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두 요소(수동적.능동적)의 결합]
성령론 2023. 4. 17. 10:29[성경적 두 요소(수동적.능동적)의 결합]
그리스도와 성령 없이는 승리가 불가능함은 참말이다. 그분들이 우리 마음 안에 거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전 성경은 우리 자신이 우리 편에서 행하기를 촉구(促求)한다. 그렇다고 성령의 일이 우리의 활동을 불필요하게 하지 않는다.
중생에서 신자는 수동적일 뿐이다. 그가 하는 바가 아무것도 없다. 그는 다만 태어나는 것뿐이요, 출생에 있어 협력하지 않는다. 아기와 꼭 같이 아무것도 보태는 것이 없다. 그러나 성화에서는 추가된 일면이 있다. 사람은 수동적이며 동시에 능동적이다. 확실히 사람의 생명 내에서 잠재의식의 영역, 그 마음에서 주권적으로 역사(役事)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므로 사람은 이 일에서 절대적으로 수동적이다. 사람이 성령이나 그리스도를 주관하지 못하며, 그들(성령과 그리스도)의 생명은 사람의 활동과는 상관없이 자신에게서 흘러나온다. 사람은 성화의 측면에서는 완전히 수동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매우 능동적이다. 신령한 생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그 생명을 이뤄 나간다. 우리가 시계를 감아서 책상 위에 놓으면 제대로 똑딱거리며 가는 것같이 취급되지 않는다. 사람은 시계와 달리 의지와 감정, 지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사람을 성화시킬 때는 이런 기능들을 인정하여 사용하며 그들로 활동케 하신다. 따라서 성화는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이다. 그것은 은혜임과 동시에 의무이다. 성령께서 수동적으로 자기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주권적으로 내리시는 은혜요, 일단 성령을 받았으면 그 받은 자들이 행동에 옮겨야 하는 의무이다.
확실히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행치 않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행할 힘과 능력을 은혜로 주시는 한에서만 행한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반만 역사하여 우리를 발동만 시키고 나머지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100퍼센트 일하시고, 우리는 우리의 하는 모든 일에 100퍼센트 일한다 하겠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시험을 물리치는 일이나, 적극적 선을 행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나, 우리가 하는 윤리적인 행위 하나하나마다 성령께서 그것을 하도록 능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뿐이다. 또한 이것이 참이지만 우리가 최대한으로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엄숙한 의무이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거나" "그로 모두 다 하시게 하거나" "노력 없는 승리"를 구하여서는 안 된다. 성령은 가르친다. "열심히 하는 것 아니면 선하지 않다."고.
승리가 오직 성령과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얻어질지라도 성경은 우리를 항상 격려하여 죄와 마귀로 더불어 싸우라고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요(엡 6:11,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1,2),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이러므로 모든 무거운 것과...벗어버리고...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신자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도록(마 5:48) 힘쓰라고 권고하는 이상과 같은 성경을 인용하자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 모든 성경 구절들은 신자가 행해야만 되고 무엇을 해야만 될 것을 지시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성화에는 매우 능동적인 면이 있다.
아마 빌립보 2:12,13과 같이 능동적이며 수동적인 관계를 더 잘 표현하는 구절은 없으리라. 여기서 바울은 가만히 앉아 있으라,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같이 수동적이어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 노력하지 말라, 단지 성령께서 모두 하시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강조하여 명확히 말한다. “일하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는 성화에서 능동적인 면, 사람의 의무와 책임에 대하여 말함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거룩히 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노력을 발휘하라고 권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맡기라, 그가 다 하시리라, 우리는 힘쓰지 않으리라 하지 않고 바울은 그들이 그것을 성취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수동적인 면이 직후에 따른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렇다 이루라! 네 가진 모든 것, 네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이루라. 그것이 네 의무다. 그러나 잊지 말라!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을.
거기에 성경적인 두 요소의 결합이 있고 성공의 비결이 있다. 만일 타 부분이 없이 한 부분만 시도되면 실패가 올 것이다. 성령 없이 힘쓰면 우리는 좌절하리라. 반면 모두 다 성령께 맡기고 힘쓰지 않으면 또한 우리는 실패로 마치리라. 그러나 성령에 힘쓰는 것을 합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리라. 거룩한 생활의 비결은 이 결합에 있다. 이로써 신자는 성공을 얻을 수 있다.
에드윈 H. 파머의 ‘감동적인 성경적 성령론’에서(162-166p) 출처: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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