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본 ‘관상기도’
이단경계 2011. 7. 13. 08:08wanglee@newsmission.com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에 확산 중인 관상기도와 왕의기도에 대해 ‘비성적’이라는 견해를 내세우며 ‘주의’를 당부했다. 11일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열린 ‘2011 한국 개혁주의 신학대회’에서다. 본지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신학대회 기사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1) ‘2011 한국 개혁주의 신학대회’ 정리
2)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본 ‘관상기도’
3)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본 ‘왕의기도’
신비주의에 뿌리 둔 관상기도, 종교다원주의에 쉽게 노출
이날 신학대회에서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교회사적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종교다원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관상기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가장 큰 뭄제점으로 지적됐다.
김남준 교수(총신대, 열린문교회 담임)는 “관상기도에 대해 복음주의 안에서도 학자 혹은 목회자들마다 각기 다른 판단들을 내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객관적이고 건전한 신학적 판단을 따를 때 분명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관상기도의 뿌리는 가깝게는 기독교 신비주의며 멀게는 종교일반의 신비주의라는 사실”이라며 “역사적으로 볼 때 심화된 기독교 신비주의일수록 이교적 신비주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종교다원주의에 쉽게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누가 이론을 제기할지라도 오늘날의 관상기도운동은 종교다원주의로 흘렀거나, 그렇게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이러한 운동의 확산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영적 건강에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관상기도의 신비주의 뿌리와 관련해서 그 사상적 배경으로 △신비주의를 지지하는 뉴에이지 사상 △중세의 신비주의 △스페인과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시작된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의미하는 까발리즘(Kabbalism) △종교개혁 시대와 근대 이전의 신비주의를 꼽았다.
신론 및 기독론 손상 통해 종교다원주의 향한 문 열어
또한 이날은 ‘신학대회’답게 관상기도에 대한 개혁주의 조직신학적 관점에서의 문제점들이 각론별로 지적됐다. 신론, 기독론, 구원론, 인간론, 교회론 모두에서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발표됐다. 그 중에서도 신론과 기독론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관상기도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신관은 자연과 우주 만물을 모두 신으로 여기는 ‘범신론’이거나, 범신론에서 의미하는 신에 인격적 요소를 가미한 ‘내재신론’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라영환 교수(명지대)는 “현대 관상기도운동가들이 ‘타 종교에서도 신과의 합일이 가능한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적 발언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신관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독론과 관련해서는, 관상기도운동의 경우 구원에 있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라 교수는 “그들은 ‘인간의 영혼이 관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마주보고 그분과 연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서 “이러한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남에 있어서 예수그리스도라는 중보자가 필요 없게 된다”고 말했다.
김남준 교수도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게시되는 속성보다는 자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식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이 더 중요한 관심사”라며 “관상기도는 이렇게 기독론을 심각하게 손상시킴으로써 종교다원주의를 향해 문을 열고 있다”고 밝혔다.
‘성경적 기도관에 대한 왜곡’ 초래하고 있어
이밖에도 관상기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 중 커다란 문제점으로 김남준 교수는 ‘기도관에 대한 왜곡’을 꼽았다.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적이고 개혁신학적인 정의로부터 크게 일탈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들은 ‘기도 속에서 스스로 정적과 침묵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는다’고 생각하며, ‘침묵을 동반하지 않은 기도는 진정한 의미의 기도가 아니거나 매우 낮은 수준의 기도’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라영환 교수는 관상기도 수련에 있어서 짧은 단어나 문장을 반복해 기도하게 하는 만트라(mantra)의 실천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진언이란 불리는 만트라의 실천에 대한 강조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자의 마음의 집중에서 나오는 기도의 능력이 아닌, ‘기계적인 실천’ 자체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라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출처가 불분명한 관상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에게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병왕 기자 ⓒ뉴스미션
출처: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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