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멍들게 하는 적들(5)- 부족한 구원관

구원론 2013. 11. 12. 02:19

한국교회를 멍들게 하는 적들(5)- 부족한 구원관

 

한국 교회의 성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세계 교회사 가운데 한국 교회와 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단기간에 세계 교회의 중심 멤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특별히 1907년에 일어난 부흥은 한국 교회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부흥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흥이 일어난 곳에 교회는 견고하게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서구 교회의 침체기에 한국 교회는 계속하여 성장하였습니다. 서구 교회는 전후 세대들이 교회를 이탈하여 무신론자가 되거나 동양종교에 심취하여 교회를 떠나는 일들이 난무할 때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착실하게 준비시켰습니다. 비록 일제의 핍박을 받는 과정과 6.25라고 하는 전쟁의 상처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보호하셨습니다. 한국 땅에 흘려진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여 주셨습니다.

 

한국 교회는 60-90년까지 30년 동안 서국 교회 수백 년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교회가 방방곡곡에 세워지고, 많은 젊은이들이 목회자와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교회는 성도들로 북적 거렸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높아만 갔습니다. 사회의 중요한 곳에 기독교와 관련이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위상은 높아만 같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가 되면서 한국 교회는 침체기를 겪게 되고, 마침내 하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기대치가 바닥으로 치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약 16%만 교회를 신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을 살렸던 한국 교회가 동네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너누마 서글픈 모습이 지금의 자화상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이면에는 성화에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습니다. 성화가 없는 신앙은 샤머니즘에 불과합니다. 진리가 종교로 전락하여 버렸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진리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진리는 의롭게 됨과 거룩함의 균형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실수는 거룩한 삶에 대한 강조를 왜곡한 것입니다. 신앙의 축복이 성공에 있음을 너무나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어려운 시기를 이겨야 하는 시대적 아픔이 있기는 하였으나 복음은 거짓 없이 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구원의 참된 의미가 종합적임을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의 종합적인 사역입니다. 물론 구원이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칭의는 영원합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칭의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칭의는 반드시 성화를 살게 합니다. 성화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칭의는 반드시 성화를 가져옵니다. 성화가 없는 칭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또한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러한 성화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한국 교회의 슬픔은 칭의는 있는데 성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현실 속에 나타는 것은 바로 교인의 성장 없는 교회의 성장입니다. 성도들은 삶의 영역에서 변화가 없는데 교회는 날마다 커져만 갑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모이기는 하는데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의 삶의 문제만을 해결하기를 원합니다. 이름만 기독교이지 샤머니즘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비나이다’ 신앙에 머문 한국 교회는 더욱 개인주의로 달려갔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나타나야 할 사랑과공의가 잘 보이지 않고 세속적인 냄새만 풍겼습니다. 여전히 교회의 크기가 중요하고, 큰 교회는 다니는 것이 대단한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는 동안 기독교인의 장점인 정직과 헌신은 점점 사라지고 고집과 부정과 이기심이 그리스도인들의 별명이 되어갔습니다. 정말 듣기 싫은 소리이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성화는 시간이 갈 수 록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입니다. 신앙은 성화 즉 변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마치 아이일 때는 자기중심적이지만 성인이 되면 이웃을 배려하게 됩니다. 미성숙한 성도는 자기중심적이지만, 성숙한 성도는 공동체 중심적이 됩니다. 신앙이 자라면 생각이 자랍니다. 이기적인 존재에서 이타적인 존재로의 살아갑니다. 그렇게 성품의 변화가 옵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실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열매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성화에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인의 진가가 나타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공과 부를 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방인이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그의 나라와 의입니다. 성공과 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는지는 그의 거룩한 삶에서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함은 단지 윤리적인 정직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죄 죽임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영적인 일입니다. 죄를 죽이는 일이 없이는 결코 거룩함에 이룰 수 없습니다. 죄 죽임은 오직 의롭게 된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죽이는 일에 동참하게 합니다. 죄를 죽이는 일이 바로 성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러한 죄 죽임의 모습이 반드시 동반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백성이라면 반드시 죄 죽임의 자리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죄에 굴복당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굴복 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온전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동시에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이러한 죄 죽임의 가르침이 너무 빈약합니다. 구원 받은 백성의 삶에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자신감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종교 생활을 잘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구원은 의롭게 된 자로서 죄 죽임의 자리에 날마다 서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지 않고 구원을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죄를 죽이는 일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져온 곳 : 
카페 >문화와 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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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신동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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