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열정>이 아닙니다. 열정보다는 <순종>이 더 필요합니다.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말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인 기도 안에는 <자기 의>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의 기도는 말씀에 못 박힘이 있기에 주님의 뜻만을 구하게 됩니다.


열정과 순종, 한 쪽은 좋고 한 쪽은 나쁘다고 비교 우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열정 이전에 순종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열정 이전에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이미 하늘에서 정하신 뜻을 이 땅 위에서 풀어낼 수 있는 <하나님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서만 말씀이 기도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앞으로 어떤 시간들을 맞이할지 이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나아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맞이하기 위한, 마치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시간들입니다.


무엇인가를 출산하는 과정과도 같은 앞 날이기에 중요한 시절입니다. 그래서 힘겹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르심 받은 자들에게는 힘들지만 기쁜 날이 되는 것입니다. 깊어지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산고의 고통, 생명을 낳는 출산은 열정 이전에 듣고 따르는 자세,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길 원하는 여러분!" (행 10:35)


엘리야의 시대처럼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시하십시오. 이에 내 안에 열정 이전에 순종의 자세가 충만히 있는지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시대는 주님 말씀 하신대로 '그릿 시냇가'로 피해야만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곳에서 까마귀들이 가져다 주는 것들로 배를 채워야 하는 시절입니다. (열상 17장)


그러나 마침내 그 곳마저도 물이 말라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때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의, 자기 지식을 거두어 내고 이해할 수 없지만 "하라!"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해야만 "엘리야의 영들"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할 <엘리야의 영> 말입니다. 


열정하면 생각나는 분이 베드로 사도이십니다. 그는 디베랴 바닷가 이후, 마가의 다락방을 통해 성령을 받은 이후 <순종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바로 유대인으로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리더십이었던 베드로 사도가 꿈에 나타난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간 것이 그 증거인 것입니다.


그 날 밤, 베드로 사도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행하심을 들은 이방인들 위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부어주신다는 사실에 베드로 사도와 함께 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보고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행 10:44-45)


이처럼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끝내시는, 마침표 찍으시는 시간이 마지막 때"란 것을 기억하시며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열정 이전에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순종하려는 열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주님이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통로되어 하늘에서 정하신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낼 주님의 사람을 찾고 계신것입니다! 산 골에 사는 자가 전하는 소리이지만 들을 귀 있는 분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마라나타!



글: 김영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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