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란?

개혁주의 신학 2012. 10. 18. 17:14

개혁주의란?

 

   흔히들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개혁주의'는 형식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용 못지않게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개혁주의다. 영어로 개혁주의는 'Reformed'로 'Re'와 'form'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며 ‘다시 틀을 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Reformed’의 뜻은 '개혁 된'이다. 즉 개혁주의는 '개혁된 신앙' 혹은 '개혁된 신학'을 가리킨다.

     개역한글번역성경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에서 "혼돈"이란 단어는 히브리원전성경에서는 "토후"란 단어를 사용하며 NIV영어번역본성경에서는 "formless"로 번역되어 있다. 이 토후의 정확한 의미는 '형태가 없는', 혹은 '모양이 없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공허"는 히브리어로는 "보후"로 NIV영어번역본성경에서는 'empty'를 사용하며 이 뜻은 '비어 있는'이다. 우리가 창세기 1장 2절에 사용된 이 단어들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다음으로 주님께서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내용물을 담을 틀과 함께 내용물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주님께서는 앞의 문장에서 사용된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대로 틀을 만드시고 그 틀에 담길 내용물들을 주님의 지혜대로 차례로 만들어 나가셨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건대 무엇인가 거룩하고 아름다운 내용은 그것들을 담을 틀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바로 그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개혁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형식을 결코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중세의 암흑시대를 지나면서 그 틀(예배, 신학)이 완전히 깨어져 버렸다. 교회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삼위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신앙고백(신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선택받은 거룩한 공동체이다. 하지만 중세교회의 예배는 타락하고 부패 했으며 그들의 신앙고백(신학)은 온갖 마귀적인 것들로 더렵혀졌다. 예배가 타락했다는 것은 말씀과 성례(세례와 성찬)의 타락과 부패를 의미하며, 신학의 타락은 구원관의 타락을 뜻한다. 그들의 말씀선포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알레고리적(풍유적)인 설교였으며 미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성찬은 이를 통하여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희생 제사였다. 한편 그들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로 사제(교황)를 세웠으며, 행위로 말미암은 공로사상이 발전하여 면죄부를 팔았으며, 연옥교리 및 성자숭배사상 등 수 없이 많은 거짓된 교리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었다.

 

   이러한 까닭에 16세기 개혁자들은 교회개혁을 단행했다. 이것은 깨어진 틀(예배, 신학)을 오직 성경(모든 성경)에 근거하여 다시 만드는(Reformed) 위대한 작업이었으며, 이 작업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거는 거룩한 사명이었다. 우리가 개혁주의라고 말할 때에 넓은 의미에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 곧 교회개혁자들의 교회개혁운동과 그들의 신학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에 봉착하게 한다. 그것은 개혁자들 그들의 신학과 예배는 성경적이고 로마가톨릭의 신학과 예배는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기준이 되기에 그들은 맞고 로마가톨릭은 틀리다고 주장할 수 있었으며 로마가톨릭은 교회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으며 섬기는 사람들이지 결단코 루터나 쯔빙글리 그리고 칼빈 같은 그 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슨 사상이나 무슨 주의를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섬김)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결단코 인간을 믿지 않으며 인간이 만든 무슨 사상이나 주의는 철저히 배격 한다. 그러한 우리들이, 왜 16세기 교회개혁자들의 신학과 사상을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지금까지 믿고 따르며 그들의 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할까? 도대체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16세기 초 유럽은 거대한 변혁의 물결에 휩싸였다. 종교개혁의 불길이 독일의 루터에게서 시작하여 전 유럽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이것을 헤겔(Hegel, 1770-1831)은 그의 저서인 『역사철학강의』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종교개혁은 “중세기 끝에 여명을 띄우고 솟아나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이다. 역사학자들은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한다. 헤겔의 표현처럼 종교개혁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중세의 암흑을 걷어내는 빛의 역할을 감당했고, 이 개혁의 주요한 동인이 되었던 것이 인문주의였다. 즉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다시 말해서 ‘원전성경’으로와 함께 ‘초대교회의 예배와 삶’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예배와 삶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당시의 휴머니즘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던 원전성경의 연구와 함께 고전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던 인문주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고전어 연구와 함께 문헌학 연구의 발전을 가져왔다. 고전어 연구는 개혁자들로 하여금 원전성경의 연구를 촉진시켰고, 문헌학은 고전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개혁자들은 원전성경에 대한 연구로 말미암아 성경의 바른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고대교회의 삶과 예배는 고대 교회 교부들의 문헌을 통하여 전해져 오고 있었으므로, 문헌학에 정통했던 종교개혁자들은 고대교회의 문헌들을 연구하여 당시의 로마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원전성경의 연구와 함께 초대교회의 기록들은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과 함께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천국(하나님의 나라)을 확장시켜 나가셨다. 역사는 문서이고 기록이며 이것은 반드시 후손들에게 진실 되게 알려져야 한다. 역사가 없는 우리와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종교개혁의 결과로 바른 신앙이 전 세계 곳곳에 전해지게 되었고 한국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A.A. 하지(A.A. Hodge, 1823-1886)는 "성경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해석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라고 그의 저서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는 강조와 함께 성경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잘못된 성경해석이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는 중세의 로마교의 역사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올바른 성경해석에 따른 성경의 가르침이 우리를 하나님의 길로 인도 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의 언어로 기록되어진 책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철저하게 과학적인 언어학의 원리에 따라서 문법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에 따라 해석된 글은 개혁주의 교리에 비추어서 검증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로 성경을 건강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이다.

 

   두 번째는 교회사에 있어서 교회의 아버지로 불리어지는 교부들의 가르침이 성경 해석의 기준점이 된다. 크리스토퍼 홀(Christopher Hal) 은 그의 저서에서 윌리엄 애이브러햄(William J. Abraham)의 “서양 문화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독교의 고전 전통을 거부한다는 것에서부터, 오늘날 신학은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를 인용하여 현대 신학의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이 말은 교부들의 가르침을 모른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가장 바르게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았던 초대교회 교부들의 신앙고백과 삶을 모르고서 성경을 건강하게 해석할 수 있을까? 교회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우리들의 뿌리를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며, 우리가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모른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개혁주의는 오직성경(원전성경)과 함께 초대교회의 신앙과 삶을 따르는 사상이다. 즉 역사적 사도의 전통을 올바로 이어 받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개혁주의이다.

 개혁주의마을/아바드님

 

 

 


'개혁주의 신학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토니 후크마의 중생의 본질  (0) 2012.10.22
단번에 주신 믿음(Semen fiei)  (0) 2012.10.21
선택 예정의 실행 방편들  (0) 2012.10.21
A. 토레이의 성령론  (0) 2012.10.20
선택예정의 이유와 목적  (0) 2012.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