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독설과 불평에 질린 남편, 아내와 헤어지려 카사노바에게 “그녀를 유혹해 달라“부탁
불합리하고 위선적인 세상에 일격을 날리는 그녀의 직설화법…영화 보는 재미 배가시켜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결혼 7년째의 두현(이선균)은 입만 열면 독설을 쏟아내는 아내 정인(임수졍)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롭다. 마침내 그는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코믹 멜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내 아내의 모든 것’'(감독 민규동)은 볼만하더군요.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질린 남자가 아내를 떨쳐 버리려고 전설의 카사노바를 고용해 ”그녀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 구도가 구미를 당기게 한 건 아닙니다. 이 비현실적 코미디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영화 속에서 현실감 있는 단단한 알맹이 하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주인공 정인(임수정)이 남편 두현(이선균)에게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불평과 독설들입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여주인공 정인(임수정). 그녀는 매력있고 똑똑하며 요리도 잘하는 이상적 조건을 갖췄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뱉어낸다.
사실 그녀의 독설은 이 영화에서 부부 사이 갈등의 발단입니다. 두현이 정인을 일본에서우연히 만나 사귈 땐 사랑스럽고 섹시한 외모에 요리 실력까지 갖춘 매력만점 여성인 줄로만 알았는데, 결혼 7년째인 두현은 아내의 그치지 않는 독설과 불평 때문에 하루하루가 피곤합니다.정인은 집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남편과 이웃과 세상의 모든 일 중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기어코 직설법으로 지적하고 비판하느라 종일 입을 쉬지 않습니다. 붐비는 커피 전문점에선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우리나라에 커피 애호가들이 많아졌나?”라고 화를 냅니다. 남편 회사에서 체육대회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나는 사내 단합 체육대회 같은 거 정말 싫어. 그런다고 단합이 되나?”라고 쏘아붙입니다. 두현의 휴대전화엔 아내의 번호가 ‘투덜이’란 이름으로 저장돼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독설, 가만히 들어보면 의외로 ‘말이 되는’ 소리들이 많습니다. 거부감보다 공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옮기면, 이런 내용들이 이어집니다. “난 모든걸 긍정적으로 본다는 낙천주의자들 싫어. 교통사고 당해 다리가 부러지고도 ‘이만한게 천만 다행’이라니? 뭐가 다행이야? ’운 나쁜 일 당했지만 잘 이겨내야지‘하는 게 더 솔직한 거 아냐? ”“배우자 찾을 때 경제력을 따지면 속물인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에겐 이성의 성격이나 취미가 중요한 조건이듯, 어떤 사람에겐 경제력이 중요한 판단 기준일 수 있어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전설적 카사노바' 장성기(류승룡)가 직접 짠 우유를 운반하며 남성미를 과시하고 있다. 그는 두현(이선균)의 의뢰를 받아 정인(임수정)에게 접근한다.
판에 박힌 생각들을 반성해 본 사람의 ’이유있는 비판‘으로 느껴집니다. 동네 삼겹살 식당 간판을 보고도 그녀는 이런 비판을 합니다. “ 원피스 입은 분홍 돼지 캐릭터가 구운 삼겹살을 쟁반에 받쳐들고 있는 포즈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게 말이 돼? 아무리 돼지지만, 아니, 자기 친구들을 구워 요리해 놓고 이걸 드세요 하는 것으로 그리다니!”그녀는 말만 하는게 아니라 행동도 합니다. 남편 직장의 부부 동반모임에 갔다가 상사 아내들이 그녀를 아랫사람 부리듯 하대하자 “이게 예의냐”며 판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대목은 후련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합니다. 신들린 듯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녀의 직설적 불평들은 여러 대목에서 큰 공감을 자아냅니다. 공연한 헐뜯기가 아니라 뒤틀린 가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인이 젊은 날을 일본에서 보낸 것도 좀더 질서있는 나라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녀의 독설은 집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사회로 퍼집니다. 라디오 출연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정인은 무용 지도를 핑계로 젊은 남자 제자 몸을 만지는 여교수의 수업 현장을 찾아가 직격탄을 날립니다. 그녀의 사회적 발언의 결과인지 삼겹살집 간판의 분홍돼지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그녀는 남편의 부탁을 받은 ’전설적 카사노바‘ 성기(류승룡)의 유혹을 받으며 새로운 체취의 남자를 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독설녀‘ 정인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자신을 좀더 다스릴 줄 알게 되고 막무가내 독설도 줄어듭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한 장면. 두현(이선균)은 아내와 헤어지고 싶어서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으뢰를 해 놓고도, 막상 아내가 다른 남자와 시간을 보내자 뒤를 미행한다.
남편 두현도 달라집니다. 아내를 떠나 보내려고 일을 꾸몄는데 막상 카사노바와 아내의 만남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는가 하면, 달라져 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 매력도 다시 발견합니다. 재미있는 건, 점점 외로움을 느껴가는 남편의 입에서 독설이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두현은 아내와 함께 간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가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사소한 일로 노발대발합니다. 이런 독설의 전이(轉移)를 통해 부부가 발견하는 건 불평과 ’마음 상태‘의 함수관계입니다. 두현은 이렇게 깨달음을 말합니다 “ 그거( 아내의 독설), 외로워서 그런건데(내가 몰랐어)…. 내가 외로워 보니까 알겠더라.” 결국 이 영화는 권태를 느낀 부부가 사랑의 감정을 되찾는 이야기이면서, 독설로 남을 피곤하게 하고 자신도 힘들던 여성이 자기 마음의 매듭을 풀어헤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독설녀 정인의 이야기는 로맨스의 굴곡을 풀어가는 메인 스토리와 맞물려, 마치 대위법(對位法)의 대선율(對旋律)처럼 이 영화의 중요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결혼에 싫증난 커플들이나 세상과의 불화로 삶이 힘든 사람들이 음미할만한 영화입니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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