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육영수와의 만남
자료실 2012. 6. 19. 11:05육영수와의 만남
박정희와 육영수의 만남을 중계한 것은 전란이었다. 충북 옥천부자 육종관이 솔가하여 부산으로 피란와서 영도에서 일본식 2층집에 세들 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8월하순이었다.
6.25 전쟁이 한창인 때 박정희의 대구사범 한 회 후배인 송재천이 찾아왔다. 그는 충북 옥천 농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 교육을 받고 배속장교가 되었는 데 6·25가 터지자 소집영장이 날아왔다.그는 선배인 박정희를 만나러 갔다. 박정희는 졸업하고 처음 보는 후배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전투정 보과에서 포로신문관으로 일하도록 해주었다. 8월 어느 날 송 소위는 박정희에게 말을 건넨다.
"과장님 왜 혼자 사십니까. 가족이 있어야 마음도 든든하고 위로도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글쎄, 좋은 색시가 있어야지".
송 소위는 외가쪽으로 동생뻘 되는 육영수란 색시를 소개했다. 스 물여섯이라고 했다.
"제가 보기에는 만점인데 과장님이 보시면 만점이 될지, 영점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박정희는 그저 "그런 색시가 있느냐"하는 정도였다. 며칠 뒤 송 소 위는 다시 육영수 이야기를 꺼냈다. 박정희는 "그럼 한번 만나 보기나 할까"라고하는 것이었다. 송재천 소위는 그 길로 부산 영도에서 셋방을 얻어 피란생활을 하고 있던 이모 이경령을 찾아갔다.
"이모님, 마땅한 자리가 있는데 영수 누이 출가안시키시겠어요?" "글쎄, 어떤 사람인데".
"제가 모시는 상관입니다. 인품이 그만입니다" "성씨는?".
"고령 박씨지요" "그렇게 좋은 사람인가".
"청렴하고 강직하면서도 인정이 넘치는 분입니다".
박정희 소령은 송재천 소위의 안내를 받아 육영수의 집으로 찾아갔 다. 맞선을 보기 위해서였다. 박(박)소령은 육영수가 어딘가에서 자신 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방문 앞에서 군화 끈을 풀고 있었다.
"맞선 보던 날 군화를 벗고 계시는 뒷모습이 말할 수 없이 든든했 습니다. 사람은 얼굴로써는 남을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남을 속일 수 없는 법이에요. 얼굴보다 뒷 모습이 정직하거든요.".
영부인 시절 육영수가 한 말이다. 박정희는 육종관- 이경령 앞에 앉고 육영수는 찻잔을 나른 뒤 부모 옆에 단정히 앉았다.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받쳐 입고 있었다. 육종관과 박정희가 주로 이야기를 나누 었지만 수인사에 불과했다. 얼마 후 박정희가 자리를 떴다. 자기방으로 돌아온 언니에게 동생 예수가 물었다.
"언니, 어때요?".
육영수는 달아오른 볼을 싸 안으며 생글거리기만 했다. 표정은 밝았 다.
"언니, 웃는 것 보니 마음에 들었나 봐." "글쎄, 눈이 번쩍 번쩍 광채가 나는데 굉장히 무서웠어. 콧날이 날 카로워 성깔이 있어 뵈더구나. 그러나 주관이 확고하게 서 있는 듯한 그 눈에 마음이 끌려.".
이날 밤 송재천도 육영수에게 찾아가서 물었다고 한다.
"사람은 체격도 작고 볼품이 없지만 마음이 아주 단단한 것 같고 돌 아서는 뒷모습이 아주 좋던데요.".
부끄럼을 타는 천성을 가진 박정희는 맞선을 보러 갈 때 떨리는 가 슴을 진정시키키 위해서 소주를 몇 잔 마시고 갔다고 한다(당시 전투정 보과 한무협 대위 증언). 송재천은 박정희 과장에게도 맞선 본 소감을 물었더니 싫다는 내색도 좋다는 표현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박정희 는 만만한사이인 김재춘 소령에게는 이런 말을 했다.
"뭐, 키가 나보다 큰 것 같고, 뭐 보기는 봤는데 다시 만나봐야지.".
김재춘은 속으로 "이 양반이 까다로운 데가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에 혼담이 오고가고 있을 때 전황은 벼랑으로 치닫고 있었다.
박정희는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있던 날 중령으로 진급했다. 만 주군관학교 동기인 이한림은 당시 준장으로서 부군단장이었고 육사2기 동기생들은 대령으로 진급해 있었다. 동료들에 비해서 많은 나이와 낮 은 계급은 현실에 대한 박정희의 불만을 구조화했다. 그가 해방 뒤 일 찍 귀국하여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가 쾌속승진가도를 달렸더라면 혁명 아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산 문현동 부근에 있던 육본은 9월22일 대구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 전날 박 중령은 영도의 양과자점에서 육영수를 만났다. 송재천 소위는 박정희와 동행했다가 먼저 나왔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약 혼하기로 합의했다. 다음날 박 중령은 육본의 대구 이동 수송책임자가 되어 부산진역에서 체제의 편성을 지휘했다. 완전군장을 한 박정희 중령의 모습을 처음 본 송재천은 절도있고 명쾌한 지휘통솔에 감탄했 다.
한편으로는 저런 분이 북진대열에서 멀리 처져있다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육영수는 박정희가 이혼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 이경령을 통해서 들었을 것이다. 송재천이 이모뻘 되는 이경령에게 귀 띔을 했던 것이다. 이경령은 둘째딸의 사주를 들고 점을 보러 갔는데 "따님은 재혼하는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경령은 남편 육종관에게는 박정희의 혼력에 대해서 말하지 않 았다. 그러지 않아도 육종관은 박정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군인에게 영수를 시집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이경령은 한때 소실을 다섯 명이나 거느린 적이 있는 남편에게 애원하다시피 했다.
"이미 영수도 마음속으로 결정한 것 같으니 성사시켜줍시다.".
육종관은 항상 자신의 말을 잘 듣던 딸이 이 중대사에 있어서는 자 기 주장을 확실히 하는 데 오히려 당황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기가 이를데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대구로 올라와 태평로에 하숙을 정했 다. 서울이 수복되면 육본도 서울로 돌아갈 것이었다. 이미 전방지휘 소를 서울에 설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박정희의 마음이 바빠졌다. 그는 송재천 소위에게 트럭을 한 대 주어 부산으로 내려보냈다. 육종 관의 가족들을 옥천으로 태워보내는 길에 대구로 모시고 와서 약혼식 을 올리기로 했다. 이경령은 약혼식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다시 한번 남편을 설득하려 했다. 육종관은 "너네 마음대로 해!"라고 쏘아붙였다.
육종관 일가를 태운 트럭이 대구를 지날 때 이경령은 다른 이유를 댄 뒤 딸을 데리고 내렸다. 남편만 옥천으로 가게 했다. 소실을 다섯 명이나 데리고 들어와도 불평 한마디 못했던 이경령으로서는 남편 몰래 딸을 약혼식장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 일생일대의 결단이었을 것 이다. 모녀는 대구 동성로 네거리 자유백화점 옆 일식당 삼화식당으로 갔다. 그 시간 박정희는 전투정보과 사무실에서 이영근 중위에게 "나 하고 식사나 하러 갈까"라고 말을 건넨다. 다른 과원들은 점심 먹으러 나가고 없었다. 이영근은 영문도 모르고 지프에 올랐다. 식당 방에 들 어가니 "목이 길고 고상하게 생긴 처녀가 할머니와 앉아 있었다"는 것 이다. 이 약혼식장에는 방첩부대장 한웅진 중령이 우인대표로 나왔다. 식사하는 걸로 약혼식은 끝났다. 모녀는 옥천으로 돌아가고 며칠 뒤 박정희는 육본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페허된 서울에서 육영수와의 데이트
1950년 10월은 결혼을 앞두고 데이트에 열중하던 박정희나 육영수뿐 아니라 국군장병과 민족 전체를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모두가 통일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다.
박정희는 서울로 올라오자 맨처음 육영수의 큰 언니 육인순의 집을 찾아갔다. 어느 날 육인순이 마당에서 그릇을 씻고 있는데 한 군인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걸 보았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 동생이 군인과 약혼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저 사람이라면 아닌데'하는 실망감 이 엄습해왔다. 그런데 두리번거리고 서있는 운전병을 따라서 키가 작 은 장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육인순은 '그러면 그렇지'하고 마음을 놓았다. 박정희는 차 대접을 받았다. 육인순의 남편 홍순일이 납북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정희는 손수건을 꺼내더니 눈물을 닦았다.
"남편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육인순은 박정희를 본 뒤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평을 했다. 그 며칠 뒤 박정희 중령은 서울고등학교 수학선생이던 육인수의 집을 찾아갔다. 집의 위치는 육영수가 알려주었다. 이 집은 뒷문이 앞문보다 커보였다.
"하루는 마당에 나가 있는데 누가 뒷문을 열고 들어와요. '어디서 오셨습니까'하고 물으니까 '저 박정희라고 합니다'하며 인사를 해요.그 래서 알게 되었지요.".
그 며칠 뒤 육영수가 올라와 오빠 집의 2층 방에 머물렀다. 육영수 가 물었다.
"오빠, 그 사람 어때요?" "키도 참 작더구나. 그런데 사람 하나는 다부지게 생겼더라. 인상은 좋더구나.".
포화를 견디고 남은 가로수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서울거리에서 두 사람은 자주 만났다. 박정희와 데이트를 하고 나면 육영수는 사직동 언니집으로 오곤 했다. "재미 있었니?"하고 물어보니 "제가 핸드백이 없는걸 알고 며칠 뒤에 만나서 핸드백을 사준다는데 부끄러웠어요"라고 하며 얼굴을 붉혔다. 며칠 뒤 박정희가 육영수를 데이트에 데리러 가려 고 육인순의 집에 나타났다. 차녀 홍소자는 그 순간의 육영수를 기억한 다.
"부끄럽다거나 내숭있는 표정이 아니라 맑고 투명한 표정으로 박정 희씨를 맞이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전시의 들뜨고 불안하고 뒤죽박 죽이던 시절에도 안정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연애시절은 젊은 청춘남녀의 불타는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인네들 의 로맨스도아니고 참 신기했어요. 성숙된 인격의 만남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훗날 와서 생각합니다.".
육인수는 "두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부자연스러운 데가 없이 충만하 게 보일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육영수는 9사단 참모장 박정희 중령이 장인 육종관에게 정식으로 인사하러 오는 날 이질 홍정자, 송재관 등 집안 아이들을 문밖에 세 워 두었다. 박정희는 운전병이 모는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철모에 카빈소총을 맨 부관을 앞세워 바짝 마른 박중령이 들어왔다.
부관은 걸을 때 철모가 흔들거려 아이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박중령의 전투복 상의 양어깨엔 초록색의 지휘자 견장이 붙어 있었다. 멋을 낸 차림이었다. 아이들의 안내로 대궐 같은 집에 들어 선 박정희는 안채의 대청마루로 올라서 이경령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이런 일에는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부인네들과 아이들은 옆방으로 들어가서 미닫이 문을 닫고 틈새로 눈과 귀를 갖다 댔다. 육 영수의 외가쪽 동생인 송재관은 마루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문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볼 수 있었다.
"먼저 박정희씨가 저의 외삼촌(육종관)에게 큰 절을 하면서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했지요. 외삼촌은 절을 대충 받았지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사윗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역력했어요. 외삼촌께서는 상대가 잠시 다른 쪽으로 눈길을 줄 때는 날카로운 눈매로 그 사람을 싹 훑어보는 특기가 있었는데 그날도 그러셨을 거예요.".
이때까지만 해도 육종관은 딸이 자기 몰래 박정희와 약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육종관은 박정희에게 형식적인 질문만 몇 차례 던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엿보고 있던 송재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박정희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오른쪽 무릎을 반쯤 세우고는 그 위에 오른 팔을 걸쳐 놓은 '불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는 지금도 매형이 왜 그때 그런 자세로 앉아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외삼촌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의 문을 닫은 듯 합니다.".
육종관은 박정희에게 매정하게 말했다.
"요사이 군인들이 얼마나 끼가 많은가. 서른네살까지 총각이 어디 있나. 좀 더 알아봐야겠네.".
'일이 꼬이는구나'하고 직감한 송재관이 박정희를 보니 박정희는 육종관의 말에 고개만 주억거리면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손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라이터 뚜껑을 닫았다가 덮었다가 하는 '또각 또각'소리만 어색한 방안 공기를 깨고 있었다. 육종관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그럼 잘 놀다 가게"라며 방을 나왔다. 그날 박정희는 저녁을 잘 대접받았다. 잠자리로는 육영수의 동생 예수 방을 썼다. 박정희가 저녁상을 물리자 육영수는 예수를 앞세워 그 방으로 들어갔다.육 영수는 다소곳이 앉아 박정희가 묻는 말에 대답만 했다. 육예수는 그런 언니의 수동적인 모습에 다소 불만이었다. 박정희 일행이 다음 날 새벽에 집을 떠나자 육종관은 본처 이경령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태도가 그게 뭐야. 라이터를 찰칵거리지를 않나 꽁초까지 피우지도 않고 장초를 끄질 않나….".
육종관의 주된 불만은 박정희의 집안 내력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딸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항상 공손한 박정희가 육종관에게 보인 의외의 모습은 그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리라.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녀가 참석하여 비밀 약혼식까지 올린 마당에 육종관의 반대란 활을 떠난 화살을 논하는 격이라고 그는 판단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런 배짱을 품고 육종관의 영토를 야금야금 잠식해간다. 대전의 9사단 사령부에서 박 참모장과 같이 근무했던 작전참모 손희선 중령은 박정희가 '툭하면 저녁에 사라졌다가 아침에 돌아 오곤 했다'고 기억한다. 박정희를 누이뻘 되는 육영수에게 소개했던 송재천 중위는 이때 박정희의 직속부하인 군수참모 김재춘 중령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송재천은 박정희가 워낙 내색을 하지 않아서 두 사람의 사이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김재춘은 박정희가 거의 매일 옥천에 다니러 가는 것을 보고는 곧 결혼까지 가겠구나 하는 판단을 했다.
육예수는 언니를 자주 놀렸다.
"아유, 새까매. 언니는 눈이 삐었어? 뭐가 그리 볼 게 있어? 지금 까지 기다렸는데 겨우 저런 사람한테 시집가려고 해?".
육영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애. 저 사람은 뭐 좀 다르지 않니? 난 뭔가 끌리는 데가 있더라.".
이즈음 육종관은 자기 집에 뻔질나게 나타나는 박정희를 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 어느날 육종관은 이경령과 육영수가 있는 데서 들으라는 듯이 힘주어 말했다.
"9사단 참모장 정도면 내가 잃어버린 닛산 차 정도는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거 조금만 신경쓰면 찾아온다고. 유능한 사람이면 부하들 을 시켜 찾아올 수 있다고.".
해방 직후 귀국하는 일본군이 주고 간 닛산 트럭을 피란중에 인민군이 몰고가버린 것을 자동차 수집광인 육종관은 두고두고 원통해하고 있었다. 육영수는 아버지의 이 소원을 박정희에게 어렵게 이야기 한 것같다. 며칠 뒤 육종관은 대문 앞에 갖다 놓은 닛산 트럭을 발견한다. 박정희는 수송부대를 시켜 폐차 직전의 고물 차를 하나 구해서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육종관의 기대는 이 고물을 보는 순간 실망 으로, 다시 분노로 바뀐다.
"아니, 걔가 성의만 있으면 싹 손보고 가져다 줄 수 있는 거잖아. 군인들은 부속품이 공짠데 이 고물을 나보고 손 보란 말이지. 하여간 결혼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니깐.".
어느 토요일 점심 때 육영수는 송재관을 부르더니 "오늘 박 중령 이 올 거니까 동생이 나가서 좀 봐"라고 했다. 잠시 후 박정희가 도착하고 두 사람은 송재관을 차에 태웠다. 차중에서 박정희는 "천렵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오리티 강가로 가자고 했다. 박정희는 고기를 잡으러 간다면서 어디서 났는지 수류탄을 들고 강물로 다가가서 안전핀 을 뽑아 던졌다. 폭음과 함께 물기둥이 솟아 올랐다. 또 한 발 투척. 포말이 사그러들더니 죽은 물고기들이 허옇게 떠올랐다. 운전병과 송 재관은 열심히 고기를 건져 담았다. 송재관이 길위를 올려다보니 박 중령은 두 다리를 떡 벌린 채 양손을 허리춤에 괴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육영수가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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