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본질, 사회주의 붕괴와 북한


 


 

서옥식(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1. 공산주의의 본질


 

(1)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의 모든 사회적 조건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The Communists disdain to conceal their views and aims. They openly declare that their ends can be attained only by the forcible overthrow of all existing social conditions. Let the ruling classes tremble at a Communistic revolution. The proletarians have nothing to lose but their chains. They have a world to win. 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


 

이상은 공산주의 시조 마르크스(Karl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1848년 2월 21일 런던에서 발표한 그 유명한 공산당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Manifesto of Communist Party)의 마지막 대목이다. 능력껏 일하지만 필요에 따라 가져가 풍요한 물질생활을 누리고, 노동하는 일상생활이 재미있고 여유 있으며, 계급도, 군대도, 법도, 국가도 없는 지상천국이 이룩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낙원으로 가는 길(the way to paradise)’의 각본이다.


 

※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 사회주의 ․ 공산주의 단순 비교


 

자본주의- 능력에 따라 일하지만 일한만큼 가져가지 못한다(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가져간다.


 

공산주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역사발전 5단계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중세 봉건제 사회→근대 자본주의 사회→미래(현대) 공산사회


 

※공산주의의 무신론사상-종교말살론


 

공산주의는 무신론(無神論) 사상이며, 따라서 종교말살론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으며, 공산주의 혁명을 성취시킨 레닌(Vladimir Il'ich Lenin)은 <현대 종교는 노동 계급에 대한 억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종교가 인민을 착취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김일성은 집권초기부터 <종교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 도구> 이고 <원수가 왼뺨을 때리면 우리는 왼뺨․오른뺨을 다 때려야 한다>며 타인에 대한 사랑을 중요시하는 기독교 교리에 악담을 퍼부었다.


 

※공산주의와 전쟁


 

마르크스는 “전쟁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이를 강화하며 확대하기 위해 행해지는 사회집단 상호간의 무력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즉 생산수단의 소유를 위한 수단과 방법 및 행위가 전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의 주장은 계급투쟁에서 “역사에는 유일하게 항구적인 투쟁만이 존재하는데, 그 투쟁이란 바로 가난한 자의 가진 자에 대한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이를 성실히 수행하면 사회혁명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쟁으로 발전한다”고 정의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일어나는 전쟁에는 반대하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해방전쟁에는 찬성한다”며 전쟁에 대한 이론을 전개시켰다. 이 같은 공산주의의 폭력혁명 이론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해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를 이념 전쟁의 회오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공산화, 6․25 전쟁, 베트남전쟁, 캄보디아 내전에 따른 폴 포트의 대학살(The Killing Field)등이다.


 

지난 1997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공산주의 흑서(黑書)>(The Black Book of Communism - Crimes Terror Repression)의 통계에 의하면 숙청, 집단처형, 집단 강제 이주, 정부가 만든 대기근 등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람이 약1억 명으로 나타나 있다. 히틀러의 나치 독재에 의한 피살자는 약2천500만 명. 공산주의의 인간 말살이 히틀러의 네 배나 된다.


 

실제 옛 소련 내무 인민위원회 위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에조프가 스탈린에게 바친 사형자 명단은 책으로 383권인데 모두 4천500만명이 넘는 인원을 죽인 것으로 돼있다. 스탈린은 혁명에 방해가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자비한 처형을 단행했다. 그는 에조프를 내무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하고 1936-1938년 기간동안 제일 큰 위협인 군대를 제거했다.


 

냉전체제 종식과 새로운 세계 정치질서 등장


 

- 독일통일(1989), 소련해체(1991)→ 현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 이념의 퇴조와 실용주의, 실리주의 강조(진보와 보수의 대결 약화)


 

-미․소 양극(bipolar)체제 →미국 중심의 유일초강대국 단극(unipolar)체제(Pax Americana)


 

- ‘군사력’에서 ‘경제력’으로 새로운 질서유지 수단 변경


 

△ 진보와 보수의 구분(선악개념이나 도덕적 우열기준 아니다)


 

진보 → 급진개혁. 평등. 분배. 타파. 반전통. 이상. 정부개입. 민족주의 중시


 

보수 → 점진개혁. 자유. 성장. 보전. 전통. 현실. 시장주의. 세계주의 중시


 

△강대국과 선진국 개념의 변화


 

강대국-국제질서 형성에 영향력을 많이 갖는 나라(군사력․핵무기 등 )


 

선진국-누가 시장을 많이 갖느냐로 결정


 

미래의 선진국- 누가 지식, 정보, 아이디어를 많이 갖느냐로 판가름


 

-미국의 대외정책 및 전략의 변화


 

냉전시대-봉쇄(containment)와 억지(deterrence)


 

탈냉전시대-개입(engagement)과 확장(enlargement)


 

△개입이란 선택적(selective)개입을 말하고 확장이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미국적 또는 보편적 가치의 전 세계 확산을 의미.


 

9.11사태이후 -예방차원의 선제공격(preemtive strike, preemtion)→부시 닥트린


 



 

(2) 사회주의의 특성


 

원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내놓기 이전부터 사회개혁 사상의 하나로 등장해 왔다. 특히 18-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철학자들이 사회개혁을 주창하면서 들고 나온 것이다.1) 이들의 사회주의 사상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 예를 들면 실업, 공황, 빈부격차 및 사회적 불평등을 하나씩 고쳐 나가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지극히 온건한 인간주의(humanism)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주의는 결국 자본주의의 경제적 원리인 개인주의를 제약함으로써 사회를 개조하려는 복합적인 사상이나 이념 및 운동을 의미하며 그 특성은 크게 생산수단의 사회화, 분배를 통한 복지국가의 수립, 평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생산수단의 공유와 통제는 사회주의의 근간이 되는 원리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이 사유재산제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국유이다. 물론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국가들에서는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 수단으로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공산주의국가에서 기업들의 국유화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성장이나 경쟁, 생산이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에 있어서 성장과 생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회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분배를 통한 복지국가의 수립이다.


 

마지막으로 평등 개념은 사회주의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개념이다. 사회주의의 특징인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복지국가는 반드시 구조적으로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회가 대부분 또는 주요 생산수단을 사회화 하고도 복지국가를 건설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등은 사회주의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유사 이래 인간을 얽매였던 물질적 속박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려는 목표이다. 만일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의 정치적 평등을 의미한다면 사회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자율적인 시장기능보다는 자원의 최적분배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해진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한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경제적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것이며,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기본적 관심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추구 대신 공동체의 필요와 권리를 강조하고 나아가 협동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이기주의의 추구보다는 동료애, 단결, 동정 등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전통의 기본적이고 영속적인 특징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는 평등지향, 공익추구, 협력강화,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부와 계급의 차등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부를 균분하고 계급을 타파할 것을 주장하는 평등 지향 정신은 사회주의가 지닌 장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강자를 위한 논리가 지배적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가를 사회의 주역으로 인식하여 모든 시책을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데 반해, 사회주의는 약자인 노동자와 농민, 즉, 무산 계급을 사회의 주인으로 간주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체제를 이끌어간다.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은 그 목적을 추구하기위해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생각해낸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정통적인 국가나 민주적 통치기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사유재산제도를 폭력혁명에 의해 일시에 없애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서,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제도가 인간을 사악하게 하는 근원이라 하여 이를 폐지해야한다는 면에서는 공산주의와 비슷하나, 이러한 사회주의 개혁을 민주주의적 절차, 특히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공산주의의 과격사상과 다른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주의라는 말과는 그 뜻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마르크스 이전부터 있어왔던 원래의 사회주의 사상과도 구별되는 것이다.2) 마르크스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멸망하고 공산주의 단계에 들어가기 전의 과도적 단계가 사회주의, 즉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이다. 과거 소련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붉은 혁명’을 완수하고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자신들은 ‘공산주의 국가’로 부르지 못하고 ‘사회주의 국가’로 칭해 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산주의로 가는 과도기에는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필요하며 폭력혁명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로 존재했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스미스(Adam Smith)의 지적처럼 ‘개인의 이익(self-interest)’3)추구가 동력인 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자본가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 투쟁심을 그 밑바닥에 깔고 이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3) 마르크스 이론의 내재적 결함


 

▲ 유물론과 인간 소외


 

청년기 마르크스의 철학적 주제는 인간주의적 측면을 강조한 소외(alienation)4) 였다. 소외문제 연구가로서도 유명했던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견해에 따르면 소외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자기 자신의 행위의 창조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상으로 종속되는 것을 말한다.5)


 

마르크스는 물질이 모든 변화의 기초이며, 역사발전의 원동력도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물질로 보았다. 이는 우주와 인생의 근본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이라는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에 입각, 우주와 인생의 일체 현상은 물질변화의 결과이며 물질을 떠나서는 우주와 인생이 존재할 수 없다고 간주한다. 이와 함께 물질을 역사의 중심으로 보는 유물사관(唯物史觀, the materialistic conception of history)의 논리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및 지위를 완전 부정했다. 자연․사회․사유 등의 발전을 물질의 운동․대립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 materialistic dialectic)6)이다. 물질이 인간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생활이 전적으로 물질에만 의존하는 것은 결코 아닌 데도 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물질을 제1의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역사의 중심에 올려놓고 인간을 물질에 의해 결정되고 지배되는 제2의적인 존재로 생각하여 역사의 중심에서 끌어내려 비하하고 소외시킨 것은 사회주의가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소외는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인간이 완전한 존재로 발현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된다. 소외의 기본적 형태는 소외된 노동에서 나온다. 노동자는 자신의 일부인 힘과 노력과 기술과 시간을 팔아 생명을 유지하므로, 소유에서 소외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역사와 세계, 사회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지닌 의지와 창조성과 노력이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폭력의 정당화


 

마르크스는 역사는 부단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끊임없는 진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즉 그는 인류의 역사를 부르주아(유산계급)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간의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최후에 노동자의 통치를 이룩하려면 반드시 적당한 시기에 폭력에 호소해야한다면서,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폭력혁명을 지지하고 정당화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사회 진화의 한 변칙적 현상, 부수적 요인에 불과한 원인을 ‘투쟁’이라는 한 방법으로 개괄하여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했다는 것은 커다란 결함이 아닐 수 없다.7)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는 폭력혁명이 공공연하게 선언돼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폭력이 아닌 민주적 방법에 의해서 프롤레타리아의 지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전제를 전면 부정한다. 오직 사회 개선 혹은 사회 구성원의 지위 개선은 폭력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오히려 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폭력혁명을 선동하고 합리화 하기위해 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질량호변(質量互變)의 법칙, 모순통일(矛盾統一)의 법칙, 부정(否定)의 부정 법칙 등을 내세우고 있다.


 



 

▲ 경쟁의 배제와 능률성 저하


 

사회주의는 지나치게 인간의 본능적 자연성을 배제하고 사회성을 강조하며 개인 욕구 충족을 억제하고 사회욕구 충족을 지향하기 때문에 효율이나 능률이 향상되지 않는다. 개인욕구 충족을 위한 경쟁이 과열되어 악성 경쟁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인간사회에서 선의의 경쟁마저 포기하도록 만든다면 사회의 비능률화를 막을 길이 없다. 따라서 매사에 효율성이 극대화되지 못하고 극도로 저하되어 그것이 결과적으로 경제의 부진으로 연결되는 것이 사회주의의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창의성 결여


 

사회주의 이론에서는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하여 물질적 생산과 노동적 가치만이 중시되고 인간의 창조적 역량이 기초가 되는 정신, 의식, 심리활동 등은 경시된다. 또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계획 경제에 의한 중앙통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은 단지 상부에서 지시된 목표량을 달성하기만 하면 되고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인간 의식의 경시와 계획 경제의 실시로 인한 창의성 결여는 사회주의의 큰 결함이 되며 이것은 사회주의의 또 다른 결함인 비효율성과 함께 사회주의 저성장, 저질생산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 자유침해


 

사람은 누구나 자유스러운 개인 생활을 갖기 원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충분한 자유를 보장받기가 힘들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사람을 자유로운 경제활동, 자유로운 정치활동, 자유로운 사회활동의 주체로서 살기보다는 통제된 틀 속에서 규격화된 삶을 영위하게 만든다. 개인의 욕구를 극도로 개방하여 사회적 문란과 퇴폐행위를 조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사회적 욕구를 극도로 확대하여 그 충족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사회주의는 계획 경제의 실현과 사회적 욕구충족이라는 명목 아래 개인의 신성한 자유를 제한하고 침해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단점으로 지목된다.


 


 

(4)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공산주의 혁명사상의 기초는 계급투쟁의 역사관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전체를 이처럼 계급이익을 둘러싼 지배계급과 피 지배계급간의 투쟁사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를테면 중세에서의 교황과 황제간의 권력투쟁이나 십자군전쟁, 나폴레옹전쟁, 몽고제국전쟁 등이 모두 계급투쟁의 변형태라 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계급론은 오늘날 어느 사회에서든 일반화되어 있는 거대한 중간계급, 이른바 화이트칼라 계층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한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이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계급 양분화가 더욱 진전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세워진 혁명이론과 전위당 이론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및 공산당이론의 허구성은 기존 공산주의 국가들의 실상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소수의 당간부와 권력기관 관료들은 바로 공산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신흥계급, 새로운 착취계급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편 국가를 ‘계급지배의 도구’로서만 보는 마르크스의 국가소멸론 역시 어떤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불변의 일반법칙으로 확대시킨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의 역할을 법과 질서의 유지에 한정해서 보는 입장에서는 성립 가능한 논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기능과 역할이 다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적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논리다. 왜냐하면 복지국가의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법과 질서유지라는 기능 이외에도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수행하는 기능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인의 자유와 창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획일주의적 공산사회야말로 체제유지를 위해 강력한 국가적 차원의 통제를 발휘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공산주의 사회, 정치이론은 여러모로 그 이론적, 현실적 타당성을 완전히 잃었다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 이후의 완성태의 공산주의 사회 정치형태는 국가소멸과 함께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 속에서 ‘인민의 직접적인 자기통치’가 구현되는 사회이다. 이 시기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요구)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적 원리가 구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일하고 싶은 대로만 일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원하는 대로 가져갈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슬로건은 그 자체가 반인간적(反人間的)이다. 예컨대 감 10개가 달린 감나무가 있다고 치자. <갑>이라는 사람은 키가 크고 팔이 길어 열심히 10개를 땄고 <을>이라는 사람은 나무그늘에 않자 콧노래만 부르다가 “노래를 불러주는 노동을 했으니(능력에 따라 일했으니) <갑> 네가 딴 것 중 5개를 노래 값으로 내 놓아라” 한다든지 또는 “요구에 따라 분배한다고 했으니 나는 노래를 불러 배가 고파 10개를 몽땅 먹어야겠으니 다 내 놓아라”고 한다면 이것이 과연 정당하며 인간의 본성에 맞는 일인가?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는 제한된 자원밖에 없어 인류가 아무리 아껴 써도 다 써서 없어질 날이 오기 마련인데, 이처럼 요구대로 분배한다면 무제한의 인간 욕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한 자원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이처럼 마르크스의 이상 세계가 실현되자면 ①물품의 생산이 무제한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②사람이 스스로의 욕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참을 줄 알아야하는 즉, 이타적(利他的) 인간이 되어야 할 것 등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공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할지 모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또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의 질적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제일 큰 인간 욕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세상에 과연 모든 욕구에 앞서 “노동하고 싶어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가?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없는 사악한 사회 형태이기 때문에 반드시 종식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으며, 공산주의에 의해 타도, 전복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후에 지상에 유토피아(utopia)적인 완전히 멋진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적과 동지의 철저한 2분법적 전복의식


 

포퍼(Karl Popper)는 마르크스주의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은 인류의 주요문제를 푸는 데 서로 협력할 동반자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enemy)’을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타도되어야 할 적으로 자본주의를 지목했다. 그들은 ‘책임’ 대신 ‘증오’를 선택했다. 이는 처음부터 커다란 오류였다.


 

원래 편 가르기는 공산주의 혁명의식의 출발점이다. 물질이 1차적이고 정신이 2차적이라고 보는 유물론, 정신이 1차적이고 물질이 2차적이라고 보는 관념론(觀念論, idealism)이 서로 대립돼 있는 것으로 인간과 우주를 설명함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동무가 아니면 모두가 원수’로 보는 절대적 세계관을 내세우면서 자유민주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헛된 관념론자들이기 때문에 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교의(敎義)에 따라 일찍이 그의 ‘제자들’인 레닌․트로츠키․스탈린․모택동 등은 혁명을 진행하면서 한결같이 사회 성원 전체를 인민 대(對) 비인민으로 철저히 2분했다. ‘인민’들 사이에만 동지적 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를 실시하고 ‘비인민’들에게는 적대적 독재를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혁명집단 북한도 세계를 미국에 대한 반제(反帝)투쟁으로 2분하고 미제(美帝)쪽에 선 것은 모조리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가 트로츠키(Leon Trotsky)는 영국에 첫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1925년에 펴낸 <영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Where Is Britain Going?)>8)에서 “먼저 적을 만들어라”라고 노동자를 선동한다.


 

그는 사회주의 선동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사회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자본가와 노동자, 유산자와 무산자로 양분해 적을 만들고 끊임없이 적개심을 유발하라고 주문한다. 노동자계급은 산업사회에서 중심역할을 담당하지만 부르주아계급의 박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투쟁의 선봉에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격려한다. 트로츠키가 적으로 모는 집단은 부르주아로 통칭되지만 자본가, 지주계급, 기업가, 은행가, 왕족, 귀족, 성직자 등 출신성분이나 직업을 기준으로 구체화된다. 트로츠키가 사회구성원을 적과 동지로 양분하는 이유는,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여 적개심에 불타고 있어야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투쟁 할 때는 혁명을 방해하는 반동세력과 맞서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의 각오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며(life and death fight)’ 타협의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트로츠키는 그의 책 여러 곳에서 부르주아와 노동계급간의 투쟁에는 목숨과 죽음이 걸려 있다는 자극적인 표현, 예를 들면 struggle to the death, fight to the death, struggle for life or death, question of life or death 등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포퍼에 의하면 또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그건 날조된 것이며 악마가 꾼 꿈같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없고 파괴할 수만 있다는 주장이 마르크스의 주요 논지였지만, 당시의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살아 있던 동안에 영국과 독일 두 나라에서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후 끊임없이 중요한 개혁들이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했던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모두가 사태를 점점 더 악화시키는 기계장치 속에 붙잡혀 있는 그런 사회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9)


 

마르크스는 경제가 사회의 생존에 큰 비중을 갖는다는 생각을 너무 과장했고, 모든 것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것은 분명 오류였다. 왜냐하면 사회는 매우 복잡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종교·국민성·우정·교육 등과 같은 다른 요소들도 있게 마련이다.


 



 

계급투쟁의 허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공산당선언’10)에서 밝힌 자본주의의 모순, 붕괴론은 이제 자본주의의 건재함을 본 우리들에게 잘못 된 인식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공산당 선언에는 또 다른 많은 문제점과 함께 마르크스 자신이 간과한 것들이 발견되고 있다.


 

먼저, 부르주아계급과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서로 적대관계 속에서 투쟁을 벌인다는 계급투쟁론이다. 선언문에서는 지금까지 역사를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투쟁의 역사로 가정하고 현대 산업사회가 낳은 부르주아 계급이 그 존재 자체의 모순점으로 낳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의 투쟁으로 부르주아의 멸망과 함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과연 인류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였을까? 역사적으로 마르크스가 말한 피억압자들에 의해 역사적 변혁을 이룬 실례는 있다. 하지만 역사 전체가 투쟁의 역사는 아니었다. 때론 공동이익을 위해 협력하거나, 위기에 상호 협력으로 대처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오히려 무수히 많았다. 즉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에 있어서 화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는 상호협력, 화해로 발전한다. 악명 높은 계급투쟁의 격화이론은 사실에 입각한 논리, 건전한 사고를 압살했다. 계급적인 혁명에 의한 방법으로, 패자에 대한 승자의 물리적인 압박과 파괴의 방법으로 어떤 한 사회가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노동계급 주체의 문제점


 

전 소련 공산당중앙위원회 이념담당 비서였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시절 정치국원을 지내면서 개혁과 개방을 주도했던 야코블레프(Alexander Nikolaevich Yakovlev)는 1991년 펴낸 <공산주의의 종언(USSR the Decisive Years)>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모순적 결함을 지적하면서 노동계급이 인류의 운명을 구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노동계급이야말로 ‘사회적 이성이며 현대사회의 심장’이라는 마르크스의 기본 테제는 합리적이고 경험주의적인 근거를 지니지 못한다고 비판했다.11) 그는 혁명이 약속한 노동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동은 더욱 강제적인 것, 농노제적인 것이 되었으며, 사유재산과 생산으로부터의 노동자의 소외는 무조건적이었다면서 노동계급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에서는 또 다른 부르주아 계급들을 생성한다. 공산당선언문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표로 프롤레타리아를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프롤레타리아 손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의 손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후에 또 다른 지배 권력이 부르주아화하고 결국은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지배가 아닌 소수 계층의 독재 권력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12)


 


 

▲ 노동가치설의 오류


 

모든 상품 가치의 실체와 근거는 인간노동이며, 상품 가치의 대소는 인간이 쏟아 넣은 노동력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으로 마르크스 경제이론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13) 여기에 이익을 붙이면 그 이익은 자본가에게 돌아가고 그 이익이 바로 ‘착취’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것이 성립하기위해서는 모든 노동이 똑같은 질을 가져야 하며 모든 상품이 노동만으로 생산돼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타당성이 없다.


 

예컨대 자전거 한대를 하루에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전거의 값은 하루 노동력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가가 자전거 한대를 만드는데 드는 노동력만을 기준해서 값을 매겨 팔면 착취가 없어진다고 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다음 생산은 어떻게 되고 기계와 시설의 손실은 무엇으로 보충할 것인가?


 

또한 인간의 노동력은 하는 일에 따라 그 가치비중이 달라지는 법이다. 예를 들면 돌부처를 만드는 석물공장에서는 노동력의 비중이 크다. 그러나 현대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자본, 기술, 시설, 지식정보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노동력의 비중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이런 첨단산업 분야에서 어떻게 원시적인 노동력의 크기만을 상품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로 볼 수 있겠는가?


 

또한 노동의 양과 질은 아무리 과학적인 계산을 적용한다고 해도 그 절대적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예컨대 같은 땅을 파도 금광을 찾는 노동자는 땅을 얼마만큼 팠느냐에 따라 노동의 질과 양이 결정되는 것 아니라, 금이 묻혀있는 광맥을 찾았느냐의 여부와 금광석의 생산량에 따라 노동의 양과 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페인트공은 하루면 작업을 완료할 수 있으나 불치병을 연구하는 의학자는 몇 년, 몇십년 후에 가서 결론이 날지 모른다. 의학자에게 당장 성과가 없다고 하여 누구에게나 주는 일당만 줄 수 없지 않는가? 이처럼 오류가 많은 노동가치설을 공산주의자들이 아직도 고집하는 것은 노동만이 유일한 가치의 생산수단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노동의 결과로 생산되는 물품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전액을 임금으로 돌려주지 않는 자본가에게 맞서 투쟁하기 위한 것이다. 14)


 


 

▲ 잉여가치설의 문제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자본(capital)이


 

계속적으로 이윤을 남기며 자신을 재생산하는 배후에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 자본가는 우선 화폐자본을 가지고 시장에 가 생산에 필요한 요소, 즉 생산수단(토지, 건물, 기계, 원료 등) 과 노동력을 구매한다. 그 다음 이들 두 요소를 결합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다시 시장에 내다 팔아 화폐자본을 회수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가가 생산한 상품의 총가치는 ‘생산수단비 + 노동자의 임금 + 이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생산수단은 생산과정 중에 소모됨에 따라 감가상각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량을 새로운 생산물에 이전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나 노동량은 이와 전혀 다르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다른 상품과 달리 그 사용가치가 곧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창조적 활동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가치 크기를 초과하는 가치량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독특한 상품 덕분에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할 때 노동력의 가치를 임금형태로 지불하지만, 실제로 그 사용가치를 이용하여 임금 크기보다 더 많은 양의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임금에 상당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부분을 필요노동이라 부르고, 이 필요노동을 초과하는 노동, 즉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불되지 않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 가치를 잉여가치 (surplus value)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본활동에서 얻어지는 이윤의 정체는 바로 이 잉여가치다. 즉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력에 의해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환원되지 않고 자본가가 자신의 자본축적을 위해 빼 앗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직접적 목적이자 결정적 동기는 이윤 산출, 곧 잉여가치의 착취이다.


 


 

▲ 국가조차 소멸되고 없는 사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는 악이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착취를 위해 존재하는 억압기구일 뿐이라는 이론으로 법을 파악한다. 이들은 법을 국가가 그 억압기능을 수행하기위해 가지고 있는 무기로 간주한다. 즉, ‘국가=악’ 이라는 관념아래 이러한 억압기구로서의 국가가 내세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법이라면서 ‘부르주아 집행위원회로서의 국가’가 그의 억압기능을 다하기 위해 자유, 평등, 법적 안전성 또는 법적 합목적성 등과 같은 테두리를 정해놓고 이 테두리를 질서, 즉 법이라고 표현한다고 주장한다.15)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로서 모든 악의 원천이라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이는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국가는 폐지(abgeshafft werden, abolished)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고사(absterben, wither away)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며 폭력혁명을 통해 국가를 파괴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멸하고 만다는 것이다.16)


 

국가란 인류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필요한 기구다. 특히 공공복리를 증진시켜 나가는 조정 및 보호기구로서의 현대국가의 역할은 막대하다. 만약 국가가 없다면 사회의 안녕질서는 하루아침에 파괴되고,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국가가 자본가들의 이익보호를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니 하루속히 없어져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왜 국가를 소멸시키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에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쟁을 걸어오면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오히려 국가권력을 강화해왔다. 이러한 국가 소멸론은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기만 하면 이 땅에 지상낙원이 도래한다며 대중을 선동하고 현혹시키는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


 

그러나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등은 자본주의 체제가 혁명적으로 전복된 뒤에도 국가형태가 즉시 소멸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러한 소멸은 고도의 사회주의 발전단계에 이르러서야 실현될 것이고 그 전까지는 여전히 국가기구에 버금가는 정부형태가 존속해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사회의 낡은 생산관계는 일시에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것이 아닐 뿐더러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이 부단히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되찾으려는 각종 기도를 감행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닌의 말을 빌자면, “전복된 착취계급의 반항을 진압하며 외래 제국주의 침략세력으로부터 혁명의 성과를 수호하는 혁명적 폭력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과도기적 사회주의 정부형태를 공산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부르고 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 1871년에 일어난 파리코뮨을 그 모델로 보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부이며, 소유계급에 대한 생산계급의 투쟁의 소산이자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정치형태“라고 쓰고 있다.


 



 

2.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과 붕괴 원인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그 이념이 인간의 본성 또는 인성(人性)에 대한 그릇된 전제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유(私有)의 욕망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며, 이 욕망에 의한 동기화 통로가 차단될 때 무기력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또한 ‘자유로운 정신’에 의해 움직여질 때만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가 있다. 이러한 인성을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이미 실패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나 사회주의 체제는 모두 인간을 생산력의 핵심요인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인간의 어떠한 요인이 노동의 동기인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 동기를 분석하는데 자극의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인센티브(incentives, 유인)는 도덕 규범적 유인과 강제적 유인, 그리고 물질적 유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전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스미스는 바로 인간의 이기심이 개인과 사회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보았으며 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물질적 유인의 이기심을 생산의 원동력으로 한다고 생각했다.17)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동인은 사유재산권과 시장이 뒷받침해주는 이윤이 되지만 계급타파를 목적으로 생산수단을 사회화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방법을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컨대 사회주의체제인 북한에서는 생산력 발전을 추동하는 결정적 요인으로서 인간의 높은 혁명적 열기를 들고 있다. 이것들은 첫째로 타인을 위해 노동한다는 사회주의적 자기헌신성이며, 둘째로 명예이며, 그리고 셋째로 경제활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북한은 사상혁명을 모든 사업에 우선시킨다는 방침아래 소위 주체사상으로 무장하여 각 개인이 자주성과 창조성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내재적인 모순이나 비효율, 한계가 스스로 사회주의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지적에는 침묵하면서도 군대가 제국주의 세력에 빌붙은 배신자들을 향해 총소리 한번 울리지 않은 것이 사회주의 몰락의 주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현실사회주의가 역사에 검증된 실패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의 현실사회주의권 실패 원인에 대한 진단은 너무 자의적이며 일방적이다. 북한지도부는 사회주의 체제의 근원적인 문제점인 ① 개인의 창의성 및 시장 자동조절기능의 외면 ② 국가 계획경제 체제에 의한 독점적 생산방식 및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 ③ 과도한 국방비 지출 ④ 관료주의 팽배 및 당과 인민의 괴리 ⑤ 균등분배라는 미명하에 실시된 하향 평준화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정책, 그리고 이들에게 편승한 사회


 

주의 반동분자들의 배신행위만 공격한다. 결과적으로 경쟁의 배제와 평등주의 노선이 노동 동기 약화, 생산성 저하, 경제침체로 이어지는 등 사회주의 실패의 주원인이 됐는데도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노동자를 위한다는 사회주의가 노동자의 저항에 의해 붕괴된 사실, 그리고 폭력에 의존했던 사회주의가 민중의 자발적인 각성과 평화적 저항 앞에 붕괴된 사실 등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 - 사유재산과 시장제도의 허용과 불용


 

생산활동을 잘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생산수단(토지, 공장, 기계, 원재료 등의 경제 자원)을 마음껏 소유, 이용, 처분할 수 있는 권리, 즉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누릴 수 있어야 하는 데도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것을 잘 몰랐다. 공산주의 경제는 시장이 있으면 안 되는 경제이고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이 없으면 안 되는 경제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이 안 돌아가면 침몰할 수밖에 없다. 상품뿐 아니라 노동, 자본, 토지, 나아가 회사 그 자체도 시장에서 팔고 살 수 있는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다. 공산주의는 모든 국민을 거지로 만드는 사회다. 거지란 사유재산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가진 재산을 모두 빼앗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니 국민을 거지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a0103889_496b973c88eb0.hwp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