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 왕상 16:30-33
                                        김경열 목사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왕상 16:33)  
 And Ahab made a grove; and Ahab did
 more to provoke the LORD God of Israel
 to anger than all the kings of Israel that
 were before him.(1 kings 16:33)]

우리는 6월을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합니다.
우리 근세 역사에 6월만큼 잔인한 달도 없습니다. 

요즘 생태계 파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민물고기 어종에도 외래종이 들어와서 
토종 물고기 씨를 말리고 
외래종 황소개구리가 토종개구리를 다 잡아먹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신앙에도 생태계 파괴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해서 유일한 신앙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합왕이 그러했습니다. 

아합왕은 이스라엘의 7대 왕인데도 
이방여인 이세벨과 결혼을 하고 
우상을 끌어들였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이방 선지자 850명을 정치 들러리로 세웠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던 유일 신앙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앙의 생태계가 파괴된 
이스라엘 땅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하늘을 닫아 버렸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애매한 백성들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역사는 냉혹하고 굉장히 중요합니다. 

역사를 바로 보지 않는 사람은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민족은 내일의 비전이 없이
현실에만 안주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마사다'란 곳이 있습니다. 

로마군에 마지막까지 항전하다가 죽어간 곳입니다. 
로마에 패하게 될 때 '로마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자유를 위해 수의를 입자'고 
96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민족의 혼을 지키던 곳이 마사다입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지금도 반드시 신병훈련을 끝마치면 
마사다에서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게 하지 않는다.'는 
민족정신을 심어 주고 구호를 외친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역대 왕들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역사를 거울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나라의 평화가 있고 흥왕했던 시대의 
역대 왕들을 보면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1) 하나님과 동행했던 시대였습니다. 
(2) 하나님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은 목숨 걸고 제거했습니다. 

이런 시대는 나라가 흥했고 평화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러했고 여호사밧이 그러했고
히스기야 등 많은 왕들이 그러했습니다. 

반면에, 불행과 인생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난 왕들을 보면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을 분노케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그런 사람입니다.
 
아합 왕이 유일 신앙의 생태계를 파괴시켰습니다. 
조상적부터 섬겨오던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에 유일신앙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적인 재앙을 내렸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하늘을 닫아 버렸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애매한 
백성들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원수마귀는 지도자를 먼저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든 나라든 
지도자를 위해서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는 공동체의 흥망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청교도 신앙으로 세워진 미국이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3가지 신앙을 무너뜨렸습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폐지하고
십계명을 철거했습니다. 
학교에 채플(chapel)시간을 없애고
성경 교육시간을 없애버렸습니다. 
창조론 교육을 못 시키게 했습니다. 

그 후부터 신앙의 생태계가 파괴되었습니다. 
미국사회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발족과 히피족이 생기고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자가 수없이 늘어나고
총기 사건이 수없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아합 왕 한 사람의 타락으로 
온 백성이 엄청난 고난을 당하는 
불운한 역사를 거울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생태계를 파괴한 아합 왕의 범죄를
본문에 3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아합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왕상 16:30)

1)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여호와 보시기에’란 말은 '여호와의 눈'을 뜻합니다. 
성경에 900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눈은 어떤 눈일까요? 
① 우리의 안과 밖을 다 보시고 
정확한 평가를 내리시는 눈입니다. 
② 하나님의 눈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사람은 겉만 보고 평가하기 때문에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거짓을 말해도 진실로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때가 있습나다.
겉만 보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조차 실수할 뻔한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2대 왕을 뽑을 때 이새의 아들 중에
하나를 택하여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새의 가정에 갔는데 장남 엘리압은 
왕이 되려는 야심만 품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보니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했습니다.
나라의 왕이 되려면 이 정도는 생겨야 될 것 아닌가 생각하고
서슴없이 기름을 부으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무엘아, 네 손에 든 기름병을 멈춰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내가 그를 버렸노라.(삼상 16:7) 

사람의 눈은 이렇게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정확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하게 산 왕이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아합은 이전의 왕들보다 
더 악했다고 했습니다.(30절 하)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하나님만 섬겨야 할 텐데
우상을 끌어들였고, 선지자들을 죽이는 
잔인한 왕이 되었습니다.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난 모든 왕들보다 더 악한 왕이라고 했습니다. 

유일한 신앙의 생태계를 파괴시켰기 때문입니다. 
아합의 생애를 역사의 거울로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2. 아합은 죄를 가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왕상 16:31)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하찮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보잘 것 없이 여긴다. 시시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하찮게 여기니까 죄를 짓고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볍게 여기니까 쉽게 죄를 짓습니다.
  
1) 그러나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대가를 받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3가지 관계를 가로 막습니다. 

(1) 하나님과 관계가 막힙니다. 
죄짓고 나면 마음에서 평안이나 기쁨이나 
안식이 떠납니다. 삶이 불안해 집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후 누군가가 나를
죽일 것만 같다고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 죄로 인해 기도의 응답이 막힙니다.(사 59:1-2)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손이 짧아서 너희를
구원치 못함이 아니요, 귀가 둔해서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의 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3) 죄는 축복을 가로 막습니다.(창 3:18)
아담을 향해 너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선악과 사건 이후로 평안만 잃은 것이 아니라
땅이 저주를 받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죄는 영혼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는 반드시 댓가를 받습니다.

2) 죄 값으로 죽는 아합의 말로를 보세요.(왕상 22:34)

여호사밧을 대신 죽게 하려고 왕복을 입게 해서
전쟁터로 보내고 자기는 변장을 하고 철갑과
갑옷을 입고 나갔는데, 어느 한 사람이 무심코 당긴 
화살이 하필 아합 왕의 갑옷 솔기를 맞췄습니다. 
솔기란 철갑과 갑옷 사이에 이음매를 말합니다. 

즉, 갑옷을 입고 철갑으로 보호를 했는데 
우연히 당긴 화살이 이음매 사이로 박혀서
아합이 죽었습니다. 

우연히 당긴 화살이 
아합 왕의 철갑과 갑옷 사이로 화살이 박힌 것입니다. 
기가 막힌 사건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숨은 손길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합은 죄를 가볍게 여긴 것이 
불행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거울입니다. 

WCC. 종교 혼합주의 동성애가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악입니다.

이슬람교를 섬기는 중동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전국에 이슬람 모스크를 짓고
인천에 이슬람 대학을 짓고
공장을 지어서 할랄 식품으로 이익을 창출한다고
아랍의 사람을 불러 들이니 
백의 민족 단일 민족은 옛말이 되었고
그들의 종교까지 가지고 오니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거울을 보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3. 아합은 결혼의 선택을 잘못 했습니다.(왕상 16:31절하)

1)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세벨은 우상을 섬기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입니다.(왕상 16:31)

이것은 정치적인 정략결혼입니다. 
요즘도 재벌가의 자녀들 
권력있는 정치인들의 정략결혼을 보세요. 

결국 가정이 걷잡을 수 없이 깨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은 가장 신성한 것입니다. 

결혼의 매개체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부부는 오직 사랑으로 맺어지는 신비한 관계입니다. 

결혼을 선택할 때는 적어도 몇 가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결혼하기 전 젊은이들에게 5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1)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인가? 
(2) 가정을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인가? 
(3) 미래의 비전이 있는 사람인가? 
(4) 성품에 덕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인가? 
(5)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사람인가? 

이런 몇 가지 결혼관을 가지고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직업의 선택, 결혼의 선택, 진로의 선택 등
자신이 결정하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선택은 자유지만
결과는 반드시 선택한 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합 왕은 불행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현숙한 여인을 선택해서 결혼하는 것이 상식인데
우상을 섬기는 이방나라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선택했습니다. 

이방나라와 연합해서 세력을 키우겠다는
정치적인 야망으로 인해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던 이스라엘 땅에 
신앙의 생태계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끌어 들였습니다. 

아합은 이세벨이 조종하는 대로 
이방선지자 850명을 정치 들러리로 세웠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이세벨의 충동에 의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왕상 21:2)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왕상 21:25하)

2) 결국, 아합 왕은 하나님을 분노케 했습니다.(16:33)

하나님을 노하게 한 아합 왕의 말로를 보세요. 

이세벨은 개들이 시신을 먹어버렸습니다.
부인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왕상 21:23) 

아합 왕의 피를 개들이 와서 핥았고
그 물이 창기들이 목욕하는 물이라고 
했습니다.(왕상 22:38) 
가장 부끄럽고 저주스런 죽음을 말합니다. 

왕하 10:7에 자식들 70명을 목을 잘라
광주리에 담아서 이스르엘로 보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심히 노하신 결과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거울입니다. 
역사의 거울을 보고 고쳐야 합니다. 
수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합 왕의 비참한 말로는
이스라엘의 유일 신앙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파괴시켰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하나님 눈 앞에서 악을 행하였고 
죄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분노케 한 왕으로서 가문이 몰락하고
하늘이 3년6개월 닫히는 재앙이 내렸습니다.
유일신앙의 생태계를 파괴시켰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거울입니다. 
이슬람이나 동성애 문제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양심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고
법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아가세요.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평생감사
김경열 목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9356)

'김경열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의 선지자를 주소서  (0) 2020.06.30
깨어 있어야 합니다  (0) 2019.06.04
티테디오스 신앙인  (0) 2019.06.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