통해,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체험이 있는 교제를 추구해야지 절대로 그 이하의 상태에는 안주하지 말라고 지금도 권면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영의 가르침
그 외에도, 예수께서 3년의 소중한 지상 사역 기간 동안 가르치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도 가르치신다. 성령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직접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이해하도록 이끄시는 식으로 가르치신다(16:13의 "모든 진리"라는 예수님의 표현은 14:26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알 만한 것은 무엇이건 전부'가 아니라 '나에 관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뜻하고, 16:13의 "장래 일"은 '너희에게 닥칠 일'이 아니라 '나에게 닥칠 일', 즉 십자가, 부활, 통치, 재림 등의 모든 것을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이 점을 시금석으로 삼으면,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호소하는 다양한 유형의, 이른바 기독교 신학 하나하나에 성령이 얼마나 내주하시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증거
마지막으로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 범죄자로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그분은 결코 죄인이 아니고, 성부의 영광으로 되돌아가심으로 그분의 의로움이 실제로 입증되었으며,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심판으로 '이 세상의 사악한 임금'(12:31)을 권좌에서 쫓아내셔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고 증거하신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바로 불신앙의 죄(15:27, 16:8-11)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신다. 증거하시는 성령은 그런 연유로 인류에 대해 검사하는 직무를 수행하셔서,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는 잘못했다. 난 유죄다. 나는 용서받아야 한다'는 자백을 받아 내시며, 예수님을 거절하거나 적어도 예수님을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일인지 절실히 깨닫게 하신다(16:8).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할 때 주시겠다고 약속한 성령의 도우심이다. 교회가 사도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듯이, 성령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사람들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분의 이러한 증거는, 사람들의 내면의 귀를 열어 복음 전도자가 펼쳐 보이는 진리를 각 개인의 양심에 적용하시는 일을 가리킨다(15:27, 17:20).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영광스러운 구세주께 영광을 돌려(16:14),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명확하게 이해시키는 해설자 역할과, 무지한 영혼이 그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조명하는 역할을 감당하신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 사역의 중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투광조명 사역
성령이 새 언약에서 맡으신 독특한 역할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투광조명'(건축물의 외부나 동상, 기념비, 경기장 따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투광기를 사용하여 조명하는 방법-옮긴이) 사역이라 부를 만한 일이다. 이 역할에 한정해서 본다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는 성령께서 '와 계시지 않았다'(7:39, 헬라어 글자 그대로 풀이했음).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영광을 인식시키는 성령의 사역은 오직 성부께서 성자를 영화롭게 하신 다음에야(17:1,5) 시작될 수 있었다.
어느 겨울 저녁,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설교하려고 교회로 걸어가던 기억이 난다. 모퉁이를 돌 때 건물에 비친 투광조명을 보고, 이거야말로 내 설교에 필요한 그림 같은 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광조명이 잘되면 조명등 자체는 안 보이는 법이다. 조명이 어디서 나오는지 몰라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투광조명이 비춰지는 건물만이 보일 뿐이다. 그 기대효과는 조명이 없었다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을 건물을 보이게 만드는 일이며, 건물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눈에 띄게 만들어 건물의 위용(威容)을 극대화시킴으로 건물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은 성령의 새 언약 역할을 보여 주는 완벽한 그림이다. 성령께서는 구세주 예수를 비추는, 이른바 숨겨진 투광조명등이다.
아니면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뒤에 서 계신 성령께서 우리 어깨 너머로 빛을 비추어 우리 정면에 서 계신 예수님을 비추신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결코, '나를 봐, 내 말을 들어, 내게로 와, 나를 알아야 해'가 아니라, 항상 '그분을 보고, 그분의 영광을 보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그분께 가서 생명을 얻으라. 그분을 알고 그분의 기쁨과 평화를 맛보라'는 내용이다. 성령께서는 중매쟁이 곧 천상의 결혼중매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분은 우리와 그리스도를 결합시켜 함께 머물게 하시기 때문이다. 두번째 보혜사이신 성령은 계속해서 첫번째 보혜사이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이끄시며, 위에서 본 대로 두번째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심으로 첫번째 보혜사를 알아보게 하시고, 우리를 감동시켜 우리를 만나기 위해 보좌에서 내려오시는 그분께 손을 내밀게 하신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다.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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