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후기-종교개혁 연구에 보다 밝은 빛이 . . .


                                                         리차드 멀러 (Richard A. Muller. 칼빈 신학교)
                                                                     번역 : 이성호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종교개혁과 후기 종교개혁 연구는 지난 30 여년 동안 극적인 변화를 겪었는데 이 변화는 신학교 교육에 가장 적합한 연구 분야, 즉 기독교 사상과 교리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 같다. 이 변화들의 근저에는 역사학 연구의 두 발전이 자리잡고 있다. 첫째, 헤이코 오버만(Heiko Oberman), 데이빗 스타인멧츠(David Steinmetz), 그리고 스티븐 오즈멘트(Steven Ozment)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과 중세의 연속성에 대한 관심의 증가. 둘째, 신정통주의의 쇠퇴와 신정통주의의 종교개혁가들과 스콜라주의(중세든 후기-종교개혁이든)의 사상에 대한, 지나치게 편향된 해석의 쇠퇴.

첫째 이슈, 즉,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종교개혁의 전통적이고 교회론적 특징에 대한 인식, 따라서, 종교개혁가들의 신학과 그 이전 교회사의 신학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다. 물론 이 인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인식은, 교회 내의 문제점과 오류에 대항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확증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이해했던 종교개혁가들에게도 너무나 분명하였다. 그리고 이 인식은 종교개혁자들의 사상뿐만이 아니라 교부들의 신학, 심지어 중세의 “보다 건전한” 신학에도 의지하였던 종교개혁가들의 후계자들, 즉 16세기 말과 17세기의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에게도 분명하였다.

최근의 연구는 중세 후기 사상에 대한 일련의 궤적을 잘 보여준다. 그 결과 우리는 종교개혁이 반대하였던 고해성사와 공로사상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지만, 또한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하였던 어거스틴의 중세적인 “은혜 신학”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중세 후기에 전통의 권위가 성경과 동일하다는 주장도 발견하지만, 또한 성경이 신학을 위한 절대 유일한 규범이고 전통은 종속적인 규범이라는 가르침도 발견하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트렌트 공의회나 현대 로마 카톨릭 교회보다는 종교개혁과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현대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다소 놀라운 일이다.

종교개혁사를 다시 보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인문주의”와 “스콜라주의”의 대립이 지나치게 과장되었으며 종교개혁에 대한 인문주의의 영향이 구 스콜라주의의 영향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발견하였다는 데 있다. 따라서 스코라주의자들에 대항한 종교개혁 시대의 논쟁들은 종교개혁자들에 영향을 미친 중세 스콜라 신학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이해함으로써 이제는 균형을 바로 잡아야만 한다. 우리는 “스콜라주의”가 특별한 신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접근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콜라주의는 어거스틴적 은혜신학을 포함한 여러 신학을 운반하도록 도와주는 학문적 수레바퀴일 뿐이다. 종교개혁은 신학적 오류들과 지나치게 사색적인 신학방법에 대항하였으나 여전히 은혜의 구(스콜라적인!)신학에 굳게 서 있었다.

신학 발전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이 종교개혁과 개신교 정통주의에 적용될 때에도, 역사가들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우리는 개신교 정통주의와 개신교 스콜라주의가 종교개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이전 세대의 판단이 너무 단순하고 근본적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스콜라주의와 정통주의에 대한 이 부정적 견해는 종교개혁가들은 이전 시대의 거의 모든 전제들을 제쳐놓고 구 스콜라주의에 대항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인” 새로운 신학 형식을 제공하려고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였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종교개혁가들의 후계자들은 구 스콜라주의적 형식에 의존하여 “예정론적 형이상학”을 만들어 내었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었다. 17세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들 중에서 적어도 하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돌트 신경의 가르침인 “제한 속죄”와는 반대로 칼빈은 “보편 속죄”를 가르쳤다. 이 주장은 사실 상 칼빈은 알미니안주의자로 전락시키고 칼빈의 가르침과 돌트 신경의 진정한 연속성을 부인한다. 칼빈과 다른 종교개혁가들의 신학이 신정통주의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과 어떠한 관련도 없으며 그들의 후예들도 “예정론적 형이상학”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칼빈과 돌트신경의 연속성은 훨씬 더 분명해 진다.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재해석은 분명히 일련의 실천적 교회론적 의미를 내포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서 우리 자신의 카톨릭성을 확증하게 되며 따라서 교회사 전체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다. 특별히, 역사를 이렇게 읽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분파로 제한시키기보다는 우리자신이 보편 혹은 “카톨릭” 교회 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전통의 자료들을 보다 많이 접하게 될 때 우리의 신학과 영성이 발전한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개혁가들과 후기 정통주의자들 모두가 기독교 전통의 중심되는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전해 주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역사적 정당성도 거의 없이 시간에 묶인 신학을 하면서 종교 개혁을 그 자신의 이미지 안에서만 재현하고, 그 결과 종교 개혁과 오늘을 분리시켜 그 배들을 역사의 정박지로부터 떠나 떠돌아 다니게 하였다는 생각에 더 이상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신정통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세대 들 보다 훨씬 더 존경스런 마음으로, 동시에 훨씬 덜 불안한 마음으로 우리의 전통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의 신앙 문서들은 보다 더 분명하게 시대과 장소에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종교개혁과 그 이전 전통과의 연속성, 그리고 종교개혁과 정통주의 시대와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벨직 신앙고백서와 돌트 신경을 보다 발전된 개혁 전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돌트 신경을 “스콜라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초점을 잃은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에 의해서 구 스콜라주의의 요소가 개신교 신학에 채택된 이상, 돌트 신경의 “스콜라적” 요소들은 종교개혁과 돌트 신경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돌트신경,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종교개혁가들의 사상을 통해 초대교회의 전통과의 연속성을 근거로 우리 개혁신앙이 카톨릭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듯이, 이 문서들은 자신들이 종교 개혁과 연속선 위에 있고 교회에 개혁 신학이 무엇인지 설명하여 준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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