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2)

자료실 2010. 11. 17. 04:24
2.4. 인도 북부 개혁 불교

기원전 3세기경에 “마우랸”(Mauryan) 제국의 왕 “아쇼카”(Asoka, 기원전 273-232)가 불교로 개종함으로 불교는 인도 전 지역에서 세력을 얻게 되었다. 아쇼카 왕이 죽은 후에 마우랸 제국은 분열되었지만, 이후에도 여러 왕조 계승자들은 자신들이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불교에 배타적이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 불교를 후원하곤 하였다.

아쇼카 왕이 불교로 귀의한 이후 기원전 2세기부터 주후 2세기까지 불교가 인도 내에서 크게 번창하면서 불교 내에서 교단 분열이 일어났다. 이 시대를 “부파불교시대”라고 한다. 특히 당시 그리스 로마 문화와 교류가 빈번했던 인도의 북서지방에서 기존 불교의 가르침에서 탈피하려는 개혁바람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Mahayana, 大乘佛敎)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불교는 이론에 치우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오랫동안 수행하는 출가 승려만을 위한 소승불교(Hinayana, 小乘佛敎)였다. 혼자만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 불교였기에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반발하여 대승불교는 보살(Bodhisattva, 菩薩) 사상을 바탕으로 이타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보살”이란 먼저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의 대자대비(大慈大悲) 때문에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교화시키는 일을 하는 자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대승불교에서 관세음보살(Avalokitesvara, 觀世音菩薩)은 자신의 부처됨을 연기하기로 맹세하고 어려움에 처한 중생들의 기도를 들어주며 일체 중생들이 열반(Nirvana, 涅槃)에 들어갈 때까지 세상에 남아 중생들을 돕는 보살을 가리킨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다 보살이 되어서 중생들을 깨닫게 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불교는 많은 부처와 불보살들을 가진 대중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다. 대승불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불(成佛)하자는 대중화된 불교인 것이다. 소승불교에 의해 대중에게 닫혀있었던 불교의 문을 대승불교가 열어 개방시킨 것이다.

2.5. 해외로 전파되는 인도 불교

불교는 인도 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진출했다. 중국에는 이미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59-210) 때 불교가 들어와 번성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213년에 시작된 진시황의 억압으로 불교가 탄압을 받았었다[신문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 2009년 5월 13일자에 따르면, 중국 산시성(陝西省, Shaanxi) 고고학 연구소의 학자인 “한 웨이”(Han Wei)는 “중국 최초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서인 사기(史記, The Historical Records)에 진시황제가 불교와 불교 사찰들을 심하게 탄압했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로는 한나라 명황제(漢明帝, 주후 28-75) 때에 불교가 중국에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경이 처음으로 중국어로 번역된 것은 주후 148년경 즉 후한(後漢) 시대에 불교 포교사로 중국에 들어온 안세고(安世高, An Shingao)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안세고는 인도 북서쪽에 있었던 파르티아(Parthia) 제국의 왕자였다가 승려가 되어 불교 포교사로 중국에 들어왔다.

동쪽 끝에 있는 한국에까지 불교가 들어온 것은 주후 3, 4세기경이었다. 고구려는 인도 승려라고도 하고 중국 위나라 승려라고도 하는 순도(順道)에 의해 주후 372년에, 백제는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Marananta)에 의해 주후 382년에, 신라는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에 의해 주후 263년에, 불교가 유입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기도 전에 고구려 승려가 신라에 불교를 전파했느냐?”란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체로 주후 4세기경에 한국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인도 불교가 주후 2세기에는 중국에 들어와 번역된 경전을 만들고, 4세기에는 인도와 전혀 국교도 없었던 한국까지 포교사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부터 국가로 통합되어 정치 문화적인 교류를 맺고 있었던 로마, 그리스, 아프리카 등에 불교를 포함한 인도 종교가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도마복음』이 들어있는 낙하마디 문헌이 만들어지던 주후 4세기에 이집트에 인도 종교인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 사실을 밝히기 전에 먼저 인도 종교에 대한 간략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3. 인도종교 이해

3.1. 힌두 경전 『리그베다』

힌두 종교의 기반은 『베다』경전이다. “베다”(Veda)란 말은 고차원적인 종교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도 아리안들은 힌두 종교의 내용이 수록된 산스크리트어로 된 여러 권의 책들을 만들었다. 이 책들을 『베다』라고 한다. 『베다』의 종류로는 네 개의 수집본(Samhita)이 있는데, 이것들은 『리그베다』(Rg Veda), 『야주르 베다』(Yajur Veda), 『삼마 베다』(Sama Veda), 『아타르바 베다』(Atharva Veda) 등이다.

또한 이 네 개의 경전에 붙어 있는 부록들이 있다. 그것들로는 『브라마나스』(Brahmanas), 『아랑야카』(Aranyaka), 『우파니샤드』(Upanisad) 등이다. 힌두 종교인들은 위에 모든 경전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계시의 책이라고 믿는다. 『베다』에서 나온 가지들이라는 『베당가』(Vedanga)들은 베다 경전들과 같은 계시의 수준에 들지는 못하지만 넓은 의미로 『베다』경전에 속한다.

『리그베다』는 베다 경전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028곡의 노래와 약 10,000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노래들은 수백 년 동안 여러 시인이나 제사장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기원전 1,200-1,000년 어간에 한권의 책으로 수집되었다. 이 수집본은 거의 3,000 년 동안 인도 종교인들에 의해 거의 변경 없이 암송되고 구전으로 전승되어 왔다.

『리그베다』의 노래들은 펀잡(Punjab) 지방에 거주했던 인도 아리안들의 종교적 관심과 사회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 노래들은 다양한 신들을 찬양하고 있다. 물론 그중에 가장 중요한 신은 의심할 것 없이 활동적이고, 강력하고, 예상할 수 없고, 전투적인 신 “인드라”(Indra)이다. 즉 “인드라”(Indra)는 전쟁 신이었다. 둘째로 중요한 신은 불의 신 “아그니”(Agni)이다. 아그니는 태양 불, 난로 불, 제단 불, 사람 배속에 소화시키는 불,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불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아그니는 신들의 제사장이며 또한 인간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제사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그니는 제사에서 신들과 인간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중재자로 역할을 한다.

『리그베다』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소마”(Soma)이다. 소마는 제사에 쓰이는 식물이름이며 또한 그 식물을 짜서 낸 즙을 가리키기도 한다. 더욱이 그 식물을 혼합한 음료를 마심으로 생기는 현상들을 인격화한 신이기도 하다. 『리그베다』에 있는 기록을 보면, 이것을 먹으면 정신이 아주 맑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음료를 영감, 환상, 계시의 음료라고 부른다. 희생제사 때에 시인들은 소마 주스를 마시고, 그것을 통하여 신들과 연합한다. 소마 음료에 의한 계시들은 단순히 꿈이나 환각으로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지각 이상의 더욱 분명한 깨달음을 준다고 한다.

인도 아리안들이 기원전 1200-600년 동안에 인더스 강 유역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도시 문명을 만들어 냈다. 기원전 600년경까지 인도 아리안들은 유목민 생활에서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으로 바뀌어 졌다. 이 시기에 도입된 철기는 갠지스 강 평원에 있던 깊은 밀림 지대를 없애는 데에 사용되었고 또한 농사 경작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다. 더욱 안정된 인구와 풍부한 식량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정착시켰다.

인도 아리안 유목민들은 정착하면서 초기 계급사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도 아리안 민족이 아닌 외부사람들이 노동자로 병합될 경우 이들을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 “수드라”(Sudra)들로 취급했다. 정치적으로도 체계화되면서 초기 왕국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초기 왕국 탄생과 더불어 무역의 중심지로서 도시들도 생겨났다. 기원전 600년까지 수십 개의 도시들이 북부 인도에 있었다.

이러한 안정된 생활로 인해서 『리그베다』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 적들을 패배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희생제사가 이제는 사회와 우주 질서를 유지 또는 안정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리그베다』의 후기 노래들을 보면 제사 의식이 자세하게 체계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에 『리그베다』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신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후기 『베다』에서는 희생제사 자체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제사의식이 강화되면서 제사 업무를 담당하는 계층인 “브라만”(Brahman)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리그베다』의 시인들은 베다 노래에서 강력하고 능력 있는 말씀을 “브라만”(Brahman)이라고 했다. 결국 “브라만”은 제사장 즉 사람을 가리키기는 말이기도 하고 말씀을 가리키기는 말이기도 했다. 종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예전적인 말씀들이 본래 능력이 있다는 사상은 인도의 여러 종교 학파들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예전적인 말씀들을 노래 부르듯이 운율에 맞추어 주문(呪文)으로 발전시킨 것이 “만트라”(Mantra)이다. 『리그베다』 시인들은 노래를 만들고 암송하는 사람에게도 “브라만”이란 이름을 적용시켜 브라만 계층을 확대시켰다.

초기 브라만 암송자들은 혈통으로 상속되거나 또는 같은 부족 간의 결혼을 하는 그런 사회 계층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기 『베다』경전에 보면, 브라만들이 『베다』를 가르치거나 제사의식을 주관하는 특별한 사회 계층이 되면서 자손에게 상속되었다. 브라만 계급이 사회적으로 공식화된 가장 중요한 최초의 근거는 『리그베다』에 들어있는 찬송집 『푸루샤숙타』(Purusasukta)에서 발견된다.

이 노래에 의하면 네 가지 사회 계급이 “푸루샤”(Purusa)로부터 나오는데, 그의 입으로부터 “브라만”(Brahman) 즉 종교인들이 나오고, 그의 팔로부터 “크샤트리야”(Ksatriya) 즉 용사들이 나오고, 그의 허리로부터 “바이샤”(Vaisya) 즉 상인들이 나오고, 그의 발로부터 “수드라”(Sudra) 즉 종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 노래는 이 네 종류의 사회계층들이 창조의 순서에 의해서 지위가 구분된다고 가르친다. 결과적으로 브라만은 푸루샤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최고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3.2.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

『아랑야카』(Aranyaka)는 문자적으로 “숲속에 있음”이란 의미가 있고, 『우파니샤드』(Upanisad)는 “스승 옆에 앉아 있음”이란 의미가 있다. 이 두 책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희생제사에 기초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책들은 세속을 떠나 숲속으로 들어가서 지혜의 스승 옆에 앉아서 은밀하게 대화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들은 대중을 위한 경전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우파니샤드』는 후에 ‘베다의 절정’(Vedanta)으로 받아들여졌다. 『브라다랑냐카 우파니샤드』(Brhadaranyaka Upanisad)는 가장 초기 것들 중에 하나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우파니샤드』이다. 이 책에서 브라만의 스승인 “야즈나발캬”(Yajnavalkya)가 소개된다. 궁정 제사의 결론에서 야즈나발캬는 자신이 베다 문제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윤회(transmigration) 사상에 대한 대변인으로 기록된 최초의 인물이다.

윤회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보면, 사람은 죽음을 통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세상으로 영원히 옮겨가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으로 되돌아와서 새로운 죽을 운명으로 다시 살다가 죽게 된다. 이런 삶과 죽음과 재탄생을 『우파니샤드』에서 “삼사라”(Samsara, 윤회)라고 말한다. 삼사라는 단지 한 개인의 윤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영원토록 같은 윤회의 과정에 속해 있다는 말이다. 『우파니샤드』의 이런 세계관은 낮과 밤, 계절 변화 등에 관심을 두었던 초기 『베다』경전에서 나왔다.

이런 윤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야기한다. “다음 탄생 때에 모습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영속적인 윤회 외에 다른 것은 없는가?” 첫째 질문에 야즈나발캬는 『베다』경전 안에 있는 “칼마”(Karma, 인연, 業) 개념을 다시 정의 한다. 칼마는 넓은 의미로 ‘행동’을 의미한다. 『베다』경전에서 모든 제의적인 행동들은 때로는 그 당시에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열리게 되는 열매(Phala, 결과)를 만들어낸다. 야즈나발캬는 인과관계에 대한 이 개념을 확장시켜서 그것을 도덕적 차원에 적용시켰다. 생전에 사람의 도덕적 행위가 다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신처럼 행동하면 다음 세상에서 신이 된다. 그러나 신도 역시 영원한 신으로 남는 것이 아니다. 천상의 오랜 향락 생활 후에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야즈나발캬는 끝도 없이 돌아가는 윤회 외에 다른 길도 소개한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것을 ‘해방, 해탈, 구원’이란 의미의 “목샤”(Moksa)라고 부른다. 야즈나발캬에 따르면, 개인이 자신의 욕심, 욕망을 소멸시키면 목샤 즉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 욕망이 삼사라 즉 윤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세상의 삶을 초월한 상태를 가리키는 목샤는 개인이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목샤 즉 해탈에 관한 가르침은 후기 인도 종교사에서 발전된 모든 『우파니샤드』 사상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그동안은 『베다』경전이 가르쳐 온 제사 사상을 통해서 사회적이며 집단적인 종교생활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해탈 사상의 등장으로 인해 개인 스스로 윤회에서 벗어나서 종교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다. 다른 면으로 보면, 『베다』경전에 따라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세상의 현상 유지에 집착하는 것이고, 해탈을 추구하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서로 완전히 반대가 되는 가르침이다.  

이런 상반된 가르침은 인도 종교사 전반에 거처 “세속을 떠난 금욕주의적 출가 생활이냐?” 아니면 “세속 안에서 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생활이냐?”란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들은 해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깨닫기 위해서는 세속을 벗어나는 탈속이나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탈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과의 인연을 점진적으로 끊어야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가자”(Sannyasin)는 집과 가족을 떠나서, 상대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며, 가혹한 환경에서 견디며, 땅위에서 자며, 음식을 조절하고, 호흡을 조절하며, 한마디로 세상에 얽매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끊어버려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탈속적인 수행을 『브라다랑냐카 우파니샤드』(Brhadaranyaka Upanisad)와 같은 본문에서 처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전에 『베다』경전들은 우주와 사회의 질서를 발생시켰던 제사의식들을 제시했다. 이런 제사에 대한 가르침들은 당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공헌을 해왔다. 브라만과 같은 계급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입증하는 정치적 힘으로서 이런 제사의식 가르침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 중심의 종교생활이 『우파니샤드』에 의해 개인 중심으로 바뀌었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은 사회나 정치 등 세상에 얽매인 모든 것들을 끊어버리는 탈속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이전에 집단적인 성격을 가진 제사의식보다는 개인적으로 엄격한 금욕생활과 깨달음을 통하여 목샤 즉 해탈을 추구하도록 힌두종교의 방향을 바꾸었다.

(발췌: 큐복음 상권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289-299페이지)

목차(상기 내용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목차를 추가한다)
VIII. 부록: 인도종교와 혼합된 『도마복음』

1. 항아리에서 쏟아진 영지주의 문헌들
   1.1. 『도마복음』이 들어있던 항아리
   1.2. 침묵하는 항아리

2. 그리스 로마 세계에 포함된 인도
   2.1. 낙하마디 문헌들의 뿌리를 찾아서
   2.2. 기원전 6세기 이후 인도와 문화 교류
   2.3. 그리스 로마 문헌에 기록된 힌두 종교
   2.4. 인도 북부 개혁 불교
   2.5. 해외로 전파되는 인도 불교

3. 인도종교 이해
   3.1. 힌두 경전 『리그베다』
   3.2.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
   3.3. 기원전 6세기 힌두 개혁종교: 자이나교, 불교
       3.3.1. 자이나교
       3.3.2. 불교
   3.4. 정통 내에 개혁바람: 힌두 육파철학
       3.4.1. 상키야(Samkhya) 학파
       3.4.2. 요가(Yoga) 학파
       3.4.3. 베단타(Vedanta) 학파
       3.4.4. 미맘사(Mimamsa) 학파
       3.4.5. 바이세쉬카(Vaisesika) 학파
       3.4.6. 니야야(Nyaya) 학파

4. 인도종교와 기독교의 혼합
   4.1. 영지주의의 본산 이집트
   4.2. 영지주의 문헌 안에 힌두사상: 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4.2.1. 영지와 깨달음
       4.2.2.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신관        
       4.2.3.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세계관
       4.2.3. 영지주의 기도와 힌두종교 만트라
       4.2.4. 영지주의와 인도종교의 일치

5. 절대로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5.1. 첫째 이유: 복음과 독약이 혼합된 『도마복음』  
   5.2. 둘째 이유: 초대교회 교부들도 인용 안한 『도마복음』
   5.3. 셋째 이유: 현존하는 2만5천여 개의 성서사본들의 증거

6. 결론

출처: 아멘넷, 김기천/ 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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