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역어로서, 이것은 동사 [파라칼레오-(parakaleo, 부른다. 초청한다. 위로한다. 격려한다)에서 온 형용사이다.

종종 명사로사 [변호자], [탄원자], [중보자]를 가리킨다. 랍비 문학에서는 [페라 클레타 (pera qleta')]의 형(形)으로 인용되고, 피고인의 성격에 대하여변호하고, 특히 유리한 증거를 말하기 위해 출정하는 친구를 가리켜 씌어져 있다.

1. 제4복음서의 저자가, 신자들을 강하게 하고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한 이름을 말한다.
2. 영어 paraclete는 희랍어 parakletos를 음역한 것이다(보혜사라는 용어 이 한글로서의 의미는 신자를 보호하여 돕는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의 옆으로 불림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이러한 수동적인 의미('~를 도와 구원해 주기 위해 옆에 서 있는 자'란 뜻)가 그것의 능동적인 외연적 의미와 결합되어서 어떤 사람을 위해 그의 '대언자'(요일 2:1)로서 탄원해 주며,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 그 죄의 잘못을 인식시켜 주는 자를 가리키는가 하면, 또한 '상담자'(한글개역, 보혜사; KJV, comforter; RSV, counselor;요 14:16,26, 15:26, 16:7)로서 다른 사람을 권고하고 강건케 하며 위로해 주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용어는 요일 2:1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백성을 중재하는 그리스도의 직분을 가리키고 있다. '의로운 자'(참조. 사 53:11에 나타난 여호와의 종에 대한 묘사)로서 그리스도는 스스로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심으로써 하나님과 자신의 백성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세우셨다.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장벽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거되었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가 비로소 시작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 탄원해 주며 하나님을 향해 그들을 대리하는 '대언자'이다. '보혜사'로서 그리스도의 직분은 히브리서에서 주창된 대제사장의 직분과 일치한다(참조. 특히 히 7:25-28) 제4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 분은 성령이며 그 직분은 의미상 그리스도의 직분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령은 그리스도와는 구별된다. 요한복음에서 보혜사를 가리켜 남성대명사들과 형용사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요 14:16, 또 다른; 14:26, 그가; 16:13, 그가)은 성령이 완전히 인격적인 존재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상 제4 복음서에 나타난 '보혜사'에 관한 구절들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인격성에 관한 가장 고도로 발전된 사상을 보여 주고 있다. 보혜사는 무엇보다도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는 자이며 여러가지 모양으로 제자들과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는 자이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으로서(요 14:16-17) 그는 믿는 자들을 진리 그 자체(6절)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안내자이다.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계시자로서 보혜사는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 옆에 임재해 있는 '또 다른 보혜사'(16절)이다. 성령은 내재하는 인격적 현존으로서 제자들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된 모든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속할 것이다(17,20-24절). 바로 이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알려지게 되며 드러나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성령이란 매개를 통하여 임재하신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에 나타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돌아온 사실과 매우 밀접히 관련되고 있다(14:18, 16:16; 참조. 20:22). 보혜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계시를 연결짓는 이러한 사상은 요한 신학의 밑바닥을 흐르는 기본적인 것이며 또 신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단언되고 있다.

내재하시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도래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리스도의 들리우심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리스도 자신의 구원사업이 성취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고 이것이 성취되면 보혜사도 오실 것이다(참조. 7:39). 따라서 보혜사의 도래와 활동은 철저히 미래시제로 언급되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은 죽으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창조행위로써 제자들 속에 내재하는 성령을 불어넣어 주실 때에만 성취된다(20:22). 그러므로 보혜사의 도래는 예수의 떠남의 전제조건이며, 예수의 육체적 현존이 사라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의 제자들은 주의 지상적 사역의 기간에는 현존하고 있지 않았던 성령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을 수 있을 것이다(7:39). 바울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제4 복음서에 있어서도 성령의 내재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의 기본원리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합일은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신자들에게까지 확장될 것이다. 그런데 이 죽음에 의하여 부활 후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사실들과 성령이란 매체를 통한 계속적인 임재가 동시에 암시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은, 즉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그리스도의 행동과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재하시는 보혜사의 활동이다.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14:26).

제4 복음서가 기록된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이다. 말하자면, 복음서 기자는 교회 내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 단지 그리스도의 지상적 삶의 시절에 그를 보았던 사람들이 알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완전하고 더 적절하게 그리스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보혜사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사실상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 대한 보혜사의 계시가 지닌 전체 내용이다. 따라서 보혜사의 직무는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복음서의 사건들 속에서 단번에 이루신 일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보혜사는 기독교인들을 모든 진리에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가 새로운 이해력을 제공해 주지만 진리 자체는 이미 계시되었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참조. 16:13-15). 그리스도에 대한 보혜사의 증거는 보혜사의 참된 의미를 드러낸다. 즉 보혜사는 자신의 증거를 통하여 세상을 심판함으로써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거부한 죄를 깨닫게 하며,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의롭다 하심을 입증해 주며 악마에 대한 그리스도의 최종적 정죄를 선언한다(16:8-11). 이증거는 사도적 증언의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설교에 영감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할 수 있는 분이 바로 보혜사이다. 보혜사 자신의 증언이기도 한 사도들의 증언은 박해 아래서 행한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순교에 직결된다(15:26-16:4).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제4 복음서는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즐겨 사용한 주제를 반향하고 있다(참조. 막 13:11, 눅 12:8-12). 3. 요한에게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 용어 '파라클레토스'는 칠십인 역 성경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신약성경과 동시대에 저작된 다른 유대교 저작들에서 발견된다. 신약성경 이외에서 이 용어는 가장 일반적으로 '변호자','매개자', '중재자' 즉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타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랍비 자료에 의해서 입증되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변호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을 뚜렷이 의미하고 있는 요일 2:1(한글개역, 대언자)에서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 이 용어를 그 추리된 역사적 배경을 근거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만다야교의 '조력자'와 쿰란 사본에서 기술된 대천사 미가엘은 각기 이 보혜사의 모델들로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길은 복음서 자체를 근거로 보혜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길이다. 분명히 보혜사, 즉 진리의 영(요14:17, 15:26), 또는 성령(14:26)은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요 16:7) 영원토록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있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된다(14:16,15:26). 그는 세상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채 있다(14:17). 그러나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들에게 회상시켜줌으로써 예수를 영광스럽게 한다(14:26, 16:14). 그는 제자들이 예수의 지상적 사역의 기간 동안 깨닫지 못한 예수로부터 나온 진리들을 알려주며, 다가올 일들을 선포한다(16:12-15). 그는 애초부터 예수와 함께 있어왔던 제자들이 예수에 대한 증거를 지니고 있듯이(15:27) 예수에 관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15:26). 그는 죄의 심판에 관하여 세상을 논박하고 폭로한다(16:8-11). 사실상 보혜사는 예수의 육체적 현존이 더나고 없는 중에도 예수의 지도력과 권능을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실현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몇가지 이유로 보혜사는 예수를 계승한(요일 2:1) '또 다른 보혜사'라고 불린다(14:16). 보혜사의 역할에 대한 복음서의 상세한 묘사는 그 생생하고 구체적인 현실적 의미를 전달한다. 보혜사는 단순한 희망의 대상이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 내의 생생한 경험과 분리된 기능이 낳은 문학적 추출물로 여겨진다. 복음서 기자는 보혜사의 공동체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해준 기독교 교회 내에서 행사된 예언자적인 직책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련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예언자에게 교회들에게 써 보낼 바를(계 1:11) 가르치고 있는(계 1:3,10, 22:6-7,9-10,18-19) 계 2-3장의 일곱 편지들이 요한 신학의 보혜사에 대한 몇가지 평행구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각 서신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말씀이다(1:17-19; 각 서신의 서두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는 2:1,8,12,18, 3:7,14). 그러나 이것은 성령의 말씀이기도 하다(2:7 등). 따라서 그리스도와 성령은 요한의 보혜사 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 비록 계시록과 제4 복음서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다 하더라도 성령(보혜사)에 대한 그들의 묘사는 몇가지 점들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KCM사전>/잠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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