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교회의 특징 (장점과 단점)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 한복협 발제문

고명진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기독교는 최초의 성립 이래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왔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이전에 이미 서유럽에는 천주교가, 그리고 동유럽에는 동방정교회가 있어서 기독교 세력은 크게 양분되어 있었다. 루터의 교회개혁 후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신교로 나뉘어 졌다.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 비해서 다양한데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를 비롯해서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교, 구세군, 그리고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 이단을 포함한 개신교의 교파는 상당히 많다. 게다가 각 교파는 여러 교단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교파운동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무수히 존재했었고, 또한 현재에도 존재한다.

본 글에서는 침례교회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침례교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교단 조직이 타 교단에 비해 개 교회 중심적이면서도 교회의 운영이 민주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개신교 교파들 가운데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2. 침례교의 특징
침례교는 루터의 교회개혁 이후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이 출현한 교파이다. 많은 사람들은 침례교의 성향을 좌향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침례교는 신약의 본질적인 원리를 지키는 교회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원형적인 교회(Primitive Church)로서의 신약교회(New Testament Church)의 신앙을 전승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침례교는 당시 교회개혁이 지향하였던 여러 가지 목표들을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밀고 나갔던 교파이기도 하다. 침례교는 루터가 유아세례와 성찬식을 가톨릭의 방식대로 계승했다는 점에서 그의 개혁이 불충분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침례교는 무엇보다도 침례나 주의 만찬과 같은 교회 내 예식이나 조직 면에서 성경에 가장 근접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침례교가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본 연구의 진행은 의식, 교리, 조직, 대사회적 면으로 나누어 타 교단의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1) 교회 의식: 침례
침례교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침례를 통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침례교의 첫 번째 특징은 침례의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교파들은 주로 물을 뿌리는 방법에 의해 세례를 주고 있는 것1)에 비해 침례교는 아예 물속에 담그는 방법을 통해 세례를 주고 있다. 침례교는 다른 교파들에 비해 이와 같이 세례를 주는 방법을 달리하고 그 방법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 세례라는 말 대신에 ‘뱁티스마(baptisma)’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원하였다. 캐나다인으로 우리나라에 온 침례교 최초의 선교사이며, 주한 외국선교사들로 구성된 성경번역위원회의 부회장으로 있던 말콤 C. 펜윅(Malcom C. Fenwick, 1863-1935)은 ‘baptism’을 세례 대신 ‘뱁티스마’로 번역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부회장직을 사퇴하고 성경을 혼자 번역할 정도였다. 그러나 침례교는 ‘뱁티스마’라는 용어가 일반에 생소할 것을 우려하여 ‘뱁티스마’라는 용어는 포기하되, 세례라는 용어 대신 침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2)

이와 같이 침례교는 침수침례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믿는 자들만이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신자의 침례’라고 부른다. 침례교에 의하면 신약교회는 믿는 자들만이 침례를 받았으며,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았다. 침례 때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은 장사 지냄을, 그리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믿지 않는 사람이 침례로 인해 몸이 물에 잠겼다면, 그것은 물에 젖지 않은 죄인이 물에 젖은 죄인으로 바뀐 사실 이외의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침례교는 모태교인을 인정하지 않으며,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자기의 믿음을 보여 줄 수 없음으로 유아세례는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침례교는 침례가 곧 구원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침례교인에게 침례는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 결코 아니다. 침례는 죄를 씻지 못한다. 따라서 죄를 씻기 위해 침례를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침례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침례를 못 받았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침례교는 침례를 상징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침례교인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침례교는 확실히 믿지 않고 철저히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 침례를 행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인위적인 기간이 지난 후가 아니라 확실히 믿고 있다는 증거만 있으면 침례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3)

2) 교회 의식: 주의 만찬
타 교단과 가톨릭이 말하는 성찬식에 대해 침례교는 ‘주의만찬‘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기독교 각 교파의 입장은 크게 화체설(transubstantiation), 공재설(consubstantiation), 그리고 상징설(symbolism)로 구분할 수 있다. 화체설은 로마 가톨릭의 입장으로 성찬식 때 사제에 의해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견해이다. 이 경우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기 때문에 성찬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거나 없는 사람이거나 간에 똑같이 작용한다고 믿어진다. 공재설은 루터와 칼빈의 입장으로 다시 구분된다. 루터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방법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가운데’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 입장에 의하면 역시 성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도 성찬을 받을 수 있다고 믿어진다. 이에 비해 칼빈은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에 임재한다고 믿고 성찬은 오직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만 작용한다고 믿었다. 화체설과 공재설은 비록 그리스도가 어떻게 임재하는지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한다는 점에서는 견해를 같이 한다. 상징설은 이와 달리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실제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는 견해이다. 침례교는 츠빙글리에서 비롯된 이 상징설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다른 교파들과 대비된다. 침례교는 침례가 교인권의 시작이라면, 성찬식은 교인권의 점검이라고 생각한다. 침례교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떡은 떡 그대로, 포도주는 포도주 그대로 남아 있다고 믿으며, 성찬을 이와 같이 은유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가 성경에 가장 가까운 견해라고 생각한다.

3) 교리
침례교는 교파신학이나 헌법 혹은 특별한 신조를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침례교는 교리도 없고 신앙고백도 없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침례교 역시 하나의 교파로 존재하는 한 교리적인 측면의 특징이 없을 수 없다. 침례교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무한정의 권위를 부여하며 성경무오설을 지지한다. 침례교에 의하면 권위는 오직 살아있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며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신약성서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침례교 최초의 선교사였던 펜윅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한글 번역에 힘을 썼으며, 성경 읽기를 장려하였던 것이다.

침례교는 바이블에 대한 교단의 권위 있는 해석보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해석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펜윅은 신도들이 바이블의 어려운 구절에 부닥쳤을 때 남의 도움을 빌어 해석하기보다는 수차 그 구절을 읽으면 성령이 필요에 따라 알게 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침례교는 바이블에 무한정의 권위를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도 개개인이 누구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바이블을 해석할 수 있으며, 과학과 교육에 의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때에는 그에 따라 신앙을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아마도 이러한 입장은 침례교가 영적 개인주의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영혼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다른 어느 교파보다도 강조하여 모든 신자가 똑같이 제사장의 지위를 지닌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침례교에도 교파 나름의 신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침례교는 대체로 웨스트민스터문답서와 필라델피아신앙고백서를 지지하다가 1925년에 가서야 일반적으로 ‘뉴 햄프셔 신앙고백(New Hampshire Confession)’으로 알려져 있는 신앙고백을 채택하여 신앙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침례교는 1962년에 이르러 이 ‘뉴 햄프셔 신앙고백’을 수정, 보완하여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Baptist Faith and Message)’라는 신앙고백을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침례교는 이 신앙고백서가 최종적이라고 보지 않으며 오류가 전혀 없는 완벽한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만약 새로운 상황이 도래한다면 적절한 시기에 이 신앙고백서를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가 미국 남침례회라는 침례교의 대표적인 교단에서 채택된 신앙고백서라고 해서 이 신앙고백서를 모든 침례교 교단이 승인할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침례교의 다른 교단은 물론이고 미국 남침례회에 소속된 침례교 교회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서를 만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고백서는 어디까지나 바이블 해석에 도움이 되는 지침일 뿐 이것이 모든 침례교인의 신앙을 좌지우지할 권위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서 침례교는 개신교의 다른 교파와 달리 신조가 신도들의 양심을 구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침례교는 신과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소통과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신과 올바른 관계를 수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침례교 내부에는 다양한 신앙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4) 조직
침례교는 원칙적으로 철저한 개교회주의를 지향한다. 비록 개교회가 모인 지방연합회, 그리고 지방연합회가 모인 총회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 3자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동의 관계이다. 따라서 침례교의 교단 조직은 한마디로 개교회주의에 입각한 협동적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침례교의 이러한 교단 조직은 로마 가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의 다른 교파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침례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치권과 자결권을 가지는 침례교의 개교회는 감독제도나 장로제도와 대비되는 회중제도라는 조직 형태를 취한다. 감독제도는 감독이나 주교에 의해 치리되는 교회 형태로 로마 가톨릭, 영국 국교회, 프로테스탄트 감독교회, 연합 감리교회, 루터교의 일부가 채택하고 있다. 장로제도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는 당회가 교회를 치리하는 교회 형태를 말하는데 장로교가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교파이다. 감독제도와 장로제도가 모두 중앙집권적인 조직 형태라면 회중제도는 보다 민주적인 조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회중제도 아래에서는 교회의 모든 문제가 회중 자신에 의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회중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교파는 회중교회,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침례교를 열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침례교는 중앙집권적 조직 형태가 아니라 회중제도라는 민주적인 조직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직자와 평신도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비록 개교회 내에 목사와 집사라는 직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직분은 계급의 직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능의 직분으로 이해된다. 이런 조직 형태 내에서 신도 개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보다 민주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침례교의 조직적인 측면에서의 특징은 한마디로 개교회의 자치와 회중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점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사회와의 관계
침례교는 대사회적 측면에서도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침례교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로마 가톨릭은 물론 여타 개신교 교파들과 대비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침례교는 회중의 권한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회중교회와 비슷한 측면을 지니고 있으나 침례교는 회중교회가 국가의 통제 아래 있으려는 것과 달리 국가가 교회에 대해 그 어떤 통제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교단유형론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형이라기보다는 섹트형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침례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비교적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였으며, 영국, 유럽, 미국 등지에서 주로 서민들이나 노동자 계급에 더 많은 호소력을 지니고 파고들었다. 그리고 개신교 교파 가운데 최초로 해외 선교를 시도한 케리(William Carey, 1761-1834)는 1793년부터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다른 교파들에 비해 일찍부터 해외 선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침례교가 섹트형에 가까운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면 침례교는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세례의 방법으로 침례를 행하며 성찬식을 상징적으로 이해한다는 점, 신도 개개인이 바이블을 해석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신조가 다른 교파들에 비해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 아울러 우리는 침례교가 개교회주의를 지향하며 회중의 권한을 강조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와 교회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다.

3. 침례교회의 신앙
1) 성서의 권위
침례교인들은 또한 오직 성경만을 그들의 믿음과 행습의 유일한 권위로 믿었다. 에릭 올만(Eric Ohlmann)은 이러한 침례교인들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종교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어떠한 안내를 받기 위한 자료들을 성경뿐만 아니라 전통이나 이성, 그리고 경험으로부터 의도적으로 가져오려는 다른 기독교 단체들과는 달리, 침례교인들은 철저하고 단호하게 오직 성경만을 그들의 신앙과 행습의 유일한 권위로 삼았다.” 즉 장로교회는 존 칼빈의 성경에 대한 해석을 따르고, 감리교인들은 존 웨슬리의 성경이해를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신앙의 지표로 삼았다고 볼 수 있지만, 침례교회는 이러한 어떤 신학자의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고자 하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2) 교회론
가. 신약 성경을 모델로 하는 순수한 교회 추구
침례교인들은 신약교회를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교회로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의 체계와 직분을 성경에 있는 모범을 따라 조직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약교회를 순수한 교회로 보고, 교회의 체계와 직분을 성경에 가르침에 근거하여 만들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침례교회의 입장이다. 침례교인들은 신약성경에서 교회 구조의 모범을 발견하였고, 사도적인 교회를 실현하려고 하였던 사람들이었다. 침례교인들은 성경의 권위를 교회체제에도 적용하였던 것이다.

나. 믿는 자 침례와 중생자 교회회원
침례교인들은 유아세례는 성서적인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여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신앙을 고백한 자에게만 침례를 베풀었던 것을 근거로 믿음을 고백한 신자에게만 침례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신자의 침례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침례교인들은 침례를 중생 받음에 대한 외부적 표식으로 보았으며, 교회란 신자의 모임이므로 교회 회원은 오직 침례를 받은 중생자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침례교회는 교회의 구성원은 회원(member)뿐만 아니라 참여자(participants)도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다만 정식회원은 중생을 얻은 자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가시적 교회와 교회 치리 강조
침례교회는 불가시적이고 우주적인 교회의 개념을 인정하지만, 주로 가시적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1644년의 “제 1차 런던 신앙고백서”는 “교회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에게 가시적인 것으로서, 부름 받아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말씀과 성령으로 복음에 대하여 가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침례 받고 주님과 하나 된 성도들의 모임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가시적 교회에 대한 강조는 또한 유아세례 반대에 대한 이론적 근거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4) 정교분리
침례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였고, 그것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재침례교인들과는 달리 침례교인들은 맹세하는 것, 성도가 관료 되는 것, 무력을 사용하는 것 등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국가에 충성하는 것을 강조하였고, 극단적인 평화주의를 채택하지 않았다. 즉 침례교회의 정교분리는 물리적인 분리가 아니라 영적인 분리였던 것이다. 신앙의 자유는 침례교인들은 모든 성도가 어떠한 인간적인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음을 보여준다.

5) 회중주의: 만인제사장 교리에 근거
침례교회는 만인제사장의 교리에 근거하여, 교회정치의 형태로 회중주의를 채택하였다. 침례교도들은 성직자를 계급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기능적인 사역으로 여겼다. 즉 목사와 집사, 그리고 평신도는 계급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일의 차이로 생각하였다.

6) 민주적인 체제와 개교회주의
침례교회는 회중주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교회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이고 평등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침례교회는 또한 개교회주의 즉, 지역 교회의 자치를 믿었다. 개 교회 자치의 전통은 민주주의 체제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7) 선교에 대한 강조
사실상 침례교회는 개신교회들 중에서 가장 선교를 강조한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선교운동을 일으킨 윌리엄 캐리는 침례교 선교사였다). 침례교회는 선교에 열심 하는 교단으로 유명한데, 침례교회가 선교를 강조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 고백을 해야 한다는 침례교 자원주의 교회론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었다.

5. 마치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개신교의 한 교파인 침례교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침례교의 여러 특징과 신앙을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본 글이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를 침례교 내부에서 완벽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 전통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회는 유아세례를 인정한다. 이는 구약의 교회에서 시행 되던 예식인 할례와 유월절 만찬이 신약의 교회에서 세례와 성찬으로 대치되었다고 해석하는데 기인한다. 특히 할례나 세례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있는 공동체에 들어온다는 상징이 있다고 해석하며, 이미 공동체에 있던 가정에서 자녀가 출생하면 할례를 베푼다는 구약의 원리를 따라 신약의 교회에서도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가정에 자녀가 출생하면 공동체 안에 있다는 의미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신교 특징상 구원의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2) 침례교의 경우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침례요한이 회개 후 침례를 주장하였고, 예수도 제자를 삼은 뒤에 침례를 주라고 분부했다는 것에 기인한다.

 

출처: 복음뉴스 독자공간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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