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등은 모두 하나님이 미리 마련하신 구원의 수단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이러한 일들을 성도들을 택하실 때에 그 자녀가 되는 수단과 방법으로 미리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택하실 때에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방법과 수단까지도 정하신다. 이런 것들을 정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알아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이루는 자에게만 상을 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란 수단을 준비하셨고, 부르심, 믿음, 회개, 칭의, 양자, 성화, 견인 등과 같은 성령님의 사역을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수단으로 미리 준비하셨다. 예수님이 객관적으로 획득하신 구원과 성령님이 주관적으로 적용하시는 구원을 성도들이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수단으로 준비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 성도들이 구원을 획득하고 획득한 구원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획득하시고 하나님이 적용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오직 하나님의 순전한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으로 택하시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순전한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으로 성도들이 그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수단들도 미리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심, 믿음, 회개, 칭의, 양자, 성화, 견인 등에 성도들을 참여시켜 주심으로 성도들이 이 일들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고, 우리가 죄에 대하여 회개를 하고, 우리가 점점 더 거룩한 자로 자라가고, 우리가 여러 시험과 고난들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지만, 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순전한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으로 인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미리 정하신 것이므로 이것들 모두는 하나로 묶여있다. 일종의 사슬(체인, chain) 같은 것이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는 이것을 황금사슬:(golden chain)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획득과 적용을 위해 부르심, 중생, 회개, 양자, 칭의, 믿음, 성화, 영화, 견인 등을 황금과 같이 귀하고 견고한 체인으로 하나가 되게 묶어 주셨다는 것이다. 체인을 이루는 각 이들이 촘촘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페달을 밟는 발의 힘이 그 체인을 통해 바퀴에 실패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신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전거 체인의 이들보다 더 깊고, 많고, 신비하다. 그 구원이 우리에게 한 번에 순간적으로 간단히 펼쳐지지 않는다. 과정과 순서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황금과 같은 귀한 사슬로 연결되어 반드시 우리에게 실패 없이 주어진다.

 

요사이 이것을 구원의 서정”(序程, The order of salvation)이라고 부르는데, 자칫 오해하면 부르심, 중생, 회개, 양자, 칭의, 믿음, 성화, 영화, 견인 등에 엄밀한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구원의 서정은 이것들이 나열한 순서대로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사람에게 주어질 때 위와 같은 과정이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은 하나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신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자전거의 체인의 이들을 보면 이것이 없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이 이것이 없는데, 바로 우리의 구원의 과정을 이루는 것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이 되어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신칭의오직 은혜오직 믿음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한 이해 없는 이신칭의는 언제든 신인협력으로 나아간다. 이미 성화는 신인협력으로 너무 이해되고 있다. 황금사슬과 떨어져 오직 믿음을 말하면 이미 거기에서는 믿음이 구원의 원인이 되기 시작한다. 이것 없이 저것을 준비하시지 않은 하나님의 크고 다양한 사역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들을 이해할 때 비로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가시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해가 된다. 이에 대한 이해가 적으면 우리는 그만큼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사람이 하는 일로 읽게 되어 성경을 때로는 위인전기전으로 읽게 되고, 때로는 적극적 사고방식과 긍정적 사고방식을 고취하는 인간 계발서로 읽게 되고, 진리 대신에 정직과 인내와 성실이라는 인간적 교훈에 집중하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과 이스라엘 민족을 보라. 하나님은 부족한 이들의 범죄와 탈선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며 끝내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시지 않는가?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두 예수님이 획득하신 구원과 성령님이 적용하신 구원에 대한 기록이지, 절대로 사람들의 정직, 용기, 인내, 화합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이러한 구원의 사역을 사랑으로 하시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모두 죽어갔을 것이고,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을 당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신자들에게 즉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이든, 선지자이든, 제사장이든, 왕이든, 열 두 제자이든 모두에게 부르심, 중생, 회개, 양자, 칭의, 믿음, 성화, 영화, 견인을 하나의 사슬로 묶어 주셨다. 이들 모두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반드시 주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고,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시작과 마침이 되시어 우리에게 완벽한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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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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