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내가 졌다!"

이응한 목사 2016. 10. 5. 02:14

(창세기 32장) "내가 졌다!"

  우리는 우리가 노력해야 무엇을 얻을 자격이 주어진다는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거저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부터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지구환경과 자연이 우리의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지시고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키신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야곱이 얍복강에서 밤새워 천사와 씨름한 그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가사의 찬송가도 있습니다. 얍복강에서 밤새워 씨름하듯 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붙잡고 밤새도록 부르짖으며 흔들어 뿌리를 뽑아야 무엇이 이루어지고 기도가 응답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야곱의 얍복강 씨름사건을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기도의 모델로 설교하시는 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가나안 땅 네 아비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아내와 자식들을 이끌고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돌아가는 야곱을 지키시고 인도하사 무사히 돌아가게 아니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는데 야곱이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32장 첫 절을 보니 야곱이 길을 떠나자 하나님의 사자들이 왔습니다. 야곱은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 부르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두 장막)‘이라 하였습니다. 자, 하나님의 군대까지 와서 호위하니 무엇이 그들의 앞을 가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야곱이었습니다. 그 이름대로 ‘속이는 자’였고 의심 많은 자였고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 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노력을 믿고 의지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 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 보다 에서가 무서웠습니다. 에서가 너무나 두려워 하나님의 군대도 미덥지 못 했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꾀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였습니다. 소와 양과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아내들과 자식들을 나누어 강을 건너게 하고 뒤에 남았습니다. 에서의 공격을 당하더라도 절반이라도, 사분의 일이라도 건져 보겠다는 계산입니다.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암염소가 이백, 수염소가 이십, 암양이 이백, 수양이 이십, 젖 나는 약대 삼십, 암소가 사십, 황소가 열, 암나귀가 이십, 그 새끼나귀가 열....... 엄청난 예물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면 과연 이만큼 예물을 준비했을까요? 야곱은 그만큼 하나님 보다도 형 에서를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을 지키려고 온 하나님의 군대가 어처구니없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야곱은 밤새도록 두려움에서 헤어나지를 못 합니다. 얍복강에서 어떤 사람을 붙잡고 밤새도록 씨름합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 하는 것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허벅지뼈)를 쳐서 탈골시킵니다. 그래도 야곱은 악착같이 그를 놓지 않습니다. 그가 날이 밝았으니 자기를 가게 해 달라고 해도 자신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못 가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결국 야곱에게 "내가 졌다."고 하면서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고 고쳐주고 그를 축복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시고 야곱과 동행하시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하나님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밤새도록 그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한 것입니다. 그제야 야곱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지 못 하고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한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에 야곱은 그 곳 이름을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 남았다는 것입니다.

  “얍복강의 씨름”, 그것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야곱의 위대한 기도의 모형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조차 어쩌지 못 한 야곱의 불신과 불안이 아니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야곱이 그렇게 붙잡고 씨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야곱을 보호하지 아니하셨을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야곱의 그 간절한 기도 때문에 형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야곱 가족을 보호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과연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위대한 자”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일까요? 오히려 “너는 참으로 할 수 없는 자로구나. 내가 졌다.”라는 뜻 아닐까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사41_14-16)"

  인간은 지렁이 같아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싸워주심으로 가나안을 정복하고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하고, 마음에 평안을 이루지 못 하고, 밤새도록 불안과 고통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얍복강 씨름'하지 마십시오.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야곱은 밤새도록 힘쓰고 애쓰며 죽도록 얻어터지고 환도뼈가 탈골되어 절뚝거리게 되고서야 그걸 깨달았습니다. 그 날 아침 브니엘에 떠오른 해는 그런 야곱을 비추며 웃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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