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2018
묵상말씀 : 삼상31:1-6
제목 : 하나님을 떠난 인생길을 보세요
                                         김경열 목사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날에 함께 죽으니라.(삼상31:6)
So Saul and his three sons and his armor- bearer
and all his men died together that same day.
(1 Samule31:6)]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
15년 동안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 길이가 1마일이나 되는
호화 찬란한 궁전이었고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으며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순금으로 만들었고 그가 사용하던 말들도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다고 합니다.

세상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네로는 늘 허무와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은 자살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말로는
쾌락을 누리면서도 만족이 없고
소유를 가지고도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또 소수자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동성애 퀴어축제가 7월14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다고 해서 염려가 아주 큽니다.

전 세계에 동성애자들이 몰려와 별 해괴한 모습으로
옷을 벗고 거리를 행진하며 축제 퍼레이드를 합니다.

성경에서 동성애는
분명히 하나님을 떠난 죄악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혼자 사는 아담의 모습이 좋지 않아
하와를 주신 것은 남녀 결합의 창조원리입니다.

동성애는 레위기에 땅의 정결을 더럽힌다고 했고
창 18장에서 남색이란 말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유래했습니다.

롬 1:14-32에는 하나님의 진노에 속한 죄로 나열돼 있습니다.
동성애는 종교적 타락, 윤리적 타락으로 지적됩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며
남녀 간의 결혼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 근간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로마에 폼페이는 한 도시에 화산 폭발이 일어나서
잿더미로 최후의 날을 맞이한 곳입니다.
놀라운 것은 남자가 남자끼리 여자가 여자끼리
사람이 짐승과 관계하는 모습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도 벌써 동성애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발굴하던 사람이 하나님이 어찌 이런
죄악을 보고 심판하지 않았겠느냐 하면서
이것이 ‘역사의 거울’이라고 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동성애는 창조 질서를 거역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문명들은 결과가
심판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쾌락과 탐욕에만 빠지게 됩니다.
자신도 불행하고 다른 사람도 불행으로 빠뜨리게 되고
결국은 마귀에게 속는 일입니다.

성경에 초대왕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본문에서 사울 왕과 블레셋 사람들의 전투가
매우 맹렬했습니다.

결국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아들(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
셋이 함께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사울 왕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시기와 질투로 마음을 사로잡았고
하나님의 손길이 사울에게서 떠났고
인생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사울이 겸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을 잃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
버림받는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앞모습 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있을 때보다 떠난 후에 아쉬운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았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사울은 갈수록 인생의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1. 사울은 처음 신앙이 변질되었습니다.(15:17-19)

1) 변화와 변질은 전혀 다릅니다.(19절)

변화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고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나
변질은 본질에서 벗어나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변질되면 썩고 부패합니다.

음식물도 변질되면 버리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변질되면
존귀한 사람도 떨어지고 천박한 사람이 됩니다.

변질되면 높은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하고
수취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사울은 변질되었습니다.
계 2장에 에베소 교회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순교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키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삶이 풍요해지면서
처음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버렸습니다.

잃은 것과 버린 것은 전혀 다릅니다.
잃은 것은 무의식적인 실수라면
버린 것은 의도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왜요? 풍요가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가난할 때보다 부요할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병들 때보다 건강할 때 더 무너지기 쉽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환란을 당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신앙이 무너지지 않는데
삶이 안정되고 평안할 때
무너지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에서 영적 해이함은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다윗이 무너졌던 때가
영적으로 해이할 때였습니다.

조지 바너가 쓴 ‘주전자속의 개구리’란 글이 있습니다.
현대 문명에 휩쓸려 영적으로 잠이 들어가는
미국과 여러 나라의 잠자는 교회들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개구리를 물이 든 주전자에 넣어 따뜻하게 데우니
나른하여 잠이 듭니다. 점점 뜨거워오지만
느끼지 못하고 결국은 죽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많은 교회가 풍요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유럽 교회는 거의 예배당이
텅텅 비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이 변질되지 않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겸손할 때 왕으로 세우셨습니다.(17절)

스스로 작게 여길 때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처음과 나중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존귀하게 쓰셨습니다.
겸손할 때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지으면서도
처음 먹은 마음이 변함이 없음으로
자신이 만든 방주를 통해 자신의 가정이
모두 구원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가던 첫날 마음이
3일 길을 가면서도 변하지 않을 때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시간이 가면서
믿음을 잃었습니다.(13:11-12)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입니다.
아말렉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시작했는데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사무엘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기충천하여 싸우겠다고 나섰던 병사들은
하나씩 흩어지기 시작했고 적들은 이미
믹마스 국경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급한 나머지 사울이 제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사무엘이 도착을 했습니다.
사무엘을 본 사울은 선지자여 어쩔 수 없어서
부득이하여 내가 제사를 드렸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전쟁이 이기고 지는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는다면 백성이 흩어지든지 적들이 국경을 넘었든지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다려야 할텐데
믿음을 잃었습니다. 신앙을 잃었습니다.

사울이 부득이하여 어쩔 수 없이 내가 드렸다고 할 때
사무엘은 왕이여 망령된 일을 하였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거늘
어찌 망령된 일을 하였나이까?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신앙에서 변명과 타협은
믿음을 무너트리는 치명적인 요소가 됩니다.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음을 상실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떠나면서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왕 세운 것을 후회하셨습니다.(15:11)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하셨습니다.

후회는 기대에서 빗나갈 때, 충성에서 배신할 때,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세웠을 때 등에 듭니다.
후회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호스피스 전문가인 오츠 슈이치 박사가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로부터
‘후회’라는 말을 1,000명이 훨씬 넘는
환자들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암 말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가해지는데
그 고통보다 더 깊이 환자의 가슴을 후벼파는
화살촉이 지난 날에 대한 ‘후회’랍니다.

삼상 15:35에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고
하셨습니다. 왜 일까요?

1)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15:19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면
아말렉에서 잡아온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조리 죽이겠다고 약속을 했고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왕궁 뒤뜰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어찌 왕궁에서 시끄러운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느냐?
내가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음으로
하나님도 당신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2)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15:22-23)

22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고 제사보다 나은 것을 알지 못하나이까?
23절에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말씀을 버린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유없이 버리지 않습니다.

성경에 버림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들입니다.

벨사살 왕은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성전의 성물로
술을 마시면서 하나님을 조롱할 때 별안간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벽에 글씨를 쓰는데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해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에서 잡혀온 다니엘이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달아보시고 부족이 보여서
나라를 빼앗고 메데파사로 쪼개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이때 메데파사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벨사살 왕을 죽이고 나라가 둘로 나뉘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우습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 때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당신을 버린다고 경고를 했습니다.

3. 하나님을 떠난 결과를 보세요.(31:6절)

1) 인생을 번뇌하며 살았다(16:14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 삶이 불안해졌고
시기 질투로 악령에 잡혀 살았습니다.(19:9-10)
중심을 잃었고, 방향을 잃었고, 자기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관리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악령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2) 사울은 길보아 산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31:6)

전투에서 하나님은 적에게 생명을 넘기셨고
패하게 되었습니다.

자식 세 명이 죽었으니 마지막 칼을 세워놓고
엎드러져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인생의 말로가 너무 비참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떠나 가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권력도 헛되고 명예도 소유도 헛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떠나면 기쁨도 떠나고
행복도 떠나고 소유도 떠납니다.
그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떠나고 맙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울의 말로를 거울삼아
평생에 하나님의 품속에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제공
                          (917-963-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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