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무속적 현상과 그 극복(1)

한국교회가 비복음적, 반복음적인 무속적 현상을 문제로 의식하고 있지 않거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묵인 내지 허용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심각한 것이고 비판을 받아야 한다.

<연재순서>

Ⅰ. 서론
Ⅱ. 한국교회에 내재하는 무속적 현상들
1. 긍정적인 현상들

1) 새벽기도회 2) 성미 3) 각종헌금4) 주일성수와 헌신적 봉사 5) 번영신앙

2. 부정적 현상들
1)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용어들 2) 일천번제 3) 각종 작정기도회와 특별집회 4) 교패와 십자가 장식들
5) 경품행사 6) 공인(公人)들의 공적(公的)인 기도7) 기도원운동 8) 가계에 흐르는 저주

Ⅲ. 무속적 현상의 극복을 위한 대안
1, 성경적 신관, 세계관의 확립
2. 신앙고백서를 통한 신자양육
3. 성례전의 회복과 권징의 시행

Ⅳ. 결론

1. 서론

한국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이 120년 남짓이다. 그 시간 속에서 한국교회는 엄청난 양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안팎의 걸림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잘 극복하고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돌아보아야 하고, 반드시 개혁해야만 하는 요소들이 있다.

특별히 불교와 유교, 그리고 무속종교가 한국인이 가치관과 생활습관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기독교회가 이 땅에 들어왔다. 서로 세계관과 가치관이 다른 종교이기 때문에 신앙적, 문화적 충돌은 필연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것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라는 아픔의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환경들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이질화 현상이 기독교와 토속 종교의 혼합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어떤 종교적 색채가 강한가에 따라서 종교로서의 명칭을 붙이게 되겠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많은 변질이 동반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토착화신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기독교’와 ‘한국이라는 토양의 전통적 종교’의 조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교파에 따라서는 이미 선교 초기에 있었지만, 해방 이후에는 1960년대 감리교회의 윤성범을 중심으로 크게 대두되기도 했다. 그리고 토착화신학의 여파는 현재까지도 일부 신학자들과 교회들에 의해서 적용되고 있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이처럼 토착화라는 신학적 방법론이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또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은,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요소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문화이든 그 이면에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 이념이나 의식은 문화를 통해서 그 사회를 지배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때, 한국이라는 문화(사회)에 기독교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독교회의 신앙이 한국적인 것으로 변질되거나 변질될 요소를 포함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무속적)이 만들어 낸 문화 혹은 의식, 전통, 관습 등과 같은 것들이 기독교회의 신앙에 포함될 수밖에 없음도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한국기독교회의 무속화를 낳게 하고, 결국 기독교회의 신앙이 변질, 왜곡되는 현상을 동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현재의 한국교회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다양한 종교적 형태와 표현을 동반하는데, 대개의 경우는 무속신앙적인 요소들이 기독교로 포장된 것이다. 특히 부흥회, 기도원, 심지어는 교회 내에서도 생각 없이 행해지는 집회, 기도회, 행사 등에서 무속적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신자들이나 지도자들 자신이 그러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기독교회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거나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한편 이러한 요소들은 한국교회의 양적인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교회의 양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일부 지도자들과 그러한 신앙에 매료된 신자들이 추구하는 내용은 다분히 무속적인 내용을 동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적인 요소를 분별력 없이 목회와 전도의 방법이나 도구로 사용한다면, 한국교회는 중세 말기의 기독교회가 처했던 것처럼 신앙의 무속화가 불 보듯 뻔하다는 사실 때문에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기독교적인 모양과 분위기로 포장된 무속적 신앙의 현상을 정리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성경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려고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에 큰 공헌을 한 한국교회 안의 무속적 신앙의 현상은 지금 와서 오히려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고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기독교회 안에 만연해 가고 있는 무속적 현상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도 이 글의 목적이다.


Ⅱ. 한국교회에 내재하는 무속적 현상들

한 사회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세계관에 의해서 어떤 신관(神觀)과 사회적 가치관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즉 한국이라는 사회에는 다신론적, 자연신론적, 혼합주의적 신관을 바탕으로 하는 샤머니즘(Shamanism)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신관은 우리 역사와 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기독교회는 전혀 다른 신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기에 그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충돌의 고통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이해와 수용, 그리고 적당한 타협을 통해 혼합된 형태의 신앙적 현상들을 동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자연스럽게 무속적 양태를 갖게 되었으며, 한국교회 안에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

전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무속적 신관과 가치관이 기독교회의 신앙형성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전제할 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다.1) 긍정적이라는 표현은 무속적 신앙의 요소가 기독교 신앙형성과 성장에 일조(一助)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영향력을 통해서 형성된 신앙적 측면들을 어떻게 성경적 신앙과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시키지 않는 가운데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제인 것도 사실이다.

한편, 부정적인 면은 한국교회에 있어서 종교개혁의 차원에서 평가하고 개혁해 나가야 할 내용들이며, 한국교 안에 있는 비복음적 내지는 반복음적인 요소들로서 반드시 개혁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그것을 문제로 의식하고 있지 않거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묵인 내지 허용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심각한 것이고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비록 부정적인 면이긴 하지만, 그것들은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크게 기여한 것들로서 한국교회 안에서 확실하게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거나 문제 의식화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를 성경의 가르침 위에 바르게 세우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결코 순결하게 유지될 수 없을 것이고, 어는 순간 모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기에(마 7:24-27), 지금 개혁해 바로 세워야만 한다는 사명의식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무의식적으로 혹은 분별하지 못한 채 그것을 사용한다면 자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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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의 긍정적이라는 표현에 오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임을 밝혀둔다. 여기서 사용된 긍정적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무속적 정서와 가치관이 교회 안에서 신앙적 내용과 조화를 이루어 기독교회의 성장과 신앙의식에 널리 영향을 주었다는 제한적 의미에서 사용한 것일 뿐이다.





이종전/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사신학
크리스천인사이드 제49호 2012년 10월 2일 10면/출처: 개혁주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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