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작은 아이성일지라도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죄가 무엇일까요? 아간의 죄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간은 가나안 땅을 더럽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더럽히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아간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범죄는 결코 저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훔쳐서 숨기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죄요, 약속을 믿지 않는 죄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요,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고 더럽히는 죄인 것입니다. 한국교계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아간의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요? 믿는다는 자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지켜보고 계신다고 믿는다면 절대로 저지를 수 없는 음란의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목회자가 말입니다. 또 많은 성도들이 이 정도쯤이야 하고 작은 범죄라 얕보고 저지르는 일은 얼마나 많습니까?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아간의 조그만 범죄에 하나님은 극렬하게 진노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을 버리실 정도로 말입니다. 아간을 불태우고 돌로 덮어 깨끗이 제하자 비로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하나님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이성 공격계획을 자세히 지시하여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아이성 거민을 진멸하되 물건과 가축은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리고는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지만 아이성은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한 아이성 뒤에 매복하라 하시고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공격하도록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여리고성에서는 그저 여리고성을 도는 것과 나팔을 길게 불 때 소리 지르는 것밖에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런데 조그만 아이성에서는 무기를 잡고 스스로 예비하여 밤에 성 뒤에 매복하고 뜨거운 광야를 달리고 맹렬한 전투를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자가 작은 토끼 한 마리 잡을 때도 전력을 다 하는 것처럼 아무리 복음과 생명을 위하여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있을 수많은 전투에 능히 이길 수 있는 군사로 세우고, 싸우고 쟁취함으로 승리를 얻고 맛볼 수 있도록 훈련하신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지시에 따라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아이성을 공격하는 척 하다가 거짓 패하여 광야길로 도망쳤습니다. 기세가 오른 아이성 거민들은 성문을 열어놓은 채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맹추격하였습니다. 메튜 헨리 주석에서는 ‘마치 패배하는 것 같았으나 궁극적 승리를 거둔 여호수아의 싸움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해 사단에게 패배한 듯 하였으나 부활하심으로 완전하고도 영원한 승리를 거둔 그리스도의 위업을 예표해 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매복하였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단숨에 아이성으로 달려들어 점령하고 성읍에 불을 놓았습니다. 도망하는 체 하던 군사들이 돌이켜 아이 군사들에게 달려들고 매복하였던 복병들이 또 아이성 군사들을 포위하고 공격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단창과 아이성의 불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사기충천, 그러나 아이성 거민에게는 경악과 절망과 혼란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이성의 군사들은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당황하고 두려웠을까요? 그야말로 통쾌한 승리의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단창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끝까지 내려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여자,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 진멸시켰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방족속들의 포로에 대해서는 여자와 아이들은 살려주고 종이나 아내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민 31:17,18; 신 21:10-14). 그러나 가나안 족속은 본 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이도록 명해졌습니다(신 20:16,17). 성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던 여자, 노인, 어린아이까지 이처럼 남김없이 살육하고 아이성 왕을 나무에 매달기까지 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속성에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일삼던 가나안 거민의 죄악을 철저하게 미워하신다는 점과 아울러 우상숭배의 결과는 곧 사망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은 사람의 선하고 악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냐 우상숭배의 백성이냐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그 날 천국에서는 단 한 사람의 죄인도 단 한 사람의 우상숭배 백성도 허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순결한 그리스도의 몸, 그 살과 피로 들어가는 천국 땅, 하나님의 나라의 예표인 가나안 입성에는 단 한 점의 오물도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경히 여기지 마십시오. 아간의 죄를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가 나아가는 길과 우리의 마음에서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진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어떠한 것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는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떨림과 두려움과 거룩함입니다. 그 일, 곧 우리자신을 성결케 하는 것은 조그만 아이성 전투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전력을 다 하는 것 같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전력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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