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절에서 운영하는 사주 카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사주팔자(四柱八字) 타령을 자주 하곤 합니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이렇게 안 되는지?’하면 어머니께서는 ’네 사주팔자가 좋다‘고 하시며 조금만 인내하라고 합니다. 사주팔자가 세면 고생한다고 하는데 사주팔자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나요? 목사님 사주팔자가 운명을 좌우하나요? 하는 집사님 전화 상담을 받고서,


1. 들어가는 말

사주팔자는 한국인의 정서에 알게 모르게 뿌리 깊게 박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어떠한 일이 잘 되었을 때는 “운(運)이 좋았다”, “일진(日辰)이 좋았다”, “내 사주팔자(四柱八字)가 좋은가 봐” 라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잘되지 않을 때는 “내 팔자소관인가 봐” 라고 사주팔자타령을 하곤 합니다.

옛날에는 혼례(婚禮)를 할 때 두 남녀의 사주팔자를 맞추어 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사람이 마음에 들어도 파혼을 하고, 다른 짝을 찾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결혼하기 전에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무속인은 “진짜 기독교(基督敎)인들이 오면 단번에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둘려 보낸다” 며 “이들은 사주(四柱)나 점괘(占卦)가 나오지 않는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지 만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교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장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 기꺼이 봐준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사주팔자를 볼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운(運)이라는 것은 운명술(運命術)의 관점에서 성취될 확률이 1%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100%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사주팔자가 운명(運命)을 좌우하나요? 하는 집사님의 상담을 상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사주팔자가 기독교에 끼친 영향을 논하고자 합니다.

2. 사주(四柱)의 의미

사람이 태어난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를 사주라고 합니다. 사주(四柱)는 중국의 음양오행설에 기초해 사람의 운명을 예측하는 일종의 명리학(命理學)이라고 정의 합니다. 사주는 사람을 집에 비유 할 때 집의 네 기둥으로 보는 것이며,. 그리하여 사주(四柱)의 사(四)자는 넉 사이고, 주(柱)자는 기둥 주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지은 집이란 의미의 몸을 담고 태어난 사주의 사람을 좋은 사주를 같고 태어 남 사람이고, 기초가 허술하고 환경이 좋지 못한 집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사주의 사람을 좋지 못한 사주를 같고 태어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사주는 선친 복(福)이라 하여 조상 때부터 공덕이 있는 사람은 후손이 좋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세속풍속에서 왕 대나무 밭에서 왕대나무가 나오고 신우대나무 밭에서 신우대나무가 나온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사주(四柱)란 사람의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따져 길흉화복(吉凶禍福)를 점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근거한 것입니다.

3. 팔자(八字)의 의미

사주에 간지(干支)가 되는 여덟 글자를 말하는데. 즉,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 사주에다 “갑자(甲子), 을축(乙丑)”등 하는 육갑을 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갑자년(年), 을축월(月), 병일일(日), 정묘시(時)에 태어난 사람은 갑자(甲子), 을축(乙丑), 병인(丙寅), 정묘(丁卯)라는 여덟자(八字)를 가집니다. 이것이 한 사람의 운명의 팔자가 되는 것입니다.

간지란 천간(天干)지지(地支)의 준말입니다. 중국 은나라 때부터 있던 것으로서 10간과 12지를 결합하여 이루어지는“간지(干支)”를 통해 년도를 나타냅니다. 견합 순서는 10간의 처음과 12지의 처음 즉 “갑자(甲子)”부터 시작하여 을축(乙丑), 병인(丙寅)- 계속해서 진행되어 60번의 순환을 마치면 다시 갑자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환갑이 넘으면 사주팔자가 안나오는 것은, 중국에서 역학으로 인생의 주기를 60십으로 본 것입니다. 환갑상을 살아 있는 산제사 상이라고 필자의 고향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조상귀신으로 보는 것입니다.

간지(干支)에서 간(干)는 하늘을 가리키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莘), 임(壬), 계(溪)의 10간으로 나눕니다. 지(支)는 땅을 가리키며, 자(子;쥐때). 축(丑;소때), 인(寅;호랑이때), 묘(卯토끼때) 진(辰;용때), 사(巳; 뱀때), 오(午; 말때), 미(未;양때), 신(申;원숭이때), 유(酉; 닭때), 술(戌;개때), 해(亥; 돼지때)의 십이지(十二支)로 나눕니다.

10간과 12지를 차례로 따라 붙여 가면 60간지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사주팔자를 본다” 함은 이러한 간지를 대조하여 사람의 미래의 운세를 점치는 행위 나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인은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사주팔자(四柱八字) 타령으로, 조상(祖上) 타령으로 또는 운명(運命) 타령으로, 돌리는 관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사주팔자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 여자 사주팔자가 세어서 그렇다” 등의 말은 한국인들의 생각과 생활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힌 것입니다.

사주팔자를 보는 것을 “운명(運命)의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명리학(命理學)이라 부릅니다. 일본에서는“운명(運命)을 추리한다”고 해서 추명학(推命學)으로, 중국에서는 “운명(運命)을 계산해 본다”는 의미의 산명학(算命學)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뜻은 같으며, 한자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한-중-일 삼국은 사주팔자(四柱八字)에 있어서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사주팔자(四柱八字)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주팔자타령을 한 번 이상은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주팔자는 한국인의 정서에 알게 모르게 뿌리 깊게 들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목회현장에서 “목사님. 저는 왜 이렇게 팔자(八字)가 기구합니까? 라고 하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합니다. 어느 사주팔자에 대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본 사주팔자 내용에 대하여 50%가 맞아도 잘 맞은 것으로 인정한다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사주에 따라서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주팔자대로 사람의 운명(運命)을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씀하고자 합니다.. 무속(巫俗)인들은 역학(易學)이나, 주역(周易)으로 사주팔자를 풀어 좌절과 절망으로 귀정하고 액운(厄運)을 막아준다면서 부적(符籍)이나, 살(殺)풀이나, 굿(㖌) 등을 통해서 악행을 일삼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액막이란 방편으로 돈을 갈취하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무속신앙(巫俗信仰)의 문제와 현실입니다.

사주팔자(四柱八字)는 통계학적 이론으로 보자면 동일한 사주팔자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과연 사주팔자가 동일하다면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사주팔자를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해외(海外)선교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국내 문화(文化)선교가 급선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무속문화(巫俗文化)를 학문적으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무속문화를 무조건 미신으로 비판과 저주로 일방적으로 폄하하기보다는 학문적으로 비교하여 접근하는 방식의 필요가 요구됩니다. 사주팔자를 주업으로 하는 무속인, 역술인, 철학관등을 다 합치면 5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학문적으로 양육하는 학원들이 성업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진-한국 역술 대학

그런데 한국 교회 목회자(목사, 강도사. 전도사)수는 교단을 초월하여 다 합쳐보았자 10만(교회 수는 5만-6만)명 정도입니다. 무속(巫俗)인들에 비해 교회나 목회자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속인과 역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나 목회자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필자가 집회를 인도 하면서 마음속으로 느낀 것은 교회나 목회자들이 원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회 부흥과 재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각 교회에서는 성경공부는 많이 했지만 한국 전통문화인 무속의 세계를 가르치는 않고 있으니 잘 못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생각으로 오늘 한국 교회의 신앙행태를 보면, 생각은 불교적(佛敎的)으로고 하고, 생활은 유교적(儒敎的)으로 살고, 신앙은 무속적(巫俗的)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무속신앙이 한국 기독교를 병들게 하고 혼탁하게 하는 부정적인 정서를 몇 년간에 년이어 여러 곳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무속신앙화 하느냐 아니면 무속이 기독교화 하느냐 하는 것이 실로 중대한 일입니다.

우리는 운명이니 사주팔자이니 하는 생각과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 속에 말이 있고 말 속에 생각이 함께하며 말에는 분명한 사상과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무속신앙은 귀신(鬼神)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을 사주팔자가 전부 지배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고방식입니다.

4.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참 허구성을 알아야 합니다.

사주팔자를 조합해 보면 인간의 운명(運命)의 총수는 51만 8천4백수입니다. 지금 남한 인구가 약 5천만 명이라면 약 100명 정도는 사주팔자(四柱八字)가 같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사주팔자는 원천적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의 인생을 조사해 보면 결단코 그들의 삶의 운명(運命)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람들이 고통과 환란이 닥쳐올 때 자기 운명이 그래서 그렇다고 체념하며 받아들입니다. “아이고 내 팔자(八字)야”. “다 내 죄(罪)지“, ”내 운명(運命)이 그렇고“, ”내 팔자(八字)가 고런데 어떻게 하겠나“, 등 모든 고난과 고통을 자신의 운명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즉, 모든 것을 내 팔자(八字)소관으로 팔자(八字) 타령으로 돌립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한국인의 문화적인 단면이라고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첫째로는 중국 고대부터 사주팔자(四柱八字)는 문제가 있다 지적하고 있습니다. 명나라 말기 사람인 정중기는 이신(耳新)에서 “년월일시가 똑 같은 사람들의 실제인생이 완전히 다르다”며 사주팔자를 비판했습니다. 청대(淸代)의 왕사정(王士禎)이라는 사람은 지북우담(池北偶談)에서 “군자와 소인,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그리고 잘남과 못남이라는 각도에 착안하여 산명술(사주팔자)이 단지 사람의 귀천, 부귀, 요수, 화복만을 추산하는 것은 문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주팔자는 고대 중국인들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현상을 하늘에서 정한 천명에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발전 되어오다가 오대말(五代末) 송초(宋初)의 서자평이 년월일시(年月日時)를 동시에 따져 사주(四柱)의 방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둘째로는 한국 조선시대 때 사주팔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명종(明宗) 때 소문난 점술가 홍계관은 당대의 정승 상진대감의 사주팔자를 풀어 모년 모월 모시에 죽을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대감은 그날을 당해 죽을 준비를 해는 데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이에 대감이 점술가을 불러 죽지 않은 이유를 따지자 그는 은덕 때문에 수명이 연장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상진대감은 “사주(四柱)란 하늘이 정해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구먼”하고 비평했다고 합니다.

또한 성종(成宗)은 자신과 사주팔자가 똑같은 과부가 성 안에 살고 있는 소식을 듣고서 그 과부를 불러 들여 살아온 삶을 물었습니다. 성종이 세자로 책봉되던 해 과부는 어머니와 사별했고, 성종이 임금이 되던 해 과부는 남편과 이별했습니다. 따라서 성종은 “못 믿을 건 사주팔자(四柱八字)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안점식 교수(한국선교훈련원)는 “간지(干支)의 태음력이나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 태양력이 혼합되어 있어 기준상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마치 통계학처럼 과학으로 위장한 사주팔자(四柱八字)는 그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다”며 “사람의 운명을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묶어 스스로 자유 함을 잃게 하는 것이 사주팔자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주팔자(四柱八字)의 문제는 미신임에도 불구하고 맹신을 불러일으키거나 사기성이 농후한 경우도 있습니다.

5, 교회는 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금해야 하는 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사주팔자(四柱八字) 타령을 합니다. 그 밑바탕에는 인간이 팔자(八字)대로 살아간다는 동양사상인 음양오행설의 운명론(運命論)이 짙게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지난날 미신으로 여겨왔던 사주풀이가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이라는 문화 속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아리 고개 점술집들이 이제는 “사주(四柱) 카페”라는 이름으로 강남의 압구정동에 점술(占術)거리가 조성 된지 오래입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이들의 고객이라는 현실 앞에서 왜 사주팔자를 금하는가를 말씀하고자 합니다.

첫째로는 사주팔자(四柱八字)는 통계학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주팔자는 통계학(統計學)이고 철학(哲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의 유전에 의해서 특별한 기질과 체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또한 사주팔자 보는 사람에 따라서 태음력(太陰曆)과 태양력(太陽曆)이 다르고 그 사주팔자 산출 방법도 다르고 또 운명(運命) 감정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사주팔자는 통계학이 되지 못합니다. 로마서 8;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팔자(八字) 더럽다”, 팔자(八字) 사납다“, ” 팔자(八字)가 그러니 어떻게 하느냐“ 는 말을 생각을 해서도 안되고 사용도 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인간을 스스로 거짓 예언의 올무에 자신을 소박하는 것입니다.

사주팔자는 사람에게 운명론(運命論)을 강요합니다. 개인의 노력여하에 상관없이 모든 것이 다 정해져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자질과 결정에 대한 것을 운명에 맡겨버리고 요행을 바라게 합니다. 또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보는 것은 사탄의 궤계에 말려들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미래에 대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면 우리의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우리가 장래를 안다고 해서 우리의 장래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사로운 마음만 불러일으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不安)은 미래의 불확실이 아니라 만유의 주권자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우리의 미래는 오히려 더욱 확고해집니다.“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또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는 사주팔자(四柱八字)는 귀신(鬼神)의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주팔자를 잘 맞추는 사람일수록 신기(神氣;강신무)가 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운명술(運命術)은 통계학이나 철학보다 오히려 접신(接神)으로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사소한 과거의 문제는 알아맞히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결정적으로 중대한 거짓말을 함으로써 파멸로 몰고 갑니다.

성경도 거짓예언자의 배후에는 거짓말하는 영이 있다고 말합니다.(왕상 22:22). 그리고 그러한 거짓 예언의 목적은 사람들을 미혹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 하는 것이다(렘 23:23-3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점(占)술을 금하고 있으며 무당은 죽이라고 출애굽기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로는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보는 것은 영적인 결핍을 가져 옵니다.

그러므로 사주팔자의 폐단은 기독교를 현세 기복적 신앙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운(運)이 좋다’는 기준은 재물, 지위, 명예, 권력, 건강, 장수 등 현세적인 가치관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회 청문회에서 여실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영적·도덕적 상태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현세적인 관운(官運)을 위해서는 좋은 이름으로 고치고, 좋은 관상을 위해 성형 수술하고, 조상 묘도 이장을 합니다. 이방인 하면 조금 이해 할 수 있으나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眷顧) 하심이니라(벧전5;7)”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는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를 말씀하고자 합니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무속(巫俗)적인 신앙의 행태를 갖고 있었고, 지금도 갖고 있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사주팔자가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사주팔자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속담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 팔자(八字)가 상팔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놀고 있는 개가 부럽다는 뜻으로 현실의 고통스러울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팔자(八字)는 독에 들어가도 못 피한다”, “ 뒤로 오는 호랑이는 속여도 앞으로 오는 팔자(八字)는 못 속인다”라는 말을 듣고 살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운명론(運命論)은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속담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사주팔자(四柱八字)와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주타령이나. 팔자타령하면 마귀에 속하므로 사주팔자에 묶여 지게 됩니다. 꼭 기억하세요. 좋은 사주는 없습니다. 좋은 팔자도 없습니다.

원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에게 무슨 좋은 사주가 있겠습니까.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좋은 팔자가 있겠습니까. 마귀의 종노릇하며 사는 사람에게 무슨 좋은 사주가 있으며 팔자가 있겠습니까. 잠시는 좋은 듯이 하나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안점식 교수는 “사주(四柱)는 기독교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통계가 아니며 설령 무속(巫俗)인들이 말하는 것에 일리가 있어 보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그 안에 모시 고 사는 사람은 타고난 기질과 체질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 받는다” 며 “사주(四柱)는 구원(救援) 받지 못한 사람들이 사탄에 이용 당하 는 사술에 불과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진리의 말씀 위에 온전히 서서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 안에 있는 무속신앙(巫俗信仰) 연구가 절실 하다고 생각 합니다. 기독교가 사주팔자를 왜 금하는가를 이해시키려면 한국교회는 전통문화(傳統文化)를 학문적으로 연구가 필요합니다.

6. 나오는 말

언제부터인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참 신앙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속신앙의 영향을 받아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전래 된 지 한 세기가 지났는데 아직까지 전통문화인 무속신앙 풍속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침식당하고 있으니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러한 무속신앙에 대해 정학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지함에 대한 소설을 읽었을 때, 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관상, 수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상(心相)이다”라는 구절 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주팔자보다는 심상(마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주팔자는 한국인에게 운명론(運命論)을 강요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점괘(占卦)나 사주팔자(四柱八字)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을 묵상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 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 하리라(마10;32-33) 말씀 하셨고, 또한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말씀 하셨습니다.

혹시 아직까지 교회 안에서 사주팔자(四柱八字) 타령을 하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든 무속신앙(巫俗信仰)에서 해방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한국 종교사에 나타난 불교(佛敎),유교(儒敎), 도교(道敎)가 결국은 무속신앙화 된 것이 입증합니다. 한국 교회는 기나긴 역사의 변천에도 소멸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속해온 무속신앙의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겉은 기독교인이나 속은 무속신앙인 기독교인의 옷을 입은 무속신앙(巫俗信仰)인이 부적 필자의 눈에 많이 띄고 있습니다.

이의용 소장(교회문화연구소)은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사기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주팔자를 맹신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런 곳을 출입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악하게 대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소장 은 “새해 벽두부터 장난삼아 운세(運勢)풀이를 하는 것조차 그리스도인 들은 금해야 할 것이다”며 “이는 성경이 금하는 것이고 또 인간의 모든 생명(生命)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전통(傳統)에 기반 한 종교적 열심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은 여전히 토착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의 행태를 갖고 있었고, 지금도 갖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2-3)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속신앙(巫俗信仰)에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앙으로 회복되기를 함께 소망합니다. 그래서 ‘팔자(八字)가 더럽다’, ‘팔자(八字)가 사납다’, ‘팔자(八字)가 그러니 어떻게 하느냐’, 혹시 아직까지 교회 안에서 사주팔자(四柱八字) 타령을 하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한국 전통적인 운명론(運命論)에서 해방되시길 소망합니다.

서재생목사 / 서울대현교회 / 승려생활에서 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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